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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70화 (270/651)

제270화: 사막의 눈물(3)

비수에 찔리는 것 같았다.

열다섯 아이보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

자신은 잡히고 자수하는 대신 아딜 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말해 볼 심산이었는데 그게 아니다.

아딜은 자신이 살아야 하고 그래야 텔아브 마을 사람들의 원수를 갚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다다다!

멈추기는커녕 더욱 속도를 올리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헬기 한 대가 앞을 막고 나섰다.

둥둥둥!

마치 금방이라도 미사일을 쏠 듯 동체가 상하로 출렁거린다.

모래바람에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덜컹!

모래 바람을 피하기 위해 급히 핸들을 꺾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아딜은 저만치 나뒹굴었고 권총수 또한 나동그라지며 십여 미터 굴러갔다.

그 사이 강력한 라이트를 켠 두 대의 트럭과 지프가 다가왔다.

다다다다!

헬기는 다시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모래바람이 가라앉았다.

30여명의 군인들이 트럭에서 내려 다가왔는데 모두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아차하면 벌집을 만들어 버리겠다는 의지다.

끼이익!

그때 오와이란과 아롱바가 탄 지프가 도착했고 두 사람이 내렸다.

권총수는 어렵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AK를 겨누고 있는 군인들을 훑듯이 살펴가던 시선이 지금 막 지프에서 내려 다가오는 아롱바를 발견했다.

‘놈이다’

한 눈에 적수라는 걸 알아본다.

다할풀 수도원 출신이자 밀교의 마지막 후예이며 생사원영을 복원하고 있는 사내였다.

아롱바 또한 권총수를 알아보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천천히 다가온 아롱바가 사륜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낑낑 거리는 아딜에게 다가갔다.

스윽!

도와주려는 듯 같이 잡아 당겨 사륜오토바이를 바로 세웠다.

“이름이 뭐냐?”

아롱바는 아딜이 시동을 걸지 못하도록 키를 뽑아 버렸다.

“키 주세요.”

아딜은 전혀 두려워하거나 겁먹지 않았다.

“호오!”

“달라고요!”

아딜이 아롱바 왼손에 있는 키를 빼앗으려 하자 번쩍 하며 한 가닥 섬광이 터져나왔다.

화악!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아롱바의 칼은 그대로 오른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권총수는 분명히 보았다.

아롱바의 칼이 아딜의 목을 자르며 지나갔다.

“다...당신.”

권총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뭐하는 거요. 이런 미친.”

권총수는 비틀거리면서 아딜에게 달려갔다.

퍼억!

하지만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 길을 채 두 걸음도 걷지 못하고 넘어졌다.

권총수는 기어서 갔다.

“아딜, 아딜!”

주르륵!

아딜의 목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아딜은 숨이 끊어진 건지 아닌지 알지 못할 만큼 그대로 있었다.

“아딜!”

쿵!

권총수가 다리를 붙잡고서야 목이 몸통에서 떨어졌다.

“아디이이일!”

권총수는 몸통에서 떨어진 아딜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끄으으으, 아딜, 아딜.”

아딜은 여전히 눈을 뜨고 있었다.

권총수는 아딜의 머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스으으!

느리게 아딜의 눈을 감겨준 권총수는 한동안 꼼짝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권총수는 아딜의 뺨을 어루만지더니 모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퍽!

퍼퍼퍼!

구덩이는 쉽게 만들어졌다.

권총수는 구덩이에 아딜의 몸을 눕히고 이어 떨어진 머리를 반듯하게 맞춰 놓았다.

“잘가라. 아딜, 알라께서 넌 푸른 초원으로 인도 하실 것...이...다.”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물었다.

“이 형은 절대 널 잊지 않겠다. 할아버지와 텔아브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넌 내 생애에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다.”

주위 모래로 아딜의 시신을 덮는다.

사막에는 육식성 동물이 많다.

그들에게 아딜의 몸을 먹이로 허락 할 수는 절대 없었다.

“사막의 흑새, 오랜만이오.”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파르르!

눈동자가 미세한 파장을 일으켰다.

공공선사는 우주의 이치 즉, 음과 양이 있듯 무공도 그렇다고 했다.

이른바 정(正)의 무공이 있는 반면 익힐수록 사람의 마음을 악(惡)하게 만드는 마(魔)의 무공이 있다.

지금 아롱바의 눈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는 마기(魔氣)가 분명했다.

밀교 고유의 심법 말고도 내공을 속성으로 증진시키기 위해 실전되거나 사라진 마공심법을 익혔음이 분명했다.

“오와이란 소령.”

“말하시오.”

“이 놈을 상대로 나의 생사원영을 한 번 실험해보고 싶소이다. 물론 목숨을 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빨리 데려가야 합니다.”

“알겠소.”

권총수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지금 하메네이의 암살로 전 세계가 들썩 거리고 있다.

17억 무슬림들이 미국타도를 외치며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비록 시아파이긴 하지만 이럴 때는 전 무슬림이 한 마음이 되어 뭉친다.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어쩌면 수니파와 시아파가 화해를 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떠돈다.

그런 반신반인을 저격한 암살범을 잡았으니 서둘러 호송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목숨을 뺏지 않는다지만, 사적으로 생사원영을 펼쳐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오와이란 소령의 태도는 무슨 의미일까.

둘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렇게까지 호의와 대접을 하는 걸 보면 아롱바가 이란정부를 위해 많은 일을 했을 가능성이었다.

자신이 CIA를 위해 미국에 대항하는 여러 잔가지들을 쳐준 것처럼 말이다.

“부탁이 있다.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아롱바가 말을 건네며 웃는다.

권총수 역시 실소를 지었다.

자신의 몸은 살아있는 시신이나 다름없는데 뭘 최선을 다해 달라는 것인가.

“대 밀교의 후예가 요청하는데 어찌 대충이 있겠소. 혼을 쏟아 대접 하겠소.”

권총수는 몸을 일으켰다.

발밑은 모래다.

자꾸 흘러내리고 패이다 보니 제대로 서 있기조차도 힘들다.

권총수는 바로서기 위해 노력했다.

폼생폼사라고 했다.

‘죽을 때는 어떻게 죽는 것이 대소림의 제자다운 것입니까?’

꿈속에 나타난 공공선사에게 불쑥 물었다.

무공 얘기를 나누다 갑작스런 권총수의 질문에 공공선사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권총수가 던진 질문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공공선사는 입만 열리면 여지없이 소림은 최고라고 말했다.

권총수는 단 한 번도 소림이 넘버 2일지 모른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중원에서 소림을 앞설 수 있는 무공과 문파는 없다고 거품을 무는 공공선사를 보며 갑자기 심술이 난 것이다.

명문거파의 제자이니 죽는 것도 한 마디로 뽀대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웃음이었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소림의 제자는 죽을 때도 하오문의 잡배들과는 차원을 달리해야지’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죽느냐 또한 강호 무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 무사는 무사답게, 소림의 제자는 소림의 제자답게’

‘그러니까 어떻게요?’

‘격(檄)이다’

‘한마디로 폼생폼사라는 말 아닙니까’

‘아미타불’

권총수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당황하는 공공선사의 얼굴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 했다.

촤악!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뛰어오른 아롱바의 몸이 경쾌했다.

츄우우!

칼이 온다.

하지만 권총수는 아롱바의 도식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을 감으면 안 된다’

지금은 내공이 거의 사라져 일반인의 눈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최대한 봐야 했다.

보지 않는 것 보다는 봐두는 것이 후일을 위해 좋다.

대략의 윤곽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큰 소득이 된다.

쑤으으!

칼은 원을 그렸다.

비렌드라의 말에 의하면 달걀모양과 같은 타원형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것은 둥근 원에 좀 더 가까웠다.

두 달여 사이 칼의 수위가 좀 더 깊어진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덤덤한 얼굴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워낙 교활하고 약아빠진 아롱바이므로 자신의 표정이 조금만 이상해도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기탄비(借氣彈飛).

그건 마지막 수(數)였다.

실패하면 끌려가는 일 말고는 없다.

어떤 고문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쐐애액!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던 권총수가 맞는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달려들었다.

내 힘이 클수록 상대와 충돌했을 때 생기는 반탄지기도 강해진다.

그때 생기는 반탄강기를 이용해 멀리 날아가는 수법이 바로 차기탄비였다.

조금 전 30여 미터 전방의 모래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 움직이는 모래를 목격한 사람은 권총수 뿐이었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

유사(流砂)였다.

유사는 느릴수록 물체를 삼키는 속도가 빠르다.

겉 표면은 천천히 흘러도 아래에서는 엄청난 흐름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흐름이 빠른 유사는 오히려 안은 딱딱하고 물체를 삼키는 흡인력이 떨어진다.

차기탄비를 시전하면 거의 시신이나 마찬가지인 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3분에서 길게는 5분까지 호흡을 참을 수 있다.

아래의 흐름이 변화무쌍하고 빠르므로 그 시간이면 이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물론 유사 아래의 지형에 대해서는 짐작 할 수 없지만 운이 좋으면 생명을 건질 수도 있다.

크흐흡!

그야말로 숨겨둔 모든 힘을 끌어냈다.

두 번도 허용되지 않는 단 한 번에 삶과 죽음을 걸어야 하기에 혼까지 끌어낸다.

콰아앙!

아롱바가 만들어낸 칼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단순한 칼이 아니다.

아롱바의 내공이 담긴 강력한 철퇴에 가깝다.

뻐억!

가죽 튜브가 터지는 소리가 울려났다.

강력한 도기에 충돌한 권총수의 몸에서 붉은 피가 폭발하듯 터지며 뒤로 날아갔다.

퉁겨 날아가는 권총수를 아롱바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끝났다.

아롱바는 이제 자신의 능력을 위협하거나 앞지른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다.

권총수는 혁명수비대에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하고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다.

‘이제 좀 쉬겠군’

아롱바의 생사원영은 구성에 머물러 있었다.

권총수 보다 높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좀체 실력은 향상되지 않았다.

더욱이 생사원영은 너무 어렵다.

구성부터는 인연이 닿아야 깨우침을 얻는다고 할 만큼 복잡 난해하여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그 대신 숙적을 잡았다.

이긴 것도 즐겁지만 더 이상 골머리 싸매고 수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더욱 즐겁다.

“앗!”

“어디!”

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롱바의 얼굴에 웃음이 지워졌다.

권총수가 사라진 것이다.

“찾아!”

혁명수비대가 일제히 권총수가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유사닷!”

“으훗!”

혁명수비대 군인들이 주춤하며 걸음을 멈췄다.

모래가 흘러가고 있었다.

폭은 대략 20미터 정도 되었는데 느리지만 분명이 흘러간다.

“뭐야. 그럼 놈이 유사에 빠졌단 말이야?”

다가온 오와이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오와이란은 당황했다.

특히 권총수를 공격했던 아롱바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리 이란정부 실세들과 소통하고 있지만 하메네이의 암살범을 놓쳤다는 건 친분과는 또 다른 문제다.

자칫하다간 자신이 통째로 뒤집어 쓸 판이다.

퍼억!

누군가 묵직한 돌덩이 한 개를 가져와 던졌다.

싸아아!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버리는 돌덩이를 보며 오와이란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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