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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5화 (275/651)

제275화: 붉은 신호(1)

7층짜리 건물 하나가 서 있었는데 비하왈 빌딩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오민철은 자꾸 빨라지려는 걸음을 자제했다.

누가 봐도 전혀 이상한 모습이 발견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러워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행이 붙었는지를 살피기 위해 건물 간판을 읽는 것처럼 하며 뒤를 살폈다.

‘비슷한 사람이 두 번 보이면 무조건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보면 돼’

권총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직 두 번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목격되지 않고 있었다.

건물 가까이 다가간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면세점이었다.

‘그냥 서 있기만 해. 내가 다가가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감시자가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아’

만나기 전 미리 주위를 한 번 살피겠다는 뜻이다.

오민철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한 번씩 두리번 살폈다.

딸칵!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길게 연기를 내 뿜었을 때 허름한 행색의 중년 사내가 지나갔다.

‘형 나 따라와!’

화들짝 놀란 오민철이 중년사내를 바라보았고 재빨리 담배를 발로 비벼 끄고 걸어갔다.

‘내가 살펴 봤는데 미행이 붙지는 않았어.’

전음이 빠르게 파고들었다.

앞장선 중년사내가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더니 돌아섰다.

우드득!

갑자기 얼굴이 밀가루 반죽하듯 뒤죽박죽 되더니 권총수의 얼굴로 돌아왔다.

“총수야!”

오민철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던지고 득달같이 끌어안았다.

“으헝헝! 난 너 안 죽을지 알았어. 그런데도 어찌나 무섭고 겁이 나던지. 아이 우리 동생 살았네.”

오민철은 눈물을 터뜨렸다.

“총수, 우리 총수...”

권총수는 오민철의 등을 토닥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어디 얼굴 좀 보자.”

오민철은 양손으로 권총수의 얼굴을 붙잡았다.

“으허허허헝!”

오민철은 다시 권총수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한참동안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울던 오민철이 멈칫했다.

옛날 같았으면 징그럽다고 자신의 포옹을 뿌리쳤거나 누구 죽었냐면서 시끄럽다고 신경질을 냈을 권총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웬일인지 그대로 내버려 두고 굳이 품을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죽은 시신 마냥 우두커니 안겨 있을 뿐이었다.

“형, 이제 그만 진정하자.”

마치 우는 아이를 달래듯 오민철을 가볍게 밀어냈는데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걸렸다.

오민철은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분명 웃었다.

그런데 결코 웃는다고 할 수 없었다.

표정은 틀림없이 웃고 있는데 바라보는 두 눈은 얼음이었다.

“밥 좀 사줄래. 배가 고파.”

전화를 얻어 쓰기 위해 가진 돈을 모조리 버스기사에게 베팅했다.

오민철은 기가 막히다는 듯 권총수를 바라보더니 손을 잡았다.

“가자 밥 먹으러.”

오민철은 권총수를 데리고 골목을 벗어났다.

파키스탄의 전통음식 중 하나인 바리야니다.

닭고기에 소스를 넣고 쌀밥과 섞어 만든 음식으로 매콤하다.

언뜻 우리나라의 비빔밥을 흉내 낸 듯 여러 야채가 곁들여지는데 권총수는 단번에 이 인분을 해치웠다.

“형은 왜 안 먹어?”

반쯤 먹다 만 오민철의 그릇을 보며 묻는다.

오민철은 허겁지겁 밥을 비우는 권총수를 보며 목이 메였다.

“내가 불쌍해?”

“그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듣는 사람이 잘 판단해야 할 만큼 자기 앞에서 만큼은 장난을 잘 치던 권총수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 차분하다.

“이제 좀 살겠군.”

권총수는 자신의 배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더 먹지?”

“배불러. 형 나 담배 하나 줘.”

오민철은 주머니에서 말보로 레드를 꺼내 그대로 갑 채 주었다.

라이터까지 받아 밖으로 나간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를 물고 불을 당겼다.

후우우!

얼마 만에 피워보는 말보로 레드인지 모른다.

이란으로 들어오면서 지금까지 약 두 달 동안 말보로 레드는 냄새도 맡지 못했다.

‘물도 고향물이 맛있지’

나카야마가 걸핏하면 뱉어내는 말이다.

그림자처럼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던 담배였기 때문인지 분노로 딱딱하게 뭉쳐 있던 감정이 약간은 녹는 것 같았다.

절반쯤 피우고 있을 때 오민철이 계산을 하고 나왔다.

권총수는 들고 있던 담배를 건네주었고 오민철도 한 개비 꺼내 피워 문다.

두 사람은 식당 앞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웠다.

둘은 아무 말도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낯선 두 남자를 흘긋 거렸다.

“대사관 갑시다.”

오민철이 돌아보자 권총수가 말했다.

“여권 발급 받아야지. 가짜 여권 브로커 만나고 어쩌고 하다보면 최소한 4,5일은 걸릴텐데.”

그러다 자칫 시비라도 생겨 피라도 보면 귀찮아질 뿐이다.

외국인의 여권을 쉽게 만들어줄 그들이 아니다.

경험에 비춰 이쪽의 약점을 잡고 돈을 더 긁어 내려한다거나 위협하려 들것이 뻔하다.

그러다 보면 피를 보게 되고 괜히 파키스탄 경찰이라는 또 하나의 적을 만들 뿐이다.

그럴 바에는 임시 여권이라도 받는 것이 가장 빠르다.

한국대사관 앞에 택시가 멈추고 두 사람이 내렸다.

둘은 입구 경비실로 다가갔다.

드륵!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한국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는데 서른 초반쯤 되어 보였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권을 분실하여 왔습니다.”

“두 분 모두 분실했습니까?”

“난 아닙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는데 경비실이라기 보다는 간이 업무를 보는 사무실이라 할 수 있었다.

간단한 업무는 이곳에서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여기 서류에 포함되는 사항을 기재해 주시죠.”

권총수는 서류를 당겨 보았는데 동사무소에 가면 일반 민원서류 청구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양식이었다.

사사삭!

막힘없이 모든 걸 썼지만 한군데서 멈췄다.

한국 주소였다.

유병칠과 반 지하방에서 살 때의 주소가 마지막 주민등록상 거주지다.

이후 십 년이 넘었으니 주민등록 또한 살아 있을 가능성이 떨어진다.

5년 전 한국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모든 건 살아 있었지만 지금까지 존재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했다.

사내는 권총수가 작성한 서류를 토대로 컴퓨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조금 떨어져 앉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는데 ‘없는 코드’라고 나왔다.

남자는 몇 번 더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했으나 같은 화면만 반복해 나온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모양인데요.”

직원이 돌아앉았다.

기소중지가 됐거나 범죄와 연관된 인물이기라도 한다면 기록에 나타나는데 그런 건 없는 듯 보인다.

“한국에서 주민등록이 말소가 된 것 같습니다? 여권은 언제 발급받은 것입니까?”

주민등록이 말소될 정도면 오랫동안 한국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여권은 외국에 있으면서 계속 갱신 받았죠.”

“혹시 파키스탄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 조금 전 조회를 해봤는데 입국 기록이 없습니다.”

한국인 입국자가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이곳 대사관으로 명단이 전달된다.

권총수는 돌아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신원이 불분명해서 임시 여권 발행이 어렵다는 것입니까?”

“나중 일이 잘못되어 내게 법적 문제가 발생하면 저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증언해 줄 수 있는 분명한 분을 보증인으로 세우셔야 합니다. 물론 같이 있는 분은 안 됩니다.”

“국내 거주중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요?”

“맞습니다.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어야 하죠.”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만 되면 된거지 무슨 신원보증인이 필요합니까? 외국에까지 나와 이렇게 야박하게 하십니까?”

오민철이 노골적으로 불만스런 표정을 했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사내가 눈을 위아래로 희번득 거린다.

“용병입니다.”

권총수가 입을 열어 말했다.

“사람 쏴죽이고 돈 버는 사람들이죠. 당신도 들어봤을 것이오. 내가 그 유명한 사막의 흑새요.”

사막의 흑새가 한국인이란 말은 들었다.

그렇지만 설마 했는데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자 사내는 눈이 커졌다.

“사막의 흑새가 대한민국의 명예와 국격을 짓밟았다는 말 들어봤습니까?”

오민철이 목에 힘을 주었다.

“인터넷에 사막의 흑새 사진이 쫙 깔렸던데 확인해 보시던가?”

“10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진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권총수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내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후 권총수 앞에 임시 여권이 놓여 있었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사내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좌우에 데리고 셀카를 찍었다.

퇴근길이다.

맥보란의 차가 열린 미국 대사관 정문을 통해 빠져 나왔다.

카키 계열의 포드 익스플로러는 도로로 들어서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맥보란은 담배를 물고 자동차 유리를 내렸다.

후우!

뿜어낸 담배연기가 열린 창틈으로 빠져나간다.

지이잉!

핸들 오른쪽 거치대에 꽂힌 핸드폰에 리베라라는 이름이 찍혔다.

터치를 하며 물었다.

“어딘가?”

“오민철이 돌아왔습니다. 조금 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에미레이트 비행편으로 들어온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일행은?”

“아직까지는 혼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파키스탄을 다녀왔단 말이지. 다인코프에서는 전혀 출장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일단 잘 지켜보게. 어딘가를 다녀왔다면 그와 연관된 후속 행동을 하기 마련이니까.”

오민철의 행동을 보면 파키스탄에 무슨 일로 갔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다인코프가 근래 들어 부쩍 시장을 넓히고 있긴 하지만 파키스탄에는 아직 직원들이 없다.

그쪽도 시끄럽다.

부족들간의 충돌과 정치와 종교적 이유로 테러가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분열이 되어 아프카니스탄이나 시리아 꼴이 날지는 모른다.

다인코프 최대 거래처가 CIA라고 하지만 최소한 영업상 비밀까지 털어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을 모르지 않는 그들이 오민철에게 어떤 비즈니스를 부탁하여 CIA를 긴장하게 할 리는 없다.

부우웅!

차는 차량들 속으로 사라졌다.

안가에 도착할 때까지 오민철의 파키스탄행에 대해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리베라는 한 채의 집을 감시하고 있었다.

오민철과 그 일행들이 새로 구입한 주택인데 오밀조밀 몰려 있는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감시란 가까울수록 좋다.

근접한 감시일수록 정확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가에서 떨어진 독립가옥이다 보니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 없다.

큰 나무가 있다거나 차량이나 사람이 숨을 만한 엄폐물도 없어 리베라는 결국 일백 여미터 떨어진 근처 골목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2층 창문이 보이긴 하지만 밖에서는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색을 입혀 버렸고 차량 또한 대문 앞에 세우지 않고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대문 밖에 있으면 누가 집에 있고 외출했는지 알 수 있으나 집안에 주차해버리면 출입자 감시가 불편하다.

딸칵!

감시용 소형 쌍안경을 조수석에 놓고 차에서 내렸다.

소변이 마려웠다.

잠복근무중 가장 힘든 일이 생리현상에 대한 대처이다.

근처에 화장실을 정해 놓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주위 적당한 곳에 사람들 눈치를 살피며 해결한다.

그나마 소변은 조금 낫지만 대변은 매우 곤혹스럽다.

최대한 보이지 않는 담벼락이나 전봇대 뒤에 숨어 처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보원들은 전봇대를 함부로 보지 않는다.

다행히 지리적으로 시 외곽인데다 다니는 사람이 없어 간단히 소변을 해결하고 차로 돌아왔다.

밤 10시쯤 별일 없다는 보고에 철수명령이 내려왔다.

리베라는 차를 돌려 귀가했다.

그의 집은 카이로 중심가 람세스 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들어간 2가 11번지다.

정보원들은 아파트나 빌라를 포함한 공동주택 입주를 꺼린다.

많은 사람들과 섞이고 부딪치다 보면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거나 살펴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비적인 면에서 본다면 주택보다는 여럿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훨씬 낫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려고 해도 이웃과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많아 발각되거나 목격되기 쉽기 때문이다.

일반주택과 공동주택에서 거주할 때의 장단점은 있으나 비밀 보호를 최우선적으로 놓고 보면 섞이는 것보다 홀로 생활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끼이익!

대문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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