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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69화 (269/651)

제269화: 사막의 눈물(2)

너무 비좁아 다리도 펼 수 없었다.

“그대에게 알라의 자비가 충만하길 빌겠소. 알라후 아크바라.”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푸푸풋!

바퀴가 돌며 사륜 오토바이가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사륜오토바이를 보며 아자드가 중얼거렸다.

“감사하오. 우리의 원수인 하메네이를 죽여줬으니 우리 또한 당신을 위해 죽겠소.”

그러더니 침상 아래를 더듬거렸다.

한참을 뒤척이던 아자드가 묵직한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꺼낸 건 AK소총이었다.

총에는 30발들이 탄창이 끼어져 있었고 노리쇠를 당기며 상태를 확인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을 앞길이 쭈욱 뻗어 있었다.

아자드는 바람에 깎이고 패인 황토 빛 바위들이 기기묘묘한 형태로 서있는데 동네 길을 뛰다시피 하며 달렸다.

마을 길을 꺾어돌자 적지 않은 숲이 나타났다.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햇빛만 겨우 막을 수 있는 작은 집들이 몰려 있었다.

모두 21가구 42명이 사는 발루치족 마을이다.

대부분이 양을 치고 일부는 땅을 개간해 보리와 감자를 심으며 살아간다.

“맙소사!”

아자드가 얼어붙었다.

불이다.

시뻘건 불길이 마을을 불태우고 있으며 그 사이로 수많은 시신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이런 천벌을 받은 놈들.”

아자드는 달려갔다.

그때 한 집에 불을 지르고 나오던 군인과 마주쳤고 AK가 불을 뿜었다.

드륵!

군인은 반항도 못하고 고꾸라졌다.

뚝!

마을 안으로 뛰어가던 아자드는 얼어붙었다.

군인 두 명이 한 여자를 겁탈하고 있었다.

여자의 상의는 이미 벌거벗겨졌고 하의를 벗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걸치고 있는 치마와 같은 아바야를 붙잡았다.

찌이익!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두 명의 군인이 아바야를 찢었고 여인은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아얀!”

아자드는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륵!

두 군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다.

“아얀”

“촌장님!”

그녀는 다가온 아자드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너도 어서 피하거라.”

어디로 가느냐는 듯 바라보자 큰 소리로 말했다.

“멀리 가거라. 아무 곳이나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말이다. 일단 가면 여기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자드는 불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집으로 뛰어들었다.

“우훅!”

엄청난 열기에 대문을 들어서던 아자드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두 구의 시신이 보였다.

굳이 얼굴을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하산, 마람’

둘은 부부다.

아들 둘이 발루치족 독립을 위해 싸우다 모두 교수형을 당했다.

“아악!”

아자드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달렸다.

골목을 벗어나 마을 뒤편에 있는 작은 공터로 뛰어간 아자드의 눈이 커졌다.

스무 명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끌려 나와 있고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죽은 시신들이 지천이었다.

녹색베레모를 쓴 10여명의 군인들이 주민들을 향해 권총수의 행방에 대해 묻고 있었다.

촌장인 아자드를 포함한 마을 장로 다섯 명만 권총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뿐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이 나왔고 번쩍하며 대낮에 은빛 섬광이 피어나더니 쉰이 넘은 여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총소리가 아니었다.

하자드의 두 눈이 섬광을 쫓았다.

흠칫!

아자드의 입이 떡 벌려졌다.

한 사내가 칼 한 자루를 쥐고 있었는데 회색의 카미스를 걸쳤고 머리에 검정색 터번을 두르고 있었다.

군인들은 총으로 마을 주민들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포위를 한 형태였고 질문과 살인은 칼을 든 사내가 하고 있었다.

철컥!

아자드는 깜짝 놀랐다.

차가운 금속이 목 뒤에 달라붙었다.

마을 사람들을 죽이는 무슬림 사내에게 집중하느라 등 뒤 경계를 소홀히 했다.

“호오! AK소총이라.”

한 사내가 아자드의 손에 쥐어진 AK소총을 빼앗았다.

“내 부하들을 죽인 놈이 너구나.”

빠악!

강력한 군홧발이 등짝을 찍었다.

아자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넘어졌다.

아자드는 허리가 끊어진 듯 아팠지만 이를 깨물었다.

마을 촌장이다.

아무리 늙었고 허약해진 육체지만 철천지 원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긴 싫었다.

소령계급장을 달고 있는 군인 하나가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앞서 수니파 사람들이 모여 살던 움막동네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인물이었다.

“영감!”

소령 오와이란이 내려다보며 뭇는다.

“촌장인가?”

“그렇다.”

아자드는 당당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났는데 오와이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알라께서 네놈들에게 불벼락을 내리실 것이다. 우리 주민들이 무엇을 잘못했느냐?”

“우린 한 놈을 찾고 있다. 그 놈이 이곳 텔아브 마을로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

“우린 모른다.”

“5킬로 밖에서 핏자국이 발견됐다. 5킬로 이내에 있는 마을은 여기 텔아브 뿐이다.”

첨단 과학장비는 물론 50여 마리의 수색견과 혁명수비대 20,000명이 동원 되었다.

“우린 5킬로 이내에서 모두 세 방울의 핏자국을 찾았는데 그중 두 개는 사막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며 떨어뜨린 것이고 나머지 한 개는 인간의 것이라는 걸 증명했다.”

오와이란이 다가와 권총을 꺼내 아자드 관자노리에 바짝 댄다.

“대답이 늦어질수록 마을 주민의 목숨이 사라진다. 놈은 어딨나? 모른다, 난 알지 못한다 따위의 말은 듣기 싫으니 하지 마라.”

“사람 잡지 마시오.”

커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명이 들렸고 칼을 들고 있는 사내가 마을 주민 한 명의 목을 베어 버렸다.

놀랍고도 빠른 솜씨다.

문득 아자드는 텔아브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 하나를 떠올렸다.

‘불의 계곡(Valley of Fire State Park)에 천둥이 치면 어둠이 내려앉으리라’

불의 계곡은 이 지역이 온통 붉은 색 땅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며 천둥은 지금 마을 사람들의 목을 베어 죽이는 칼이 분명했다.

어둠은 곧 혼돈이고 끝을 의미하니 마을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놈이 있는 곳을 말해라.”

때마침 아자드의 시선이 이번에 자신이 침묵하면 죽게 될 마을 주민과 부딪쳤다.

“촌장 어르신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말해도 이놈들은 우릴 살려두지 않을 것. 컥!”

거기까지였다.

사내의 칼이 섬광을 일으켰고 조금 전까지 살아 말하던 사내의 목이 붉은 땅위에 나뒹굴었다.

아자드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말해라. 그러면 더 이상 죽이지 않겠다. 알라께 맹세한다.”

오와이란이 분명하게 말했다.

아자드의 시선이 흔들린다.

누구든 알라께 맹세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번복은 있을 수 없고 반드시 따라야 하며 지켜져야 한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해도 알라는 용서하지 않는다.

“동쪽으로 갔소. 사륜오토바이를 타고.”

가르쳐주면 권총수도 죽지만 손자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촌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다.

타아앙!

오와이란의 총구가 불을 뿜었고 아자드는 옆으로 쓰러졌다.

그와 함께 사내의 칼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촤촤촤!

풀을 베는 농부의 낫질이다.

사람의 목을 풀처럼 베어 버렸다.

“동쪽이다.”

잠시 후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던 두 대의 군용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트럭을 보며 오와이란의 눈이 이글거린다.

“반드시 잡는다.”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던 사내가 다가왔는데 아롱바였다.

그의 칼은 피가 묻어 시뻘겋다.

“수련에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소?”

오와이란의 질문에 아롱바는 흡족한 표정을 했다.

“뭐니뭐니 해도 검은 살아 있는 인간을 상대로 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일부러 수련을 위해 살수가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인도의 무자헤딘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롱바다.

그는 미국 타도의 선봉에 있는 이란 정부와 은밀하게 교류하면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핏방울 말고는 저격범에 대해 어떤 단서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옷차림이나 생김새만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어도 한결 쉬워질 것이다.

핏자국에 의지해 답답한 추적을 하고 있을 때 아롱바가 나타나 사막의 흑새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롱바가 사진 한 장을 내 밀었는데 권총수였다.

추적대에 활기가 넘쳤다.

사막의 흑새를 잡으면 그 배후가 미국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고 절대적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의 두둔 속에 이스라엘을 칠 수 있다.

‘증거만 잡아와. 이스라엘을 중동 지도에서 아예 지워 버리겠다’

혁명수비대장 호세인 살라미가 증거를 외쳤고, 이미 중국과 러시아에게도 어느 정도 이해를 받았다.

“가시죠!”

두 사람은 지프를 타고 나란히 사라졌다.

아딜은 울고 있었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렀다.

들리는 총성은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아딜의 나이 10살 때 혁명수비대에 끌려가 다음 날 시신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핏줄이라고는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는 전부인 그에게 지금은 그 누구도, 어떤 것도 마음을 다독거릴 수 없다.

두두두두!

육중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권총수는 돌아보지 않아도 지금 들려오는 소리가 뭔지 알고 있었다.

러시아 공격헬기 하보크 소리다.

바닥이 딱딱한 붉은 암석사막이 끝나고 회백색의 모래사막이 나타났다.

다행히 사륜오토바이는 모래 위에서도 흔들림 없이 달렸지만 잡히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세 대의 헬기가 멀리 남쪽 하늘에서 나타났다.

아딜이라고 사막을 울리는 헬기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릴 뿐이다.

‘강한 아이다’

눈물은 15살이라는 소년의 감정일 뿐 이성은 자신들을 탄압하는 이란정부에 대한 발루치족의 분노가 끓고 있었다.

슈슈슉!

바람소리가 들린다.

퍼퍼펑!

사륜오토바이 주위로 모래폭풍이 일어났다.

헬기에서 30밀리 기관포 사격으로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건 멈추라는 신호였다.

전쟁을 두려워 할 나이다.

살고 싶은 본능에 지배될 아이였다.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고개를 돌리고 어떡할 건지 한 번쯤 눈길을 돌릴 법도 한데 아딜은 그냥 달렸다.

콰앙!

50미터 앞에 S-8로켓포 한발이 쏟아졌다.

아파치에 견주어 조금도 밀리지 않는 러시아 최신예 공격 헬기다.

아딜은 그냥 달린다.

“아딜!”

대답이 없다.

“무섭지 않느냐?”

“죽기 밖에 더하겠어요.”

권총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열다섯 소년의 죽기 밖에 더하겠느냐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홱!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트럭 두 개와 지프 한 대가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쫓아오고 있었다.

사륜 오토바이가 군용차량을 이길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고 두두두두 하는 소리가 들리며 주위 모래가 튕긴다.

멈추라는 경고사격이다.

“아딜, 그만 멈춰라.”

“조용히 하세요.”

아딜의 목소리가 차갑다.

“보나마나 할아버지도 죽고 동네 사람들 전부 죽었을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아저씨도 나도 죽어요. 갈 데까지 가봐야 하잖아요. 나는 몰라도 아저씨는 살아야 하잖아요. 아저씨가 죽어 버리면 우리 할아버지 원수 누가 갚아줄 건데요.”

꾸욱!

권총수는 이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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