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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67화 (267/651)

제267화: 사냥감이 되다(2)

“미친놈.”

타아앙!

또 다시 총성이 울리며 여자는 뒤로 벌렁 넘어졌다.

여인은 죽었지만 입가의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오와이란을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

탕탕!

오와이란은 죽은 여자의 가슴에 두 번의 방아쇠를 더 당겼다.

“너.”

오와이란은 또 한명의 늙은 노인을 가리켰다.

“소령님께서 오라잖아.”

빡!

옆에 있던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뒤통수를 갈겼다.

“아이쿠!”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는데 머리가 깨진 듯 피가 흘러 내렸다.

오와이란이 앞으로 다가와 주저앉은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위대한 최고 지도자를 암살한 놈이다. 봤느냐?”

노인이 표정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군인, 오래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 있소.”

그러면서 노인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는데 중지를 곧추 세워 뻑큐를 보냈다.

타앙!

탕탕탕탕!

흥분한 오와이란이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들이 모두 돌았구나. 없애 버렷!”

두두두두!

AK가 폭발하듯 총알을 쏟아냈고 40여명의 사람들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사방은 그저 고요할 뿐이다.

거친 숨소리를 내는 권총수가 앞장을 섰다.

알자삼이 앞장을 서버리면 뒤를 따르는 권총수에게 부담이 된다.

특히 앞서 걸을 때 뒤 따르는 권총수가 넘어지면 재빠른 도움을 줄 수가 없다.

“크훅!”

권총수는 왼쪽의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척!

알자삼이 부축했다.

학학학!

권총수는 거친 숨을 내 쉬었는데 얼굴에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스으으!

권총수는 알자삼의 손을 슬며시 밀어냈다.

이윽고 다시 몸을 바로 세워 걷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었지만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 거린다.

체력도 고갈 됐지만 부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고 특히 고온 건조한 날씨는 상처를 빨리 부패시킨다.

아직까지 피부가 썩는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강호의 의술 상식에 비춰 내일부터는 곰팡이가 생기고 고름이 만들어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깊은 동굴 같은 곳을 찾아 들어가 운기요상을 이용해 어느 정도 내 외상을 치료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한두 명이 추적해 오는 것이 아니라 수천수만 명이 동원될 것이고 첨단 과학장비가 자신을 쫓을 것이다.

몸이 백프로 회복된다면 주저 없이 동굴을 찾아 나서야 하지만 외상이 심해 약물치료가 곁들여져야 한다.

또한 총상으로 인한 내공손실은 손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최소 석 달 이상은 조용한 곳을 찾아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잠깐 쉬어야겠소.”

“계속 가...갑시다!”

권총수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비틀거리며 또 하나의 능선을 넘었다.

가급적 야간에 많은 이동을 해야 한다.

빛은 도망자에게 최악의 장애물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야간 열상장비도 햇빛 만큼은 못한다.

햇빛은 인정사정 없이 숨을 곳이 없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단 한 걸음이라도 어둠속에서 많이 이동해야 했다.

으웩!

벌써 세 번째 구역질을 했다.

구역질을 한 이유는 간단했는데 체력이 과도하게 소모되면 현기증과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다.

“저기!”

알자삼은 다시 입을 열어 쉬자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술을 다물어 버렸다.

내일 아침까지는 걷지 못하면 몸을 굴러서라도 이동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알자삼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시아파 종주국이라는 이란에서 수니파로 산다는 건 소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항상 불안한 일이었다.

수니파는 정치적으로 무슨 사건만 생기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고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눈앞에서 어머니와 두 남동생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았다.

서른일곱 짧은 인생이지만 이른바 산전수전 겪은 몸이다.

자신도 악착같이 살기 위해 이를 물고, 혀를 씹어가며 살아왔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만큼은 지독하지 못했다.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 온다.

아직 어둠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족히 산길로 20리는 온 듯싶다.

“잘 가시오.”

알자삼은 자신은 여기서 돌아서야 한다고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나가야 한단다.

“알라의 풍성한 자비가 그대의 운명을 포옹하기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권총수는 지체 않고 돌아섰다.

“잠깐!”

알자삼이 주머니를 뒤척이더니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다.

“당신에게서 담배냄새를 맡았소? 담배가 갖고 있는 효능을 알 것이오.”

권총수의 마른 입술이 살짝 올라간다.

알자삼이 한 말은 애연가가 아니면 절대 모른다.

담배는 육신이 상처입고 정신이 피폐해져 있을 때 완전한 위로자가 되어 준다.

좋은 담배는 가인과 같다고 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벗이라고도 했다.

“고맙소.”

알자삼은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더니 곧장 돌아서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권총수는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맥보란이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을 살피더니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세 사내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맥보란을 발견한 세 사내의 눈에서는 화염이 이글거렸다.

오민철을 비롯해 비렌드라와 나카야마였다.

“어이 맥보란이.”

자리에 앉자마자 오민철이 시비조로 나왔다.

“왜? 한국이 좆만한 나라라고 우리까지 좆으로 보이냐? 우리가 CIA정보원이라고 무서워 할 줄 알았어. 너 까짓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파묻어 버려 임마.”

“진정해!”

비렌드라가 제지했다.

“나카야마, 민철이 데리고 나가.”

“민철 나가자 우리.”

나카야마는 오민철의 손을 잡고 끌었다.

“우리 총수 어떻게 됐어. 우리 총수 어딨냐고?!”

오민철이 소리치자 커피숍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나카야마는 나가지 않으려는 오민철을 데리고 커피숍 밖으로 걸어갔다.

“미안합니다. 민철이 성격이 워낙 불 같아서 말입니다.”

그 반대다.

오민철이처럼 능글맞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성품 보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말을 해서 맥보란을 살살 달래야 한다.

“하메네이가 사망한 것이 캡틴 작품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으음!”

맥보란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자세한 얘기는 없었을 지라도 이란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말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입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캡틴 어디 있습니까. 벌써 사건이 일어난 지 닷새째가 되고 있는데 감감 무소식입니다?”

맥보란은 오민철의 커피 잔을 끌어당기더니 술처럼 마셨다.

“왜 말이 없습니까?”

맥보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물론 국장 아담스의 부하이고 CIA직원이므로... 같은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온 몸이 비수가 찌르듯 아픈 이유는 뭘까.

“모릅니다.”

맥보란은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어쩔 수 없다.

이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죽어도 정보원이고 살아도 랭글리 직원이다.

아담스를 따르고 그의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 부하된 의무이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권총수에게는 한 없이 미안하고 고개를 들 수 없지만 이제는 완전히 등을 돌려야 한다.

“진심이오. 그쪽 우리 직원들과 교신을 했는데 철저히 주어진 임무대로 그를 무사히 테헤란 밖으로 안내 했다고 들었소.”

“그는 강호의 고수입니다. 교통수단이 없어도 5일이면 충분히 우리 앞에 나타났을 시간이죠.”

“글쎄 거기까진 난 모르는 일이지요. 아무튼 우린 약속대로 충분한 지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별일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험지에서도 돌아온 사람인데.”

맥보란이 바쁘다는 듯 일어섰다.

“맥보란씨?”

비렌드라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말이 꾸밈없는 사실이길 바랍니다.”

“여보시오.”

“포탈라궁에는 이런 말이 내려옵니다. 거짓을 진실인양 말하는 이는 악마보다 나쁘다.”

움찔!

맥보란이 깜짝 놀란다.

“악마는 절대 교화되지 않습니다. 기름 불구덩이에 던져 넣는 것 밖에 방법이 없죠.”

비렌드라는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맥보란은 굳은 얼굴로 서 있더니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부하직원에게 차를 호텔 앞으로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핸드폰을 쥐고 로비를 걸어나갈 때 맞은편에서 오민철과 나카야마가 들어오고 있었다.

오민철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말을 걸었다.

“별일 없길 바라겠습니다. 한때 난 당신 밑에서 일하는 블루요원이었잖습니까.”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 하자는 말이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맥보란의 귀에는 얼음덩어리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외인부대가 자랑하는 최고의 군인 중 한 명이다.

‘살아 돌아오길’

맥보란은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때였다. 쥐고 있던 핸드폰이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액정에 R이라고 찍힌다.

랭글리 아담스였다.

“이란이 선제공격을 했네. 조금 전 스커드 미사일 3기가 이스라엘 영토에 떨어졌어. 아직 정확한 피해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상당한 사람들이 다치고 사망한 것 같네.”

맥보란은 걸음을 멈춰 버렸다.

“이스라엘 총리는 즉각 반격하겠다고 했네.”

“놔두는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지. 양측 모두 자제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물증없이 정황만으로 선제공격을 했을까요?”

맥보란이 묻는다.

그건 권총수가 잡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이었다.

“그래서 자네에게 전화 한 거야. 빨리 알아봐.”

“예!”

맥보란은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듯 부하직원이 다가왔다.

“서기관님!”

“아, 가지.”

맥보란은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조수석에 탄 맥보란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핸들을 잡은 부하직원 리베라는 자꾸 뒷좌석에 앉은 맥보란의 눈치를 살폈다.

“뉴스 들으셨습니까?”

이란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란이 그냥 발사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사막의 흑새가 잡혔고 고문을 받아 발설한 것 아닐까요?”

“아냐. 내가 아는 그는 고문 따위에 입을 열 사내는 아니지. 그는 굉장히 자존감이 강해. 차라리 죽고 말지 적에게 무릎 따위를 꿇지는 않아.”

리베라의 이마가 구겨졌다.

“그럼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이 단순히 심증으로 이뤄진 것이란 말입니까?”

리베라의 상식에 비춰 이란 정부가 아무리 흥분하고 분노해 있다고 해도 증거 없이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그런데 친 이란국가인 중국과 러시아가 조용합니다.”

맥보란은 상체를 의자 뒤로 붙이고 눈을 감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없이는 절대 단독으로 미사일을 쏘지 못한다.

그렇다면 러시아나 중국 쪽에서 어떤 정보를 잡았다고 해석해야 할 듯싶다.

“중국과 러시아 두 곳 중 한 곳에서 어떤 단서를 잡았음이 분명합니다.”

“글쎄 거기까진 모르겠고, 분명한 사실은 사막의 흑새는 가벼운 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

부우웅!

차는 저 멀리 미국 대사관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옆으로 뻗어나가는 사막 가시나무와 부유물처럼 메말라 버린 잡초들이 점점이 자라고 있다.

그러나 그마저 양들이 가만 두질 않는다.

이백여 마리의 양들은 가시나무 껍질까지 벗겨 삼켰고 풀뿌리까지 뜯어 먹었다.

양떼가 지나간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휘이잉!

사막 위로 붉은 먼지바람이 피어올랐다.

해가 사막 끝으로 떨어지자 먹이를 찾아 움직이던 양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울기 시작했다.

그건 밤이 다가오니 집으로 가자는 재촉이었다.

마른 막대기 하나 들고 양들을 따라가는 목동은 1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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