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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94화 (294/651)

제294화: 스나이퍼의 상처(3)

시선 역시도 따뜻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부둣가 창고에서 숨어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전혀 짐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본인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아참, 우리가 만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 한데 아직 통성명을 못했군요. 알라후 아크바르, 내 이름은 권총수요.”

사막의 흑새라고 하면 알아 볼 것이다.

“저...저는 마수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다.

환경이 그를 나쁘게 몰아가서 좋지 않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설득력 떨어지는 논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중동에서 오랫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치루며 만난 사람들 상당수가 착했다.

대부분이 가난한 노동자와 빈민들이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시대가 불편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폭발한다.

여자도 주고 집도 주고 생활비도 준다는 IS 광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가.

그들 모두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권총수는 눈앞의 마수드란 사내도 그런 부류라고 확신했다.

하는 행동, 말투 하나 하나에서 선함이 묻어난다.

아직 테러의 물이 더 들기 전에 빠져나가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 했다.

“가족이 몇이오? 마수드?”

마수드는 손가락 일곱 개를 세웠다.

“일곱?”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그리고 아이들 셋.”

“직업은?”

“없어요. 얼마 전까지 이곳 부두에서 생선상자를 나르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석유가 발견되면서 일자리가 날아갔죠.”

권총수는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만약을 대비해 현금을 가득 뽑아왔는데 하나 같이 백 달러짜리였다.

스윽!

백 달러짜리 열 장을 뽑아 내 밀었다.

마수드가 소스라쳤다.

“받아요. 가짜 돈 아닙니다.”

마수드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천 달러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는데 손을 떤다.

거액이라는 것에 떨고,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몰라 떨고 있었다.

“마수드 내 말 잘 들어요.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면 이 돈을 전부 줄 것입니다.”

모두 3천 달러였다.

이집트 통화가치와 물가에 비교하면 거액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를 미국으로 이주시켜 줄 수도 있어요.”

미국 이주란 말에 마수드의 눈이 커졌다.

“정말입니다. 알라께 맹세해요. 난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원한다면 내일 당장 미국 대사관에서 미국행 비자를 발급 받아 줄 수 있어요.”

“당신은 누굽니까?”

“마수드 여기 왜 있는 거요?”

마수드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권총수의 지갑을 슬쩍 보며 입을 열었다.

“200톤 가량 되는 군 보급선이 온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테러집단의 생명력은 자금이다.

IS가 강해질 수 있었던 것 또한 석유를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윌리야트 시나이 역시 자금 문제로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근처 은행을 공격하기도 했으나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이집트 군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오늘 밤에서 내일 새벽까지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이집트 제13여단 군인들의 생활용품을 실은 보급선이 온다는 정보를 얻었다.

보급선이 온다는 정보만 얻었을 뿐 정확한 장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윌리야트 시나이 조직원 일백 여명이 이곳 다합을 포함하여 배가 접안 할 수 있는 수심 깊은 해변에 쫙 깔렸다.

이곳 다합 부두는 가장 크고 배수량 천 톤까지 입항할 수 있다.

그러나 워낙 테러가 자주 일어나고 훤히 드러난 곳이어서 입항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신참인 자신을 보냈다고 했다.

역습 차원의 전술로 오히려 들어 올수도 있지만 그런 배짱을 가진 지휘관은 없다.

위험하면 피하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다.

슥!

권총수가 정말이냐는 듯 노려보자 핸드폰을 꺼내 보인다.

“혹시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신속하게 연락하라면서 전화기까지 주었습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받았다.

애플에서 나온 최신 폰이다.

테러범들과 싸우면서 느낀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의외로 최신형 핸드폰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최신 핸드폰일수록 자신들을 지키고 감추기에 용이하다는 것이다.

핸드폰 만큼 그들에게 첨단 장비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기계는 없기 때문이다.

“비밀 번호가 뭐요?”

마수드는 자신이 직접 핸드폰을 조작하더니 해제시켜 주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샅샅이 뒤졌지만 단 한 개의 전화번호도 찾을 수 없었다.

그야 말로 텅 비었다.

하긴 비상시를 대비해 공용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에 어떤 흔적을 남길 리는 없다.

“마수드 사진 속 남자 알고 있소?”

마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는 조용히 타이르듯 물었다.

“어디서 봤소?”

“북쪽의 별.”

북쪽의 별이란 말에 권총수는 멈칫 했다.

“성스러운 집, 모스크입니다.”

“아!”

권총수는 알았다는 듯 놀라면서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들어보긴 했으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있다’

다합에는 모두 세 곳의 모스크가 있었다.

그중 북쪽에 있는 모스크가 가장 오래되었는데 알바니아 출신으로 오스만 투르크 용병이 되어 이집트를 독립시킨 무하마드 알리가 전투 중 머물렀다는 곳이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사후 50년이 지나 후손들에 의해 지어진 회교 사원이다.

‘북쪽의 별(Noth Star)’

아랍어로는 메즈문 샤네일리로 부른다.

권총수는 곧바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상대는 스핑크스 대위였다.

이곳 사정을 설명하고 마수드와 그 가족의 신변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스핑크스 대위는 염려 말라면서 당장 병력을 보내겠다고 했다.

또한 가급적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이집트를 떠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마수드는 믿어지지 않는 듯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을 지체 할 수가 없다.

마수드의 변심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권총수는 곧장 차를 몰아 달렸고 36분 만에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회색의 모스크를 발견했다.

기도하고 예배하는 사원이라고 하여 24시간 오픈하지 않는다.

대개가 그 시간에 맞춰 열고 닫는다.

굳게 닫힌 사원의 철문 앞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권총수였다.

휘익!

공중으로 솟구치나 했는데 순식간에 사원 안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더더욱 인기척은 없었고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권총수의 발걸음은 막힘이 없었다.

바닥은 벽돌크기의 돌멩이를 거꾸로 박은 포도였다.

스으으!

빠르게 이동했고 육각형의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현관이 나타났다.

반월형의 현관을 통과하여 20여 미터 지나자 돌계단이 나타났고 육중한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츠윽!

슬쩍 밀었지만 꿈쩍 않는다.

안에서 잠긴 모양이었는데 권총수는 문틈에 손바닥을 대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삼매진화다.

스르르!

잠금 고리가 녹아내리며 문이 열린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캄캄한 어둠이 앞을 막고 있었다.

안력을 끌어 올렸다.

붉은 양탄자가 넓게 깔린 예배당이었다.

종유석처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불 꺼진 전등과 사면 벽에는 아름다운 성화들이 걸려 있었다.

예배당을 한 바퀴 살핀 권총수의 시선 속으로 또 하나의 계단이 보였다.

오른쪽 벽으로 붙어 만들어진 돌계단이었다.

계단을 따라 시선을 들었는데 또다시 작은 문이 보인다.

권총수는 계단을 올랐는데 양탄자가 깔려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손바닥이 차다.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둥근 쇠고리로 된 손잡이를 당겼지만 꼼짝 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장심을 대고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30초가 되지 않아 손잡이 근처의 문이 변형이 되며 흐물흐물해진다.

스으윽!

문은 간단하게 열렸고 안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어둠을 꿰뚫어 보았다.

사람이 생활하는 방이라고 보기 힘든 원형의 공간이었다.

20여 평은 되어 보였으며 권총수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바닥 정 중앙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노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뭐라고 중얼 거렸는데 코란을 암송하는 듯 보인다.

내가 강기를 이용해 문이 열리는 소리를 차단했고 발걸음 소리 역시 내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은 아직 낯선 사람의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권총수는 벽에 그려진 빛바랜 성화들을 바라보았다.

양을 치는 목동과 축복하는 알라의 모습이 그려진 이슬람 성화들이다.

소음을 차단한 강기를 거두자 발자국 소리가 작지만 분명하게 들렸고 노인이 눈을 떴다.

노인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놀라지 않는다기 보다는 워낙 어두운 한 밤중이기 때문에 혹시 꿈이 아닌가 싶은 듯 눈을 깜빡 거리며 자신의 뺨을 어루만진다.

어쩌면 자신의 기도에 알라의 사자가 나타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둠에 적응된 시력이지만 워낙 캄캄하여 권총수의 뒷모습을 자세히 본다는 건 불가능했다.

“누구시오?”

자신의 기도와 관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하는 걸까 목소리가 떨린다.

말로만 듣던 신비체험 말이다.

오랫동안 독실한 이슬람 성직자로 살아왔지만 항상 궁금한 것 한 가지가 있었다.

과연 신은 있는 걸까.

가끔 주위 신자들이 기도 중 알라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신비한 현상을 목격했다는 얘길 듣는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신앙이 결코 그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자부하는데 왜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것일까.

정녕 신은 있는 걸까.

있다면 티끌만하게라도 존재성을 느끼거나 볼 수 있도록 해주면 안 되는 걸까.

신은 꼭 없는 사람처럼 숨어 있어야만 하는 걸까.

그러면서 스스로를 채찍질 했고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더욱 단호하게 기도했다.

‘어쩌면’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신의 존재를 체험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확신했다.

“당신이 이 모스크의 이맘이오?”

이맘은 예배를 주관하고 이끌어가는 이슬람 성직자의 직책이다.

움찔!

이맘 하산 셰하타의 눈이 커졌다.

목소리가 전혀 부드럽다거나 온화하지 않았는데 질긴 양의 힘줄을 자를 때 사용하는 칼날의 섬뜩함이 배어 있었다.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고 좀 더 자세히 보였는데 무슬림 복장을 했으나 젊은 아시아계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딸칵!

갑자기 사내가 라이터 불을 켰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꺼내 면전에 대고 비춘다.

“잘 보시오. 이 사람 지금 어딨소?”

화악!

셰하타의 눈이 커졌다.

순간 권총수는 더 이상 볼 것 없다는 듯 라이터 불을 끄고 사진도 집어넣었다.

“지금 이 사원에는 모두 세 사람이 있을 것이오.”

맞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사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셋이 죽는 것이 현명한지 아니면 이 사람의 행방을 말해주는 것이 나은지 빨리 판단하시오.”

잘 생각해 보라는 것도 아니고 서둘러 결정하란다.

오래 기다릴 수 없다는 뜻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이보게 젊은이 내가 살고자 남을 죽이라는 말이오? 그건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탁드리죠.”

더 이상 양보는 없다는 뜻이었다.

셰하타는 조용히 말했다.

“불가하오!”

히죽!

권총수는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차고 있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기다리시오.”

바로 그때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 앞에 한 사내가 서 있다.

두 명의 관리인 중 한 사람인 엘레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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