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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93화 (293/651)

제293화: 스나이퍼의 상처(2)

분해되어 있는 TRG-M10 저격총이었다.

권총수는 혹시 빠진 부품은 없는지 총을 조립해 보았다.

조립해 보면 부품 분실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타타탁!

빠르고 노련했다.

1분이 걸리지 않아 저격총을 조립한 권총수가 어깨에 총을 대고 빈 방아쇠를 당겨 보았다.

따악!

몇 번을 더 당겨본 권총수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분해하여 처음처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낯익은 권총이 있었는데 글록 18이었다.

권총 역시도 총알이 가득 들어 있는 탄창을 끼우고 사격자세를 잡아 보았다.

휙!

휘익!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에 스핑크스 대위의 눈이 커졌다.

사격은 자세다.

‘그러고 보니 저격수였다고 했지’

혼잣말을 흘리며 피식 웃었다.

흰색의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리고 데님으로 만들어진 야구모자를 쓴 사내가 내렸다.

회색 자켓에 검정색 바지와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 신었는데 권총수였다.

권총수는 자동차 뒷좌석 문을 열고 백팩을 꺼내 짊어졌다.

누가봐도 완전한 등산객 복장이다.

주차장에는 십여 대의 자가용과 관광버스 두 대가 있었다.

시나이산을 찾아온 관광객을 태우고 온 차량들인데 주차장이라기보다는 평평한 공터에 더 가깝다.

더 이상 차가 올라갈 수 없으므로 걸어가야 한다.

권총수는 본격적으로 시나이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단 한 그루의 나무도 없는 온통 바위산일 뿐이었다.

스으윽!

사람들이 없어 불영보를 펼쳐 순식간에 주차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도보로 바꿨다.

일단의 여행객들이 산을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로 보이는 사내가 붉은색 삼각 깃발을 들고 있었으며 그 주위로 30여명의 남녀가 따르고 있었다.

멈칫!

거리가 좁혀지며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한국 사람들이었다.

얼마전 이집트를 여행금지구역에서 경계구역으로 낮췄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타국에서 이렇게 많은 한국인을 만나긴 처음이었다.

관광객들 또한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권총수는 웃으며 말했다.

“한국 사람입니다.”

“어디요?”

두 명의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묻는다.

“서울입니다.”

“우린 서대문 광파 교회에서 왔어요.”

권총수는 즐거운 여행되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권총수는 조금 올라가다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멀리 한국 관광객들이 내려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인들이어서 일까 아니면 성지순례를 왔다는 것 때문일까.

자신은 전쟁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데 저들에게는 따뜻한 평화가 흐른다.

‘수녀님 진짜 하느님 있어요?’

‘있지’

‘봤어요?’

‘봤지’

‘진짜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그러자 수녀님은 빙긋 웃으며 성당 입구에 우뚝 세워진 예수상을 가리켰다.

저렇게 생겼다는 뜻이었다.

분명 대사관으로부터 안전교육을 받고, 가급적이면 여행 자제를 권고 받았을 것이다.

위험한 곳에 들어왔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도 누구 한 사람 불편한 얼굴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원장 수녀님이 그랬던가.

마음이 넓으면 종교도 깊게 자란다고 말했다.

마음이 넓다는 건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아량이라고 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신앙은 깊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불영보 보다는 웬지 걷는 편이 좀 더 나을 듯 싶다.

집이 나타났다.

엄밀히 말하면 세인트 카타리나 수도원이다.

물론 일반인의 접근이나 출입은 불가하다.

또 다시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하나 같이 자신을 노려보던 수녀님들이었다.

‘우리 보육원 사건사고의 90퍼센트를 바로 너 혼자 다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 언제 좀 얌전해질까’

수녀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씨익!

권총수는 혼자 웃음을 지으며 시나이산을 올라갔다.

어떤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바위산이기 때문에 게릴라전을 벌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단지 그냥 한 번 와보고 싶었을 뿐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산이라고 해서도 아니고 그냥 산세를 한 번 살펴보고 싶었을 뿐이다.

군사작전에서 나무와 숲이 없는 바위산은 결코 은거지나 도피처가 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헛걸음하는 셈 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온 것이다.

정상에 올랐다.

일반 사람의 걸음으로는 2시간에서 조금 더 걸린다고 하는데 자신은 2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오십 여명의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고 가건물을 지어 놓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있다.

아름다움도 웅장함도 없는 그냥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바위산일 뿐이었다.

관광객들을 쭈욱 한번 훑는다.

사냥꾼의 습성이다.

부자연스러운 얼굴은 단 한 명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능청맞은 연기자라고 해도 사람의 마음은 눈을 통해 드러난다.

즉 누군가에게 쫓긴다거나 주위를 경계하는 사람과 관광객은 금세 구별 되는 것이다.

권총수는 10여분 머무르다 다시 산을 내려 왔고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 지나 흰색의 포드 익스플로러는 바다가 보이는 해양도시 다합에 나타났다.

다합은 여행자들의 블랙 홀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자비한 테러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권총수는 바닷가 다헤베야 호텔에 차를 세웠다.

이미 예약을 했기 때문에 프런트에서 객실키만 받아 올라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권총수는 다시 백팩을 메고 거리로 나왔다.

권총은 옆구리에 숨겨져 있다.

거리는 어두워 졌다.

호텔을 벗어나자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들과 식당 몇 곳만 불이 켜져 있을 뿐 관광객이 많을 텐데도 거리는 한산했다.

나중 알게 된 것이지만 밤에는 위험하여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현지인들도 좀체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흰색 포드 익스플로러가 부둣가 창고 앞에 멈췄다.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어업이 활발했지만 수많은 탐사선, 시추선들이 바다를 매우면서 어장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한때 생선을 담은 상자들이 가득 쌓였을 창고는 텅 비었고 천장 귀퉁이 한 곳이 부서져 별이 올려다 보였다.

권총수가 이곳 부둣가를 찾은 것은 던퍼드 중사가 최초 목격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권총수는 비린내가 풍겨 나오는 창고를 살폈다.

나무로 만들어진 고기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바닥에는 폐그물들이 널려 있었다.

뚝!

걸음을 세우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속에서도 은빛을 내는 작은 쇳조각이다.

허리를 구부려 주워들었는데 쇳조각은 칼이었다.

손잡이에서는 직선으로 뻗어 나가다 중간쯤에서 곡선을 만들며 뾰쪽해진다.

육류나 뼈 있는 생선을 자를 때 사용하는 쉐프 나이프라는 것으로 유럽식 식칼인데 외인부대시절 식당에 가면 수십자루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웬만해서는 녹이 슬지 않으나 염분 짙은 소금물과의 접촉으로 인한 듯 군데군데 녹이 슬었다.

쉬이익!

권총수가 들고 있던 칼을 벼락같이 던졌다.

칼은 어둠을 갈랐고 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놀라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억!”

슈욱!

움직인가 싶었는데 창고 안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검정색 터번에 역시 검정 토브를 입은 사내가 넋이 빠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내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는데 당연히 아무런 이상은 없었으나 여전히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권총은 날아온 칼에 맞아 어디로 떨어졌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권총수는 왼쪽으로 10여 미터 걸어가더니 허리를 구부려 사내가 떨어뜨린 권총을 주워들었다.

글록 22였다.

타탁!

탄창을 꺼내 확인을 하는데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만탄이다.

탁!

다시 탄창을 낀 권총수는 사내에게 권총을 돌려주었다.

멈칫!

권총을 돌려주자 사내는 또 한 번 놀란다.

사내는 얼떨결에 건네주는 총을 받았지만 권총수를 쏘려는 동작이나 의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아까부터 날 쭉 지켜보고 있던데?”

“그건...그냥.”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어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라이터 불을 켰다.

사진을 사내 면전에 가까이 대며 묻는다.

“자세히 보고 대답해 주시오.”

사진이 잘 보이도록 라이터 불을 가까이 댔다.

사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사진을 보는 듯 마는 듯 하며 권총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뭐하십니까?"

"사진속 인물을 압니까? 봤으면 봤다고 말해주면 사례 하겠습니다. 잘 봐주십시오.”

사진과 라이터 불을 사내에게 떠밀다 시피 맡기고 자신은 생선상자 한 개를 끌어 내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사내는 침을 삼켰다.

생선상자를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권총수를 보더니 라이터 불을 이용해 사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칫!

사진을 보던 사내는 깜짝 놀라더니 얼른 권총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어딨소?”

사내는 소스라쳤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좀 전 자신의 표정을 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다.

지금도 담배를 피우며 바닷가 쪽을 보고 있었다.

“이름 던퍼드, 미해병 중사라던가? 같이 있나보군요?”

“뭐라구요?”

가슴에 차가운 바람이 스친다.

태어나 이토록 놀라고 떨려본 경험은 없었다.

모든 걸 들여다보며 묻는 것 같았다.

부욱!

담배를 바닥에 끄고 일어난 권총수가 다가와 사진과 라이터를 가져갔다.

불빛이 꺼짐으로 인해 창고 안은 다시 캄캄해졌다.

“사...실은.”

“천천히 얘기해요. 난 함부로 누굴 헤친다거나 괴롭히는 사람 아닙니다.”

그러면서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권했다.

사내는 멈칫하며 권총수 표정을 보더니 부드러운 미소에 안심한 듯 뽑아 물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 불을 붙여주었다.

담배를 쥔 사내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그런 사내를 바라보며 권총수는 외인부대를 떠올렸다.

훈련소에 입소한지 2주 만에 흡연 허가가 떨어졌다.

흡연이 가능하다고 하여 아무 곳에서나 피울 수는 없다.

이른바 흡연군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정된 장소에서만 피워야 하며 꽁초를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사내에게서 바짝 군기가 든 외인부대 훈련병 모습을 본 것이다.

그건 곧 사내가 이런 일에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신참이다’

사실 권총수는 첫눈에 사내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테러단체중 가장 규모가 큰 윌리야트 시나이 소속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글록22를 아무나 쥘 수 없다.

윌리야트 시나이는 IS 하부조직이다.

그동안 중동에서 설자리를 잃은 IS는 뿔뿔이 흩어져 게릴라식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씩 이곳 윌리야트 시나이로 몰려들고 있는데 이집트 정부와 다국적감시군 모두 긴장하며 예의 주시중이다.

‘마제드 압둘라’

윌리야트 시나이를 이끄는 우두머리이다.

다인코프 카이로 지사장 버홀터의 말에 의하면 그는 카이로 대학 경영학부를 졸업한 인텔리라고 했다.

테러집단의 우두머리이지만 뛰어난 포용력과 소통으로 부하들을 통제했는데, 특히 노동자 농민들을 상대로는 테러를 감행하지 않아 민심까지 얻고 있어 그를 잡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상당수 다합 시민들이 그를 보호하고 지키는 협조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테러집단이 민심까지 얻어 버리면 골치 아프다.

“당신이 하는 일은 뭡니까?”

조금전 사진을 보며 당황하던 표정은 던퍼드 중사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권총수의 음성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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