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화: 플라이 낚시(1)
신호가 가고 부하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국자 명단 확인했나?”
“물론입니다. 아직까지 사막의 흑새로 보이는 인물의 탑승 기록은 없습니다.”
전화를 내린 맥보란은 길게 숨을 내 쉬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등에 커다란 바위 한 개를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권총수에게 진 빚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우며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그건 구명지은이다.
목숨은 결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죽기직전 살아났다면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른다.
권총수는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부모가 자신을 낳아 주었다면 그는 죽음 속에서 건져내준 것이다.
“음!”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신세를 졌는데도 결코 빚을 갚을 수가 없는 기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구명지은이라는 채무를 이행하는 길은, 결국 조직과 국가를 배신해야 하는 길인데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불안함은 뭔가.
그가 보이지 않자 모골이 송연할 만큼 온 몸이 곤두선다.
‘사는 게 쉬운 일 만은 아냐’
아주 가끔 술 한 잔 하면서 농담처럼 뱉어냈던 말이 실제화 될 줄은 몰랐다.
“제길!”
한숨만 나올 뿐이다.
별안간 꺼지듯 종적을 감춰 버렸다.
바다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어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보다 치지 않으면 두렵다는 것이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상하게 바다가 잔잔할수록 엄청난 폭풍이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조용하고 그래서 더욱 신경이 곤두선다.
벽에 걸어 놓은 액자를 드러내고 전화기를 들었는데 결코 감청이 불가능한 랭글리 직통전화다.
“어쩐 일인가?”
귀에 익은 음성의 주인공은 아담스였다.
맥보란은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감정없는 목소리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무척 귀에 거슬린다.
그렇다고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상사인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끊어 지켜주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정보 세계에서 고마운 일은 없고 오로지 사명과 책임감만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인간의 감정이 어디 그렇게 단순 하던가.
“왜 말이 없나? 잠시 후 회의 들어가야 하니 용건만 말하게.”
맥보란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종적이 묘연합니다.”
“종적이라니 누구 말인가?”
“갈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았고 다인코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흑새 말입니다.”
사막의 흑새라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당황하는 듯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만약을 대비해 출국자 명단을 확인했지만 없습니다.”
“만약을 대비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맥보란은 순간적으로 치솟는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 죽이러 갔는지 몰라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소릴 질러 버리고 싶었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 다니고 있는데 만약을 대비한다는 뜻을 정녕 몰라서 묻느냐며 욕설을 퍼부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혹시 버지니아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CIA 본부가 있다.
즉 당신을 죽이러 갔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헛헛!”
아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보게 맥, 여긴 미국일세. 카이로가 아니라는 얘기야. 테러범들이 활개치며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냐.”
“그렇다면 다행이죠.”
“걱정해주어 고맙긴 한데 이렇게 전화까지 할 필요는 없네. 수고하게.”
전화를 끊은 맥보란은 버럭 소릴 질렀다.
“으으음!”
솟구치는 열기를 애써 누른다.
빈 말일지라도 날 염려해주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 뱉으면 이토록 가슴이 부글부글 끓지는 않을 것이다.
딸칵!
좀체 가라앉지 않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담배를 피워 물었다.
‘빌어먹을’
담배를 피우며 화를 삭이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는데 다인코프 카이로 지사장 버홀터였다.
“최선을 다해 찾고 있지만 아직은 캄캄 무소식입니다.”
버홀터의 목소리도 긴장해 있다.
다인코프 일 년 매출에서 CIA가 차지하는 비중이 30프로를 조금 넘는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60퍼센트에 육박했으나 권총수가 들어오면서 회사 브랜드 가치가 급성장 했고, 거래처가 다변화 되면서 CIA에 의존하던 회사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CIA와 관계를 냉랭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일감도 중요하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정보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알겠소.”
맥보란은 여러 말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버홀터 역시 핸드폰을 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다.
CIA와 권총수의 충돌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중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나이탓인가.
오늘따라 유난히 착잡하다.
어쨌든 카이로 지사장으로서 권총수의 안위와 행보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다시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 사령부 홀 왼쪽 벽에는 큼지막한 글자로 “당신이 진실을 깨달으면, 그 진실은 당신을 평화롭게 하리라”라는 복음서의 성 요한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대로 진실을 깨달으면 평화로워질까?
그 반대가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해 9월 18일, 마이클 하이든, 포터 그로스, 조지 터넷, 존 더치, 제임스 우슬리, 윌리엄 웹스터, 제임스 슐레징어 등 7명의 전임 CIA 국장들은 당시 대통령이던 오바마에게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임 때 정보국 관리들이 반테러 심문 과정에서 저지른 ‘고문’에 대해 벌이고 있는 조사를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부시정부 시절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CIA에 체포 구금되었고 많은 사람이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면서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과거사 조사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 전임 국장들은 CIA가 벌인 불편한 사건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조사가 이뤄진다면 앞으로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냐고 따졌다.
이러다 옛날 사건 파는 일이 자칫 관례가 되면 향후 요원들의 활동이 엄청 위축 될 것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때 벌인 사건에 대해 칼날을 들이대면 누가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국가 안위를 위해 목숨을 던지겠는가.
‘당장 그만 둬야 한다. 이런 조사는 미국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정보부라는 특성을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창설한 이래, CIA의 역사는 거대한 범죄로 얼룩져 있다.
CIA의 실체를 고발하기도 한 뉴욕타임스 기자 팀 와이너는 CIA의 수사관 존 맥루더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적고 있다.
‘비밀스런 정보 활동이란 항시 모든 규칙을 어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방부나 국무부는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 없다.
그래서 이를 대신할 새로운 비밀 정보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냉전 시기인 1953~61년에 정보국을 지휘한 앨런 듈스는 ‘정치인 암살도 대통령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우린 지시가 내려지면 무조건 이행한다.
나중에 일이 잘못됐을 때는 아주 자신감 있게 ‘우리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만약 CIA가 용의선상에 오르면 미국 대통령은 당연히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 역시 대통령이 발뺌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CIA가 벌이는 비밀 활동이란 뻔했다.
외국 지도자 암살, 불안 조성, 쿠데타, 무기와 마약 거래 등과 같은 것으로 범죄를 정리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오히려 많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미국이 그토록 강조해온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바로 그 점 때문에 CIA는 주기적으로 사건 뉴스를 달고 다녔다.
이 조직의 불명예스러운 파렴치 행위들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다.
CIA의 가장 최근의 조작사건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라크를 침공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누군가는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이 더 많았다는 것으로 CIA의 과오를 덮으려 한다.
열 명의 진범을 잡으면 뭐 할 것인가.
그중 한 명이 억울하게 희생된 선한 사람인 것을 말이다.
피식!
맥보란은 실소를 흘렸다.
정보국 요원으로서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 만큼 자신의 마음은 괴로웠다.
* * *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카트 가득 무거운 가방과 짐들을 싣고 들어서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백인이거나 흑인이었다.
이따금 아랍계로 보이는 히잡을 쓴 여인들과 둥근 원통형의 모자 사쉬야를 쓴 무슬림들도 눈에 뛰었지만 소수였다.
사내가 들어섰다.
사내는 아시아계로 보였다.
마흔 중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짧은 스포츠 머리에 이마에 패인 두 개의 주름이 인상적이었고 두꺼운 뿔테안경을 꼈다.
코 밑으로 수북한 콧수염을 오른손으로 슬쩍 문지르듯 만지면서 총총걸음으로 청사를 빠져 나갔다.
택시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조금전 공항을 빠져 나온 동양인 사내가 앉아 있었다.
사내는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이 막연한 걸 보아 차창 밖을 구경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택시 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사내를 흘긋 거렸다.
오랫동안 공항의 손님들을 태운 경험을 살려 지금 뒷좌석 사내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알아 맞춰 보려는 것이다.
비즈니스맨은 아니다.
옷차림과 행색, 특히 짧은 스포츠 머리가 상대를 끌어들이고 포용해야 하는 비즈니스맨과는 거리가 있다.
여행 가방을 하나 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가롭게 관광을 온 사람은 더욱 아닌 듯 보인다.
결정적인 건 얼굴에 관광객 특유의 흥분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보통 손님을 태우면 뉴어크에 오신 걸 환영한다며 말을 걸고 목적지까지 여러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궁금하여 무슨 일로 뉴어크에 왔느냐고 묻기도 조금 겁이 났다.
체격은 자신보다 작지만 묘하니 범접할 수 없는 기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방이 벚꽃이다.
문득 보육원 시절이 떠올랐다.
봄이 되면 앞산 뒷산을 연분홍빛 벚꽃이 덮어버렸고 수녀님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향기에 취해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만드셨다고 극찬했다.
물론 자신의 눈에 보이는 벚꽃은 그저 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꽃을 보면 아름다운 생각이 든다는데 자신은 그저 덤덤했다.
심지어 길가에 핀 제비꽃을 발로 밟아 버리는 것을 목격한 수녀님이 소스라치며 소리쳤다.
“바오로 어쩜 그럴 수가 있니?”
“왜요?”
이 까짓게 뭐 대수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수녀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줬다면서요? 지배자로서 이까짓 제비꽃 하나 죽인 것이 대단한 잘못입니까? 난 이 풀, 저 나무들을 죽이고 살릴 권한을 전능하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았어요.”
“오오! 우리 바오로 큰 일 났구나.”
수녀는 재생 불량성 빈혈에 걸린 사람처럼 이마에 손을 얹고 휘청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