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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4화 (274/651)

제274화: 주먹을 쥐고(2)

비렌드라와 나카야마가 자원입사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다.

CIA와 거래를 하는 다인코프 용병이 되면 좀 더 그들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고 잘하면 맥보란도 만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결국 맥보란에게 접근하기 위해 입사한 것이다.

지이잉!

저녁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오민철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을 보던 오민철이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상대는 버홀터였다.

두 사람은 뭔가 얘기를 나누었는데 오민철이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죠’ 하면서 끊었다.

“이제 그만 출전(出戰)해야 하지 않겠냐는 전화야.”

오민철은 지켜보고 있던 비렌드라와 나카야마를 향해 말했다.

“하긴 많이 기다려 준거지.”

비렌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나카야마가 물었다.

“시나이반도가 요즘 시끄럽잖아.”

연일 테러가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알마크디스라는 테러단체로 이집트 민주화를 위한 세력이라고 자칭하지만 정부는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의 하나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일단 싸우면서 기회를 봐야 하지 않겠어. 맥보란이 쉽게 우리 앞에 나타날 리도 없고.”

뾰족한 수 없다.

길게 내다보고 일을 진행해야 한다.

지이잉!

오민철의 핸드폰이 울렸는데 신호가 한 번 온 뒤 끊어졌다.

그리고 3분 정도 지나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두 번째 울렸을 때 핸드폰을 쥐었는데 끊어졌다.

오민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핸드폰을 다시 탁자위에 놓으려다 멈칫 했다.

오민철은 핸드폰을 쥐고 걸려온 전화번호를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오민철이 비렌드라를 향해 물었다.

“이게 어느 나라 번호지. 이집트는 아닌 것 같은데.”

앞서 신호음이 한 번 울리고 끊어진 것과 두 번째 모두 동일한 번호라는 것에 오민철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글쎄!”

자잘한 상식이 풍부하다고 떠들던 나카야마도 국제전화라는 것만 분명할 뿐 모르겠다고 했다.

이집트에도 보이스 피싱이 있다.

물론 중국에서 오는 전화가 아닌 거의가 자국 내에서 이뤄진다.

아직까지 보이스 피싱 조직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일은 없다.

오민철은 이마를 찌푸렸다.

파팟!

갑자기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쪽바리, 공중전화 카드 있지. 그것 좀 줘.”

“어디 가려고.”

“빨리 줘봐.”

오민철은 나카야마가 건네주는 공중전화를 카드를 가지고 차를 몰고 나갔다.

카이로 중앙전화국 앞에는 국제통화가 가능한 공중전화가 놓여 있었다.

늦은 밤 공중전화는 텅 비었으며 비가 오려는 듯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부우웅!

검정색 포드익스플로러 한 대가 멈추더니 오민철이 내렸다.

오민철은 긴장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래전 권총수가 불쑥 입을 열어 말했다.

‘형 우리만의 신호를 하나 만드는 것이 어때?’

‘무슨 신호?’

‘용병이란 직업이 그렇게 안전하지는 않잖아. 죽으면 차라리 괜찮은데 붙잡혀 고문이라도 받는다면 인생 끝장이지’

‘잡힐 것 같으면 한 많은 인생 내 손으로 정리해야지. 탈레반한테 잡혀봐 죽는 것 보다 더 지옥이라고, 그런데 어떤 신호를 만들면 되겠냐?’

‘형도 그렇고 나도 제법 알려지다 보니 우릴 노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잖아. 만약 포로가 되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 서로에게 보내는 우리만의 신호’

‘굳 아이디어’

‘같은 번호의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던가, 이해 할 수 없는 이모티콘이 반복해서 오면 우리 둘중 누군가가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사용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막 그때 얘기가 떠올랐다.

더욱이 이집트 전화번호가 아니라는 것이 굉장히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오민철은 속으로 불경을 중얼거리며 전화박스로 들어갔다.

‘부처님 도와주십시오. 이번에 도와주면 내가 다니는 벌교 금강암에 시주 한 번 크게 하겠습니다’

단호히 기도를 하며 수화기를 들고 카드를 넣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어 찍힌 번호를 한 개씩 힘주어 눌렀다.

후우!

뛰는 가슴을 진정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버스는 시골길을 달렸다.

포장도로지만 워낙 노면 상태가 좋지 않아 쉬지 않고 덜컹거렸고 운전사는 졸음을 쫓으려는 듯 라디오까지 크게 틀어 놨다.

운전기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핸들을 쥔 손가락을 까닥 거렸는데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따르릉!

권총수는 운전사의 핸드폰을 쥐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 벨소리를 크게 해 놓았다.

액정을 보는 권총수의 눈이 빛났는데 단번에 공중전화라는 걸 알아보았다.

제발 오민철이길 빌며 터치를 했다.

CIA에서 자신을 청소한 이상 반드시 오민철 일행을 감시 할 것이다.

세계최고의 정보기관에서 세 사람의 전화를 감청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이다.

어쩌면 이미 오민철의 핸드폰에 찍힌 번호의 신호가 파키스탄에서 발생했다는 걸 알고 추적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쏘아올린 위성의 위력은 엄청나다.

무전전화기 신호 발생지역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국제적 테러범들이 모두 사살되거나 은신처가 드러나는 건 미국의 그런 위성 시스템 때문이다.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하고 번호의 주인을 찾는 데까지 빨라도 열흘은 걸릴 것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자신은 파키스탄에 있지도 않을 것이며 웬만한 흔적은 모조리 지울 수 있다.

버스기사는 죽어도 자신을 모를 것이다.

변체환용으로 제 얼굴이 아니기 때문에 복장만으로 사막의 흑새를 설명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혹시?”

오민철의 목소리다.

“형! 듣기만 해.”

오민철이 미행당했을지도 모른다.

정보원들의 미행솜씨는 용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초...총수?”

“당장 이슬라마바드로 와. 혼자 와야 돼. 그리고 CIA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잊지마. 나카야마와 비렌드라 형이 눈치 채서도 안 돼. 사흘 후 12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재빨리 끊었다.

통화시간은 채 40초를 넘기지 않았다.

통화가 빠를수록 쫓는 쪽에 단서를 적게 남긴다.

권총수는 일단 오민철의 전화번호 기록을 지웠다.

물론 기록에는 없지만 포렌식 분석에 들어가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한참 후의 일이다.

“고맙소.”

권총수는 핸드폰을 건네주었는데 기사는 여유롭게 한 통 더해도 된다고 말했다.

권총수는 아니라면서 맨 뒷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창밖은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어둠이다.

어둠은 마음을 안정시킨다.

권총수는 오랜만에 두 눈을 감고 수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오민철을 놓쳤다는 보고에 맥보란은 불같이 화를 냈다.

맥보란은 미국에 가지 않았다.

여전히 카이로를 중심으로 바그다드와 사우디 리야드를 중심으로 하는 CIA를 다스리고 있었다.

“어디서 놓쳤나?”

“글쎄 그것이.”

맥보란의 표정이 무척 불편해 보였다.

“나머지 둘은?”

“시나이 반도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낌새 없어. 오민철이만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잖아.”

“이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찾아. 놓쳐서는 안돼.”

강하게 소리치며 핸드폰을 껐다.

“오민철이 사라졌다는군.”

돌아서며 측근이자 부하요원인 리베라를 향해 말했다.

“오민철은 보통친구가 아닙니다. 약간 어리숙해 보이지만 두뇌회전이 빠르고 특히 눈치가 귀신입니다.”

“제대로 봤네. 놈의 그런 기질을 알았기에 블루 요원으로 계약을 한 거였지.”

물론 지금은 계약 종료됐다. 맥보란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민철’

자꾸 마음에 걸린다.

지금 이 시간에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긴장된다.

자신의 행적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면 본인 여권으로 출국은 불가능하다.

출국하는 순간 곧바로 CIA에 체크될 것이다.

그래서 어제 부랴부랴 위조여권 전문조직과 선을 닿아 만들었는데 뛰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잡히면 말 그대로 빼도 박지도 못한다.

돌아다니다 CIA 요원들의 눈에 띄기라도 할까봐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철저히 변장하고 절대 미행이 붙어서는 안 된다는 권총수의 말에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똑똑!

오랫동안 앉아 있는 탓에 여러 명의 손님들이 문을 두드린다.

그럴 때마다 오민철은 점잖게 답하여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는 탓에 엉덩이가 아프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비록 변장을 했으나 공항에는 CCTV가 많아 백 프로 찍힌다.

그중 눈썰미 좋은 누군가에게 이상하다는 것을 간파당할 수도 있었다.

이집트 정보국과 CIA는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한 사건에 같이 팀을 이뤄 움직이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쯤 같이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귀는 안내방송에 맞춰져 있다.

아직까지 이슬라마바드행 에미레이트 비행기를 탑승할 승객들은 수속을 밟으라는 말이 없다.

20여분 정도 더 흘렀을 때 마침내 에미레이트 AN349기를 이용할 승객들은 3번 게이트 이용해 탑승 수속을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오민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까닭인지 허리가 뻐근했다.

화장실을 나간 오민철은 곧장 3번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여권을 살피는 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진과 얼굴을 몇 번씩 확인하더니 여권을 돌려주었다.

‘개자식 이왕 보내줄 거면 화끈하게 통과 시키지’

워낙 긴장을 했기 때문에 속으로 욕을 퍼부었는데도 상대에게 들릴 것 같았다.

그리고 30여분 정도 흘러 비행기에 탑승했고 거대한 동체가 잔뜩 찌푸린 카이로 하늘로 사라졌다.

비행 내내 잠시도 가만 앉아있지 못하고 자꾸 들썩거리자 터번을 두르고 있던 옆 좌석 사내가 자꾸 노려보았다.

평소 같았다면 뭘봐 하며 눈을 부라렸겠지만 머릿속에는 오직 권총수 생각뿐이다.

권총수만 안전하게 만날 수 있다면 사내가 침을 뱉어도 참을 자신이 있었다.

이집트와 파키스탄은 비행시간으로는 지척이다.

그런데도 마음 급한 오민철에게는 설날 고향 가는 것처럼 더디고 지루 할 뿐이었다.

화장실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옆좌석 사내가 금방이라도 한 대 갈길 듯 노려본다.

‘개자식아 뭘 봐. 너 평소였다면 나한테 죽었어’

일부러 우드득 소리가 나게 주먹을 한번 말아쥐고 7번째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10분이 조금 지났을까 착륙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쿵!

동체가 활주로에 내려앉으며 오민철은 들고 있던 생수병의 물을 모조리 마셨다.

꽈직!

오른손으로 생수병을 찌그러뜨린 손아귀에 간절함이 담겼다.

비행기는 아직 멈추지 않았고 승무원들은 완전히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오민철은 일어나 천장 서랍에서 자신의 가방을 끌어 내리려다 멈춘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급한 나머지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내렸다.

오민철은 통로를 막고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공항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들어 파키스탄 내 여러 부족들간의 유혈 충돌이 잦은 탓인지 무장군인들이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무사히 입국 절차를 마친 오민철은 청사를 걸어 나갔다.

빼곡하게 박힌 CCTV가 두 눈을 부릅뜨고 살피는 감시병 같았다.

스윽!

왼손으로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 냈다.

날씨 탓이 아니라 긴장이 가져온 땀방울이다.

청사를 나온 오민철은 택시들이 서 있는 승강장을 찾았다.

오른쪽으로 택시들이 즐비했다.

‘택시 승강장 반대쪽이라고 했으니’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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