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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1화 (271/651)

제271화: 죽으라는 법은 없다(1)

아무도 예상 못한 사태였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하여 모두가 멍해진다.

“뭣들 해. 놈은 묻혔다. 빨리 찾아보면 어딘가 있을 것이다. 어서 뛰어들어라.”

오와이란이 버럭 소릴 질렀다.

탕!

“찾으란 말이다.”

타타탕!

총소리에 놀란 혁명수비대 군인 세 명이 유사 속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모래는 금방 얼굴까지 삼켜 버렸다.

동료가 사라진 것을 본 혁명수비대 군인들은 더 이상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명령이다. 들어가 찾아라.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뻐억!

부하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강제로 밀어 붙였다.

두 명의 부하가 마지못해 들어갔지만 더 이상 나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소령님,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닌 듯 합니다.”

아롱바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직접 끌고 가 자백을 받지 못했지만 저격범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는 다인코프 소속의 용병이고 얼마 전까지 CIA의 도움을 받으며 멕시코 갱단과 전투를 벌인 사막의 흑새입니다.”

오와이란의 눈이 빛났다.

“다인코프는 랭글리 하청업체고 사막의 흑새 또한 그들과 깊은 관계죠. 이정도면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오와이란의 눈동자가 바쁘다.

어떤 결과가 자신에게 닥칠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서 있던 오와이란 소령의 눈이 커졌다.

‘지금 현재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차선책은 없다’

최선은 사막의 흑새를 사로잡아 가는 것이지만 그가 유사에 쓸려 시체를 찾지 못하는 이상 아롱바의 의견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오와이란 소령은 조금 전 유사로 뛰어든 부하가 놓고 간 AK를 들어 올렸다.

두두두두두!

사방으로 방아쇠를 당기며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아롱바는 깜짝 놀랐다.

두두두!

10여초 가량 울리던 총소리가 멎었다.

사막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금방까지 살아 있던 20여명이 약간 넘는 혁명수비대 군인들이 시체로 뒹굴고 있었다.

오와이란 소령은 쓰러진 부하들 시신을 일일이 조사하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탕!

타아앙!

완전히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 오와이란 소령이 놀란 표정으로 서 있는 아롱바를 향해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것이오. 같이 살려면 좀 도우시죠.”

“그러죠!”

두 사람은 시신들을 유사 속으로 던져 넣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다가가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는 나일악어처럼 유사는 혁명수비대 군인들을 조용히 먹어치우고 있었다.

핏자국만이 조금 전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뿐 서 있는 사람은 둘 뿐이었다.

오와이란은 피 묻은 모래까지도 철저히 훑어 유사로 쓸어 넣으며 흔적을 없앴다.

사박사박!

오와이란이 다가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더니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문다.

후우!

몇 모금 연거푸 연기를 뿜어내더니 말했다.

“당신이 사망한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와 무척 가깝다는 걸 알고 있소. 물론 현 대통령과도 모르는 사이는 아니고 그러나.”

오와이란이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사 속에 빠졌으니 살아 날 확률은 없소. 하지만 어쨌든 사막의 흑새를 놓친 건 당신의 책임이 큽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신변이 무척 위험해 질 것입니다.”

“하하하하!”

갑자기 아롱바가 고개를 처 들고 큰 소리로 웃었다.

갑작스런 아롱바의 대소(大笑)에 오와이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체포하는 과정에서 놈의 저항이 너무 격렬했고 결국 스스로 유사로 뛰어들었다. 당신이 죽인 부하들 역시 그런 와중에 모두 휩쓸려 사라진 것이다?”

“서로의 말이 조금만 어긋나도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닥칠지는 알 것입니다.”

“오와이란 소령, 당신같이 똑똑한 사람을 난 아직 본적이 없소. 그보다 더 뛰어나고 분명한 계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오와이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사진 몇 장이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위성사진이다.

어제 이란 혁명수비대가 권총수를 체포하기 위해 벌인 대대적인 추격전의 굵직한 장면이 찍혔다.

특히 마지막 사진 한 장이 시선을 끈다.

육안으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선뜻 가늠하기 어렵지만 위성 사진만을 전문적으로 해독하고 분석하는 전문가 설명에 의하면 석 대의 헬기가 떠 있고 그 아래 아주 작은 물체가 있었다.

물체는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사람이 권총수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으나 아보크 공격헬기와 수십 명의 군인들과 차량이 찍힌 걸 보면 대략의 그림이 그려진다.

“서기관님!”

안쪽 상황실에서 이란쪽 정보원과 교신을 시도 중이던 리베라가 다가왔다.

“교신 성공했습니다. 위성사진이 맞습니다. 사막의 흑새가 어제 밤 혁명수비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시신 공개가 되지 않고 있다는 거죠.”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맥보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밝혀졌습니다.”

다른 요원 한 명이 상황실에서 급히 나왔다.

“골든 셀(gold cell)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맥보란이 재빨리 상황실로 개조된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방 전체가 첨단 장비들로 넘쳐났다.

무인 드론이 보내오는 각종영상, 위성과 수시로 교신할 수 있는 KFF-12 무선장비와 랭글리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B2영상 화면과 감, 도청이 되지 않는 전화기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보시죠!”

탁!

엔터를 치자 화면에 짧은 내용의 글귀가 나타났다.

‘유사에 휩쓸려 사망’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던 맥보란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군.”

랭글리 위성판독 전문가가 말하길 사진 속 회색연기처럼 찍힌 부분이 유사로 관측된다고 했다.

맥보란은 현관문을 열고 안가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쪽에 오 미터 높이 정도 되는 붉은 대추야자나무가 서 있었는데 성경에 나오는 종려나무이기도 하다.

아직은 덜 익은 녹색의 대추들이 가득 열려 있었는데 한참 동안 바라본다.

‘우리나라 대추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권총수가 미국 대사관 앞마당에 자라고 있는 대추야자 열매를 한 개 따먹으며 내 뱉은 말이다.

‘굉장히 달군요’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성당 다니셨다고 했죠?’

‘다녔다기 보다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기서 살았죠.’

‘성경에 나오는 종려나무가 바로 그 대추야자입니다.’

‘아니 이것이 전설 속 성경에 나오는 종려나무란 말입니까?’

권총수의 커진 눈이 지금도 생생하다.

딸칵!

맥보란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담배갑을 바라보았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전에는 윈스턴을 피웠는데 권총수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말보로로 바꾼 것이다.

“부디 잘 가시오. 사막의 흑새.”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맥보란은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이란 국영방송은 하루 종일 하메네이 저격범 정체가 사막의 흑새라는 다인코프 소속 용병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다인코프는 아카데미와 더불어 가장 많은 CIA의 군사작전을 대리한다는 걸 강조했다.

하메네이 암살 배후에 CIA가 있다는 의미였다.

백악관은 즉각 터무니없는 모함이라며 반발했고 이례적으로 랭글리 총수까지 나서 이란측 주장이야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면서 조목조목 해명하며 비판했다.

하지만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비롯해 수많은 무슬림들이 성조기를 불태우며 항의 시위에 나섰고 곳곳에서 미국인과 미국 대사관, 기업인들을 향해 보복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란이 어둠을 틈타 텔아비브를 향해 최신형 미사일 사하브를 발사했다.

사거리 2,000킬로인 사하브 10발이 텔아비브 주택가에 떨어졌는데 아직 정확한 피해는 발표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은 곧장 이에 대한 보복으로 사거리 3,000킬로에 이르는 제리코 다섯 발을 쏘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총리는 방송에 나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저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리를 공격한다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핵을 맞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또한 이번 전쟁에 끼어드는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린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이 어떤 뜻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스라엘 총리는 태초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태초(太初)로 돌아간다는 건 하늘과 땅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같이 죽겠다는 뜻이다.

중국이든 러시아든 이란을 지원하거나 돕게 되면 동일한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건 결코 이번 일이 자신들과는 상관없으므로 어떤 이유로든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이란 정부가 책임을 지라는 통첩이었다.

권총수는 허공에서 떨어지다 느끼며 눈을 떴다.

유사에 휩쓸렸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내공이 더해지지 않는 구식대법이지만, 효과는 적지 않았기에 이를 물고 숨을 참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가뜩이나 불편한 몸이 불에 데인 듯 찌르르했다.

처음에는 너무 캄캄하여 저승이려니 했는데 조금씩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둘러보았는데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천장에 칼이 거꾸로 박힌 것 같은 형형색색의 종유석이 매달렸고 엄청난 크기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한눈에 지하 동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권총수는 소리를 찾아 느릿하게 걸었는데 몸도 불편했지만 물기로 바닥이 너무 미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바닥을 따라 가던 권총수가 소스라치듯 놀랐다.

폭포다.

높이가 이십여 미터 정도 되는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데 석회암 때문인지 물색은 온통 에메랄드빛이다.

“어어!”

권총수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물에서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퍼득 사막에 온천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물가로 접근할수록 열기는 강했다.

쭈그리고 앉아 슬쩍 물을 만졌는데 굉장히 뜨거웠다.

이정도 열기라면 수증기가 솟구쳐야 하는데 전혀 그런 징후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퍼퍼퍽!

그대 등 뒤로부터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권총수는 등을 돌려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시체다.

군복을 입은 혁명수비대 군인 세 명이 동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숨을 쉬지 않는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군인들이 유사 속에서 버틴다는 것은 어렵다.

‘총에 맞았다’

등과 가슴이 벌겋다.

그건 한두 발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집중 사격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그곳에서 이들에게 이토록 총알을 박아 넣을 만한 적은 없었다.

‘허면 누가?’

한참 동안 상처를 바라보던 권총수는 몸속에 박힌 총알을 볼 수는 없었지만 피부가 짧게 너덜거리는 것이 AK로 보였다.

AK에 집중 사격을 받으면 피부가 조류의 털처럼 너덜거린다.

혁명수비대 군인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권총수의 얼굴이 조금씩 풀린다.

죽으면 원한도 은혜도 모두 사라진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하여 죽은 시신에게 분노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산자의 도리는 아니다.

권총수는 다시 폭포가 있는 웅덩이로 걸어갔다.

“운도 좋구나!”

갑자기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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