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테헤란으로(2)
권총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최고 지도자? 대통령이 아니고?”
“하메네이.”
“말도 안 돼.”
비렌드라가 거칠게 말했다.
“그곳이 어딘 줄 알아? 건드릴 대상이 있고 절대 안 되는 표적이 있어. 솔레이마니 사건 몰라?”
오민철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19년인가 20년에 미국에서 무인기를 이용해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죽였잖아. 그 일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고.”
오민철의 표정이 하얗게 굳었다.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런데 이란 대통령도 아닌 이슬람 최고 지도자를 없애봐. 그들이 가만있을 것 같냐고?”
“돈 받았냐?”
오민철이 묻자 권총수가 피식 웃었다.
무슨 돈이냐는 뜻이다.
“언제 가는데?”
“내일쯤 어느 정도의 일정이 올 거야.”
“돈도 받지 않고 이 무시무시한 일을 한다는 거야. 회사와는 얘기 됐어?”
“회사는 알고 있을 걸.”
“반대 안 해?”
나카야마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반대 할 수 있겠어? 말이 CIA와 거래 관계이지 하청업체인데 원청업체 비위를 무슨 수로 건드려.”
“하지마!”
오민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반대야.”
이번에는 비렌드라까지 걸고 나섰다.
두 사람이 반대를 하자 나카야마도 나섰다.
“하지마, 내가 봐도 너무 위험한데.”
“약속은 지켜야지. 걱정 마 살아서 돌아올 자신 있으니까.”
“총수, 이건 어마어마한 일이야. 그가 암살되면 중동은 불바다가 된다고, 이란은 단번에 미국과 이스라엘 짓으로 규정하여 미사일을 쏘아 댈 것이고, 그럼 이스라엘이 가만있겠어? 이란 핵개발을 막기 위해 여러 명의 과학자를 암살한 그들이야. 때는 이때다 싶어 아예 작정하고 폭격을 할 텐데.”
권총수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중동 전체, 아니 이슬람국가 모두가 벌떼처럼 일어날거야. 테러는 더욱 확산되고, 그야말로 지구촌 곳곳이 시끄러워 질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얘기 했잖아? 그들과 약속을 했다고.”
“약속은 깨지라고 있다면서?”
오민철이 끼어들었다.
권총수는 오민철과 바렌드라를 바라보며 빙긋 웃더니 그만 자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권총수가 방을 나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약속을 어떻게 했기에.”
오민철이 불만스런 표정을 했다.
“아아!”
그때 비렌드라가 뭔가를 깨달은 듯 비명 같은 신음을 터뜨렸다.
“아아아!”
“비렌드라?”
나카야마가 왜 그러느냐고 바라보았다.
비렌드라 표정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는데 매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 때문이야.”
비렌드라는 말을 이었다.
“날 아프카니스탄에서 이집트 병원까지 옮긴 것도 CIA고 카이로 대학병원 최고 전문의들이 내 몸을 살핀 것도 CIA야.”
“엇, 그렇다면 가만.”
오민철도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날 찾는데 CIA가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들과 거래를 했단 말 아냐?”
혹시 자세한 소식 아는 것 있냐는 듯 나카야마를 바라보았다.
나카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CIA 도움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런 약속을 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는데.”
“틀림없어. 캡틴은 무척 영리한 사람이야. 돈을 준다고 아무런 일이나 덥석 맡는 사람 아니라고.”
“그럼 뭐야. 나 때문에 총수가 이란으로 들어간다는 거야. 이런 쳐죽일.”
빠악!
갑자기 오민철이 벽에 머리를 박아 버렸다.
“나 때문 아냐. 나 때문, 나 때문.”
퍼퍼퍽!
계속 머리를 찍으며 중얼 거렸다.
“차라리 죽지. 죽어버리지 괜히 살아가지고 애먼 총수 잡냐. 으이그 오민철 이 병신아.”
“그만해.”
나카야마가 오민철을 잡아 당겼다.
오민철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미안하다면 한 가지 뿐이야.”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같이 들어가는 거야. 이란으로.”
오민철이 비렌드라를 돌아보았다.
“눈, 어때? 난 들어 갈거야.”
“구르카족은 은혜는 반드시 갚아.”
“나도 가야겠어. 나 역시 캡틴 아니었으면 죽었어.”
셋 모두 큰 빚을 졌다.
전장을 누비는 용병들에게 목숨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할 일이고, 그런 면에서 권총수가 지옥으로 간다고 하면 따라 들어가야 했다.
권총수는 다시 맥보란과 만났다.
길가에 있는 평범한 커피숍이었다.
오후 3시의 커피숍은 조용했고 손님이라고는 권총수와 맥보란 말고 구레나룻을 기른 두 사내가 전부였다
맥보란은 한 장의 사진을 내 밀었다.
권총수는 사진을 받아 들었는데 남자는 아랍계 사내였다.
대략 서른 중반으로 보였고 차림새는 물론 이모저모 뜯어 살펴도 특징이라고는 그다지 없었다.
“이름은 타레미요. 서른다섯 살이고 수도 관리원입니다.”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사진을 다시 건네주었다.
“기억 할 수 있겠소?”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얼굴 확인이 어려운 종족이 아랍계요. 내 판단이 아니라 랭글리의 연구 결과요.”
얼굴이 헷갈릴 수 있으니 각별히 기억하라는 뜻이다.
스윽!
맥보란이 여권을 내밀었다.
어제 변체환용을 펼친 얼굴에 콧수염을 붙인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벌써 여권이 나온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여권을 받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완전한 아랍계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카림, 서른 일곱 살이며, 이집트 자동차 부품업체 카스 자동차 생산 1팀장?”
“카스 자동차에 정식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으니 걱정 할 건 없습니다. 입국 목적은 관광입니다.”
권총수는 알았다는 듯 여권을 자세히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리 말씀하는데.”
맥보란이 뜸을 들이자 권총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일행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일은 철저히 단독으로 진행 하셔야 합니다.”
권총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건 이유를 설명해 보라는 뜻이었다.
“캡틴 주위에 있는 분들 면면히 최강의 용병들이라는 걸 인정 합니다. 그분들이 힘을 보태면 일이 수월해질지 모르겠으나 반면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회사(CIA) 입장에서는 죽는 건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생포라도 된다면 고문과정에서 비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권총수의 표정이 굳었다.
죽는 건 상관없지만 비밀 누설 위험이 크다는 대목이 신경을 거슬린 것이다.
우리 팀원들을 뭘로 보고 그 따위 얘길 지껄이느냐며 한 마디 하려다 눌러 참는다.
맥보란의 말이 듣기는 불쾌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고 고맙소.”
애초부터 그들을 데려갈 마음은 없었다.
분명 따라 나서겠다고 하겠지만 이런 일은 혼자가 편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그들은 짐이 될 뿐이다.
단지 맥보란의 너무 솔직한 말이 잠깐 감정을 거슬렸을 뿐이었다.
“그만 가봐야겠소.”
권총수가 일어서려고 하자 맥보란이 한 마디 던졌다.
“일의 후유증을 생각해 봤습니까? 상대는 이란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절대적인 인물입니다.”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난 그런 것 모릅니다. 용병은 의뢰를 받으면 내용따라 이행하면 되는 것이죠. 용병이 왜? 라는 질문을 한다면 가치가 떨어지죠. 좋아할 회사도 없을 테고, 내가 실행한 일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어떤 폭풍을 몰고 온다고 해도 관심 없습니다. 그 또한 역사일 테니까.”
권총수는 천천히 커피숍을 걸어 나갔다.
한참 후 커피 잔을 들어 올린 맥보란이 중얼 거렸다.
“그 또한 역사일 뿐이다. 능력만 프로인줄 알았는데 가치관도 프로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커피가 무척 달다.
***
권총수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행한 이들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공기는 냉랭했고 각자 따로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권총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절대 동행할 수 없다고 하자 어제부터 일체 말이 없다.
“우린 따로 갈게.”
오민철이 다가와 말했다.
“어딜?”
“너 상관없이 우리끼리 간다고.”
“이란에 뭐 하러, 민주주의 지수가 사우디 바로 턱밑이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여자들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나라를 무슨 볼일로 가냐고?”
“그냥, 내 맘이야.”
오민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테헤란 행 에미레이트 항공기 출발소식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갔다 올게.”
오래 있어봤자 시달릴 일 밖에 없다.
세 사람은 사라지는 권총수를 멀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우리가 따라가 봤자 걸리적 거리기만 하지.”
오민철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한숨 토하듯 말했다.
“그렇잖아. 은밀할수록 성공률이 높은 일인데 아무리 우리가 프로라고 해도 총수만큼 하겠어.”
비렌드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틀린 말은 아냐. 단순히 따라가는 것만이 캡틴에 대한 고마움을 갚는 길은 아니지.”
“뭐 좋은 생각 있어?”
나카야마가 눈을 빛냈다.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하는 것 말고 더 있어?”
비렌드라가 앞장서 걸어갔고 오민철과 나카야마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뒤를 따라갔다.
육중한 비행기 동체가 하늘 높이 치솟는 걸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세 사람 눈에는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함뿐이었다.
테헤란이다.
시아파 종주국으로 불리며 탈레반 다음으로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는 국가다.
최소한 외부인의 눈에 보이는 이란의 인권 정책, 특히 여성들을 향한 차별은 거의 짐승 수준이다.
또한 미국과 가장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으며 북한과 더불어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는다.
이란도 자력갱생을 외치며 악착같이 독자노선을 걷고 있었다.
“목적이 뭐요?”
입국 심사관의 눈빛이 날카롭다.
여권에 적힌 이름은 카림이며 이집트 카스 자동차 부품 공장 생산 1팀장이다.
“시아파 신자가 시아파 종주국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즉 성지순례 차원의 관광이라는 뜻이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알라후 아크바르.”
카림이란 사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여권을 받아 심사대를 지나갔다.
권총수는 속옷 몇 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많은 환영객들이 나와 기다렸는데 스윽 한번 훑어 본 권총수 눈이 한곳에서 멈췄다.
그 남자다.
구레나룻을 다듬지 않아 밤송이처럼 사방으로 뻗은 어수룩한 행색의 사내는 사진으로 봤던 타레미가 분명했다.
서른다섯 살이라고 했는데 나이는 좀 더 들어보였다.
권총수를 발견한 듯 사내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카림?”
“타레미??
두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가볍게 볼을 맞추는 무슬림식 인사를 했다.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타레미가 가방을 받아 들려고 하자 권총수는 가볍다면서 웃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청사를 걸어갔는데 의외로 타레미는 쉽게 접근해왔다.
권총수가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 말을 했는데도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일부러 과장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잘 웃는다는 건 주위로부터 경계를 받지 않는다.
‘CIA가 고첩 하나는 제대로 골랐군’
고정간첩(정보원)은 밝을수록 좋다.
주위 사람들과의 친화력을 포섭 제일조건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엔진소리가 시끄럽긴 했지만 승차감도 좋고 실내 공간도 넓었다.
타레미가 운전하는 차는 ‘이란코드로’ 불리는 이란에서 생산해 내는 자국 승용차이다.
이란의 자동차 기술은 아직 세계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국민들에게는 인기다.
단지 흠이라면 배기가스가 많다는 것인데 테헤란의 스모그 주범이기도 하다.
차는 30분 만에 팔레스 호텔 앞에 도착했다.
타레미는 권총수를 내려 주며 환하게 웃었다.
“고맙소!”
권총수는 떠나는 타레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뒤 호텔로 걸어 들어갔다.
미행자는 없었다.
혹여 누군가 멀리서 지켜보더라도 마중을 나간 지인이 호텔까지 태워다 준 것 정도로 보일 것이다.
쨍!
권총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