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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65화 (265/651)

제265화: 신은 죽고(3)

걸음에서 뭔가 급한 일이 생겼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갑자기 어인일인가? 사람 많은 곳에 자네 같은 화이트 요원이 나타나면 내 신변이 위태로워 진다는 걸 모르나?”

맥보란이 깍듯하게 대할 사람은 직속 상관 뿐이다.

맥보란은 어금니를 물었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와 말인가?”

“사막의 흑새와 모든 통신망이 단절되었습니다. 하메네이는 죽었고 저격범이 잡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저와 연락이 닿아야 합니다.”

“워낙 신출귀몰한 친구라고 들었네. 연락하지 않아도 안전하겠지.”

“국장님.”

맥보란이 깊은 눈으로 선글라스 안에 감춰진 움직이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청소 하셨습니까?”

“자네 입 조심하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막의 흑새는 항상 우리에게 우호적이었고 많은 랭글리의 실수를 덮어 주었습니다. 하메네이가 죽었으니 이제 차기 라흐바르(최고지도자)로 선출될 인물은 미국에 우호적인 온건파 호디다드가 될 확률이 70퍼센트 이상입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진행한 그를 청소 한다는 건?”

“자넨 미연방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네. 이곳 어딘가에 자네의 목소리가 녹음되지 않고 있다고 어찌 보장하는가?”

“이건 신뢰의 문제입니다.”

“자네 지금 얼마나 중대한 정보국법을 위반하고 있는 줄 아나. 난 모르는 일이고 어떤 방법으로도 사막의 흑새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네.”

“밝혀지겠죠.”

단호하게 내뱉으며 뒤돌아 걸어가던 맥보란이 돌아섰다.

“반드시 그가 죽기를 기도하고 소원 하셔야 할 겁니다. 불행히도 그가 살아 돌아온다면, 아니죠. 절대 그래서는 안 되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에 죽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맥보란은 미련 없이 걸어갔다.

아담스는 한동안 걸어가는 맥보란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정보요원의 가슴에 정이 담기면 끝이지’

아담스는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힘들게 시내를 빠져나왔다.

뉴스에서는 테헤란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12개 도로를 군이 봉쇄했다고 했다.

검문소가 보인다.

깜빡거리는 불빛을 보며 권총수는 속도를 떨어뜨렸다.

차량에 부착된 무전기를 통해 대위 비게라와 통신병이 실종되었다는 것과 저격범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은 통신되지 않고 있었다.

바로 비게라 대위가 타고 있는 지휘차량이다.

권총수는 출혈과다를 겪지 않기 위해 다시 지혈을 하였으며 그로인해 지금은 내공을 원활하게 사용할 수가 없다.

길가 한쪽에 차를 세운 권총수는 멀리 보이는 검문소를 보며 생각했다.

부상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가급적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도망자가 꼼짝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살얼음처럼 살짝 아물었던 상처는 다시 터지길 반복했다.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대퇴부가 아파오는 것이 거기에도 총알 몇 개가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죽기 싫다.

죽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다.

기어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등 뒤에서 총을 쏜 정체불명의 사내를 없애 버리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콱!

권총수는 주먹을 쥐었다.

정식 검문소가 아닌 급히 설치된 것이어서 단단하거나 치밀해 보이지는 않았다.

몇몇 바리케이트와 헌 타이어를 가져다 놓았는데 정면돌파를 해볼 만했다.

여기서 차량까지 빼앗긴다면 현재 몸 상태로 탈출 할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끼륵!

기어를 변경하고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부아앙!

속도계는 순식간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바늘이 80킬로를 넘기 시작했다.

뿌아아!

엔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폭음에 가까운 굉음에 검문소 군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는 재빨리 라이트를 올렸다.

번쩍!

이른바 쌍라이트가 켜지자 군인들은 정면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고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중 일부 군인은 라이트를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탕 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나동그라졌다.

권총수가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손으로 비게라에게서 빼앗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콰아앙!

지프는 A자형 바리케이트를 치고 타이어 더미를 쳤다.

타이어가 날아가며 일부 병사들을 후려쳤다.

총성과 비명으로 검문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부우웅!

쌓아 놓은 타이어를 치며 지프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중으로 날아가는 지프를 향해 검문소 혁명수비대 군인들이 일제히 사격했다.

두두두!

퍽!

퍼퍼펑!

지프가 귀를 찢는 소리를 내며 땅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권총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왼쪽 뒷바퀴가 펑크가 난 모양이었다.

4륜 구동이므로 어느 정도는 무리해서라도 갈 수 있지만 문제는 속도다.

군인들은 검문소 한쪽에 세워둔 트럭을 타고 쫓아오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도로를 따라 쭈욱 가면 카비르 사막이 나올 것이다.

레그(자갈), 하마다(암석), 에르그(모래)가 뒤죽박죽 된 사막의 종합선물 세트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의 늪이다.

자신이 비록 신체적 부상이 깊지만 추적자들보다 좀 더 앞서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생존능력이었다.

수많은 실전을 경험했고 사막과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 밀림에서도 살아 나왔다.

그리고 강호의 무공을 알고 있다.

파파팡!

총알이 쏟아지고 있지만 염려할 건 없다.

1킬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냥 라이트만 보며 쏟아 붓는 사격이기 때문에 맞을 확률은 매우 낮다.

속도 역시 트럭의 단점, 즉 기동력에서 지프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허나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이미 상급부대에 무전이 날아갔을 것이고 필시 헬기가 뜰 것이다.

헬기 앞에서는 대책이 없다.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끼이이이!

차체가 자꾸 왼쪽으로 휘청거린다.

국도인데다 노면이 좋지 않다.

장마철에 파손되어 만들어진 포토홀처럼 크고 작은 구덩이가 많아 덜컹 거렸고 특히 커브길을 돌아 갈 때는 차체가 굉장히 흔들렸다.

그건 전복할 위험이 매우 높다는 전조였으나 속도를 떨어뜨릴 수는 없었다.

두두두두!

총알은 오지 않아도 총소리는 계속 들렸다.

‘음!’

라이트를 끄고 운전 한다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한 내공손실은 강호무사의 안광을 상당부분 빼앗아 가버렸다.

그렇다고 라이트를 켜고 간다는 건 따라오라고 신호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팍!

라이트를 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리 라이트를 끄기 전에 전방도로 상태를 보았는데 상당한 거리가 직선이었다.

온 몸의 내공을 모조리 긁어 눈에 모았다.

보인다.

하지만 너무 흐릿해 노면의 상태까지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목숨이 걸린 일에서는 많은 방법을 떠올려서는 안 되고 오로지 하나의 전략에 올인해야 한다.

그런데 자꾸 분심을 일으키는 것이 하나 있다.

‘그놈’

지금은 도망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인지 자꾸 등 뒤에서 AK를 갈긴 사내를 떠올린다.

‘청소부다’

정보원에서는 공작을 성공시킨 사람을 증거인멸 차원에서 없앤다.

물론 자신들은 전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일회용 소모품 즉 '청소'를 할 때는 소속 정보원이 아닌 제 3자를 대상으로 한다.

‘언젠가 입은 열린다’

청소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컷 이용한 뒤에 없애 버리는 것이다.

덜컹!

하마터면 조수석 쪽으로 넘어질 뻔할 만큼 차가 튕겨 올랐다.

구덩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젠장!’

내공을 눈에 모으다 보니 지혈 통제가 되지 않아 차안에 피 냄새가 진득했다.

두두두두!

헬기 소리가 들린다.

한두 대가 아니다.

이젠 버려야 한다.

이쪽의 무장이 권총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저공비행하면서 열적외선 감지기를 작동하면 상당히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하보크로군’

러시아 최신예 공격 헬기다.

아파치는 미군이 세계 각국에서 워낙 전쟁을 많이 하다보니 과대평가 된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에 비해 하보크는 거의 두문불출의 헬기다.

하지만 외인부대에서 아파치와 하보크를 평가실험 했는데 백중세였다.

권총수는 지프를 버렸다.

열 감지 추적장치를 피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주행거리를 보았는데 검문소에서 20여 킬로 정도 밖에 달리지 못했다.

사막까지는 아직도 백 킬로가 남았다.

권총수는 길을 버리고 산을 향해 걸어갔다.

수도 테헤란을 둘러싸고 있는 엘부르즈 산맥이다.

건조한 기후여서 산은 그다지 우거져 있지 않지만 한 사람 숨길 곳은 사방에 널렸다.

크훅!

눈앞으로 뜨거운 불빛이 피어났다.

목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뼈는 지금 커다란 손상을 입고 있다.

운전을 할 때는 상체 움직임이 없어 그럭저럭 버텼지만 지금은 틀리다.

경추에서 흉추가 시작되는 부위의 뼈가 툭 소리를 냈다.

총알로 부서졌으나 간신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던 뼈가 기어이 어긋나면서 제 위치를 벗어나자 불로 데이는 것 같은 통증이 온 것이다.

헬기들이 강력한 라이트를 켠 채 사방을 휩쓸고 다닌다.

모두 다섯 대였는데 아무리 첨단 장치가 되어 있다고 해도 좁은 공간에 많은 헬기가 움직이다 보면 접촉사고를 피할 수 없다.

헬기는 자동차와 달리 조금만 충돌을 해도 추락한다.

권총수는 바위 뒤에 몸을 은신했다.

바짝 붙어 꼼짝하지 않으면 바위에 가려 자신의 체온감지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다.

긴장의 모습이 역력했는데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었다.

수도 관리원 타레미와 다에이가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그 두 사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헨드폰 불빛을 막기 위해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최근기록 화면에 타레미와 다에이 전화번호가 빼곡했는데 그만큼 저격 후 쫓기는 와중에 통화 시도를 많이 했다는 것이었다.

먼저 다에이를 눌렀다.

공작원의 전화는 어떤 상황에 있어도 세 번 이상 신호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네 번째 신호가 가도 받지 않으면 무조건 끊어야 한다.

하지만 권총수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멘트가 나올 때까지 들고 있었다.

이어 타레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사람은 가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목격하고서도 믿지 않고 싶어 할 때가 있다.

권총수가 지금 그러했다.

상황은 자신이 완전히 버려진 카드인데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잔뜩 상체를 구부린 체 중얼 거렸다.

‘진짜 청소 당했단 말이지’

처음에는 분노였지만 이제는 그저 쓴웃음이 나올 만큼 감정은 안정되어 있었다.

‘마흔 초반이라고 했던가.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 하는 모양이군.’

맥보란을 두고 하는 소리다.

그때 헬기소리가 한군데로 집중되었다.

아마 숲속에 처박아버린 지프가 발견된 모양이었다.

퍼퍼펑!

조명탄이 터지면서 인근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지프만 발견됐을 뿐 시신이 없는 것에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되었다.

군견이 동원된 듯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법이나 보법 시전이 불가능하고 엉치 뼈에서부터 목 뒤 경추까지 이어지는 상반신의 뼈가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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