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99화 (299/651)

제299화: 부서지는 꿈(1)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아침 5시50분경 카이로 외곽3번 국도에서 쓰레기를 싣고 가던 트럭과 중국 대사관 소속 승용차가 충돌하면서 세 명이 숨졌다는 것이다.

사망자들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며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후우우!

창문 밖으로 말보로 레드 연기가 길에 뻗어 나간다.

바람 한 점 없는 카이로의 여름 아침이다.

‘둘은 시베이 유전 이사진들이고 뒤에 탄 사람은 귀곡사입니다’

지강이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탑승자 셋 중 귀곡사가 끼어 있다는 것이었다.

대중국 민주화를 위한 단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등지에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있었다.

그들은 만만치 않았다.

나름대로 치밀한 조직력과 빼어난 정보망을 갖고 있다.

특히 세계 도처에 퍼져 있는 수많은 화교들이 그들의 큰 자산이었다.

그들은 수시로 중국의 해외 공관원들의 움직임을 귀띔해 준다.

이번 사건도 그러했다.

닷새 전 카이로에 사는 화교인들의 모임인 ‘모란(牡丹)’으로부터 오늘 아침 귀곡사가 탄 차량이 중국 대사관을 나와 시나이 반도에 있는 다합까지 간다고 알려주었다.

작전은 그렇게 세워진 것이다.

지이잉!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전화기가 울렸다.

다가간 권총수는 전화를 받았는데 예상대로 지강이었다.

“적중했습니다.”

그건 모란이 건네준 정보가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뉴스에는 사망자 신원이 보도되지 않았지만 이미 중국 대사관을 통해 자신은 명단을 확보 했다는 뜻이었다.

결국 대사관 직원중 누구던지, 아니면 이집트 경찰중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누군가와 손이 닿고 있다는 뜻이다.

북경은 밤이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야간 산책을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던 자금성은 정적에 묻혔고 곳곳에 무장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자금성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각 한 채에 환한 불이 켜져 있었다.

불이 켜진 곳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지내던 건복궁(建福宮)으로 평소에도 일반인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지금 건복궁에서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시진핑의 정상회담이 벌어지고 있었다.

과거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방문했을 때 황제대우로 격을 올리기 위해 건복궁을 개방했고 이번이 두 번째다.

양국 간의 현안은 큰 의견충돌 없이 빠르게 해결되면서 문서로 만들어졌고 이어 황제 만찬으로 이어졌다.

만찬이 한참 무르익어 갈 때 시진핑의 그림자로 불리는 경혜창(耿惠昌)이 급히 건복궁으로 들어섰다.

국가안전부, 중국판 CIA로 불리는 정보기관의 수장이다.

좀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특히나 외국 정상이 내중 했을 땐 더욱 자신을 감추는 것이 일반적인 정보국 수뇌들인 걸 볼 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음을 알게 했다.

그때 두 명의 사복 경호원이 가볍게 목을 숙였다.

“가서 마실장 좀 빨리 불러주게.”

두 경호원 중 한 명이 재빨리 안으로 사라졌다.

멀리에서 웃음소리가 들렸고 전통악기 칠현금(七絃琴)소리가 뿌연 달무리처럼 사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혜창은 급한 일이 있는 듯 양손을 만지작 거리며 자꾸 안쪽을 바라보았다.

국안부 책임자라고 하지만 사전에 허가 된 인원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한다.

멀리서 두 사람이 급히 오고 있었다.

한 명은 경호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상당히 말랐는데 시진핑의 비서실장 마후돈이었다.

“부장님께서 어인 일로?”

마후돈 비서실장의 눈이 커졌다.

“주석님께서는 지금 어떠십니까?”

다른 정치적 사안을 보고해도 될 만한 건지 묻는 것이다.

“양국 현안 문제가 거의 타결된 때문인지 매우 밝으십니다.

“나 좀 봅시다!”

경혜창은 마후돈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5미터 정도 떨어진 경호원을 흘긋 보더니 마후돈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귀갈량이 죽었소.”

시진핑의 권력을 다지고 지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미래의 정적이 될 만한 인물들은 부패로 엮거나 반사회주의 인물로 올가미를 씌워 남김없이 제거했다.

시진핑이 걸어가는 앞 길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다.

귀곡사의 인적 청소가 워낙 치밀하고 깔끔하며 과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측근들 사이에서는 제갈량의 이름을 가져와 귀갈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 귀곡사가 죽었다.

마후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교통사고를 당한 모양입니다.”

“교통사고?”

“믿어지지 않는 얘기이긴 하지만 일단 주석님께 틈을 보아 귀띔을 해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알겠습니다.”

마후돈이 재빨리 만찬장 안으로 사라지고 경혜창은 돌아섰다.

짐승만이 아닌 사람에게도 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이번 귀곡사의 교통사고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푸틴 러시아 총리가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고 시진핑은 곧장 주석궁이 있는 중남해(자금성에서 얼마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음)로 돌아왔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측근 십 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선 시진핑은 만찬장에서 마신 몇 잔의 모태주(마오타이)로 얼굴이 불그스레했다.

“경혜창 부장 자세 말해보시오.”

국안부장 경혜창이 카이로에서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얘기를 듣고 난 시진핑은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단번에 비웠다.

술을 마셔 목이 타는지, 아니면 불쾌한 소식에 치솟는 화를 삭이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처음 들어설 때보다 표정이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말들 해봐요.”

참모들 모두 침묵이다.

마땅히 할 말도 없을 뿐 아니라 귀곡사는 시진핑을 가로막고나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완전무결하게 청소하는 충신이기 때문에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불벼락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 쪽은 어떠시오?”

경혜창을 바라보았다.

미국이 끼어든 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이집트 경찰에서 청소차 운전사를 조사중입니다. 곧 전모가 드러나리라고 봅니다.”

“이집트 경찰 수사는 믿을수 있는 것이오?”

고문이 있느냐 없느냐는 질문이다.

“정치범이 아닌 이상 절차를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 정부에 맞서는 인물은 고문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사건은 이집트 헌법 조항을 준수한다는 것이었다.

“그 운전사를 우리가 조사 할 수는 없소?”

“국가주권에 관계된 일이기 때문에.”

경혜창이 얼버무리자 시진핑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까짓 운전사 신병 하나 넘겨받지 못할 만큼 우리 중국과 이집트의 관계가 허술하다는 말이오?”

“알겠습니다. 곧장 운전사를 확보하여 조사하겠습니다.”

“지도 내려봐요.”

그러자 비서실장 마후돈이 리모컨을 눌렀다.

스르르르!

전면 벽에 스크린처럼 세계 지도가 내려왔는데 이곳 저곳 미국 성조기가 빼곡하다 싶을 만큼 그려져 있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는 무려 28개국이나 된다.

그에 반해 중국군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제외하면 다섯 개 국가를 넘지 않았다.

2030년 G1으로 올라서야 한다.

현재는 미국과 더불어 G2(Group of 2)불리지만 2030년에는 반드시 세계제일의 강대국으로 굳건하게 올라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이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를 친중 국가들로 만들어야 한다.

원조와 개발 협력으로는 부족하다.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군 주둔이다.

그런만큼 이번 이집트 유전개발의 시진핑 정부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도를 바라보는 시진핑의 눈이 빛난다.

성조기가 차지하고 있는 저 많은 국가들 보다 더 넓고 많은 국가에 오성홍기가 펄럭이도록 반드시 만들고야 말 생각이다.

이집트 유전개발은 반드시 중국이 가져와야 한다.

이집트 유전개발 권은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와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외교노선과는 또 다르다.

유전개발권은 중화일국(中華一國)으로 나아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권총수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사흘째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한 가지 난제가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지금 이집트 경찰로부터 집중 조사를 받고 있는 청소차 운전기사인 타메르였다.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집트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이른바 자신의 정보원이다.

경찰 수뇌부에서 타메르의 신병을 중국으로 넘길지 말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안이나 국안부로 넘겨지면 비밀 유지는 거의 불가능하다.

무자비한 고문이 가해질 건 뻔했다.

쓰레기 마을의 노동관리소장 스코치치는 물론 줄줄이 뒤가 밝혀 질 것이다.

자신의 정체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요한 건 중국정부가 우연한 사고가 아닌 계획된 살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사태가 커지고 일이 복잡해 진다는 것이다

‘살인멸구’

란 말이 계속 입안을 돌아다닌다.

전쟁을 벌이다 보면 적지 않는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는다.

전쟁이 갖고 있는 불행한 특성인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이 민간인과 주거시설을 적의 기지로 판단하여 쏟아내는 오폭이다.

병사들의 오인사격 또한 적지는 않다.

그런데도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지 않는 건 오인과 오폭이라는 것이다.

즉 의도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경우는 오인이나 오폭과는 전혀 다르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죽여야 한다.

하지만, 실컷 사용하고 나서 죽인다는 건 결코 사막의 흑새다운 전략이 아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머릿속은 여전히 양심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파팟!

권총수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있다’

권총수는 곧장 담배를 비벼끄고 집을 나왔다.

볼일을 보고 나온 경찰관은 수도꼭지 물을 틀고 손을 씻기 시작했다.

손을 씻고 난 경찰관은 벽에 붙은 휴지틀 속에서 휴지를 당겨 손을 닦았다.

허리를 펴고 돌아서던 제복경관은 멈칫하며 굳어 버렸다.

면전에 쉰이 넘어 보이는 평범한 복장의 사내가 미소를 짓고 서 있다.

경관은 이미 수혈이 제압되어 눈은 뜨고 있지만 잠속에 빠졌다.

쉰이 넘은 아랍인으로 변장한 권총수는 경관을 화장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경관 복장을 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한 경찰서에 근무한다고 모두가 아는 얼굴은 아니다.

자신이 속한 소속 부서가 아니면 상대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게 태반이다. 권총수는 당당하게 경찰서를 걸어갔다.

유치장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섰다.

쭈욱 뻗어 있는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오른쪽으로 꺾어진다.

쇠창살로 된 경찰서 유치장이 나타났다.

방은 세 칸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청소차 운전자 타메르 혼자서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옆방의 범죄자들이 자유스러운 몸인 것과 달리 그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중대한 범죄자가 아니면 유치장 안에서는 수갑을 채우지 않는 것에 비춰 이집트 경찰이 그를 얼마만큼 중요한 인물로 보는지 알 수가 있었다.

권총수가 나타나자 고개를떨구고 있던 타메르가 고개를 들었다.

“뒤로 돌아 앉아봐!”

오늘 처음 보는 경찰관이지만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타메르를 시키는대로 뒤로 돌아앉았다.

쉭!

파리를 쫓듯 권총수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

파팟!

두 가닥 지풍이 날아가 타메르의 좌우 뒷머리를 찍었다.

타메르는 뭔가 따끔 한 듯 수갑 찬 손으로 뒷머리를 긁더니 돌아보았다.

약간 놀라는 표정을 했는데 조금 전까지 있던 권총수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타메르는 고개를 갸웃하며 처음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승령혈(承靈穴)이라고 있다.

가격 당하면 즉사하는 사혈(死穴)이다.

머릿속 기억을 관장하는 혈도이기도 하여 그곳을 점혈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최근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입을 열게 만들려고 해도 기억이 없으면 속수무책이다.

행여나 고문을 당한다고 해도, 고문 기술자들도 난감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속이는지 진짜인지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타메르 입에서는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귀곡사가 타고 있는 승용차를 뭉갰는지에 대한 대답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다시 환복을 한 권총수는 아랍인 복장으로 경찰서를 걸어나왔다.

경찰서를 걸어 나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지강이었다.

다짜고짜 만나자는 것이었다.

권총수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는데 급한 일이 뭔지 대충 감이 온다.

택시를 잡아 탄 권총수는 지강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