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97화 (297/651)

제297화: 천하 통일(1)

에르도안은 다부지게 말했다.

“오천 달러 주시오. 미화.”

되지 않을 거래라면 아무리 저렴하게 불러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연이라면 거액을 요구해도 전혀 다툼이나 충돌 없이 성사가 된다.

“일만 달러를 주겠소.”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품에 손을 넣더니 두툼한 봉투 한 개를 꺼냈다.

“백 달러짜리 백 장이오.”

“웁!”

숨이 턱하니 막혔다.

사실 오천 달러도 큰 액수이다.

마음속으로 3천 달러를 말할까 했지만 어차피 3천 달러 내놓을 사람이라면 5천 달러도 가능하다는 판단에 불렀는데 오히려 두 배를 주겠다고 한다.

스윽!

에르도안은 봉투 속에 들어있는 백 달러짜리 한 묶음을 굳이 세어보려 하지도 않고 속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오천 달러를 불렀는데 일만 달러를 주겠다는 사람이 돈에 장난질 할 리 없다.

“면면이 화려하여 오천 달러를 불렀는데 이제 무슨 일인지 은근히 걱정되는군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뭘 알고 싶기에 거액을 말없이 건네주는 걸까.

“모든 사람에게는 아킬레스건이 있소. 그 아킬레스건이 잘리면 걷지를 못하죠.”

에르도안이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누군가의 아킬레스건을 잘라 달라는 뜻이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

공직자일수록 먼지의 양은 많아진다.

유엔이 발표한 각국의 부패지수를 보면 이집트는 작년에 101위를 기록했다.

부패지수 101위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101위이면 상대가 주는 돈을 당연하게 받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무게에 비해 적다고 판단되면 추후 돈을 더 요구하는 수준이다.

그야말로 공직자들이 출근용과 레저용의 차량이 완전히 다를 정도로 썩었다고 보면 된다.

“하사위 정보국 3차장 있죠.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잘 알다 못해 들여다보고 있을 정도였다.

현역 때 직속상관인 보안경찰 제2작전국장이었다.

제2작전국장이면 보안경찰 넘버 4였다.

제2작전국장으로 있다 재작년에 정보국 3차장으로 승진 발령이 난 것이다.

이집트 정보국 SIS에는 1,2,3 차장이 있다.

그중 3차장은 국가 경제 전반에 걸친 작전을 다스리고 관할한다.

당연히 이번 유전개발 문제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이집트 정부쪽 선발 투수이다.

“그를 잘 벗겨주면 보너스 5천 달러를 드리죠.”

권총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나갔다.

에르도안의 시선이 걸어나가는 권총수 등에 고정되었다.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지만 한참동안을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만오천 달러’

보너스를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자신이 쥐게 될 돈이었다.

엄청난 거액이다.

에르도안은 남은 커피를 단번에 비우고 일어났다.

돈은 따라 올 때 거머쥐어야 한다.

지금 자신에게 만오천 달러가 따라오고 있었다.

‘잡는다’

다짐하며 커피숍을 걸어 나갔다.

비행기가 도착했다.

입국장 문이 열리며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집트 정부가 관광객을 향해 신변 안전보장을 약속하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점차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영어권에서는 상황을 주시하며 자국 국민들의 이집트 여행을 자제시키고 있다.

그래도 예전과는 몰라보게 관광객이 늘어난 건 사실이었다.

비행기에 내려 입국장에 들어선 중국계 사내가 마중 나온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누군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오기로 한 사람이 없는 듯 곧 한쪽에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은 쉴 사이 없이 움직였는데 상당히 긴장해 보였다.

초조한듯 간간히 손목시계를 보며 마른침까지 삼켰다.

20여분쯤 흘렀을까 사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청사를 걸어 나갔다.

줄지어 있던 택시들에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몰려들며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부우웅!

자주색 택시 한 대도 출발했는데 운전사는 머리에 원통형의 검정색 모자 샤쉬아를 썼다.

뒷좌석에 앉은 사내는 조금 전 공항에서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사내였는데 영어가 능숙했다.

운전사는 서툰 영어로 뒷좌석 사내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내는 별 말 없이 창밖만 주시했다.

공항에서 카이로 시내까지는 대략 30여분 이상이 걸리는데 도로가 잘 단장되었다.

차량통행이 많았지만 도로가 넓어 막히지 않았다.

멈칫!

운전대를 잡고 있던 기사가 왼쪽 백미러를 봤는데, 경광등을 켜고 한 대의 경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비상라이트까지 켜고 오는 것이 차량을 추적하는 행동임이 분명했다.

“어어!”

경찰차가 순식간에 옆 차선으로 붙었다.

깜짝 놀라는 기사에게 조수석에 앉은 경찰이 차를 바깥차선으로 빼라는 신호를 보냈다.

“뭔 일이지. 위반한 것도 없는데.”

신호도 지켰고 제한속도를 넘지도 않았다.

기사는 의아했지만 곧 차선을 바꾸며 바깥으로 빠져 비상 라이트를 켜고 멈춰 섰다.

경찰차는 10여 미터 가까이 떨어져 멈췄다.

차가 멈추자 뒷좌석에 탄 사내는 무슨 일인가 싶어 뒷 유리를 바라보았다.

확!

경찰차를 돌아보던 승객의 눈이 커졌다.

운전사가 유리를 내리려고 하자 승객이 소리쳤다.

“그냥 가세요. 빨리.”

운전사가 놀라며 돌아보았고 승객은 악을 썼다.

“빨리 가라니까. 어서!”

휘익!

사내는 다급한 듯 지갑을 운전사에게 던졌다.

안에 있는 달러는 모두 주겠다는 뜻이었다.

“제발 가시오.”

운전사는 그 와중에도 밑으로 떨어진 지갑을 주워 슬쩍 안을 들여다본다.

들어 있는 달러가 적지 않았는데 마음이 움직인 듯 가속 폐달을 밟았다.

파악!

경찰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도주하면 벌금이 적지 않지만 지갑의 달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뒤에 타고 있는 승객이 이집트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온 킬러라고 해도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

나중 경찰에 가서도 얼마든지 할 말은 많았다.

택시는 빠르게 치고 나갔다.

타앙!

바로 그때 총소리가 울렸다.

운전사는 소스라쳤지만 멈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택시는 순식간에 차량들 사이로 빠져 나가 버렸다.

경찰차가 다시 쫓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빠지세요.”

승객이 소리쳤다.

나일강변도로란 글씨가 쓰인 이정표가 서 있었다.

그러면서 사내는 뭔가 결심한 듯 바지를 묶고 있는 허리띠를 풀었다.

중국에는 편술(鞭術)이라는 무예가 있다.

원래 말을 휘두르는 채찍의 움직임에서 기원한 무술로 웬만한 경지에 오르면 굉장한 위력을 보인다.

차량통행이 한적한 곳으로 경찰을 유인하여 한바탕 도박을 하겠다 결심했다.

총 앞에서는 어떤 재주나 무기도 통하지 않지만, 사람일은 모른다.

부우우웅!

택시는 굉장한 속도로 나일강변도로를 향해 달렸다.

경찰차가 그 뒤를 따랐는데 경찰차 뒤로 못 보던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가 따라오고 있었다.

도로는 왕복 2차선 국도였는데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스팔트가 깨지고 패이면서 택시는 덜컹거렸고 경찰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운전사는 이를 물었다.

잘못이 없더라도 적당히 해야지 계속 도망쳤다가 무슨 법적 처분을 받을지 모른다.

“손님! 일단 멈춰야겠습니다. 난 잘못한 것이 없지만 상대가 경찰이니.”

이해해 달라는 뜻이다.

뒷좌석 승객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택시는 다시 비상라이트를 켜고 길가에 멈췄다.

그러자 뒤로 경찰차가 다가와 섰고 문이 열렸다.

벌컹!

좌우 앞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제복경관 두 명이 내렸다.

두 경찰관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바로 그때 경찰차 뒤로 따라오던 포드 익스플로러가 속도를 늦추었다.

경찰차가 단속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몹시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중앙선을 반쯤 걸치며 다가오던 포드 익스플로러 조수석 유리가 스윽 내려가더니 총소리가 울렸다.

푸슉!

슉!

택시를 향해 다가가던 두 경찰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숨이 끊어 진 것이다.

지이잉!

택시 뒷좌석의 사내가 쓰러지는 경찰들을 보며 놀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 좀 잘 받으시오. 뭐합니까? 빨리 타지 않고.”

“사막의 흑새.”

뒷좌석 승객이 들고 있던 가방을 둘러메고 택시에서 내려 포드 익스플로러에 올라탔다.

부우웅!

포드 익스플로러가 사라지고 택시 기사는 눈을 깜빡거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간이 안 된다는 듯 죽은 경찰관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지강(志剛)으로 5년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가 중국 공안의 추적을 받았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지강은 뉴욕에 나타나 중국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동력을 더욱 높여가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중국정부로서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지강의 운동은 공격적이었다.

본토와 홍콩에서 활동하는 민주화 운동 세력에 자금을 지원하고 중국 정부에 쫓기는 민주인사들의 해외탈출까지 돕고 있었다.

레드타겟(Red Target).

국안부 제거 서열 1위이다.

그런 그가 카이로에 나타난 것은 순전히 권총수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권총수는 신변이 위험하므로 카이로에 올 필요 없이 메일을 통해 자신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보내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강의 생각은 달랐다.

카이로 주재 중국대사 복기와 국가안전부 소속인 귀곡사가 놀랍게도 시진핑의 최측근이라면서 직접 이번 일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등소평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력으로 중국을 이끌어가고 있는데, 시진핑 입장에서 중동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아프리카까지 뻗어가려면 이번 유전개발권을 반드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아는 지강이 시베이 유전의 개발권을 막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나서는데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한 발만 늦었다면 큰일 날 뻔 했소.”

권총수는 사전에, 입국하여 자신을 만나지 못하면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사실 권총수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권총수 잘못인 것이다.

하지만 권총수는 당시 통화를 하며 분명히 말했다.

가장 안전한 곳이 입국장 주변이다.

설혹 누군가 당신이 카이로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곳에 있으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다시 입국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거긴 이집트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을 어쩌지 못한다고 주지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장을 한 지강은 서둘렀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것 만 같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홀로 서 있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일단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탄 것이다.

“귀곡사의 진짜 정체는 뭐요?”

운전하던 권총수가 물었다.

“시진핑의 책사죠.”

책사라는 말에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어린 시절 몇 권 읽지 않은 책 중에서 삼국지가 들어 있었다.

거기에 나오는 제갈공명이란 사람의 현란한 계책과 상식을 뒤집는 전술은 가히 경이적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권총수는 빙긋 웃고 말았다.

“아니오, 계속 말 해보시죠.”

“신비한 사람이죠. 국안부 요원일 때는 귀곡사, 정치국원으로 인민전당대회에 참석할 때는 곽내오, 시진핑이 해외를 방문할 때는 수행 비서 차오충이 됩니다.”

권총수는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한 명이 세 사람 역할을 한 단 말이오?”

“알려진 것만 세 가지이고 또 어떤 신분으로 시진핑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어떤 자객 노릇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지강의 말은 이어졌다.

자유를 통제하는 국가의 우두머리 일수록 믿고 모든 걸 맡길 만한 최측근이 필요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주군의 심기를 읽고 헤아리는 역할을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시진핑에게는 귀곡사라는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책사"

권총수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부우웅!

차는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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