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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81화 (281/651)

제281화: 햇빛 자르기(2)

맥보란은 질문을 던진 클락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자신도 그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다.

누구에게도 이들의 카이로행을 말한 적이 없다.

마이클 대사와 자신 둘만이 알고 있다.

“그들 능력이 우리 수준과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거야.”

할 수 있는 대답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클락슨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렸다.

“오메이사 경위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뜻인데 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을까요. 오메이사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 우리와 이집트 경찰이 정보를 공유하고 손을 잡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사막의 흑새는 그런 친구야.”

평범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일도 그에게는 단순하고 쉽다는 시선으로 클락슨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이라도 놈을 공격 하겠습니다.”

맥보란이 눈을 부릅뜬 라멜로를 바라보았다.

라멜로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우릴 죽였다면 이토록 낯이 뜨겁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당장 총기부터 지원해 달라고 했다.

“놈도 우리가 이렇게 즉시 반격해 올 줄은 모르고 있을 겁니다. 복수는 서두를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네.”

“같은 일행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팟!

맥보란이 깜짝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라멜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손목시계가 밤 10시를 넘고 있었다.

맥보란은 카이로 모처에 있는 ‘찰리 안가’에 있었다.

카이로에는 모두 세 곳의 안가가 있는데 알파와 찰리 브라보 세 곳이다.

세 곳의 성격은 모두 다르며 찰리 안가는 긴급 작전을 수행할 때 사용한다.

군부대로 말하면 찰리 안가는 작전사령부인 셈이다.

랭글리와 직통전화도 있고 위성에서 보내는 사진과 의심스런 전파를 잡아 보내면 분석하는 여러 첨단 장비까지 갖추었다.

한마디로 간이 랭글리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줄담배다.

초조한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가장 비열한 방법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쪽에서 먼저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에 권총수가 응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전쟁은 벌어졌다.

이왕 당긴 방아쇠를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한다.

그야말로 더러운 작전이지만 살려니 할 수 없었다.

단독주택은 조용했다.

오민철은 흥건히 젖은 땀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끝내고 나온 참이었다.

‘마당에 설치한 대인지뢰 모두 회수해’

오늘 낮 우체부로 변장해 접근해온 권총수의 말이었다.

힘들게 매설했는데 무슨 소리냐며 안 된다고 했다.

지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두 다리 뻗고 잔다면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권총수는 이따 저녁에 보자면서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래서 부랴부랴 세 사람은 마당가에 매설해 놓은 대인지뢰 일백 여개를 파내느라 땀을 흘렸다.

“어마얏!”

오민철이 소스라쳤다.

불켜진 자기 방에 권총수가 우뚝 서 있었다.

나카야마와 비렌드라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보고 있었는데 오민철의 놀라는 소리에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나카야마 손에는 권총까지 들려 있었다.

“허걱!”

“캡틴, 어떻게 들어왔어?”

“임마, 들어왔으면 기척을 해야지. 이 형 심장 약한 것 알잖아.”

오민철이 오른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자 권총수가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 707은 심장약한 사람도 뽑나 보지.”

“숨겨져 있는 심장을 그들이 약한지 강한지 어떻게 알아. 아무튼 난 약해. 정말 놀랐네. 어후후후!”

오민철의 헐리우드 액션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로 들어왔어?”

비렌드라가 물었다.

“잠영술!”

“아!”

비렌드라는 탄성을 흘렸다.

잠영술은 어느 문파의 진산절기가 아니라 내공이 지고무상한 경지에 오르면 누구든 펼칠 수 있다.

내공 수위에 따라 강약이 달라진다.

이 갑자가 넘는 내가 고수가 펼치면 눈을 뜨고 있어도 지나가는 걸 보지 못한다.

주위 지형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이동하기 때문에 심장이나 맥박 뛰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알 수가 없다.

잠영술의 약점은 냄새다.

몸에서 나는 냄새는 어떻게 방법이 없는 것인데 액취증이 심하거나 노린내를 풍기는 고수들은 중화제라고 하여 냄새를 희석시키는 설청신무액(雪淸神霧液)을 갖고 다닌다.

설청신무액이 아니어도 들키지 않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건 속도였다.

시궁창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일지라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면 냄새로 인해 의심 받거나 정체노출이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눈 형, HK 있지?”

HK-416을 말하는 것이다.

비렌드라가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눈에 익은 소총 한 자루를 가져왔다.

“만땅이야!”

만땅이라는 건 30발 모두 가득 채워져 있다는 뜻이다.

“내 말 잘 들어. 맥보란이 내 경고를 무시했어.”

“계속 붙어 보겠다는 거야?”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오늘 밤 랭글리에서 보낸 SAC요원들이 들이닥칠거야.”

“왜 우릴?”

“날 잡기 어렵게 되자 세 형을 잡아 거래를 하려는 거지.”

“이런 개자식, CIA 특수공작 요원들이라면서 왜 이렇게 더럽게 노는 거야. 내가 뭐랬어. 그냥 공항에서 정리해 버리자니까. 그 새끼들 관을 보기 전에는 절대 눈물 흘리지 않을 놈들이라니까.”

“지하실 있지? 들어가 있어. 나오라는 소리 하기 전까지 꼼짝하지 마.”

만약을 대비해 은밀하게 지하실을 개조했다.

로켓포탄 정도 가지고는 뚫리지도 않는다.

물론 수류탄도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불길에서도 닷새 이상은 버틸 수 있다.

“안 올 수도 있잖아?”

나카야마가 의자에 앉아 묻는다.

“총수가 온다고 하면 오게 되어 있더라.”

오민철이 다부지게 말했다.

“뭐해. 빨리 지하실로 가. 불 꺼야 하니까.”

“같이 하면 더 수월하잖아.”

오민철이 주춤했다.

“그냥 가!”

비렌드라가 뒤에서 오민철의 등을 떠밀 듯 쳤다.

“캡틴이 우릴 몰라서 혼자 하겠다는 거겠어?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지.”

세 사람은 투덜거리며 방에서 사라졌다.

어둠은 더욱 짙어간다.

토토통!

나일강을 쓸고 온 바람이 골목을 지나며 자그마한 패트병 한 개가 굴러갔다.

바람이 지나며 세 사람이 나타났다.

어둠보다 진한 흑복을 걸쳤는데 두 눈이 푸르게 번들거렸다.

사람의 눈이 야수처럼 녹색으로 빛난다는 건 살인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걸 의미한다.

살인은 심성을 파괴하고 정신을 무너뜨려 가혹한 공격성을 끌어낸다.

무차별한 공격성을 지닌 동물의 눈은 녹색으로 빛나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초식동물 보다 육식동물의 눈이 더 녹색을 띄고 푸르게 빛나는 이유다.

담장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지만 세 사내는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한 사내가 윗도리를 벗어 철조망을 덮었고 사내들은 가볍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셋 모두 등에 백팩을 멨으며 얼굴에는 4안식 야시경을 썼다.

세 사람은 권총을 뽑아들고 주택 담벼락에 바짝 붙었다.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가장 빨리 확인 할 수 있는 건 소리다.

숨소리, 뒤척이는 소리, 운이 좋으면 코고는 소리까지 벽을 통해 충분히 전달된다.

스윽!

가장 앞선 사내가 엄지 손가락을 거꾸로 세웠다.

그건 방안의 사람이 잠에 빠져 있다는 뜻이었는데 세 사람은 자세를 낮추고 현관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마당과 현관은 계단이 없이 평평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처처척!

사내들은 현관문 좌우로 붙어 섰다.

문 입구에 바짝 붙어선 사내가 작은 철사 하나를 구멍 속에 넣었다.

스륵!

간단했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린다.

세 사람은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들어갔는데 야시경에 비치는 실내는 초록빛으로 빛났다.

선두 사내가 이 층을 확인하라는 듯 손가락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두 사내가 조심스럽게 발자국 소리를 줄이며 2층으로 올라갔고 리더로 보이는 사내는 안방 문 앞에 붙어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스윽!

방문 손잡이를 잡고 서서히 안으로 밀었다.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내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뜨거운 것이 목을 파고 들어왔다.

클락슨의 눈이 커졌다.

검끝은 목을 관통하지 않고 겨우 죽지 않을 정도에서 멈췄다.

자신의 목을 찌른 검날을 따라 시선을 들었는데 권총수가 우뚝 서 있었다.

오래부터 이 주택은 CIA 감시에 있었고 세 사람을 제외한 누구도 집으로 들어온 사람은 없다는 보고가 도착했다.

어렵지 않게 세 사람을 납치해 권총수와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고 자신도 있었다.

권총수가 검을 앞으로 밀었는데 그건 뒤로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클락슨은 주춤 거리며 뒷걸음을 했다.

검이 목을 관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흡도 불가능했고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처!

처처!

뒤로 밀린 클락슨은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권총수는 검을 그대로 놔두고 클락슨 옆에 앉아 권총을 뽑아 들었다.

글록 18이다.

소음기가 끼워져 있었는데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클락슨은 자신들이 공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정을 깔아 놓고 기다린 권총수의 덫에 걸렸음을 그제야 알았다.

그는 이미 자신들이 세 사람을 납치하려는 걸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르다.

뭔가 틀리다는 맥보란의 말을 좀 더 신중하게 들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늦었다.

달라도 이렇게 다르리라고는 전혀 몰랐다.

권총수가 자신과 나란히 앉았다는 것은 2층 계단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즉 2층으로 올라간 라멜로와 토니의 존재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클락슨은 실패라는 말을 떠올렸다.

상대가 안 된다.

아무리 실력차이가 난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복싱경기는 없다.

비켜 맞든 운이 좋아 럭키 펀치가 들어갔든 한두 대는 때린다.

그러나 자신은 주먹을 뻗어 보지도 못하고 포획되었다.

2층이 조용한 것을 보면 세 사람은 이미 안전한 곳에 대비했음이 분명했다.

발자국 소리와 함께 4안식 야시경을 쓴 라멜로와 토니가 내려왔다.

“그대로 있어요. 움직이면 죽어.”

총구를 밑으로 내린 채 내려오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려하자 권총수는 차갑게 말했다.

두 사람은 엉거주춤 하며 거실로 내려섰다.

“총 바닥에 놓고.”

라멜로와 토니는 거실 바닥에 권총을 내려놓기 위해 느릿하게 허리를 숙였다.

휙!

라멜로는 놓았으나 토니는 그러지 못했다.

속사에 자신이 있다는 듯 재빨리 총을 들어 올려 권총수를 향했다.

푸슉!

소음기 특유의 찢어지는 쇳소리가 들리며 토니가 바닥으로 엎어졌다.

글록 18의 총알이 정확히 토니의 이마를 뚫고 들어가 버렸다.

“토니!”

라멜로가 다급히 소리쳤지만 토니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권총수는 라멜로를 향해 왼쪽 텔레비전 앞으로 앉으라는 손가락 모양을 했다.

라멜로는 군소리 없이 텔레비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편히 앉으세요.”

라멜로는 양반자세로 앉았다.

척!

권총수는 라멜로가 쓰고 있는 4안식 야시경을 벗겼다.

“몇 살이오?”

“서른 여섯.”

“민철이 형 보다는 어리군.”

촤악!

권총수는 클락슨의 목에 꽂힌 검을 뽑았다.

츄하학!

피가 소방호스 물줄기처럼 뻗어나가며 클락슨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전화 하세요.”

“누구?”

“작전 상황을 보고해야 할 것 아닙니까?”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라멜로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원을 켰다.

잠시 후 번호를 눌렀는데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맥보란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어딘가?”

라멜로는 권총수의 눈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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