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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8화 (278/651)

제278화: 사냥의 노래(2)

권총수는 호텔방으로 들어섰다.

그가 묵고 있는 곳은 호텔 쉐라톤이다.

당분간은 오민철 일행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자신은 CIA의 미행이나 감시를 따돌릴 자신이 있지만 세 사람은 불가능하다.

그들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왔다갔다 하다보면 뒤를 밟힌다.

전화 또한 긴급 상황이 아니면 철저히 공중전화를 이용하도록 지시했다.

탁!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단숨에 반병을 마셨다.

촤라락!

커텐을 걷고 석양에 잠겨가는 나일강을 바라본다.

‘노을이 좋군’

권총수 얼굴에 서늘한 웃음이 나타났다.

창문 너머로 맥보란의 얼굴이 떠오른다.

누구보다도 맥보란을 잘 알고 있다.

결코 그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CIA라는 조직의 특성상 임무가 주어지면 백퍼센트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는 않는다.

그런 논리라면 이 세상에 결코 정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정의를 아는 사람은 목숨을 도외시하며 지키고 실천한다.

아무리 조직이 시켜도 잘못된 일이라면 노우라고 해야 한다.

CIA 최대 장애물을 제거해준 사람을 향해 뒤통수를 친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고 상식적이지만 이번일은 백 보를 양보해도 묵과할 수 없다.

‘변절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고 가져다 붙이는 핑계가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거지’

주르르륵!

남은 반병을 마저 마셨다.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는데도 누구는 친일을 하고, 누군 가족까지 버리고 조국을 찾기 위해 독립 운동을 했지’

권총수의 입술이 가늘어지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지이잉!

권총수는 핸드폰이 울리자 놓여 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찍힌 숫자 번호가 다섯 개인 것이 공중전화다.

“형이야?”

“어, 총수야. 지금 뭐하냐?”

오민철이 더듬거렸다.

“물 마시고 있어.”

“이집트 물 잘 마셔야 돼. 생수라고 믿어서는 안 돼.”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할 얘기 있으면 어서 해.”

“역시 우리 동생 눈치 하나는 번개야. 사실 이것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오민철은 마른 침을 삼켰다.

“오후에 카이로 아메리카 은행 지점에서 일을 보고 나오다 주차장에서 백인 두 놈을 만났어. 내가 백인을 싫어한다는 건 너도 알잖아.”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이번 사건으로 오민철은 백인을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인종으로 규정했다.

길을 가다가도 백인을 만나면 일단 노려본다.

권총수는 보나마나 또 어떤 백인을 잡고 시비를 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권총수는 스피커폰으로 해놓은 다음 전기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두 놈이 차에서 내렸는데 한 명은 통화중이더라고, 그런데 통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놈이 무슨 전화냐는 듯 바라보니까 뭐라고 말한 줄 알아? 세 사람이 카이로 여행을 오는데 대사관 차원에서 신변 안전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는 전화라고 말했어. 이상하지 않아? 미국 정부는 카이로를 여행금지구역으로 선포했어. 최소한의 기업인과 외교관을 제외하고 당분간 자국 국민들의 이집트 여행을 막고 있다고.”

홱!

전기 주전자에 커피 물을 끓이려던 권총수의 고개가 핸드폰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상대가 여전히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남자가 툭 던지듯이 ‘SAC가 오나봅니다’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은행으로 올라갔어.”

“SAC?”

권총수는 전화기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통화했다

“내가 영어에 약하잖아. 한 번 알아봐. 그리고 지금 뭘 좀 보낼 테니까 봐봐.”

“뭔데?”

“뭔가 미심쩍어 재빨리 두 사람 사진을 몰래 찍었어. 기분 나쁜 냄새가 풍겨. 나의 짐승 같은 육감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리고 곧장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왔다.

권총수는 사진을 보았는데 둘 모두 마흔 중 후반 정도로 보이는 백인들이었고 기억에 없는 얼굴들이다.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재빨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이집트 국영신문인 ‘알 아흐람’기사를 살피기 시작했다.

드르르!

부지런히 마우스 휠을 내렸다.

멈칫!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13일 전인 25일자 신문이다.

1면에 한 명의 백인 사진이 실렸는데 ‘새로 부임하는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 마이클 머피’라는 글씨가 쓰였다.

재빨리 핸드폰으로 전송되어 온 사진을 신문 사진과 비교한다.

각도의 차이인지 모르지만 크게 틀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권총수는 좀 더 분명한 사진을 찾기 위해 카이로 주재 미국대사 마이클 머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함께 여러 기사들이 나왔으나 분명하게 비교할 만한 정면구도는 없었다.

여기저기 20여분 검색을 하던 권총수의 눈이 멎었다.

전 미국대통령과 대학 동창으로 나란히 악수하며 찍은 사진 한 장이 개인 블로그에 올라와 있었다.

‘동일 인물이다’

블로그 속 사진과 오민철이 찍어 보낸 사람의 얼굴은 정확히 일치했다.

권총수는 직접 오민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신임 미국 대사야.”

“지금 나도 막 찾아냈는데 맞아. 새로 부임해온 사람이야.”

권총수는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전화를 끊었다.

‘SAC!’

무슨 약자인 듯 했는데 낯설지는 않았다.

몇 번 입에 담아봤던 단어가 틀림없는데 선뜻 떠오르는 건 없다.

권총수는 객실 안을 서성거렸다.

‘SAC, SAC’

열심히 중얼거리다 보면 떠오를 수도 있다.

멈칫!

거피를 끓여 한 잔 마시던 권총수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SAC(Special Activities Center)?”

권총수는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정확한 명칭은 특수활동부(Special Activities Center, SAC)다.

미국 중앙정보국 산하의 특별 부서인 것이다.

SAC는 특수행동부대로 준군사작전 조직이며 가장 위험한 흑색작전을 담당한다.

높은 자율성과 권한, 임무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여느 CIA 요원들과 다르다.

이들은 임무를 수행하는데에 있어서 자신들 마음대로 계획 자체를 통째로 바꾸거나 임무 목표를 변경하는게 가능하다.

현장 상황에 따라 지휘관의 처음 지시를 묵살해도 책임추궁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작전 중 필요에 의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건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했다.

암살, 파괴, 기습등 특수작전 능력은 미국의 여러 정보기관 중 어느 집단도 따르지 못한다.

권총수는 재빨리 인터넷 창에 SAC를 쳐서 검색에 들어갔다.

SAC로 불리는 또 다른 단체나 특수기관이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여길 만한 의심스런 단체나 개인은 없다.

일반 상업적 광고가 태반이고 가장 근사치에 있는 것이 미전략공군사령부(Strategic Air Command)다.

그들 입에서 전략공군사령부 얘기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어느새 어두워진 카이로 시내를 내려다보며 두 눈을 빛냈는데 이로써 한 가지 분명한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SAC 대원 셋이 카이로에 들어올 것이라는 것이다.

맥보란은 SAC 같은 특수조직을 움직일 위치에 있지 않다.

SAC를 출전시키려면 최소한 국장급 이상이어야 가능하다고 볼 때 자신의 청소작전은 맥보란의 선이 아닌 그 윗선에서 이뤄졌다는 의심이 들어맞고 있다.

씨이익!

권총수는 환한 얼굴로 웃었다.

‘끝까지 한 번 해보겠다는 거군’

물론 그들이 자신을 겨누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이로에서 그들이 동원될 만큼 중대한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날 잡기위해 그들을 보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사실이라면 굉장한 정보다.

오민철의 백인에 대한 적대감이 엄청난 정보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권총수는 칸 카릴리 카이로 재래시장을 훑었다.

벌써 2 시간째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물건을 파는 가게 상인들을 향해 수소문 했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어찌하여 찾아가면 폐업을 했거나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그래도 포기를 않고 끈덕지게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유일하게 아직도 돌아가고 있는 대장간을 찾았다.

칸 카릴리 시장에 건축자재나 커다란 철 구조물 따위를 만드는 철공소는 많았지만 농기구를 비롯해 가정에서 사용하는 여러 주방도구를 제작하는 대장간은 이곳 한 곳 뿐이다.

‘거의 흡사하군’

한국의 대장간과 큰 차이는 없었다.

바람을 일으켜 불을 피우는 풍로와 이글거리는 숯불, 시뻘겋게 달궈진 받침쇠 위에 놓고 두들기며 망치질하는 모습은 동서양 모두 비슷했다.

“이것 하나 제작할 수 있습니까?”

권총수가 들어가자 칠십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바깥 날씨도 더운데 대장간 안의 열기는 더 굉장했다.

권총수는 자신이 어젯밤에 그려놨던 종이를 펼쳤다.

“칼 아니오?”

“엄밀히 말하면 검(劍)입니다. 칼과 달리 검은 양쪽 모두 예리한 날을 갖고 있죠.”

“3.3센티면 굉장히 검신이 가늘군요.”

검신이 가는 걸 세검(細劍)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공공선사의 가르침이었다.

검신이 좁은 검을 갖고 다닌다면 빠른 검법을 구사하는 검사라고 봐도 된다.

“검신 길이는 88.3센티, 검집은 대나무로 만들어 주십시오.”

노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답이 없다는 건 만들 수 있으니 계속 얘기하라는 이야기다.

“손잡이 역시 대나무여야 합니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지팡이 용도로 사용할 생각이니 검집은 좀 길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검이 들어가는 공간은 검날 길이에 맞추면 될테고.”

지팡이로 쓸 생각이니 검신의 길이보다 검집은 좀 더 길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스윽!

권총수는 아무 말 않고 탁자 위에 백 달러짜리 열 장을 놓았다.

노인의 눈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커졌다.

“내일 아침까지 되겠습니까?”

“만들어 놓겠소.”

“내일 뵙죠.”

권총수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권총수가 사라지자 노인은 번개처럼 돈을 가로채더니 세기 시작했다.

티티틱!

돈 세는 솜씨가 대단하다.

“천 달러!”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노인은 하던 작업을 뒤로 미루고 긴 쇠를 한 개 찾아와 불 속에 찔러 넣었다.

“오늘 밤샐 준비를 하거라.”

아들인 듯 젊은 사내에게 말했다.

밤을 새면서라도 반드시 요구한 검을 만들어 놓을 기세다.

검정색 벤츠 승용차가 차선을 바꿨다.

그 순간 앞서 가던 흰색의 랜드로버 역시 차선을 바꾸기 위해 옆으로 빠졌다.

그러자 검정색 벤츠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칫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검정색 벤츠는 다시 차선을 바꿨는데 공교롭게도 앞을 가던 랜드로버 역시 또 다시 방향 지시등을 켜고 앞으로 들어왔다.

벤츠는 다시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벤츠 운전자는 와락 인상을 썼는데 랜드로버가 연거푸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자신이 미행하고 있던 차량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벤츠 운전자는 차선을 반대로 바꿔 랜드로버 옆으로 붙었다.

이윽고 매서운 눈으로 랜드로버 운전자를 노려보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머리에 두꺼운 터번을 두른 나이든 노인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화가나 쳐다보는지도 알지 못하는 듯 빙긋 웃으며 인사를 한다.

“빌어먹을.”

운전대를 치며 화를 삭일 때 랜드로버는 이미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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