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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68화 (268/651)

제268화: 사막의 눈물(1)

소년은 터벅터벅 양들을 따라 걸어갔는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디(시아파에서 주장하는 예언자)는 없다네. 그는 결코 세상에 오지 않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을 만들었지. 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알라의 가르침이라네. 마디는 어디에도 없지’

소년은 같은 노래를 반복하며 양떼를 몰고 걸어갔다.

에에엥!

갑자기 양들이 떼를 지어 울기 시작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소년이 고개를 쳐들며 목소리 높여 우는 양들을 살핀다.

“왜 그러는데?”

소년은 재빨리 양들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말라비틀어진 세로페기아 나무 뒤로 돌아가던 소년은 소스라쳤다.

말라 비틀러진 탓에 잎사귀는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우거져 있는 세로페기아 나무 밑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우웩!”

소년은 고개를 돌리며 구역질을 해댔다.

사내는 얼굴을 지면에 댄 채 엎드려 있었는데 피가 배어 나온 의복 위로 쇠파리가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사람의 살도 파먹는다는 사막 쇠파리였는데 주둥이에 붙은 가늘고 긴 침이 박음질 하듯 사내의 등을 쪼았다.

쏘소소소!

옷에 묻은 피를 먹으려는 것인데 옷이 조금씩 뚫리면서 찢어지고 있었다.

옷이 찢어지면 살갗에 붙을 것이고 얼마안가 사내의 몸은 뼈만 남을 것이다.

가까이 사람이 다가갔는데도 쇠파리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소년은 들고 있던 막대기를 몇 번 휘휘 저었는데도 역시 파리들은 날아가지 않았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근처에서 자라고 있는 마른 풀 한 무더기를 뽑아 사내의 등에 앉은 쇠파리를 쫓았다.

풀이 자신들을 때리고 나서야 쇠파리들은 윙윙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으나 도망가지 않고 공중을 맴돌았다.

진득한 피 냄새에 이끌린 쇠파리 중 일부는 소년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때 소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쇠파리가 사라지며 허리춤이 드러났는데 권총 손잡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참동안 권총을 노려보더니 허리를 구부려 조심스럽게 권총을 잡아당겼다.

스으윽!

뽑힌 권총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는 흥분이 차올랐다.

총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집에도 AK로 불리는 러시아제 자동소총이 숨겨져 있지만 권총은 난생 처음이다.

묵직했고 영화에서 본 그대로 생겼다.

탄창 멈치를 눌러 탄창을 빼냈는데 굼벵이 크기 만한 총알들이 들어 있다.

탁!

다시 탄창을 꽂아 넣은 뒤 자기 것으로 챙기겠다는 듯 옆구리에 꽂고 몇 걸음 걸어가다 멈추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서 있더니 서서히 돌아선다.

살금살금 다가온 소년은 엎어진 사내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엎드려 있어 아랫 주머니로 손을 넣기가 쉽지 않자 사내를 잡아 당겨 반듯이 눕혔다.

털썩!

사내는 하늘을 보고 누웠다.

파팟!

소년의 눈이 빛났다.

사내의 윗주머니에 담배 갑이 삐져나와 있었다.

재빨리 담배 갑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여기 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기분 좋게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뱉는다.

물 담배도 알고 잎담배도 피워봤지만 확실히 둘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잎담배가 여러모로 좋았다.

물 담배는 기계를 갖고 다녀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으나 잎담배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가끔 할아버지 주머니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한두 개비씩 훔쳐 피웠는데 오늘 몇 개비 피우지도 않은 한 갑을 얻었으니 그야말로 횡재다.

소년 아딜은 행복한 표정을 했다.

입가에 담배를 물고 다시 사내의 주머니를 살피기 시작했다.

탁!

“으헉!”

왼쪽 상의 주머니를 뒤지는데 갑자기 뭔가가 팔목을 쥐었다.

깜짝 놀라 바라보던 아딜은 소스라쳤는데 자신의 팔을 쥐고 있는 건 사내의 손이었다.

그렇다고 사내가 의식을 차렸다거나 눈을 뜬것도 아니었다.

사내는 처음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아딜은 주머니를 뒤지다 자신이 사내의 팔을 건드려 어떻게 잡힌 것이라고 생각하고 빼내려 했다.

꼼짝을 않는다.

아딜은 힘을 주어 사내의 손아귀를 풀려고 했지만 요지 부동이다.

급기야는 발버둥치며 잡아 당겼지만 소용없었다.

아딜은 더럭 겁이 났다.

사내에게 묶인 것이나 마찬 가지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면 물론 할아버지가 찾아 나서겠지만 코요테와 사막여우가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알부르즈 산맥을 터로 삼아 살아가는 회색늑대들도 가끔 출현한다.

“이이익!”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힘을 썼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양들은 주인이 없는데도 집을 찾아 가고 있었다.

아딜은 주위를 살피다 2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에 있는 돌멩이를 발견하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오른쪽 다리를 뻗어 돌멩이를 끌어당기기 위해 발버둥쳤다.

닿을락 말락 하는 위치에 있는 돌은 아딜의 애간장을 녹였다.

툭!

발 끝에 돌멩이가 닿았고 아딜은 조심스럽게 끌어 당겼다.

이윽고 왼손으로 돌을 쥔 아딜은 자신의 손목을 쥐고 있는 사내의 손등을 사정없이 찍었다.

빡!

살이 찢어지고 순식간에 손등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움찔!

꼼짝도 않던 사내가 몸을 떨더니 눈을 떴다.

“허헉!”

아딜은 소스라쳤다.

권총수는 아딜의 손을 놓아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가 날 구했구나. 고맙다.”

도망치려던 아딜은 구해주어 고맙다는 말은 듣고 멈칫했다.

피를 많이 흘린 데다 내공까지 떨어지면서 한 순간 쇼크가 온 것이다.

그런데 아딜이 돌로 손등을 내려찍는 강력한 충격이 전신 경락을 자극하면서 퍼뜩 깨어난 것이다.

만약 아딜이 그냥 내버려 두고 갔다거나 돌로 내려치지 않았다면 자신의 목숨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다.

“이름이 뭐냐?”

권총수는 주저앉아 물었다.

아딜은 대답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들고 있는 권총을 흘끔 내려다보더니 좋다 말았다는 듯 휙 던졌다.

“에잇 재수없어.”

“내가 살아나서 유감인 모양이구나.”

“미안해요 아저씨.”

그러면서 담배도 집어 던졌다.

“담배 피울 줄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요. 열다섯이에요. 발루치인들은 열다섯이면 담배를 피워도 크게 꾸중하지 않아요.”

발루치인이라는 말에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발루치인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눠져 있다.

독립을 외치는 쪽과 이란국민으로 섞여 살아가자는 친 이란계이다.

둘이 애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권총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재색의 카미스(발목까지 내려온 원피스 비슷)를 입고 그 위로 긴 장포(카프탄)를 걸친 노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은 올리브나무 가지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왔는데 권총수는 성당에서 봤던 한 편의 카톨릭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지금 눈앞의 노인처럼 긴 장포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딜이 반색하며 달려갔다.

“왜 왔어요?”

아딜은 노인의 지팡이를 뺏더니 칼싸움 하듯 휘둘렀다.

노인은 천천히 다가왔는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 권총수의 몸에 다시 쇠파리 떼가 가득 붙어 있는걸 보며 노인은 중얼거렸다.

“무서운 일이군요. 그런 몸으로 죽지 않다니.”

“살펴보지도 않고 어찌 내 몸을 아십니까?”

“이토록 진한 피 냄새는 처음이오.”

공기 오염이 적은 몽골이나 티벳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시력은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 외인부대 저격수 교관 포그바 상사의 말이었다.

실제로 외인부대원으로 기이나 령에 온 사람들 보다 현지 주민들의 시력이 월등히 좋았다.

후각 역시 그럴 것이다.

사막이라는 걸 제외하면 몹시 청정한 지역이니 보통 사람보다 훨씬 냄새에 민감할 것이다.

스윽!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그건 도와주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권총수는 허리를 구부려 내미는 노인의 손을 잡았다.

탁!

“아니오. 힘쓰지 마시오. 내가 당길테니 그대로 있어요.”

노인은 아주 느리게 끌어당겼다.

그건 권총수의 몸이 조그만 충격에도 위험해질 만큼 나쁘다는 걸 알고 있는 행동이었다.

“으음!”

매우 느리게 일어나는데도 온 몸이 찌릿찌릿했다.

가까스로 몸을 세웠는데 쇠파리들이 잠시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아딜의 할아버지 자바드라 하오.”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헛헛! 살 날 보다는 죽을 날이 가까이에 있는 이 늙은이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오다니.”

자바드는 무척 기쁜 얼굴이다.

“십 년 전, 그리고 3년 전 우리 발루치인들은 독립을 위해 두 번을 들고 일어났소. 그건 자주독립이었소. 하지만 하메네이의 무자비한 탄압에 죽고 또 죽었소.”

권총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바드의 눈이 지나칠 만큼 부드러워 오히려 의심을 했다.

이곳은 이란의 영토이고 사는 사람은 하메네이의 말을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며 그를 존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 번째 위기에서는 수니파 사람들을 만나 살아났고 오늘은 또 발루치족을 만나 기사회생하고 있다.

물론 아직 국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끝없는 사막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나쁜 징후는 아니었다.

“안되겠소. 내 등에 업히시오.”

“아닙니다.”

“허어, 그런 걸음으로는 내일 새벽께나 집에 도착할 것 같소. 사양말고 업혀요.”

자바드는 권총수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엎드렸다.

“아저씨 업히세요. 우리 할아버지 엄청 힘세요. 양 두 마리도 어깨에 메고 가는데요.”

권총수는 업히기로 했다.

등과 허벅지의 총상도 문제지만 다리에 힘이 없었다.

권총수는 미안함을 무릅쓰고 업혔다.

노인은 권총수를 업고도 전혀 흔들림 없이 걸었다.

“풀밭을 찾아 온 사막을 떠돌다 보니 비록 일흔이 넘었어도 누구에게도 다리 힘 하나 만큼은 지지 않는다오.”

권총수는 슬며시 자바드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천막 안이었다.

마치 몽골사람들이 초원 한가운데 짓는 게르 형태의 집이었는데 콧구멍으로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할아버지! 아저씨 깨어났어요.”

“오오! 그래.”

바닥에 옷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바드가 작은 사발 한 개를 가져왔다.

그곳에는 우리의 한약 같은 검은색 물이 절반쯤 담겨 있었다.

“살라클리치(우리의 칡과 비슷) 나무뿌리를 달인 것이오. 기력 회복에는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지요.”

“아저씨 그거 아무나 못 먹어요. 아주 귀해요. 한 달 전 운 좋게 내가 발견하여 캐 왔죠.”

아딜이 빙긋 웃었다.

냄새는 좋았다.

빛깔은 한약을 다린 듯 검정색이었지만 향기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권총수는 단숨에 약을 비우며 트림을 했다.

“지금 마을 사람들이 뭐하는지 아시오. 당신을 국경까지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에 있소.”

권총수는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자신의 몸 상태로는 혼자서 1킬로 걷는 것도 쉽지 않다.

몸에 힘이 빠지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공공선사의 말이 실감 날 만큼 기진맥진해 있었다.

다다다!

그때 누군가 뛰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컹!

회색의 천으로 두껍게 감싼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뛰어들었는데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촌장님.”

“사울란 자네가 어쩐 일인가?”

“구...군인들이 왔습니다. 저 분을 내 놓으라면서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아자드는 재빨리 구석에 있던 살림살이를 치우더니 안에서 사륜오토바이(ATV)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젠가 오민철의 고향인 벌교에 놀러갔다가 어느 아주머니가 쌩하며 타고 가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아딜! 네가 운전 하거라.”

“할아버지!”

아딜은 무서운 모양이다.

“빨리.”

아딜은 조작을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도록 조그만 화물칸을 달았는데 나중 아딜에게 물어본 결과 양새끼들을 싣고 다닌다고 했다.

새끼밴 어미 양이 풀을 뜯다 출산할 때가 있는데 그때 새끼들을 태우고 집으로 온다는 것이다.

부르릉!

아자드가 시동을 걸었다.

“할아버지 무서워.”

“아딜 우린 절대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알라께 죄를 짓는 일 말고는 우리에게 무서워 할 것은 없다.”

눈물을 흘리며 아딜이 올라탔고 권총수는 노인의 부축을 받아 짐칸에 쭈그리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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