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01화 (301/651)

제301화: 외나무 다리 (1)

권총수는 대답대신 고개를 돌렸다.

움찔!

예상을 벗어나 백인이 아닌 동양계 얼굴에 놀란다.

“장관께서 엘시시가 대통령 궁에 들어가는데 일등 공신이었죠?”

알도사리는 군 출신이다.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적이랄 수 있는 이스라엘과 가깝게 대치하고 있는 제3야전군 사령관을 지냈다.

엘시시 대통령도 군 출신이지만 의외로 반대파가 많았다.

그 간극을 알도사리(당세 제3 야전군 사령관)가 메운 것이다.

동기들을 만나 설득하고 후배들을 끌어안음으로 인해 엘시시의 집권 초반이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엘시시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일을 하다 작년에 수자원관계부 장관으로 부임했는데 그 인사에는 한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권력이 안정되자 엘시시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는 알도사리에게 자신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바로 그때 유전 발견 소식이 나왔다.

수자원관계부 장관으로 재빨리 발령을 낸 건 유전개발을 통해 리베이트 좀 받아 챙기라는 의미였다.

“아직도 대영제국의 시대인줄 아시는 모양이군요?”

영국이라고 해서 우리 이집트가 호락호락 할 줄 알았냐는 뜻이었다.

빙긋!

권총수는 웃었다.

“어떻게 영국정부가 중동의 패자인 이집트와 불편한 관계를 생각 한단 말입니까? 영국정부의 외교는 철저히 친화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장관님, 중국 정부보다는 적겠지만 BP쪽에서도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BP에서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영국 정부에 당신 같은 로비스트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는 것 같소만?”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 시간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BP와 사인을 마무리 하시기 바랍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계약서 사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때는 그 사진들을 CIA에 넘기겠다는 뜻이었다.

어찌 보면 협상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방적인 통지였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막상 화를 내려고 하면 그렇게 분노할 일도 아니다.

“바쁜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관님!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정중하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품속에 권총이 있다.

방아쇠를 당겨 버리면 깨끗하게 정리된다.

비록 교회 안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겠다고 나선 사내다.

슥!

손이 오른쪽 허리로 반쯤 다가가다 잠시 멈칫했다.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상하게 뽑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건 또 뭔가.

‘뽑는 순간 죽을 것이오.’

환청처럼 들려오는 목소리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죽고 싶으면 뽑아도 됩니다.’

또다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지만 여전히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고개를 들었을 때 권총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좋은 결과를 기다립니다.’

털썩!

다시 들려온 말에 결국 알도사리는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어떻게’

권총수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그것도 자신의 귓속으로만 들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알도사리는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너무 놀란 알도사리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오 분 가량이나 꼼짝 않고 있던 알도사리는 나직이 중얼 거렸다.

‘엘로우 카드로군.’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신이 지닌 그런 불가사의한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바로 그때였다. 또 한 마디 전음이 들려왔다.

‘나 사막의 흑새의 데스 노트에 오르면 절대 살아나지 못 합니다’

꽈당!

사막의 흑새라는 말에 너무 놀라 그만 의자에서 뒤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동굴 교회를 떠난 권총수는 돌담이 길게 이어지는 곱타 거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좀 더 올라가면 쓰레기 마을이 나오고, 좌측으로 꺾어지면 크고 작은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이른바 카이로 카페 골목이다.

카페 골목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차를 세우고 내리더니 ‘파라오’란 간판이 걸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카페 안은 조용했다.

아직 퇴근 시간이 멀었기 때문에 카페는 비교적 한산했는데 호지슨 MI6부장이 혼자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권총수는 조용히 다가가 맞은편에 앉아 알도사리 장관과 나누었던 얘길 해주었다.

“거래가 이뤄지리라고 보시오?”

호지슨의 염려 가득한 눈빛이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알도사리가 최악의 경우 미국과 충돌을 각오하고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지 않느냐, 사실 미국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이집트가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감안 할 때 함부로 다그칠 수만은 없다는 것이 호지슨의 말이었다.

“걱정마시오.”

권총수는 염려 말라는 듯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들끼리 의견 다툼이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BP와 계약할 것입니다. 그에게 내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한 수 보여줬거든요.”

“능력?”

‘전음이라는 건데 내가 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내 음성을 전달 할 수 있지요.’

으훅!

호지슨은 움찔했다.

귓속으로 권총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영국의 BP(Btitish Petroleum)가 이집트 유전개발업체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채 깨어나지 않은 카이로의 아침을 열었다.

권총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이주천(내공이 임맥과 독맥을 합쳐 전신 삼백 예순 다섯 개의 혈도를 두 번 도는 것)의 운기조식을 끝내고 샤워까지 마쳤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아침 뉴스를 보고 있을 때 전화가 왔는데 호지슨이다.

“감사합니다. 사막의 흑새.”

호지슨을 만난 이후 가장 활발하고 밝은 목소리였다.

“어디십니까?”

“지금 막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런던이라는 말이었다.

“행운을 빕니다.”

권총수는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전화를 끊었다.

중국대사관은 초상집이었다.

중국정부의 세계 패권전략의 하나로 계획했던 중동과 아프리카 진출의 야심이 단번에 꺾인 것이다.

본토에서 걸려온 전화에 시달리고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이집트 정부는 어제 정오에 유전개발사를 발표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발표 직전까지 선정 회사를 놓고 진통이 적지 않은 듯 조금씩 시간을 미루었다.

그리고 밤이 지나도 연락이 없더니 새벽에 기습적인 발표가 나버렸다.

귀곡사가 사망하면서 중국의 페이스가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워낙 유리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시베이 유전으로 결정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중국대사 왕근위는 아침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항상 있는 회의지만 오늘 아침은 모두가 말을 아끼며 서로가 눈치를 보았다.

이번일이 성사됐다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넓어지고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거의 됐다 확신했는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록 자신은 이번 작전에서 한 발 물러서 있었지만 어쨌든 이집트 주재 대사로써 그 책임이 적지 않다.

더욱이 지금 앉아 있는 직원들 중 누군가는 국안부 소속 정보원이다.

겉으로는 모두가 정상적인 외교부 직원이지만 국안부에서는 고위 간부들을 체크하는 요원을 보낸다.

즉 지금부터 자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고 어떤 처신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진로가 더욱 분명하게 결정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카이로 주재 중국대사로서 실패에 대한 책임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여러분에게 면목이 없군요.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이상으로 아침 회의를 끝냅시다.”

“대사님!”

돌아서서 나가는 왕근위 대사를 보며 직원들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회의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 왕근위는 주재국 대사로서 가장 적절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자신이 주관한 일이 아니라고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안 된다.

밖으로 걸어 나간 왕근위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삶이 이토록 비참하고 치욕적인 것인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도대체 이 놈의 나라는’

갑자기 조국에 대해 분노가 치솟는다.

어떻게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해야 하는가.

시베이 유전을 개발사로 낙점 받기 위해 중국 정부 차원의 로비가 시작될 때 무척 못 마땅했다.

로비로 어떤 개발권을 얻는다는 건 구시대적 방식이다.

당당하게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가지가 날아 갈 것 같아 침묵했다.

옳은 말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숙청당하고 정치범으로 낙인 찍혀 평생을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고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어 버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했다.

사람들은 머잖아 중국이 미국을 추월 할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진정한 성장은 자유가 주어질 때 빛을 발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의 발전은 유한(有限)하다.

금세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다.

중국은 어느 한 순간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사분오열 쪼개질 것이다.

지금의 시스템으로 가면 필연이다.

후우우!

담배연기를 길게 뱉었다.

지금쯤 고향 낙양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외롭고 힘들 때 고향처럼 위로가 되고 든든한 버팀목도 없다.

마음이 쓴 탓일까 담배도 쓰다.

권총수는 집을 깨끗하게 비웠다.

원래 계약은 육개월이었지만 일이 의외로 빨리 해결되는 바람에 4개월 만에 비워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리 지불한 육 개월치 집세에서 돌려받을 일은 없다.

1년 계약이 아닌 반 년짜리로 하는 대신 월세를 한 번에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전장으로 가는 것이다.

다시 방아쇠를 쥘 것이다.

이제 아롱바만 처리하면 개인적인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는 것이다.

아롱바는 무자헤딘의 수뇌급 테러범이기 때문에 추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결코 그를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도 있지만 강호무사로서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백도(白道)와 흑도(黑道)의 일전이다.

자신은 백도를 대표하는 소림의 제자로서 그를 벨 것이다.

부릉!

포드 익스플로러의 시동이 걸렸다.

기어를 넣고 출발을 하려는데 옆에 놓아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오민철이다.

“나 지금 출발했어.”

“총수야. 여기 맥보란이 왔어.”

“누가?”

“맥보란이 여기 알파 기지에 왔다고, 네 전화번호가 바뀌어 통화를 할 수 없게 되어 나한테 왔나봐.”

“그 사람이 왜 날 찾아. 더 이상 볼일 없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무슨 일인지 물었는데도 대답을 않던데.”

“옆에 있으면 바꿔봐.”

“기다려.”

밖에 나와서 전화를 한 듯 오민철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문을 열고 닫는 소리도 들렸다.

“전화 받아보세요.”

오민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오?”

“국장님께서 지금 카이로에 계십니다. 캡틴을 만나기 위해 온 거죠.”

“번스 국장이 말이오?”

CIA국장이 개인을 만나기 위해 해외로 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항상 테러에 노출되어 있고 미국 내에서도 웬만하면 정체를 드러내고 다니지 않는다.

“날 왜 만나려 하는 거요?”

“진솔해지고 싶은가 봅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사과를 하고 싶다는 말이기도 했으나 감정적으로 애매한 건 사실이었다.

권총수는 복잡한 표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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