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화: 중화악몽(2)
하지만, 아카데미를 제치고 직원들에게 가장 후한 대우를 해주는 다인코프이다 보니 들어오고 싶어 하는 용병들이 한둘이 아니다.
뉴욕 양키즈가 연봉은 후하게 주는 대신 선수들의 두발과 복장에 대해 어느 정도 간섭하고 관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비렌드라가 물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사실이야? 중국이라고 들었는데?”
오민철이 끼어들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것 있어?”
오민철이 다시 묻는다.
“거의 꽝이야.”
잘 모른다는 뜻이었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좀 알아봤거든. MSS라고 들어봤어?”
“중화인민공화국 국가 안전부(Ministry of State Securit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줄여서 MSS(Ministry of State Security:국가 안전부), 더 줄여서 국안부라는 것 정도.”
나카야마와 비렌드라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오민철은 목을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워낙 영화속에 CIA나 모사드, MI6등이 자주 등장하다 보니 나머지 국가들 정보부는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엄청난 기관이라더라고.”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공안? 같은 것인가?”
“아냐. 공안은 말 그대로 경찰이면서 법원에 범인을 기소하는 검찰 업무도 맡고 있지.”
“그냥 경찰아냐.”
나카야마가 가볍게 내뱉었다.
“그렇지 하지만 국안부는 공안과는 전혀 다른 기관이야. 우두머리가 누구라고 했더라?”
오민철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더니 뒤적거렸다.
뭔가를 찾는 모양이다.
“형 지금 뭐해?”
“내 나이 되어봐. 적어 놓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려. 찾았다. 정혜창.”
“민철, 누구에게 들은 거야?”
나카야마 눈이 커진다.
“있어.”
나카야마가 묻자 오민철의 목에 곧장 힘이 들어갔다.
“가르쳐 줘.”
“쪽바리 너도 나처럼 인맥을 좀 만들어봐. 사람관리에 투자 좀 하라고.”
“알았으니까 좀 가르쳐 달라고 조센징?”
“어린 자식!”
오민철은 나카야마를 내려다보며 헛기침을 했다.
“쑨양 알지?”
“쑨양, 누군데?”
나카야마가 눈을 좁혔다.
“중국 놈, 아주 싸가지 없는 자식, 외인부대 훈련소에서 하도 엉겨 나한테 뒤지게 맞은 놈 말이야.”
“아 짱개 이제 생각난다. 중국 수영선수와 이름 똑같은 새끼.”
나카야마가 목소리를 높였는데 화난 표정이다.
쑨양은 자신이 영춘권 고수라면서 떠들고 다녔다.
엽문 주연의 영화 속에서 파괴적인 영춘권을 봤던 나카야마는 쑨양 앞에선 괜히 주눅이 들었다. 그러다 생활관 청소를 하던 중 쑨양과 언쟁을 했고 결국 싸움이 붙었는데 주눅이 들어선지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그때 오민철이 한 방에 쑨양을 제압하지 않았다면 큰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었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때문인지 지나칠 만큼 안하무인이었다.
“짱개 지금 어딨어?”
나카야마가 거칠게 물었다.
“아카데미 있잖아.”
“거기서 뭐하냐고?”
“뭐하겠어. 우리처럼 방아쇠 당기지. 지금 카이로에 들어와 있어.”
“비겁한 자식. 그 개자식 만날 줄 았았으면 가라테를 배워놓는 건데.”
나카야마는 다시 아랫배가 끓어오르는 모양이었다.
“설표돌격대(Snow Leopard Commando Unit) 출신이라고 했지. 재수없는 짱개.”
권총수는 빙그레 웃었다.
나카야마는 누군가를 욕해도 밉지가 않다.
그것이 나카야마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붉은 벽돌이 너무 오래되어 회색으로 빛나는 낡은 아파트였다.
말이 아파트일 뿐 4층짜리 건물이었다.
골목 쪽으로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는데 유리는 모두 금이 가 있었고, 손떼 묻은 커텐이 쳐져 있다.
촤라락!
권총수는 커텐을 열었다.
골목에서 아이들 다섯 명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모두 맨발이었다.
한참 동안 공 차는 모습을 지켜보던 권총수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M이라는 알파벳이 찍혔다.
MI6의 호지슨 전화였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호지슨이 전달하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1분여가 지났는데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통화는 녹음되고 있었고 윗주머니에 있는 말보로 레드를 꺼내 한 개비 꺼내 문다.
딸칵!
라이터로 불까지 붙이면서도 계속 듣는다.
그리고 끝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다시 담배를 물고서 골목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담배를 절반 정도 태웠을 때 들고 있던 핸드폰 녹음기능을 눌렀다.
전화기에서 호지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권총수는 복습하듯 처음부터 끝까지 호지슨의 얘기를 듣고서 이번에는 내용을 지워 버렸다.
촤락!
커텐을 치고 돌아선 권총수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벽에 걸어 놓은 보드칠판에 매직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Supwipyeong(섭위평)
Boggi(복기)
Gwigoksa(귀곡사)
Paeyulma(패율마)
네 사람의 이름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을 깔았다가, 팔짱을 끼기도 하는 것이 약간은 곤혹스런 모양인데 권총수는 매직펜을 들고 메모하듯 갈겨 썼다.
‘섭위평, 시베이 유전 사장’
‘복기, 카이로 주재 중국 대사’
‘귀곡사, 국안부’
‘패율마, 국안부’
이들 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지금 영국의 BP사와 유전개발권을 얻기 위해 이집트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고 있었다.
권총수는 다시 보드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알도사리, 수자원관계부 장관’
‘카타니, 수자원관계부 제2차관’
‘하사위, SIS(Egypt’State Information Service) 이집트 국가정보국 제3차장’
이집트 실무진들이다.
호지슨의 요구는 처음과 변하지 않았다.
죽여 달라는 것이다.
죽이는 전술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노련한 호지슨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이집트 쪽 인물들의 반 영국 경향이 강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중국 쪽에서는 일단 개발권만 얻고 보자는 식으로 나오다 보니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집트 석유개발을 시작으로 중동과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중국의 야심이 더욱 노골화되면서, 이번 일에 결사적이다.
“으음!”
권총수는 중얼거리며 담배를 다시 물었다.
하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권총수의 시선은 보드판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전쟁이라고 해서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죽이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란 무척 어렵고 힘들지만 가능하다면 시도 해 볼만하다.
누군가는 21세기에 방아쇠를 당기는 전쟁은 최악의 수라고 혹평했다.
물론 인간을 죽이는데 가장 효과적인건 방아쇠를 당기는 전쟁이다.
그렇지만 욕도 먹지 않고 사람을 죽였다는 고뇌에 휩싸일 일도 없는 경제전쟁이야 말로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이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으나 권총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보드판을 보고 있었다.
바뀐 것이 있다면 보드판에 빈곳이 없을 만큼 글씨들이 빼곡하다는 것이었다.
딱!
물병의 마개를 따더니 고개를 젖히고 마신다.
끄억!
트림을 하며 다시 보드판을 본다.
내로라 하는 영국의 정보기관인 MI6이 두 손 두 발 들 만큼 중국의 공세는 저돌적이고 무자비하다.
호지슨의 말에 의하면 시베이 유전은 최악의 경우 9대1, 즉 자신들은 1만 먹고 9를 이집트에 주겠다는 제안까지 설정해놓고 있다고 했다.
어떤 자원이든 개발사에게 10프로 정도 밖에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나서는 회사는 없다.
9대1이면 회사 이익은 당연이 없고 장비 값과 인건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간의 어떤 경제적 개발권을 놓고 협상을 벌이면 거의가 5대5이던가 최악의 경우 6대4까지 물러선다.
상대국은 허가만 내주고 생산량의 60퍼센트를 가져가는 것이므로 엄청난 이득인 것이다.
‘최소의 살인’
가장 적게 죽이고 큰 효과를 얻는 법을 찾기 위해 고민은 이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넥타이가 없는 연한 회색 정장을 걸치고 들어섰다.
누군가를 찾는 듯 커피숍을 둘러보았다.
만날 사람이 없는지 사내는 창가로 다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 손에 들고 있던 주간지를 펼쳐 들었다.
주간지는 오래된 미국의 성인잡지 허슬러였다.
중동 국가중에서는 가장 개방된 사회라는 이집트 이지만 정통 포르노잡지 플레이보이 보다 더 수위가 높다는 허슬러를 어디서 구했는지 사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겼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권총수가 양 손에 커피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사내는 잡지를 감추려 한다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따위는 없었다.
느릿하게 잡지를 덮고 절반으로 접더니 속주머니 속에 푹 찔러 넣었다.
권총수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나에게 전화한 권총수씨 되십니까?”
권총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괜찮은 거요?”
대답 대신 그런 잡지를 봐도 별일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괜찮을 리가 없죠. 적발되면 골치 아픕니다.”
사내는 빙긋 웃었는데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여유였다.
“전직 경찰관이셨던데? 그것도 일반경찰이 아닌 이른바 끗발 좋기로 소문난 이집트 보안 경찰이던데 왜 옷을 벗었습니까?”
“거래 조건에 포함되는 질문입니까?”
꼭 대답을 해야 하는 거냐는 것이었다.
“전혀!”
“못할 것도 없긴 합니다.”
사내는 커피를 마셨다.
어지간하면 좋지도 않는 과거를 왜 들추냐고 인상을 쓰거나 아니면 불편한 표정이라도 지을텐데 사내는 그렇지 않았다.
후루룩 소리를 내며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상체를 의자에 붙였다.
“경찰들 옷 벗으면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보안경찰이고 하여 웬만한 부조리에는 끄덕없다 보니 한탕 챙기는 건 당연했죠. 그러다 제대로 한 번 먹고 끊어야겠다며 일을 벌였는데 우라질 그만 들통이 나버렸소.”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아픈 일이군요.”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대통령 엘시시 목을 따달라는 것 말고는 나머지는 거의 가능합니다.”
사내는 자신감을 보였다.
사내 이름은 에르도안, 전 이집트 보안경찰 출신으로 올해 마흔두 살이다.
그는 작은 고양이(Little cat)라는 탐정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직원도 없고 사장이자 직원인 자기 혼자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영이 어려운 까닭에 직원이 한 명도 없는 건 절대 아니었다.
평범한 사건은 아예 맡지도 않는다.
이른바 돈 되는 사건만 맡는다.
큰 사건일수록 비밀유지가 생명인데 비밀의 속성이 한 사람이라도 더 알수록 지켜질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비밀 유지를 위해 부하직원에게 숨기는 것이 많으면 관계는 좋아지지 않는다.
서로가 불편해질 상황이므로 차라리 혼자 뛰는 것이다.
스윽!
권총수가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에르도안이 쪽지를 가져다 보더니 낯빛이 변했다.
쪽지에 적힌 사람들의 면면을 단번에 알아보는 눈치였다.
“설마 동명이인들은 아닐테고?”
“얼마를 받고 싶소?”
에르도안이 눈을 치켜떴다.
의뢰비는 자신이 말한다.
의뢰인의 몫이 아닌 것이다.
에르도안은 다시 쪽지에 시선을 옮겼지만 머릿속은 얼마를 요구해야 할까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를 받고 싶냐는 질문은 언뜻 말하는 대로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이쪽에게 굉장한 부담을 주는 일이다.
당연히 자신은 거래를 하고 싶기 때문에 평소보다 적게 부를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젠장!’
돈 몇 푼 아끼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