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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85화 (285/651)

제285화: 또 한 번의 도박(1)

그런데 권총수 표정이 만약 자신이 행동을 알면 가만 두지 않을 기세다.

자기 딴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보고자 한 일이지만 권총수는 질색을 하고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알아. 다시 자살을 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고마움일 뿐이야. 목숨을 구해줬다고 조직을 배신한다거나 비밀누설 따위는 하지 않아.”

지이잉!

의자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요동을 쳤다.

식사를 마친 오민철이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는데 액정을 확인하며 눈을 크게 떴다.

“월터? KAS 카이로 책임자 아냐.”

권총수는 통화 버튼을 터치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셋 모두 안방으로 들어간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권총수가 물었다.

“언제 간다고 했지?”

“내일 아침 5시 출발.”

세 사람 모두 시나이반도로 출전한다.

“오랜만에 가는 것이니까 준비들 단단히 하세요. 신중하고 겸손할 때만 전장에서 살아 남는거야.”

오민철을 바라보았는데 제일 걱정이 된다는 뜻이다.

권총수가 말을 끝내자 말자, 이제 어떤 총알도 피할 자신이 있다고 떠드는 바람에 더 불안한 것이다.

“말이 그렇지, 나 얼마나 죽는 것 싫어하는데 조심할 테니까 걱정 마. 그런데 누구 전화야?”

오민철은 모른 척 묻는다.

“내일 스톤스가 이곳으로 온다는군.”

“그 쓰레기 자식.”

나카야마가 버럭 소릴 질렀다.

“그 인간이 왜 오는데?”

비렌드라가 살기를 쏟아내자 권총수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십년을 넘도록 같이 지내왔지만 지금처럼 비렌드라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지는 걸 본적은 없었다.

“나쁜 놈.”

“눈 형, 내말 명심해요. 그는 장사꾼입니다. 우린 돈만 주면 방아쇠를 당겨주는 용병이고.”

즉 거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으로 감정 가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옴마니 밧메홈!”

비렌드라가 화를 삭이려는지 불호를 중얼거렸다.

새벽 5시는 아직 캄캄했다.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 트렁크가 열려 있고 세 사람은 차곡차곡 각자의 짐을 실었다.

“빠뜨린 것 없는지 잘 확인하라고.”

권총수가 같이 짐을 들어 실으면서 여기저기 살폈다.

“총? 안전 장치 확인.”

오민철이 어깨에 메고 있던 M4를 탁탁 치자 권총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깜빡 잊고 조정간을 사격위치에 놓는 바람에 가끔 안전사고가 일어난다.

쾅!

권총수는 트렁크를 닫고 세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조심해. 지나치게 인도주의적으로 행동하지 마.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당겨 버려.”

이동 중 조금이라도 의심스런 집단이나 사람을 만나면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다.

물론 가끔은 엉뚱한 민간인을 죽이는 불상사가 발생하지만 지나치게 물러서고 수비적으로 행동하다가 목숨을 잃은 용병들이 한둘이 아니다.

셋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모질지 못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세 사람은 악수를 하며 차에 올랐다.

부우웅!

포드 익스플로러가 어둠속을 사라지고 있었다.

권총수는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간절히 원했다.

오전 11시의 커피숍은 그런대로 한산했다.

긴 토브(롱 코트처럼 생긴 옷)를 걸치고 머리에는 원통형의 검정색 모자 샤쉬야를 쓴 일부 사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같이 체격이 건장했고 대화를 하는 듯 서로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으나 시선은 계속 주위를 훑고 있었다.

‘일곱 명’

커피숍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권총수는 무슬림 복장을 했지만 한눈에 일곱 명의 사내가 구별됨을 읽었다.

‘확실히 달라졌군’

스톤스 경호원들이다.

평소에는 한두 명, 많아야 서너 명 데리고 다니던 것에 비춰 오늘은 두 배 정도의 수행 경호가 붙었다.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에 대한 테러와 폭행이 빈번한 카이로 분위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권총수는 전자 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보았다.

자신도 불편한 감정이고, 스톤스 역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일곱 명을 데려온 것이다.

권총수를 먼저 발견한 KAS카이로 지사장 월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오겠다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권총수는 다가서며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네. 이래서 인생사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모양일세.”

스톤스가 빙긋 웃는다.

“그런가 봅니다.”

권총수는 맞은편에 앉았다.

서로 탐색하듯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경계의 빛이 역력했다.

“현지인이라고 해도 모르겠네.”

권총수의 무슬림 복장은 매우 자연스럽다.

더욱이 얼굴이 검게 타면서 약간의 아프리카 분위기도 나고 있었다.

월터 지사장이 커피를 가져다 놓고는 스톤스 옆에 앉는다.

“대중에게 오랫동안 노출되는 걸 별로 좋아 하시지 않는 회장님이시니 본론을 말씀드리죠.”

권총수는 매서운 눈으로 스톤스를 바라보았다.

“호지슨 제5부장을 만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어렵다면 일어서겠습니다.”

스톤슨의 이마에 주름살이 생겼다.

권총수가 생각보다 강하게 치고나온다.

되지 않을 일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연결 해주는 댓가로 혹시 나에게 뭔가를 기대한다면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이다.

스톤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거래란 아쉬운 쪽이 끌려가게 된다.

현재 아쉬운 쪽은 권총수이다.

그런데도 불편한 상태로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건 자신에 대한 경계가 분명했다.

“내가 왜 카이로에 왔는지 아는가?”

“대충은 짐작합니다.”

스톤스가 눈을 좁혔는데 한 번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날 위해 오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고생하는 여기 월터 지사장님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겠죠.”

흘긋!

월터가 스톤스 눈치를 살피듯 바라본다.

혹시나 카이로 방문에 격려 계획도 들어 있지 않느냐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스톤스 회장 입에서 고생 많다는 말은 좌석이 끝날 때까지 결코 흘러나오지 않았다.

“MI6 제 5부장이 카이로에 있거나 근처에서 일을 보고 있겠죠.”

언뜻 카이로까지 날아오는 것이 마치 날 대접하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로 보이길 기대한다면 애초에 버려라.

당신은 절대 날 위해 달려올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건데 호지슨 제5부장이 필시 중동 어딘가에 와 있을 것이고 그래서 왔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스톤스가 안색이 약간 상기 되었다.

“자넨 대단한 사람이야.”

스톤스는 약간 붉어진 자신의 얼굴을 숨기려는 듯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카이로 박물관은 상당히 붐볐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관광객들로 상당히 시끄러웠는데 놀라운 건 전시된 유물들을 만져도 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안내하는 직원들이 만져 볼 것을 독려했다.

권총수는 투탕카멘 황금가면을 지나 회색의 미라 한 쌍이 진열된 곳으로 다가갔다.

신장은 158센티 정도 되어 보였는데 삼천 년 전 미라라고 했다.

한곳의 묘지에서 출토가 되어 부부로 보인다는 설명문이었다.

“놀라운 일이오. 우리가 삼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신발에서부터 머리까지 이슬람복장을 하고 있었다.

적당한 콧수염까지 완벽한 무슬림이다.

두 사람은 일행처럼 나란히 어깨를 하며 박물관을 구경 다녔다.

사실 불가능한 제안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도 없고, 더욱이 상대는 자신들과 힘을 모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는 미국이다.

틈이라고는 절대 벌어질 수 없는 혈맹관계이다.

물론 우방이며 같은 진영의 국가라고 하여 모든 것이 사이좋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치열한 경쟁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 필사의 정보전이 벌어진다.

음지에서는 모든 대상이 적일 뿐이다.

CIA든 누구든 오로지 승리라는 목표만을 쫓는다.

하지만 전혀 그런 일이나 사건도 없고 서로가 감정상할 상황이 아닌 이 평화로운 시대에 CIA 공작원의 정체를 흘린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건 상식에도 맞지 않다.

그러나 묘했다.

가슴이 뛴다.

온 몸이 불길 속에 던져진 듯 열기가 피어나고 입안이 바짝 말라간다.

자신의 카이로 방문은 극비다.

호지슨은 길게 숨을 내 쉬었다.

이집트 시나이 근처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이집트 정부가 처음에는 영국의 석유회사 BP(British Petroleum)와 개발권을 놓고 지분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이집트 정부의 움직임이 어정쩡해지더니 여러 가지 계약 체결을 미루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념 전쟁이 아닌 경제 전쟁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은 경제에 사활을 건다.

MI6역시 마찬가지였다.

즉각 조사에 나선결과 놀랍게도 중국이 끼어들고 있었다.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시베이유전이 영국의 BP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이집트 정부를 흔들어 버린 것이다.

정확한 매장량은 전문가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이집트가 석유 수출국으로 바뀐다는 사실 하나에는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후우우!

호지슨은 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미국에서 하메네이 암살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테헤란에는 CIA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MI6에서도 상당한 협조자들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사막의 흑새를 청소한 미국쪽 코드네임도 알고 있다.

똑똑!

현재 있는 곳은 카이로 BP석유회사 사무실이다.

문이 열리고 들어선 사람은 BP석유회사 현장 직원으로 있는 부카요였다.

그 역시 직함은 BP석유회사 직원이지만 정체는 MI6요원이다.

“바쁘지 않나 모르겠군.”

웬만해서는 부하직원과 의논을 하지 않는다.

의논할 사안이 있고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할 작전이 있다.

정보국 직원은 직책에 맞는 정보만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선한 비밀이든 악한 비밀이든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독하면서도 위험한 자리이다.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판단이 맞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부족이다.

정보국의 특성상 사람의 목숨이 개입된 일이 많기 때문에 실패의 후유증은 크다.

어쨌든 부카요를 부른 것은 도저히 혼자서는 이 난국을 해쳐 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미국이라는 지상 최강의 국가와 심각한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다.

“음!”

부카요를 불렀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굳이 정보국의 특성을 말하지 않아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상대가 사막의 흑새라는 것에 있었다.

아직까지 그보다 뛰어난 용병은 없고, 하메네이 암살에서도 보듯 완벽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유사에 빠져서도 살아났다는 것 또한 어쨌든 실력이다.

지금 자기 앞에 놓인 거대한 산맥 즉, 중국을 밀어내고 개발권을 영국 회사가 가져오도록 하는데 사막의 흑새 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다.

“뭐하는가. 앉아!”

부요카 역시 긴장하여 앉지 못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관 호지슨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스윽!

호지슨이 담배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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