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화: 사냥감이 되다(1)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삶이 이렇게 뒤통수를 맞으며 정리될 줄 몰랐다.
지난 번 RPG에 걸렸을 때는 최소한 적에게 포위되는 일은 없었기에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란이 자랑하는 12만 혁명수비대가 동원되었다.
그중에서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경호하는 ‘마디 부대’가 직접 움직이고 있었다.
마디는 코란에서 시아파 구세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미국방부가 분석한 바에 의하면 이라크의 공화국수비대는 소문만 요란할 뿐 이른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했지만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달랐다.
‘그들은 강군이다. 중동국가의 어느 부대보다 훈련이 잘되어 있다’
살이 찢어지면 시간이 흘러가며 통증이 잦아든다.
그런데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는 걸 보면 뼈가 심각한 상태는 분명해 보였다.
이런 몸은 내공이 그대로 있다고 해도 움직임이 쉬운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가야한다.
그래도 포기 할 수는 없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반드시 청소를 한 당사자와 지시를 내린 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서라도 살아나야 한다.
이렇게 세상 멍청하게 떠나기 위해 이 악물며 외인부대로 뛰어들지 않았다.
홱!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망토처럼 검정색 장포를 늘어뜨린 한 명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권총수는 총구를 돌리려다 멈칫했다.
“걸을 수 있겠소?”
상대의 목소리는 의외로 온화했다.
권총수는 악착같이 일어났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신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무릎을 폈는데 파르르 몸이 떨린다,
“내 손을 잡으시오.”
노인이 손을 뻗었는데 비쩍 말랐다.
잡아도 될까 싶을 만큼 뼈밖에 남지 않은 손이었지만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걸으려면 방법이 없었다.
콱!
노인은 권총수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단단하게 쥐었다.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노인의 손아귀 힘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넘쳤다.
늙은 농부가 삽질 낫질을 하면서 강해지는 악력 같은 그런 힘이었다.
길도 없는 산이었고 사방이 크고 작은 바위투성이다.
노인은 조심스럽게 산길을 걸었는데 권총수을 배려하여 최대한 덜 굴곡진 지형을 따라 이동했다.
퍼퍼펑!
조명탄은 더욱 커졌고 산 아래는 야간 경기가 열리는 축구장 같았다.
작은 움막이 있었다.
그런데 움막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나뭇가지와 푸른색 천막으로 벽을 두르고 양철과 합판 조각 따위로 지붕을 덮었다.
얼핏 텔레비전에서 봤던 시리아 난민촌을 연상케 했다.
“들어오시오.”
방에는 불도 없고 외부로 새어나갈 어떤 조명기구도 보이지 않았다.
노인과 아들로 보이는 서른 중반 가량의 구레나룻 사내가 있었다.
“우욱!”
권총수는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앉았다.
“일단 가슴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보시오.”
노인은 권총수 척추에 문제가 있다는 걸 간파한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조심스럽게 엎드렸다.
윗도리를 걷어 올리던 노인과 아들이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욱!”
“아아!”
두더지가 땅을 파놓듯 총알이 들쑤셔 놓은 등은 엉망이었다.
살점이 너덜거리고 그 사이로 엉덩이에서 목까지 이어지는 뼈가 보이기도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노인은 기도하듯 중얼 거렸는데 이런 몸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알라의 도움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젊어서 병원 직원으로 일을 했지요. 그래서 외상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지요.”
상처에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한 듯 은박지를 뜯어 손을 감싸더니 등쪽을 만졌다.
그때 아들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윽! 우우욱!”
굉장히 조심스럽게 만지는데도 달궈진 쇠꼬챙이로 쑤시는 것 같았다.
“이런 몸으로.”
노인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움직이면 계속 멈췄던 피가 다시 흘러나올 것이오. 살고 싶으면 더 이상 발걸음 하지 마시오.”
노인의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그건 진정으로 권총수를 염려하는 것이었지만 적지에, 언제 적이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곳에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르신?”
“데쿠사요.”
노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우리가 누구냐고 물으려는 것이오? 우린 말이오...흐으음!”
대답하던 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돌연 질근 어금니를 물었다.
순간 다정하고 온순해 보이던 눈에서 핏빛 살기가 뻗어 나왔다.
“우린 하메네이가 어서 빨리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오.”
하메네이는 이란에서는 거의 신적인 인물이었기에 권총수는 눈을 크게 떴다.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이다.
그러므로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살벌하게 대립한다.
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었다.
굳이 잘못이라면 시아파가 몰려 사는 이란 국민으로 태어났다는 것 뿐이었다.
탄압은 혹독했고, 아이들은 학교도 갈 수 없었고 어른은 직장생활이 불가능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가장 힘들고 더러운 일 말고는 이란사회 어디에서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호메이니에 이어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로 올라서면서 수니파에 대한 탄압은 노골적이었다.
‘앞으로 사흘 이내에 수니파는 테헤란을 떠나라’
날벼락이었다.
왜? 라는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니파는 모든 걸 빼앗겼다.
반항하고 부당하다고 외치는 사람은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갈 곳이 없어 이곳 산속으로 들어와 산다는 것이었다.
“라흐바르(최고지도자)를 없애기 위해 기회를 노렸지만 쉽지 않았소. 오히려 우리의 계획이 누설되어 많은 형제들이 행방불명이 되거나 총살을 당했소. 최대한 그대를 돕겠소. 난 그대가 하메네이를 저격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소.”
권총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뉴스에는 하메네이의 죽음에 이란 국민이 분노하며 총 궐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거짓이오. 카메라 앞에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이 더 많소. 노골적으로 좋아 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칠 것이오.”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좁은 움막 안으로 다섯 명의 사내들이 들어왔는데 노인의 아들 알 자삼도 보였다.
“안심하시오. 우리 모두 같은 편이고 하메네이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니.”
모두가 얼굴의 광대뼈가 불거지도록 말랐다.
그만큼 식생활이 어렵다는 뜻이었는데 유독 두 눈만큼은 살아 꿈틀 거리고 있었다.
촤라락!
데쿠사는 작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어둠에 눈이 익숙한 탓에 희미하게 보였는데 그건 지도였다.
“우리가 여기요. 지금 이 방향으로 탈출한다면 알부르즈산맥을 넘어 아프카니스탄이나 파키스탄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권총수의 눈은 까맣게 칠해진 길다란 선을 바라보았는데 이란에서 파키스탄까지 동서로 뻗은 중동에서 가장 큰 산맥중 하나이고 최대 높이는 다마반드산으로 해발 5,500미터에 이른다.
이 몸으로 저 무섭고도 황량한 카비르 사막을 지나, 야생늑대와 표범들이 득실대는 알부르즈 산맥까지 넘을 수 있을까.
‘내가 힘들면 상대도 힘들다’
권총수는 단순한 말로 더 이상 어떤 변명이나 핑계도 대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훈련이 잘된 군인들이라고 해도 소금과 모래 습지가 뒤엉켜 있는 사막과 평균 고도 3,000미터의 산을 넘는다는 건 쉽지 않다.
잡히느냐 잡느냐의 승부다.
“이거라도 우선.”
한 사내가 작은 병을 꺼냈는데 에탄올이다.
“군대에서 배운 건데.”
사내는 에탄올에 약간의 물을 섞더니 권총수의 상처에 바르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권총수의 몸이 덜덜 떨렸다. 등을 칼로 난도질 하는 듯 했다.
두두두두!
갑자기 헬기소리가 들리고 밖이 환해졌다.
순간 모두가 놀라며 움막 밖을 바라보았다.
밖이 환한 것은 조명탄 때문이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도망자의 뒤끝이 깨끗할 리 없다.
더욱이 수색견까지 동원한 만큼 흔적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안되겠소. 일단 멀어지고 봐야 할 일이오. 뭣하느냐. 어서 모시고 가지 않고.”
노인은 알자삼을 향해 말했다.
“모든 건 신께서 알아서 할 일이다. 인간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사는 것도 신의 뜻이고 죽는 것 또한 그가 하는 일이니.”
권총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위로였다.
알자삼은 윗도리를 걸쳤고 작은 가방 하나를 메더니 권총수에게 지팡이를 내밀었다.
“도움이 될 겁니다. 어서 갑시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왔다.
따라 나온 데쿠사 노인과 가볍게 포옹을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이어 다른 네 사람과도 악수를 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다르다.
지팡이를 짚게 되자 걷는 것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왜 노인들이 지팡이를 짚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권총수는 스스로도 놀라워하며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알자삼은 산의 지리를 꿰뚫고 있었다.
현지인이 아니면 알지 못 할 바위가 드문드문하고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곳만을 골라 이동했다.
두 사람이 떠나고 30분 정도 흘러 일단의 군인들이 움막 앞에 나타났다.
30여명의 군인들은 전투화를 신은 채 움막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모두 나와.”
잠을 자고 있던 움막촌 사람들은 그야말로 속옷 차림으로 끌려나왔다.
“뒤져!”
모두를 밖으로 끌어 낸 다음 군인들은 움막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퍽!
와르르!
그건 수색이 아닌 철거였다.
때려 부수고 밟고 무너뜨리는 거친 수색은 순식간에 20여동의 움막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소령님, 여길 좀 보십시오.”
동쪽 움막을 수색하던 군인이 크게 외쳤다.
매서운 눈으로 40여명의 움막촌 사람들을 살피고 있던 마흔 초반 가량의 녹색 배레모를 쓴 사내가 걸어갔는데 어깨에 소령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소령 오와이란이다.
혁명수비대 제3전단 제5팀장으로 이란군대에서 좀체 보기드문 명문가 출신이다.
아버지가 현직 국회의원이며 얼마 전에 타계한 조부는 산업부장관까지 지냈다.
영국의 캠브리지에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로 서양학문을 배우고 생활 문화까지 겪고 체험 했으면서도 누구보다 철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다.
“보시죠!”
군인 한 명이 가지고 있던 랜턴을 비추었다.
바닥에 검은색의 자국 몇 개가 있는데 랜턴을 비치고 있는 군인이 말했다.
“핏자국이 분명합니다.”
오와이란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려 직접 코를 대었다.
바닥은 낡은 카페트였는데 오와이란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카페트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긴 것이다.
핏자국이라 할지라도 카페트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피비린내를 맡기는 어려울 듯 했다.
이어 품에서 돋보기를 꺼내더니 가까이 비쳤다.
여러 각도로 살피고 확인하더니 일어났다.
“여기 주인 데려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갔고 잠시 후 비쩍 마른 데쿠사가 끌려왔다.
“이것 놓아라.”
늙은 데쿠사의 눈에서 푸른 번개가 쳤다.
데쿠사는 소령 오와이란을 향해 말했다.
“내가 이집 주인이오.”
오와이란이 당당한 데쿠사를 째려보듯 하더니 부하의 손에 들린 랜턴을 빼앗아 핏자국을 가리켰다.
“이게 뭐요?”
“뭐라니? 내가 그걸 어찌 알겠소? 보나마나 살면서 흘리고 떨어뜨린 이 늙은이의 흔적이겠지.”
탕!
오와이란이 차고 있던 권총을 번개처럼 뽑아 데쿠사의 오른쪽 다리를 쐈다.
“억!”
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봐 늙은이 나와 장난하나. 이건 피다. 짐승의 피도 아닌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피 말이다.”
“내 집에 핏자국이 많군요.”
그 말에 오와이란은 카페트를 보았는데 핏자국처럼 생긴 여러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것이 핏자국이면 저 많은 지저분한 흔적들은 뭐냐.
한 마디로 말이 되는 소릴 해라는 뜻이었다.
탕!
오와이란은 데쿠사의 가슴에 권총을 박아 넣었다.
데쿠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불타는 눈으로 자신을 쏜 오와이란을 노려보았다.
“아...알라의 저주가 네놈에게.”
쿠쿵!
데쿠사는 그대로 숨을 거두며 나뒹굴었다.
“너 앞으로.”
군인들이 세워 놓은 주민 한 사람을 가리켰다.
쉰 가까이 보이는 히잡을 쓴 여자가 다가오자 물었다.
“도망친 놈이 여기 왔지?”
여자가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