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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7화 (277/651)

제277화: 사냥의 노래(1)

이집트 담배가 아니었다는 말에 맥보란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말보로 레드였습니다.”

“으훗!”

맥보란은 신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보세요. 왜 그러십니까?”

맥보란이 괴성을 터뜨리자 상대는 깜짝 놀란 듯 했다.

“아...아닙니다. 분명히 말보로 레드 맞습니까?”

“틀림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맥보란은 전화를 끊었다.

꿀꺽!

목이 마르다.

맥보란은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 한 병을 꺼냈다.

마개를 따고 오랫동안 목이 말랐던 사람처럼 반 병 가까이를 마셔 버렸다.

‘말보로 레드’

그 담배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애연가이면서 오로지 말보로 레드만을 입에 물고 다녔다.

전장에서도 말보로 레드를 물고 방아쇠를 당겼고 아침에 일어나면 더듬거리며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는 사내는 바로 사막의 흑새였다.

말보로 레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권총수만 있는 건 아니다.

이집트인들중 미국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시장 점유율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범인이 피운 것으로 추정되는 꽁초가 말보로 레드란 말에 가장 먼저 권총수가 떠오른 건 왜일까.

맥보란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무겁게 숨을 뱉었는데 권총수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상관인 아담스가 청소부를 시켜 권총수를 죽였을 때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소원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이니 절대 살아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그가 살아나면 누구도 그를 감당하지 못 한다.

그는 전쟁의 대가이다.

그와 단 둘이 붙어 이길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죽었다’

맥보란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 사실 하나 만큼은 분명하다.

맥보란은 현관문을 열고 나가 차에 올랐다.

랭글리에 리베라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를 보내야 한다.

이집트 경찰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다.

더구나 리베라는 이집트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직원 신분이기 때문에 잘못 질문했다가는 정체를 의심받을 수 있다.

즉 질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파비오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름이 뭐냐, 리베라와 언제부터 알게 됐느냐, 평소 그의 성품은 어떠냐, 혹시 주위로부터 원한을 살 일을 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더냐는 말도 안돼는 얘기들 뿐이었다.

한정된 질문으로 얘기를 나누려 하니 20분도 되지 않아 면담을 끝냈다.

할 얘기가 금세 바닥 난 것이다.

“벌써 가는 것입니까?”

지키고 있던 이집트 경찰이 좀 더 물어봐도 괜찮다는 호의를 보였다.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소?”

“그건 곤란합니다. 그냥 내 앞에서 당당하게 물어 보세요.”

파비오는 이집트 경찰을 한 번 노려보고 난 뒤 등을 돌렸다.

리베라는 유일한 동기다.

자신들의 기수에 모두 7명이 있는데 둘은 임무 수행 중 실종되었고 셋은 내근이다.

현장 근무는 자신과 리베라 둘 뿐이었는데 이제 그 마저 죽고 달랑 혼자 남았다.

파비오는 반드시 잡아 리베라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며 차에 올랐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경찰서 앞마당을 울렸다.

콰아아앙!

포드 머스텡이 10여 미터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2차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콰!

승용차는 산산이 부서지며 순식간에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와장창!

촤락!

경찰서 창문이 깨지고 근처 승용차들의 유리가 박살났다.

경찰서 업무가 일제히 중단되고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전쟁이 일어난 줄 알고 혼비백산해 일부는 가방을 들고 나왔고, 어떤 이는 맨발로 뛰쳐나왔다.

승용차의 잔해가 여기저기서 불타고 있었고 뒷바퀴 하나는 2층 유리창을 뚫고 사무실로 날아갔다.

애애앵!

경찰서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그건 비상사태를 알릴 때만이 울리는 경보였는데 미처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까지 더해지면서 경찰서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사관 건물이 멀리 보이는 도로가에 차가 멈췄다.

맥보란은 지금 이집트 경찰서에서 일어난 폭발사고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표정을 봐서는 듣고 있는 내용이 슬픈건지 기쁜건지 알 수 없었다.

“흐음!”

끝난 듯 조용히 핸드폰을 내렸다.

아직 분명치는 않다고 했으나 폭발 차량이 파비오가 타고 간 머스텡일 가능성이 높다는 경찰관계자의 전화였다.

어제는 리베라를 죽였고 오늘은 파비오를 자동차 폭발사고로 위장해 제거했다.

딸칵!

길가에 비상라이트를 켜 놓고 차에서 내린 맥보란은 낡은 벤치에 주저 앉았다.

잠시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양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지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꼼짝 않고 있던 맥보란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가 틀림없다. 사막의 흑새’

리베라만 죽었다면 용의선상에 올릴 수 없었으나 파비오까지 죽은 이상 권총수를 백프로 의심해야 했다.

대낮 경찰서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물은 권총수 말고는 없다.

‘그는 죽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났을까.

유사에 묻혀 사라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유사는 자연의 한 현상이며 사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처럼 무서운 장면으로 나타나는 건 거의 드물다.

지금도 갯펄이나 해변가에서 유사의 징후나 현상이 보이지만 그건 영화에서처럼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흥미를 끌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유사가 위험하지 않다고 백프로 장담 할 수는 없었다.

자연 현상은 인간의 지식을 넘어설 때가 많다.

어쨌든 유사에 빠진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급히 현장으로 달려간 이란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모래들이 폭우로 계곡물이 소용돌이 치듯 했으며 용암처럼 끓었다고 했다.

과학자들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

커다란 바위를 순식간에 삼켰다면서 사진까지 신문에 실렸다.

그런데 거기서 살아났다는 건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권총수가 아니면 CIA 정보요원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죽일 수는 없었다.

담뱃불을 끈 맥보란은 번호 한 개를 길게 눌렀다.

잠시 후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뭣 좀 얻었나?”

R로 불리는 아담스였다.

맥보란은 혀로 입술을 닦았다.

“왜 말이 없는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았는지 물었네?”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습니다.”

순간 아담스가 조용했다.

상당히 놀란 모양인데 맥보란은 그의 눈동자가 어떻게 움직일까 생각해 보았다.

평소처럼 흔들리며 움직일까?

아니, 지금 그의 눈동자는 귀신이라도 본 듯 멈춰 있을 것 같았다.

“봤나?”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단정하나?”

“조금전 리베라 죽음에 대한 목격자를 만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던 파비오까지 날아갔습니다.”

“무슨 말인가?”

“아직 현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차에 폭탄을 설치한 모양입니다. 시신의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차량은 완전 분해되어 사라져 버렸고.”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차량에 폭탄을 설치하여 암살을 시도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 방면에 엄청난 전문가가 아니면 시도 할 수 없는 암살 수법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법이다.

더욱이 경찰서 주차장에 있는 차량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건 전문가의 수준을 넘어 폭탄을 주물럭거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경찰서 침입은 어떻게 가능했다고 치자.

경찰서라는 건물 특성상 사방에 널린 것이 감시 카메라이다.

설혹 그 카메라를 운 좋게 피했다고 한 번 더 이해해도 차량 시동장치에 연계하여 폭탄을 터지게 설치하려면 이삼십 분에 끝낼 수 없다.

파비오가 경찰서에 머무른 시간이 30분이 채 안된다.

전투력 검증이라는 시험이 있다.

블랙요원이 되면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암살을 하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시간,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차량이나 사무실 의자 등지에 폭탄을 설치하는 시간등의 측정을 받는다.

차량에 폭탄을 설치하는데 가장 빠른 타임이 37분이 조금 못 걸렸다.

아무리 빨라도 30분은 기본으로 소요된다는 뜻이다.

경찰서 주차장에서 30분을 보낼 정도면 남의 시선에 띄는 건 물론이고 감시 카메라에도 수차례 찍힐 시간이다.

“좀 더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여 보고하게.”

아담스는 전화를 끊었다.

해가 지고 있다.

맥보란은 한 개비 담배를 더 피우고 차를 끌고 사라졌다.

이집트 경찰은 테러로 규정하고 반드시 범인을 체포할 것을 다짐했다.

일반적으로 테러가 발생하면 반드시 배후를 자처하는 집단이 나타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누구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집트 경찰의 수사는 미궁으로 빠져 들었다.

이번 사건의 수사 총 지휘자로 임명된 오메이사 경위는 굳은 얼굴로 사무실에 있었다.

말단 초임 순경으로 들어와 경위까지 올랐으니 성공한 경찰인생이다.

이집트 경찰은 이백만 명이다.

군대가 50만 명인 것에 비춰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대부분이 사복을 입고 민간인 속에서 근무하는 보안 경찰이다.

오메이사는 보안경찰로 승승장구했다.

그의 수첩에 이름이 한 번 오르면 반드시 잡힌다.

결코 정부에 불만을 갖거나 저항하는 개인이나 세력을 용서하지 않았다.

15년 전에는 당시 무바라크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세 명의 일가족을 즉결 처형하기도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보안경찰에서도 가장 악랄하기로 소문난 ‘제로(ZERO)’팀 소속이었다.

일천 명으로 구성된 제로팀은 보안경찰 안에서도 노른자위로 막강한 권한을 지녔다.

영장 없이 체포 구금은 물론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사살 할 수 있는 집행권까지 주었다.

그중에서도 오메이사의 악명은 열 손가락 안에 들만큼 양손에서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오메이사의 작은 눈이 새파랗게 번득였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

그의 머리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만드는 것 정도는 너무 쉬운 일이었다.

이미 머릿속에 봐둔 몇몇 눈에 거슬린 인물들이 있다.

그들 모두 정치인으로 현 정부에게는 눈엣가시들인데 이 기회에 모조리 잡는다면 또 한 번 도약할 수가 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 바지에 자켓을 걸친 사내가 들어섰다.

“뭔가 카스 형사!”

카스라는 형사가 다가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재빨리 주머니에서 소형 카메라 한 대를 꺼내더니 그 속에서 새끼 손가락 보다 작은 칩을 뽑았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컴퓨터에 연결했다.

탁탁!

커서를 움직이고 몇 번 엔터를 치자 화면에 영상 하나가 나오고 있었는데 모두 세 명의 사내들이었다.

후드가 달린 남색의 젤라바(Djellaba:모자가 달린 망토처럼 발목까지 내려온 긴 장옷)를 걸쳤다.

모두 마흔 전후반 정도 되어 보였는데 뭔가 은밀한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장소가 특이했다.

영상 뒤쪽으로 멀리 십자가 하나가 보였는데 그건 기독교를 나타내는 교회였다.

영상은 선명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셋 모두 현 정부의 정책과 외교를 사사건건 비판하는 야당인 누르당 간부들이다.

이번 경찰서 테러사건이 미궁에 빠지면 정치적으로 몰아갈 것이고 저들 세 사람이 배후 조종자가 될 것이다.

자살 폭탄테러로 몰아가기 위한 작업은 은밀하게 진행중이다.

“좋은 결과는 만들어 내야겠지만 진짜를 추적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네.”

“물론입니다.”

“저들 셋만 잡아 넣으면 자네와 난 아마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 볼 거야.”

카스의 얼굴이 활짝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오메이사라는 상관을 만난 건 인생의 행운이다.

미국인이 죽었으니 골 썩이며 수사할 필요 없다.

더욱이 테러로 규정하기 딱 맞은 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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