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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03화 (303/651)

제303화: 외나무 다리(3)

콘솔 박스 안쪽에 15센티 정도 되는 나사못 10여 개가 눈에 띠었다.

어제까지 살았던 월세 집 벽에 보드와 필요한 기구들을 걸기 위해 구입했는데 사용하고 남은 것이다.

권총수는 나사못을 꺼내 역시 주머니에 넣었다.

톡!

자동차 문을 잠근 뒤 금강부동신법을 펼쳤다.

파아아!

권총수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때마침 뒤에서 달려오던 트럭 운전사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자신의 두 눈으로 사람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 거렸는데 인간은 결코 날수 없으며 피로가 쌓여 헛것을 본 것이라고 여겼다.

헛것이 보일 정도면 당장 쉬어야 한다.

운전사는 르몰아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 먹고 방향 지시등을 켰다.

차를 놔두고 가는 건 자신이 타고 있는 흰색의 포드 익스플로러가 노출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 많은 휴게소이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에서 갈겨 버리면 대책은 없다.

르몰아치 휴게소는 식당과 편의점과 주유소로 구분되어 있었다.

권총수는 휴게소 뒤쪽 산자락을 이용해 내려갔다.

휴게소 식당 건물 뒤로 접근한 권총수는 음식 쓰레기와 과자 봉지, 캔이 뒤섞인 쓰레기장을 지나 식당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식당 안에는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식당 안을 둘러보는데 순간적으로 눈이 반짝 거렸다.

‘둘!’

창가에 마주 앉아 있는 두 명의 건장한 백인 남자들을 바라 보았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사복을 걸쳤지만 검게 탄 얼굴과 이글거리는 눈빛은 극한의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작전상 먹는 시늉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배가 고파서 먹는 건지 몰라도 식사중인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식당 안에 더 이상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밖으로 걸어나와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셋’

편의점 입구에 세워진 폴딩 파라솔 아래 세 명의 남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역시 사복차림에 스포츠 머리다.

권총수는 편의점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총 대신 나사못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혈에 정확히 박아 넣으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권총수의 왼손이 주머니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세 개의 나사못이 쥐어져 있다.

적엽비화 수법으로 나사못이 손을 떠나는 순간 저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지징!

막 던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재빨리 몸을 돌리고서 주머니속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았는데 맥보란이었다.

“여보세요.”

권총수는 불편했기에 목소리가 다소 거칠었다.

“멈춰 주시죠. 일단 가서 얘기 하겠습니다. 솔직히 씰 팀 1개소대가 왔으나 만약을 대비한 것일 뿐 공격의도는 없습니다.”

엔진소리가 나는 것이 승용차로 지금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들은 뭐요? 모두가 무장을 하고 있는데?”

“국장님께서 출동만 지시했을 뿐 공격 의도는 없다는 걸 다시 밝힙니다. 믿어 주시죠.”

탁!

그때 누군가 맥보란의 전화를 뺏는 듯 했다.

“총수야. 형인데 이번은 믿어야 할 것 같다. 맥보란 서기관님도 지금 알았어. 당장 철수 시킬 거야.”

그때였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세 명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식당의 두 사내도 걸어나왔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내들이 모였는데 열 여섯명이었다.

멀리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20인승 버스가 식당앞으로 다가왔고 사내들이 일제히 올라탔다.

부우웅!

휴게소를 떠나는 버스를 보며 권총수가 말했다.

“일 초만 늦었어도 피볼 뻔 했어.”

탁!

권총수는 전화기를 내리고 편의점으로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주문해 왔다.

권총수는 조금전과는 다르게 편한 시선으로 붉은색 폴딩 파라솔이 만들어내는 그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더 이상 살기는 간파되지 않고 있었다.

위험이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담배까지 피워 물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휴게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권총수는 포드의 움직임을 쫓았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멈춘 포드의 문이 열리고 오민철이 가장 먼저 내렸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민철의 시선이 편의점 쪽으로 돌려지더니 권총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갔냐? 아직 있어?”

오민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수 하더라고.”

오민철이 탁 하며 권총수 어깨를 쳤다.

“천만 다행이다. 한 끗발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는데.”

그때 맥보란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백인 남자와 다가왔다.

권총수는 CIA국장이라는 걸 알고 다가갔다.

“사막의 흑새!”

척!

권총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번스 국장이 내민 손만 잡았다.

번스국장이 권총수의 커피 잔이 놓인 맞은편에 앉았고 어느새 오민철이 커피 세 잔을 들고 왔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고갔다.

그러나 분위기는 상당히 딱딱했다.

눈치 빠른 오민철이 농담을 섞어 가면서 군대에서 공을 찼던 썰을 영어로 능숙하게 풀자 번스국장도 권총수도 빙긋 웃고 말았다.

번스국장은 흘긋 오민철을 바라보았는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이 자리가 묘합니다. 묘한 자리지만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사실 이 위치에 있다보면 내 철학과는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이 자리를 스쳐간 수많은 전직 국장들중 상당수가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전쟁을 오래 겪은 병사가 고향에 돌아와 적응을 못하고 괴로워 하듯 말입니다.”

번스 국장은 자신의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나도 괴롭다.

미안하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미중앙정보국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권총수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어제까지 CIA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깨끗하게 잊겠습니다.”

“고맙소.”

“세상을 떠난 부하들의 명복을 빕니다.”

권총수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지휘관을 잘못 만난 탓이지 그들 잘못은 없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죠?”

번스 국장의 물음에 권총수의 고개가 오민철에게 돌아갔다.

서양교육으로 똘똘 뭉쳐 있는 CIA국장이 불가에서 내려오는 말을 알 리 없었다.

승용차 안에서 어떤 말이 오간 듯 보인다.

오민철이 한 마디 가르쳐 줬음이 틀림없다.

“캡틴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싶습니다. 이번과 같은 불행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선국(善國)이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모든 국가는 자신들만의 기준을 두고 거기에 맞게 움직일 뿐이니까요. 단지 분명한 것은 최악 보다는 차악을 추구한다는 것이 내 철학입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라고 자부하며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것 자선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오로지 미국을 위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려는 노력도 어느 정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당신들 입장 이해하니 어렵게 맺은 인연 나 또한 끊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뜻이었다.

“역시 맥이 정확이 보았군요.”

“뭐라던가요?”

권총수는 웃으며 물었다.

“대화가 통한다고 하더군요.”

맥보란이 빙긋 웃으며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번스국장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구와 1분여 통화를 한 뒤 돌아왔는데 표정이 굳어있다.

“한국의 엔터프라이즈 호가 무자헤딘에 의해 강제 나포됐다는군요.”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뉴스에서는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했으나 무자헤딘의 짓이라는 내용은 없었다.

무자헤딘에는 한 사내가 있다.

무사이면서 가장 무사답지 못한 밀교의 후예 아롱바를 떠올린 것이다.

아롱바를 떠올리자 이란에서의 광경이 떠오르면서 권총수의 눈빛이 삭막해졌다.

흠칫!

강한 살기를 느꼈음인지 번스국장과 맥보란 모두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순식간에 사람이 한 자루 칼처럼 변한단 말인가’

번스국장은 부릅 뜬 눈을 깜빡 거렸다.

자신들 앞에 앉아있는 권총수는 조금 전까지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날이 선 칼 한 자루가 되어 있었다.

그건 믿어지지 않는 현상이었다.

뭔가 잘못 보고 있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사막의 태양을 받아 번쩍이는 한 자루 칼이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전장이다.

알파기지에 있는 용병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권총수에 대한 명성을 들었고 지금 막 그가 보여준 사격능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100미터 야전사격과 30미터 50미터 시가전 사격에서 그 누구도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정확한 사격을 보였다.

단 한 발도 실수가 없는 권총수의 사격에 일부 용병들은 충격을 받은 듯 얼굴이 굳어졌다.

“한 수 더 보여주지 그래.”

오민철이 웃는다.

“그만 해. 지나치면 잘난 체 하는 것이 된다고.”

“아냐. 그렇지 않아. 캡틴은 잘난 체 해도 돼.”

나카야마가 웃었다.

“어랏!”

권총수가 놀라는 표정을 했는데 멀리서 비렌드라가 저격총 백을 메고 오고 있었다.

오민철이 보여달라는 건 저격이었다.

사격과 저격은 또 다르다.

제 아무리 뛰어난 특등사수도 자신의 거리가 있다.

자신의 신체조건과 시력, 사격자세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거리가 존재한다.

그 거리를 넘어서면 그때는 자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감각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사신(射神)이라고 부를 만큼 날고 긴다는 사수들도 저격총을 잡지 못하는 건 모두 그 때문이다.

권총수는 그걸 초상감각(超上感覺)이라고 명명했다.

초상감각은 공공선사가 일러준 강호무사에게만 존재하는 제 육감을 의미했다.

모두가 쳐다본다.

권총수의 진짜 주특기는 저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보여달라는 시선들이었다.

자신의 주먹에 이번에는 권총수의 저격으로 완전히 눌러놓겠다는 오민철의 계산이다.

“거리가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민가도 없는데 만들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며 오민철이 나카야마를 불렀다.

“쪽바리, 너 저기 철책 너머에 바위 보이지?”

오민철이 나카야마 어깨에 손을 얹고 외부와 알파부대의 경계를 가르는 철조망을 가리켰다.

철조망까지는 150미터 정도 떨어져 있고 그 너머로 거친 황무지였다.

“바위 보여 안 보여?”

“바위가 한둘이 아닌데.”

“삼각형 바위 말이야. 보이잖아?”

“오케이 보여.”

“이걸 들고 바위 뒤에 숨어 있어.”

손에 들고 있던 둥근 책상 다리 한 개를 건네주었다

책상 다리는 일 미터 정도 되었는데 지름이 10센티 정도 될 것 같았다.

“쪽바리 네가 바위 뒤에 숨어 이걸 들고 있으면 총수가 맞히는 거야.”

“으헉!”

나카야마가 소스라친다.

“뭘 놀라는 거야.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고 바위 뒤에 숨어 이것만 들고 있는 건데, 아주 쉬운 일이야.”

“바위 두께가 어느 정도 되는데?”

“나도 모르지. 가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오랜 야전 경험에 비춰 저 정도라면 무식하게 두꺼울 거야. 빨리 가.”

“조센징이 가.”

“쪽바리, 여기 지휘관이 누구야?”

“그야 총수지.”

“총수에 대한 인사명령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내가 알파부대 지휘관이다. 쪽바리 위치로.”

“니가 가라.”

"지휘관 한테 니가 가라. 이런 개 쪽바리가."

오민철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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