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반신반인(半神半人)1
카이로 CIA 안가에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맥보란을 포함한 세 명의 정보원 말고 황금빛 노랑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겼고 실내에도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사내가 보인다.
그는 오늘 랭글리에서 날아온 이번 작전을 총 지휘하는 인물이다.
애칭 R, 본명 아담스 로일, CIA 작전 제 7국장이다.
중동정책을 총괄하고 진두지휘하며 몇 년 전에 있었던 이란 쿠드스군(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지휘관 솔레이마니 참수 작전도 직접 지위했다.
“켜졌습니다.”
많은 컴퓨터와 복잡한 전자 시스템이 설치된 방안에 앉아 있던 맥보란이 소리치자 셔츠차림에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던 아담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벽에 고정된 대형 화면 오른쪽으로 붉은색 신호등이 있었는데 불빛이 깜빡 거리고 있었다.
깜빡이는 불빛은 위성을 통한 특정 신호로 박쥐가 둥지를 안전하게 틀었다는 뜻이다.
‘작전명 벳 헌팅(bat hunting: 박쥐 사냥 )’
박쥐는 밤에만 활동한다.
낮에는 깊은 동굴이나 어둠이 진한 둥지에 매달려 꼼짝하지 않는다.
랭글리에서는 한 사람을 박쥐라고 부른다.
그는 이란의 대통령이 아니면서도 대통령 보다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천상천하 유아독존격인 인물이다.
그를 사냥할 이번 작전의 사냥꾼이 둥지에 안전하게 들어갔다는 이란쪽 정보원의 연락이 불빛으로 온 것이다.
“됐어!”
맥보란은 약간 들뜬 얼굴이었다.
자리(座)를 잘 잡아야 한다.
자리가 불편하면 컨디션이 나빠지고 실력껏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굉장히 기쁜 소식인 것이다.
그러나 아담스는 가타부타 말도 없고 표정도 무뚝뚝했다.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는 사내.
그래서 ‘백색의 칼’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맥보란은 흘끗 아담스를 바라보았는데 때 마침 선글라스를 벗었다.
단순히 선글라스를 벗었을 뿐인데 맥보란은 아담스의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아담스가 긴장이라니?’
오랫동안 아담스를 따르고 그의 지휘를 받았지만 선글라스를 벗은 걸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담스의 선글라스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정 한 가지가 있다.
일반 사람들과 달리 아담스의 눈동자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마주보고 있노라면 이쪽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처음부터 눈동자가 통제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사고의 후유증이었다.
정보원 새내기 시절 홍콩에서 중국의 산업스파이 한 명을 쫓고 있었다.
미국 주재 중국 대사관 직원 한 명이 미국의 듀퐁사가 개발하고 있는 SS2로 불리는 첨단 플라스틱 개발 기술을 빼돌린 것이다.
SS2는 일반 플라스틱과 똑같은 기능을 갖고 있지만 바람과 햇볕에 잘 썩는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5톤 트럭이 그대로 쳐버린 것이다.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고 의식을 차렸으나 문제는 눈이 이상해져 버렸다.
본인이 보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공기방울처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더욱 의료진들을 놀라게 한 건 눈동자가 그토록 움직이는데도 전혀 어지럽거나 하지 않다는 것이다.
눈동자를 바로 잡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끝내 어떤 치료에도 효과가 없었고 그래서 지금은 상대가 불편해 할까봐 항상 선글라스를 낀다.
그런데 언젠가 그의 눈이 딱 한 번 멈췄다.
맥보란은 깜짝 놀랐는데 아담스의 입에서 기상천외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긴장하면 멈춘다네’
선글라스를 벗은 아담스의 눈동자가 정상인처럼 움직이고 있다.
배짱 좋기로 소문난 아담스가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수비대장 솔레이마니를 죽여 놓고 축배를 들던 사람이다.
하긴 솔레이마니 사건에 비하면 이번 일은 몇 배나 더 크고 무거운 작전이다.
성공하면 중동의 지도가 바뀔 수도 있다.
맥보란은 어금니를 물었다.
향후 일어날 국제적 파장은 차후 문제다.
일단은 성공해야 한다.
권총수는 호텔방에 틀어박혔다.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보원들의 시스템은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영국의 MI6도 그렇고 CIA도 그렇다.
지금 같은 경우 현지인 타레미가 공항 마중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그를 통해 여러 가지 일을 맡기거나 자신을 지원하도록 하면 편할 터인데 그렇지 않았다.
마중 나온 사람 다르고, 현지에서 지원하는 사람 또 다르다.
또한 타레미라는 사람과 곧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서로 모른다.
타레미가 이란 당국의 보안망에 걸려도 전화를 걸어올 사람의 신변은 보호하기 위한 정보국 특유의 꼬리 자르기식의 조직망이긴 하지만 어쩔 때는 매우 답답함을 느낀다.
지잉!
전화가 걸려왔다.
찍힌 번호가 낯설다.
“반갑습니다. 다에이.”
상대 이름인지 CIA가 지어준 별칭인지는 모른다.
“저녁을 어떻게 할까요. 나야 좋습니다. 오케이.”
핸드폰을 끊고 일어난 권총수는 객실 안을 한번 휘둘러 본 뒤 탁자 위에 올려진 클레오파트라 담배 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란으로 오면서 말보로는 아쉽지만 자제해야 한다.
미국 담배를 피운다는 건 자살 행위다.
탁!
객실 문이 닫혔다.
테헤란 4가 78번지 일대는 식당과 차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들이 즐비하다.
권총수는 ‘싸마아우 라일라(밤하늘)’란 간판이 걸린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랍식당이다.
다에이가 잡은 곳인데 그는 권총수를 진짜 이집트 사람으로 알고 있다.
물론 권총수의 아랍어 실력은 완벽했기 때문에 언어로 간파당할 일은 없었다.
다에이는 샤프란 향을 뿌린 케밥을 시켰고, 권총수는 양고기와 콩을 섞어 끓인 반은 밥이고 반은 국인 수프류를 주문했다.
두 사람은 평소 잘 알고 지낸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나눴다.
1시간여에 걸친 식사를 끝내고 두 사람은 인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숍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앉았다.
두 사람은 구석진 곳에 있는 빈자리에 앉았고 다에이는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자신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아직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지만 권총수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는데 다에이에게서 기름 냄새가 났다.
그건 기름을 만지는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의미다.
기름을 만지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므로 콕 집어 낼 수는 없지만 블루칼라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면서 권총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서 만난 타레미도 수도관리원이라는 하위직 공무원이고 다에이도 노동자다.
둘 모두에게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가난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종교적 신심이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직접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포섭된 공작원(고정간첩)에게는 여러 가지 형태와 모양으로 경제적 지원이 이뤄진다.
하지만 절대 주위 사람들의 눈에 띄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다니는 직장의 월급 수준은 뻔한데 갑자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면 금세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에이가 두 개의 커피잔을 가져와 놓고 앉았다.
권총수는 따뜻한 커피를 마셨는데 다에이가 말했다.
“평소 홍차를 즐겨 마시는데 이집트인들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해서 말입니다.”
자신을 생각하여 커피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웃음으로 감사함을 전했다.
“세욜라 7번지 아할빌딩 2층으로 가보시죠.”
한참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다에이가 불쑥 던지듯 말했다.
그리고 10여분 더 앉아 애기를 나눈 뒤 다에이는 떠났다.
권총수는 그가 지하철을 타고 떠나는 걸 본 뒤 자신도 다음번에 오는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은 퇴근 시간인데도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권총수는 지하철 벽에 걸린 노선을 자세히 살피다 세욜라 역을 발견했다.
아직 그곳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사람이 있는 건지 아니면 물건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곳에 돌아 올 수 없는 매복이나 함정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없이 현지 정보원의 말만 믿고 움직였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빠져버린 공작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자신같은 경우 CIA 정식 요원이 아니다.
일이 잘못되면 미국 쪽에서는 오리발 내밀기에 무척 편한 인물인 것이다.
CIA와 손을 잡고 일하지만 생존문제는 철저히 자기 스스로가 해결하고 대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20여분을 달려 다음 정차할 역이 세욜라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문 쪽으로 이동했다.
노동자 차림의 남루한 행색의 두 사내가 좌우로 붙는다.
권총수는 꼼짝하지 않았다.
두 사내에게서는 어떤 불순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권총수의 감각을 속일 정도라면 이들은 강호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한 고수일 것이다.
드르륵!
기차가 멎고 권총수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권총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지하철 곳곳은 깨끗했고 여기저기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두 번째 부터는 계단을 걸어야 했다.
20여개의 계단을 올라가자 밖이다.
차량 통행이 많긴 했지만 주위 건물들이 오래되었고 신호를 무시하고 차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멀지 않은 곳에 바자르 재래시장이 있었다.
권총수는 이정표를 살피다 가로등 기둥에 걸린 화살표 한 개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세욜라 5번지라는 화살표 방향이었다.
5번지이므로 계속 따라가면 나올 것이다.
권총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감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강호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해도 최첨단 무기에는 절대 정면승부가 되지 않는다.
총알만 하더라도 워낙 빨라 사실 피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총알을 느끼고 호신강기를 끌어 올리면 늦다.
일반인처럼 즉사는 하지 않으나 타격은 피하지 못하므로 매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가로등 기둥에 붙은 세욜라 6번지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그리고 10여분 정도 걸어가자 마침내 세욜라 7번지 간판이 나타났고 권총수는 걸음을 세웠다.
“말 좀 묻겠습니다. 아할빌딩이 어딥니까?”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었다.
행인은 한쪽을 가리켰다.
“저 빌딩이오. 저기 짓다 만 건물이 아할빌딩이오.”
몇 층을 짓는지는 몰라도 공사는 9층에서 멈춰 있었다.
타워 크레인 두 대가 서 있는 것을 보면 조만간 공사를 재개할 것처럼 보였지만 일하는 노동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자금 문제로 공사가 중단 됐는데 곧 다시 시작한다고 들었소.”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행인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횡단보도를 건너 건물로 다가갔다.
2미터 가까운 높이로 양철 담벼락이 세워져 있었다.
출입구라는 글씨가 보였지만 자물쇠로 잠겨 있어 외부인 출입을 막았다.
밑으로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권총수는 주위를 살피다 인적이 눈에 띄지 않자 가볍게 솟구쳐 올라 담장을 넘어갔다.
공사중단이 상당히 오래된 듯 바닥에는 잡초가 제법 자라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일 층 로비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 들어가자 오른쪽으로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걸어 2층에 올라선 권총수는 칸칸이 나눠진 건물들 사이를 훑었다.
공사 자재들이 쌓여있고 방치되어 있어 자세히 살펴야 했다.
건물 끝 마지막 공간으로 들어선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카키색 여행가방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누구나 메고 다닐 수 있는 크기 정도였는데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시한폭탄이라면 초침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들을 수 있다.
콤포지션 종류의 폭약이라고 해도 이정도 지척이면 충분히 후각이 체크를 하는데 오직 비린내, 즉 총기에서 맡아지는 그런 쇠비린내 말고는 다른 냄새는 없다.
권총수는 느릿하게 쭈그리고 앉았다.
감각으로는 이상 없었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눈으로 확인까지 해야 안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