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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6화 (276/651)

제276화: 붉은 신호(2)

열쇠를 꺼내 굳게 닫힌 대문을 열고 작은 마당으로 들어섰다.

담배 한 개비 피우고 들어갈까 하다 참기로 했다.

요즘 담배를 끊기 위해 양을 줄이고 있는 중이다.

좁은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뻐어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뭔가가 머리를 찍었다.

상대가 누군지, 뭘로 맞았는지 확인 할 틈도 없이 현관 바닥으로 넘어졌다.

“우욱!”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충격에 거실 천장이 빙빙 돌고 있었다.

불끈!

이어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거머쥐더니 질질 끌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툭!

쥐었던 발목을 놓고 딸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라이터 소리가 틀림없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콧구멍으로 담배 냄새가 물씬 풍겼다.

특별히 문제는 없는데 오른 팔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야 한다.

바지속에 들어 있는 핸드폰 번호 122를 누르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경찰이 출동을 할 것이다.

이런 때를 대비해 핸드폰 액정을 보지 않고서도 누르는 연습을 숱하게 했었다.

스윽!

그런데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손 하나가 주머니에 들어가더니 핸드폰을 꺼내갔다.

마치 자신의 계획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행동에 리베라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직감적으로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는 걸 느낀 것이다.

“으으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면서 어지러움도 가셨다.

슥!

관자노리가 가려워 오른손을 댔는데 피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툭!

탁자 위에 핸드폰을 놓는 소리가 들린다.

리베라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으나 불이 켜지지 않아 상대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다.

단지 담뱃불이 공중에 떠있는 것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슬그머니 왼손을 뒤로 가져가 보았는데 역시 없다.

사내는 꽂아 놓은 권총까지 어느새 가져갔다.

‘전문가다’

어쩌면 자신보다 아래가 아닌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인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쁘으읍!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는 순간 리베라는 소스라쳤다.

담뱃불에 아주 잠깐 나타났는데 분명 낯익은 얼굴이었다.

‘설마!’

워낙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얼굴이었으므로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으로 알려진 권총수였다.

갑자기 가슴이 뛰면서 온 몸에 후끈한 열기기 피어난다.

“누구십니까?”

조금씩 어둠이 익숙해지면서 거실이 보이긴 했지만 사내의 정확한 얼굴은 아직 이르다.

사내는 항상 자신이 앉아 밥 먹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부욱!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는 듯 싶더니 딸칵 하며 바로 옆에 붙은 스위치를 올렸다.

불이 켜지는 순간 리베라는 비명을 질렀다.

“으허헉!”

진짜 권총수였다.

죽었다고 공식 발표한 권총수가 자신이 앉아 밥을 먹고 만화책을 보던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자신의 머리를 찍은 것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 한 장이 올려져 있다.

“많이 놀라시는군요?”

리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틀림없는 권총수였다.

“맥보란은 지금 어딨소?”

“이...일단 진정하시고.”

씨익!

권총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정 하고 안하고는 내가 하는 거지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지. 내 말이 틀립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스륵!

권총수는 탁자 위에 올려놓은 작은 쇼핑백을 열었다.

쇼핑백에서는 노랑색 비닐 우의(雨衣)가 나왔는데 발목까지 내려올 만큼 길었다.

갑자기 비옷을 걸치는 이유는 뭘까.

부르르!

똑딱이 단추를 하나하나 잠그는 권총수를 보며 한 가지를 떠올렸다.

벽돌로 자신을 때려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러자면 피가 튀어 자신의 옷에 묻을 것이며 그걸 방지하기 위한 차림이 분명했다.

드르륵!

권총수는 식탁 의자를 가지고 가까이 다가왔다.

의자를 앞에 놓고 앉은 권총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반신반인이라는 하메네이를 잡는 순간 등 뒤에서 날 쏜 사람이 있었소. 내가 그곳을 저격장소로 자리 잡는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무슨 말인지?”

빠아악!

준비동작도 없다.

그냥 벽돌이 날아왔고 눈앞으로 붉은 별이 번쩍 거렸다.

굵은 핏줄기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저격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고 해도 그 거리까지 다가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지. 매수된 현지 정보원 따위가 그토록 은밀하게 다가올 역량은 되지 않을 것이고?”

타레미와 다에이가 연락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절대 아니다.

상대가 그토록 가까이 접근하고,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건 오직 한 가지 가능성만 존재했다.

‘사막의 흑새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 권총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자신의 습성, 그리고 강호무사로서의 능력에 대해 세밀한 연구와 분석 없이 그 자리에 나타날 수 없다.

저격장소에 들어간 것이 전 날 밤이었다.

즉 이란 혁명수비대 보안 수색이 끝나고 난 뒤였다.

권총수의 잠입루트는 간단했다.

혁명수비대 소속의 군인 두 명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건물 로비를 이용한 침입은 불가능했다.

결국 건물 뒤쪽을 이용했으며 강호무사인 만큼 부운등공의 신법으로 10층에 들어선 것이다.

30미터가 조금 안된 높이이므로 벽호공을 시전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었다.

즉 정문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볼 때 자신을 저격하기 위해서는 훨씬 이전에 미리 들어와 있었다고 봐야한다.

물론 사전 정찰을 위해 건물을 몇 번 들어오긴 했었다.

그 때 어디선가 권총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판단하건데 날 노릴 정도면 블랙요원중에서도 무척 베테랑이 아닐까 합니다?”

“난 모르는 일입니다.”

권총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지, 정보원의 입이 쉽게 열리면 안 되는 거죠.”

빡!

빡!

파파파팍!

리베라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권총수가 입고 있는 노랑색 우비는 순식간에 파리떼가 달라 붙듯 핏방울로 범벅이 되었다.

풀썩!

리베라는 앉아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권총수는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누구요?”

“난 거짓말을 하지 않소.”

빠아악!

권총수의 벽돌이 다시 떨어졌다.

투두두둑!

피와 찢어진 살점이 노란 우비에 달라붙었고 급기야 벽돌이 두 조각이 되고 말았다.

승용차가 멈추고 운전석에서 맥보란이 내렸다.

대문 앞을 지키고 있던 이집트 경찰에게 신분증을 보여주자 거수경례를 한다.

맥보란은 길게 숨을 가다듬고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갔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는데 안으로부터 피비린내가 훅 풍겨 나온다.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들어섰다.

이집트 경찰의 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을 감식하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현장을 지휘하던 사내가 현관을 들어선 맥보란을 향해 물었다.

맥보란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미국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바로그때 맥보란에게 누구냐고 묻던 현장 지휘관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예, 예 하며 대답하며 맥보란을 흘긋 본다.

그리고 잘 알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철수!”

갑작스런 지시에 조사를 하던 세 명의 과학수사관들이 고개를 들었다.

“모든 걸 미국 대사관에 넘기고 우린 발을 뺀다. 상부 지시야.”

과학수사관들을 흘긋 맥보란을 살피더니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10여분 정도 지나 대문 앞을 지키고 있던 일반 경찰들까지 완전히 철수를 했다.

이집트 경찰이 철수하고 맥보란은 죽은 리베라에게 다가갔다.

리베라는 바닥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었으며 그 위로 노란 비닐 우비가 덮어져 있었다.

우당탕!

그때 밖이 소란스럽더니 잠시 후 세 명의 사내가 뛰어들었다.

모두 CIA 현장요원들이다.

“우웃!”

일부는 리베라의 처참한 모습에 소스라쳤다.

“누구죠?”

깡 마른 백인사내의 눈매가 매섭다.

리베라와 같이 랭글리에 입사한 파비오였다.

비록 스포츠 종목이지만 전미대학선수권 25미터 속사권총에서 3연패를 기록한 특급사수다.

물론 살상용 일반권총과는 차이가 있으나 그는 금방 적응했고 랭글리에서도 단연 정상급 실력을 인정한다.

“도대체!”

머리는 거의 부서져 얼굴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머리가 아닌 신체의 다른 부위는 멀쩡했는데 맥보란은 시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분노와 복수심이 매우 강할 때 특정 신체부위를 지나칠 만큼 가격하여 살해한다는 CIA 보고서도 있다.

정보요원들처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도 드물다.

가족에게까지 직업을 숨겨야 할 때도 있고, 지나치게 사람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시간이 쌓이다보면 편집광적 형태의 행동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살률 또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의외로 높다.

이혼률 역시도 높다.

정보요원은 보편적인 삶을 누리기가 쉽지 않은 그야말로 힘든 업종임에는 분명하며 그들이 그나마 버티는 건 애국심 하나 때문이다.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습니다.”

안방에서 나온 사내 한 명이 집안에 설치된 CCTV 동영상을 핸드폰과 연결하여 틀었다.

화면은 깨끗했다.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오는 리베라 말고는 쥐새끼 한 마리 찍혀 있지 않았다.

신고를 한 사람은 화장실 배수구 공사를 하러왔던 우다이란 쉰 초반의 현지 설비업자였다.

리베라는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항상 우다이를 불렀다.

설비가게가 근처에 있고 자주 불러 집안 곳곳의 수리를 맡겨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리베라는 만약 자신이 집에 없어도 들어와 공사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대문 키 까지 하나 주었다.

오늘 아침도 그렇게 들어왔고 처참한 거실 상황을 발견한 것이다.

“고맙소!”

이집트 경찰 관계자와 통화를 하던 파비오가 핸드폰을 끄며 말했다.

“우다이를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이집트 국민이기 때문에 지역 경찰의 입회하에 면담은 가능하다는 통보였다.

“자네가 다녀와.”

파비오가 곧장 밖으로 사라졌다.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딸칵!

맥보란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절반쯤 피웠을 때 입을 열어 말했다.

“일단 병원으로 옮겨, 그리고 당분간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마.”

“예!”

한 사내가 구급차를 불렀고 20여 분 지나 리베라의 시신은 근처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맥보란은 혼자 있었다.

정보요원은 결코 집안에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만한 증거는 절대 남기지 않는다.

도둑이 들어와 빗자루로 쓸어 훔쳐가도 주인이 정보원임을 말해줄 건 없다.

즉 누군가 비밀 서류 따위를 훔쳐가기 위해 침입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뜻이었다.

팟!

무심결에 식탁위에 올려진 재떨이를 보았다.

담뱃재는 있는데 꽁초가 없다.

맥보란은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상대는 관할경찰서장이었고 맥보란의 부탁에 망설이지 않고 오케이 했다.

맥보란은 전화를 기다리는 듯 꼭 손에 쥐고 실내를 서성거렸다.

지이잉!

5분 정도 지났을 때 전화가 걸려왔는데 조금 전 과학수사를 지휘하던 책임경관이었다.

“미안합니다. 재떨이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재는 있는데 꽁초가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만약 범인이 피웠다면 증거인멸 차원에서 꽁초를 가지고 갔을 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다.

“꽁초 우리가 수거했습니다. 지금 DNA를 검출하기 위해 정밀 분석중에 있죠.”

“담배 이름이 뭡니까?”

“우리건 아닙니다.”

이집트 담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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