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300화 (300/651)

제300화: 부서지는 꿈(2)

지강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강은 수시로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데 그건 해외에서 반체제 활동을 하는 사람의 운명이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암살 위협에 노출 되어 있다.

국안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맥보란의 말을 빌리면 뉴스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세계 곳곳에서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희생 된다고 했다.

쓰레기 더미 근처에서 시신을 발견했다고 하여 굶어 죽은 노숙자로 보면 안 된다.

더욱이 그들이 중국인이라면 더욱 의심해야 한다.

명나라 때 황제의 친위조직인 동창처럼 국안부는 시진핑의 손발이 되어 언제든지 누군가를 죽인다.

“골치 아프게 생겼습니다.”

권총수는 커피 잔을 들면서 주위를 살폈다.

커피숍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사람 많은 곳이 안전하다.

야외 접촉은 위험하다.

바깥은 누군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방아쇠를 당기기 좋을 상황을 만들어 주는 꼴이 된다.

아무리 간덩이가 쇳덩이라고 해도 사람 많은 곳에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공격한다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강이란 사내 역시 상당히 꼼꼼하고 자신의 안전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다.

“타메르의 신병이 중국 공안으로 넘어간다는 정보입니다.”

“어디서 들은 정보입니까?”

권총수는 표정없이 물었다.

“우리 쪽에서 얻어 낸 것인데 정확합니다.”

정보 출처는 말해주지 않고 틀림없다는 사실만 힘주어 말했다.

지강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민주평의회’라는 단체 간부중 한 명이다.

중국민주평의회는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화교들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지원 받으며 중국정부와 맞서고 있었다.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 했을 때도 워싱턴에서 일만 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들은 유엔을 향해 대중국 무역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며 끊임없는 항의 서한을 보낸다.

중국 정부와 서슬퍼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단체인 만큼 이들 주위에는 우호적인 미국 관계자나 기관들이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CIA다.

중국정부는 이들이 CIA의 조종을 받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미국은 펄쩍 뛴다.

타메르의 신병이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정보 역시 CIA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걱정할 것 없소.”

권총수는 커피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들이 염려하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테니 걱정 마시오.”

권총수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러다 걸음을 세우고 돌아서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내 전화번호를 바꿀 생각입니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커피숍을 나갔다.

지강은 닫힌 문 쪽을 바라보았다.

전화번호를 바꾼다는 건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쨌든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났고 목표를 달성했다.

자신들은 시진핑의 분신을 죽이는데 성공했고 권총수 역시 귀곡사를 제거함으로 이집트 정부와 협상중인 중국 대표단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지강은 조금 전까지 권총수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는데 마시다 만 커피잔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온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꿀꺽!

갑자기 목이 마르다.

그건 수분이 부족하여 생기는 갈증이 아니었다.

‘우리 편으로 만들고 싶다’

한국인이라고 들었다.

용병이니 돈으로 거래를 시도한다면 응할까.

권총수 같은 동료가 있다면 중국민주평의회는 무척 활발해질 것이다.

조직원은 아니더라도 자신들을 탄압하는 국안부 요원들만 제거해줘도 한결 활동이 활발해 질 것이다.

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를 소집해 의논해볼 가치가 있는 사안이었다.

나일강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권총수는 담배를 물고 떨어지는 나일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멈추고 운전석 문이 열렸다.

에르도안이다.

다가온 에르도안은 자신도 담배를 물며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보냈다는 뜻이었다.

“나 또한 조금전 송금했소.”

에르도안은 깜짝 놀라며 핸드폰으로 계좌를 확인했다.

잠시 후 에르도안의 눈이 커졌는데 보너스 오천달러가 들어와 있었다.

원래 오천달러를 받기로 약속한 날짜보다 10일이 늦었다.

계약대로라면 삼천달러 조금 못 미치는 돈을 받아야 하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 했는데 오천달러가 입금되자 할 말을 잊었다.

“딸아이 등록금이 적지 않을텐데.”

권총수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천천히 걸어 자신의 포드 익스플로러를 향해 걸어갔다.

부우웅!

사라지는 포드 익스플로러를 에르도안은 복잡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돈을 많이 받아 분명 좋은데도 등골이 서늘했다.

‘딸아이 등록금에 보태라고’

유학중인 딸아이로부터 등록금 고지서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침묵 한다고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게. 그러다 죽는 수가 있네’

그 옛날 현역에 있을 때 자신과 라이벌 경관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원래는 두 명이었는데 갑자기 상부로부터 진급 대상자가 한 명으로 줄었다는 통보가 내려왔다.

둘 중 한 사람은 탈락 해야 하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그 동료를 부패로 뒤집어 씌워 옷을 벗겼고 자신이 진급하는데 성공했다.

그때 옷을 벗으면서 던진 그 동료가 했던 말이다.

즉, 에르도안의 부패 혐의를 알고 있지만 의리상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길게 숨을 쉬었다.

다행스럽게도 권총수 앞에서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행동 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쉽게 돈을 긁어 낼 수 있는 상대라고 여기고 장난이라도 쳤다간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 뻔했다.

고수는 실력을 보여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낀다.

“알라후 아크바르.”

에르도안은 차를 향해 걸어가며 신은 위대하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이집트 수자원관계부 장관 알도사리는 사무실을 들어서고 있었다.

사무실은 텅 비어 있다.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기주전자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꽂았다.

물이 끓는 동안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하필’

중국 시베이 유전과 개발권에 대한 최종 합의안이 만들어졌고 이제 사인만 하면 끝나는 시기에 실무 대표격인 귀곡사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일이 발생 한 것이다.

중국 대사관으로부터 아직 어떤 연락이나 귀띔도 없다.

귀곡사를 대신해 중국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빨리 선임 되어 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조용했다.

사실 귀곡사의 교통사고에 대해 중국정부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크게 오해를 살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이집트 정부에서는 청소차 운전사를 중국 조사기관에 넘겨주었다.

하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염려하듯 살인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빌어먹을’

이러다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지지 않을지 염려스럽다.

계약서에 사인이 이뤄지면 2억 달러 이상의 거액이 엘시시 현 대통령의 정치자금으로 제공된다.

말이 정치자금이지 개인 통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도 엇비슷한 액수가 전달 될 것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돈은 행복을 전달하는 최고의 물건이다.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어떤 권력도 돈 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지 못한다는 것이 지난 50년 인생을 통해 배웠다.

권력은 흔들릴 수 있어도 돈은 무한했다.

팟!

펄펄 끓는 전기 주전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려던 알도사리의 눈이 빛났다.

자신의 책상위에 봉투 하나가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커피 물을 끓였기 때문에 미쳐 보지 못했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은 아침에 봉투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알도사리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봉투는 투명 테이프로 입구가 봉해져 있었는데 보낸 사람 이름도 없이 장관님 앞이라는 글씨 뿐이었다.

다시 한 번 봉투의 앞 뒤를 살핀 알도사리는 무엇이 들었는지 손으로 더듬는다.

볼록하니 손가락 굵기의 물건 한 개가 들어 있다.

천장의 형광등에 비춰봤지만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찌이익!

테이프를 뜯고 봉투를 열어 거꾸로 쏟자 툭 소리를 내며 USB 한 개가 떨어졌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USB였다.

잠시 USB를 바라보던 알도사리는 컴퓨터를 켜고 USB를 꽂았다.

화면이 세팅되면서 마우스를 이용해 USB속에 담긴 내용물을 끌어냈다.

화악!

화면을 보던 알도사리의 눈이 커졌다.

한 남자와 자신이 악수를 하는 사진이었는데 한두 장이 아니었다.

만나서 차를 마시는 사진, 악수를 하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 그 남자로부터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가방을 받는 사진까지. 설명이 없어도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아 볼 수가 있었다.

꾸울꺽!

목젖이 거칠게 꿈틀거렸다.

지이잉!

그때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기를 꺼내 액정을 봤는데 처음 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스펨일까.

요즘 보이스 피싱도 기승을 부리는데 받을까.

그러나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드물다.

더욱이 전화는 한 번 끊어졌다가 다시 울렸으므로 알도사리는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지금쯤 모두 보셨을 테죠?”

낯선 목소리다.

“그 사진이 CIA로 흘러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사진 속 남자는 파비오 카펠로라는 무기밀매상이다.

미국계 프랑스인으로 중동과 아프리카의 테러집단들이 사용하는 무기의 80퍼센트가 그의 손을 통해 중계된다.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활동하는 IS의 하부세력 윌리야트 시나이 역시 카펠로의 무기가 들어가고 있었다.

즉, 자국에서 활동하는 테러조직에게 무기를 파는 밀매상과 뒷거래를 한 것이다.

앞에서는 테러를 진압하고 뒤로는 테러를 장려하는 셈이 된다.

“누구요?”

궁금한 것이 많다.

어떻게 비밀스럽게 만나는 장면이 찍혔단 말인가.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였다.

그렇다면 이런 사진을 찍어 보낸 유출자는 카펠로 쪽일 것이다.

카펠로의 지시라기보다는 부하들 중 누군가가 만약을 대비해 몰래 촬영한 것이 분명했다.

멈칫!

카펠로에게 전화를 하려다 멈칫했다.

이제와서 카펠로에게 전화를 하여 핏대를 올리며 소리친 들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은 이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온 사내를 만나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내의 말처럼 자신이 CIA가 쫓고 있는 ‘붉은 흡혈귀’ 카펠로와 뒷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미래는 없다.

미국 법정에 서면 종신형이 불을 보듯 뻔했다.

오후 3시의 교회는 조용했다.

천장은 온통 바위다.

카이로 관광지의 백미로 꼽히는 동굴교회였다.

거대한 절벽을 뚫어 이토록 지하에 넓은 교회를 만들었다는 것이 올 때마다 신비롭다.

평일이어서 인지 관광객들도 보이지 않았고 교회 안은 조용했다.

알도사리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제단이 있는 맨 아래쪽 의자에 한 사내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뒷모습만을 봐서는 그가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기다리는 사내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오후 3시 동굴교회에서 만나자고 했고 그래서 왔을 뿐이었다.

내려가는 통로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지하인 탓에 유난히 구두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렸는데 사내는 돌아본다거나 하지 않았다.

한참을 내려 사내가 앉은 의자와 나란히 섰다.

측면얼굴로 봐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인물이다.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사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알도사리는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 1미터 정도의 간격을 놓고 앉았다.

“바쁘실테니 간단히 끝내죠. 이번 유전 개발 BP와 계약 하시죠.”

알도사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CIA쪽이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BP라는 말에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다.

“MI6이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