제304화: 암살단(1)
하지만 나카야마는 단호했다.
“난 안가.”
“이리 줘 내가 갈게.”
탁!
비렌드라가 책상 다리를 빼앗았다.
“진짜 갈거야?”
권총수가 묻자 비렌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칼은 뽑혔어. 휘두르지도 않고 집어넣으면 사막의 흑새 권위가 설 것 같아?”
맞는 말이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책상다리 꼭대기에 둥그렇게 한 바퀴를 돌려 선을 그었다.
“이 부분만 날린다고?”
나카야마가 눈을 빛냈다.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고 비렌드라는 책상다리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될 것 같냐?”
오민철이 다가왔다.
“1킬로는 되겠는데.”
권총수는 비렌드라가 가져온 TRG-M10을 꺼냈다.
총을 꺼낸 권총수는 익숙한 동작으로 조준경을 부착했다.
바위는 생각보다 컸고 총알이 뚫고 들어올 만큼 얇지 않았다.
설혹 뚫는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권총수는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 저격수이기 때문이다.
비렌드라는 가져온 휴대용 무전기로 도착 사실을 알렸다.
“형 10센티만 더 위로 올려.”
스윽!
비렌드라는 좀 더 올렸고 권총수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사실 저격수의 저격 모습을 구경한다는 건 쉽지 않다.
저격수와 일반 대원들은 공격 위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라보았는데 주시하는 시선의 위치가 각기 달랐다.
어떤 이는 사막의 열기로 인해 보이지도 않는 1킬로 밖에 있는 표적을 주시했고, 권총수의 사격 자세를 눈여겨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표적을 봐야 할지 저격수를 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시선이 왔다갔다하기도 했다.
오민철은 관측경으로 전방을 살폈다.
관측수(spotter) 역할에 들어간 것이다.
“사거리 1007미터.”
“와우!”
“오오오오!”
오민철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는데 용병들이 놀라며 소리쳤다.
“바람 동풍(E)이 약간 있으나 정온(시속 0.2미터 이하, 고요로 보면 됨). 온도 33도. 습도 11퍼센트.”
“오케이!”
권총수는 조준경의 높이 조절 나사를 작동했다.
띠리릭!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표적을 살핀다.
“사격 준비 끝!”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오민철은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쳐 말했다.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집중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타아앙!
총소리가 뜨거운 사막 위로 울려 퍼졌다.
모두가 오민철이 차고 있는 무전기에 귀를 기울였다.
비렌드라로부터 어떤 결과가 날아올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팩트!”
“우외아아!”
무전기에서 비렌드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용병들이 소릴 질렀다.
오민철 또한 관측경을 통해 볼펜으로 표식해 놓은 윗부분이 깨끗하게 잘려 나간 것을 확인했다.
“명중!”
오민철이 관측경을 떼고 권총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비렌드라는 책상 다리를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혹시 질문 있으면 해라.”
오민철이 일어나 용병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한 명의 백인이 걸어 나왔는데 해병대 출신 벤자민이었다.
“갈수록 현대전에서의 저격수 비중이 커지고 있죠. 그러나 저격수의 사망 건수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권총수는 벤자민의 질문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간파했다.
저격수의 위치가 커진 만큼 그를 죽이려는 적의 작전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벤자민의 질문은 사막의 흑새만이 갖고 있는 생존 비법이 있는지, 또한 우리같은 일반 대원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위장법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잠시 생각했다.
그냥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될 질문이었다.
자신은 지휘관이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지휘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생존과 직결되는 이런 물음에는 최선을 다해 대답 해줘야 한다.
“먼저 저격수가 지닌 위험에 대해 설명을 하면...”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일반적으로 위치가 발각된 저격수의 생존은 거의 보장받지 못한다.
일단 저격수가 발견되면 적은 다른 임무를 당장 접고 총력을 기울여 저격수 공격에 나선다.
월남전을 비롯한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적의 저격수에게 대응하는 방법은 한가지였다.
맞불 작전이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이쪽에서도 저격수를 데려와 역 저격으로 없애는 것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전쟁은 다르다.
저격수가 있을만한 곳에 아군의 모든 화력을 동원한다.
포격은 물론 헬기,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저격수가 있을 만한 곳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미101공수사단은 아프칸에서 작전중 적의 저격병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으며 고전했다.
시가전이었는데 저격수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2동을 전투기로 완파해버린 것이다.
물론 무지막지한 공격속에 저격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큰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다.
현대전에서 저격수는 발각되는 순간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더욱 위장기술이 발달하고 있고 저격병의 첫 째 능력을 은신에 둔다.
“허면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한 가지만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생존 능력이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죽지 않는 것입니다. 군인이 오래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훈련 말고는 없습니다.”
모두가 특수부대를 나왔고 실전경험이 적지 않다.
즉 군대를 다녀왔다는 걸로 인해 훈련을 게을리 하거나 하지 않는다.
나이는 들어가고 훈련까지 게을리한다는 건 전장에서 죽기 딱 좋은 몸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살은 찐다.
훈련양은 당연히 적고 그것이 전장에서 기동력 저하로 나타나면 희생자는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훈련해야 합니다. 운동도 훈련입니다.”
그때 비렌드라가 다가왔다.
우르르!
용병들은 비렌드라의 손에 들린 책상다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랏!”
“어떻게 이런.”
마치 예리한 칼로 잘라 버린 듯 볼펜선으로 표시해 놓은 부분이 잘려나갔다.
십 센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책상 다리를 맞췄다는 것도 질리는데 칼로 두부를 자르듯 깔끔한 표면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총알이 이렇게 깨끗한 표면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벤자민이 물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잘려나간 책상다리 표면을 쓰다듬었다.
“나만 할 수 있는 것이죠.”
“무슨 뜻입니까?”
권총수가 오른손을 빳빳하게 폈다.
싸아악!
톱질하듯 왼손에 쥐어 있는 책상다리를 베었다.
툭!
단단한 책상다리가 잘려 떨어지자 하나 같이 놀랐다.
“오마이 갓!”
“허어헛!”
누군가는 괴성을 지르며 다시 본다.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막의 흑새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죠. 여러분들에게 설명해도 절대 이해를 못 합니다.”
권총수는 돌아섰다.
저격총을 백에 넣고 지퍼로 채운 뒤 어깨에 짊어졌다.
“훈련 끝!”
권총수는 천천히 포드 익스플로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지만 용병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더니 바닥에 떨어진 잘려나간 책상다리를 주워들고 몰려들었다.
싹!
싸사삭!
대리석을 만지듯 표면이 부드럽다 못해 미끄럽다.
결코 볼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현상에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늘 한 사내의 위력을 보았다.
모두들 멀어지는 포드 익스플로러를 보며, 그에게 도전한다는 건 자살 행위라는 걸 깨닫는다.
황산이다.
중국 정부가 산 전체를 국보급으로 여길 만큼 구름과 소나무, 그리고 온갖 모양을 한 기암절봉은 황산을 찾는 이를 감탄하고 탄식하도록 만든다.
아름다움에 취하고, 웅장함에 감동하며, 칼을 거꾸로 박아 놓은 것 같은 봉우리에 질린다.
‘천하제일명산’
영국의 유명한 여행가 데이비스는 황산을 오르고나서 주저않고 지구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산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모든 산은 고유의 산기(山氣)가 있다.
세상에 수많은 산을 구경하고 돌아다녔으나 황산처럼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산은 없었다면서 넋을 잃었다.
그 황산 깊은 곳 추혈곡(秋血谷)에 사람이 나타났다.
추혈곡은 명나라 영락제 시절 역모를 꾀하다 도망친 추운군(秋運群)이 숨을 거둔 곳이다.
그는 황제의 호위조직인 동창의 추적을 받으며 쫓기다 이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때부터 추운군의 피가 흐른다고 하여 추혈곡(秋血谷)으로 불린 것이다.
또한 추혈곡은 기기묘묘한 소나무들과 바위(松巖)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폭포가 만드는 물안개가 여섯 개의 무지개를 만들어 황산 삼경(三景)중 하나로 꼽힌다.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이곳에 두 사람이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한 명은 국가안전부장인 경혜창이었고 다른 한 명은 수행비서이자 경호원 이자율이었다.
“저긴가?”
계곡을 오르던 경혜창이 안쪽을 가리켰다.
멀리 절벽이 있었는데 동굴이 보인다.
“예!”
“몇 년 만이지? 5년 정도 됐나?”
“정확히 6년 반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경혜창은 앞섰다.
둘이 계곡을 걸어 절벽앞에 이르렀을 때 동굴 입구에 누군가 글씨를 새겨 놓았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이는 적이 없다는 얘기다.
경혜창은 밖에 남고 부하직원 이자율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0여분 후 발자국 소리가 안으로부터 들려 나왔고 이자율 말고 열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복장이 시선을 끌었다.
붉은색 장삼을 걸치고 있어 언뜻 소림사 승려로 보였지만 머리를 깎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한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하고 단단한 체격들을 지녔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천천히 열 명의 사내들을 훑어보던 경혜창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육년 반만에 보는데 확실히 다르다.
인자무적동에 들어갈 때는 단순히 젊은 패기만 충천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소림 무술에 대한 기록은 전설과 사실이 교차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소림의 승려들이 대대로 건강을 위해 익혀 왔던 심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림사 어디에서도 그 심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정부에서 백일동안 전문가들을 동원해 특별 수색을 했지만 불경 가득한 지하서고 장경각과 역대로 뛰어났던 고승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나한전에도 기다리던 심법은 없었다.
‘대력금강심법’
그런데 칠 년전 한 권의 양피지로 된 책자가 소림사가 아닌 이곳 인자무적동에서 발견되었다.
황산의 관광지를 좀 더 넓혀야 한다는 측과 더 이상 개방하면 크게 훼손된다는 환경 보호론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중국 공산당 최고위원회에서 찬성과 반대측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황산 조사에 나섰다.
그때 발견된 인자무적동에서 그토록 찾고자 했던 소림의 대력금강심법이 나타난 것이다.
곧바로 전문가들로 이뤄진 연구팀이 결성되었고 심법 내용에 대한 치열한 조사 끝에 달마대사가 갈대 잎 하나를 타고 장강을 건너온 것이 결코 기적만은 아니라는 결론에 얻었다.
양피지는 대력금강심법이었고 연성하면 놀라운 위력을 얻는다는 만장일치의 확신이었다.
태극권으로 온 몸의 혈도와 기경팔맥이 튼튼한 열 명의 사내들을 뽑아 폐관 수련을 시켰다.
중간중간 이자율이 이곳을 들어와 사내들의 상태를 살피며 숨죽여 기다렸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 너희들이 나서줘야 한다.”
“우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열 명의 사내들은 다부지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