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62화 (262/651)

제262화: 반신반인(半神半人)2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어 보았다.

지퍼를 당기자 눈에 익은 총기 몸통이 눈에 들어왔다.

바렛이다.

정확한 이름은 M82A1-barrett.

미국이 80년대에 만들었는데 아직까지도 가장 분명하고 고장 없는 성능을 보이는 대물 저격총의 대표 주자이다.

보통 장갑차량과 주기해 있는 전투기, 또는 엄폐되어 있는 적의 중화기를 궤멸시키는데 사용된다.

일반 저격총으로는 그러한 것들에게 타격을 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차량이나 헬기등을 공격할 때는 가장 중요한 구동부를 때려야 하는데 움직이는 물체를 정확히 맞춰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개발해 낸 것이 가벼우면서도 웬만한 경장갑차 헬기 정도는 쉽게 찢어버리는 바렛이다.

‘바렛을 보냈다는 건 표적이 매우 단단한 경호벽에 쌓여 있다는 것이겠지’

지이익!

다시 몸통을 가방에 넣고 어깨에 둘러맸다.

권총수는 건물 주위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하고 곧장 담장을 넘어 테헤란의 석양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온 권총수는 총을 살폈다.

10발이 들어간 박스 탄창은 한 개 뿐이다.

그 10발로 반드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였는데 자신이 요 근래 즐겨 사용하는 글록 18이 소음기와 함께 들어 있었다.

권총에 탄창까지 장전하고 소음기를 끼운 뒤 바렛과 나란히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 주스를 꺼내 마시며 탁자 위에 진열하듯 놓인 두 자루 총을 가만 바라보았다.

쭈욱!

주스를 마시는 권총수의 목젖이 크게 오르내린다.

다시 호텔을 옮겼다.

한 호텔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론 증거와 꼬투리를 잡힐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묶은 곳은 플레이스 호텔이었다.

첫날 묵은 팔레스 호텔은 타레미라는 정보원과 접촉하기 위해 CIA가 개입한 숙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이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하고 해결해야 했다.

최소한 타레미와 다에이 모두 자신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접촉은 불가능하다.

이집트 CIA 안가로 가는 비상 연락 또한 권총수와는 완전 끊어졌다.

이쪽에서 연락하지 않으면 누구도 다가올 수 없고 행방 역시 모른다.

이제서야 긴장이 조금 풀린다.

타레미와 다에이가 자신의 작업에 협조자이긴 하지만 팔레스 호텔에 머물 땐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믿는 순간 바보가 된다’

전설적인 영국의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가 한 말이다.

조지 브레이크는 냉전시대 영국의 요란하뉴 기밀 정보를 구소련에 빼돌렸던 이중간첩이다.

블레이크는 영국 MI6에서 근무했으나 마음은 소련에 있었다.

실제로는 소련 공작원이었다. 간첩 활동 당시 그는 동유럽에서 활동하던 서방의 첩보원 500여명의 명단을 소련에 넘겼다.

이 때문에 수많은 서방 첩보원들이 무차별 체포되고 처형을 당했다.

그의 이중간첩 생활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1961년에서야 블레이크가 소련 간첩이라는 것이 발각되었고 영국 법정에서 42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그는 1966년 동료 죄수들의 도움으로 탈옥해 소련으로 넘어갔다.

소련으로 넘어간 블레이크는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러시아 시대까지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테헤란9가 81번지 일대는 고급 아파트 촌이다.

정부 관리들이나 고위 공무원, 또는 군 고위 장성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정문을 드나드는 차량들도 이란 자동차는 구경할 수조차 없고 온통 독일과 일본차였다.

독일과 일본차가 많은 반면 미국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 건 그 만큼 양국 관계가 험악하다는 걸 반증했다.

척!

아파트로 들어오는 렉서스 승용차 한 대를 향해 회색의 근무복을 걸친 경비원이 거수경례를 했다.

차량은 천천히 오른쪽을 따라 들어가더니 지하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지금 막 들어온 렉서스가 멈췄다.

브레이크 등이 꺼지며 시동도 꺼졌다.

벌컹!

시동이 꺼지는 것과 동시에 조수석 문이 밖으로부터 거칠게 열리며 한 남자가 스윽 올라탔다.

뚝!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는 고개를 반쯤 돌리다 말고 갑자기 얼어붙었다.

투툭!

조수석에 올라탄 남자는 차 안에 있는 블랙박스 코드를 뽑아 버리더니 옆에 놓인 작은 서류가방을 열었다.

남자는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서류들을 자세히 살폈다.

대부분 내각회의 때 있었던 각 부처 장관들의 발언록 말고는 다른 서류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반짝!

가방의 지퍼를 잠그려다 눈을 빛내며 바닥을 뒤졌다.

조그만 USB 한 개가 나왔다.

남자는 재빨리 자신의 핸드폰에 작은 코드 하나를 꽂더니 끝에 USB를 연결했다.

티이잉!

로그인이 자동으로 되면서 USB 속 정보가 핸드폰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갔다.

화면에 동그라미가 만들어지며 전송이 끝났다는 말이 나타났고 남자는 코드를 뽑았다.

USB를 다시 가방 속에 넣고 곧장 자신의 핸드폰을 켰다.

이어 조금 전 다운받은 내용을 살피던 남자의 눈이 빛났다.

“오케이!”

이어 블랙박스 영상 코드를 다시 꽂고 운전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윽!

남자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사라졌다.

운전자는 남자가 사라지고 5분 정도 지났을 때 깨어났다.

뭔가 이상한 듯 좌우를 둘러보다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정말 피곤하군.”

운전자는 조수석의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수행비서 메람은 아침 일찍 출근했다.

요즘 하루하루가 숨 가쁘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길어지면서 이란 국민들 생활을 더욱 팍팍해지고 있는 가운데 핵무기 개발만이 이란의 미래를 살린다는 확신 아래 온 나라가 초비상이었다.

이란의 핵 개발은 현재 약 6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하던 수 많은 국가들이 60퍼센트 선을 넘지 못하고 폭격을 당하거나 아니면 발각되어 미국의 제재를 받는다.

남은 건 기폭장치였다.

핵무기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엄청난 난제와 난관이다.

자칫하면 개발 도중 폭발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대재앙을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아홉 시쯤 모습을 드러내는 라흐자르(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특유의 검정색 카프탄(겉옷 위에 걸치는 장삼)과 아바야로 불리는 검정색 모자를 쓰고 일찍 모습을 보인다.

이란의 대통령이 있지만 모든 권력은 하메네이가 쥐고 있다.

대통령은 4년 연임제이고 국회도 있고 사법기관도 있지만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뿐 철저한 신정국가이다.

하메네이는 그 끝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의 힘은 과거 사우디의 국왕과 현 북한의 김정일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다.

메람은 멀찍이 서서 정원을 산책중인 하메네이를 바라보았다.

하메네이가 살고 있는 곳은 테헤란 북쪽을 지나가는 엘부르즈 산기슭 아래 지어진 작은 궁이다.

과거 회교 사원이기도 했지만 팔레비 왕조 때 민간 저택으로 개조되었고 왕조가 몰락하면서 아야툴라(종교 최고 지도자)의 거처가 된 것이다.

호메이니에 이어 2대 지도자인 하메네이가 묵고 있는 것이다.

지이잉!

하메네이가 얘길 하면 받아 적을 수첩과 펜을 들고 서 있던 메람의 핸드폰이 울렸다.

국방군단부라는 글자가 찍혔다.

“여보세요.”

“지금 출발하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메람은 전화를 끊고 재빨리 하메네이에게 걸어갔다.

“국무총장님, 지금 출발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오! 알라후 아크바르.”

하메네이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이스라엘과 미국, 영국의 집요한 방해에 맞서면서 수 많은 과학자들이 국내외에서 살해되거나 실종 되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는 이교도들의 방해인 것이다.

그래도 형제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끼니를 굶어 가면서도 미국의 경제제재에 맞섰다.

부우웅!

하메네이가 순간적으로 끓어 오르는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한 대의 검정색 차량이 다가왔다.

독일에서 직접 주문한 방탄차량 벤틀리이다.

수류탄 정도의 폭발에는 거뜬하다.

펑크가 나도 시속 80킬로의 속도로 한 시간을 달릴 수 있고 연료통은 이중 삼중으로 커버되어 있었다.

물론 유리는 방탄이다.

또한 만약을 위해 하메네이 차량이 지나가면 시내의 모든 교통은 통제되고 멈춘다.

그리고 혁명수비대 정예요원들이 사복차림으로 곳곳에서 눈을 번득인다.

이어 두 대의 승용차와 한 대의 검정색 밴이 또 나타났다.

모두 경호 차량이다.

멀리 테헤란의 명물 아지디 타워가 보이는 10층 건물에 한 사내가 있었다.

건물 옥상이 아닌 10층 창가를 선택한 것은 만에 하나 헬기 경호가 이뤄지면 체크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탈출로였다.

수색 정찰과 요인 암살 전술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목표물 제거이다.

하지만 공격 만큼이나 또 하나 중요한 건 퇴로 확보가 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 국방부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네이비씰이 목표를 무너뜨리는 데까지의 성공률은 80퍼센트 이상이었다.

그러나 적지를 빠져나오면서 대부분 죽고 궤멸하여 온전한 작전 성공률은 60퍼센트를 겨우 넘어섰다.

특수부대라면 공격력은 최강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나 퇴로는 낯선 지역이다.

아무리 인공위성과 무인드론이 발전하여 적진을 촬영하고 그걸 바탕으로 지도가 만들어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항공으로 촬영된 사진일 뿐이다.

실제 지형과 도로망 등에서 큰 차이가 보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를 저격하는 데는 3층 이상은 무리다.

높이 올라갈수록 각도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도를 넓히기 위해 저층 저격이 될 경우 한가지 문제가 따른다.

저층은 총소리 이후 무장병력이 쉽게 들이닥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10층은 또 다르다.

저격과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고장 나도록 해놨다.

아무리 빨라도 10층까지 올라오려면 10분은 걸릴 것이다.

일반인은 몰라도 반박귀진의 고수에게 10분은 세월이다.

더욱이 10층 높이는 권총수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단번에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였다.

반박귀진의 내공이면 27미터에서 30미터는 단번에 내려 올 수 있는 것이다.

미세한 부분까지 계산하여 잡은 장소이다.

저격 각도가 작아지는 것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

조준경을 보던 권총수는 씨익 웃었는데 저격만큼은 자신 있다는 뜻이었다.

마렘의 서류가방에서 발견된 USB에는 하메네이의 스케줄이 들어 있었다.

하메네이 스케줄은 1급 국가 비밀이다.

수행 비서관이 아니면 누구도 모른다.

도로의 차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건 하메네이의 차량이 곧 도착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살 때 대통령이 어딜 가면 30분 전부터 길가에 경찰들이 쫙 깔리면서 교통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CIA에서 받은 정보는 교통이 통제되고 20분을 전후해서 차량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 건물에 대한 혁명수비대의 보안검사는 이틀 전에 끝냈다.

당연히 이상 없다는 사인이 났고 지금 1층에는 두 명의 무장군인이 출입자들을 살피며 관리하고 있을 것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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