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9화 (259/651)

제259화: 테헤란으로(1)

사무실은 조용했다.

모두가 침묵한다는 건 뾰쪽한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전화합시다. 이십 년만의 가족여행이라는걸 생각한다면 전화기 들기가 거북하지만 워낙 사태가 심각하잖습니까? 우리 회사 매출의 약 20프로가 사라졌습니다. 일반 기업 같으면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어야 할 만큼 큰 사태입니다.”

쉴튼의 말에 리네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네커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어금니를 물고 핸드폰을 들었다.

1번을 길게 눌렀고 잠시 후 전화기속에서 스톤스 회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뭔 일인가?”

“신문 보셨습니까?”

“여행 중에는 신문 뉴스 일절 보지 않네.”

리네커는 길게 한숨을 내 쉬며 사우디 철수 얘기를 했다.

순간 스톤스 회장이 침묵했다.

“회장님!”

“바로 가지.”

“네? 여행은 어찌하고?!”

“모두 어른들이야. 나 없다고 길을 잃을 것도 아니고, 마누라는 나보다 배운 것도 더 많아.”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뭐라고 합니까? 바로 오신다는 겁니까?”

“예! 곧장 오겠다는군요.”

“하긴 이 상황에서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여행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

쉴튼이 중얼 거렸다.

맥보란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권총수가 다가가자 맥보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악수 한 번 하죠.”

두 사람은 손을 굳게 잡았는데 맥보란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웃었다.

“오늘따라 캡틴의 손이 무척 따뜻합니다.”

맥보란의 덕담이었다.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멕시코 마약소굴로 뛰어든 당신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다.

웨이터가 다가오자 맥보란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맥보란이 즐겨 다니는 단골 레스토랑으로 몇 번 와본 적이 있는데 냄새가 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비렌드라씨 건강은 어떻습니까?”

“좋아요. 넉넉잡고 20일에서 한 달 정도면 완전 회복 될 것 같습니다.”

“병원비까지 대신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그런 얘기하기 위해 마주 앉은 것 아니잖습니까?”

그런 말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는 뜻이었다.

권총수는 레스토랑 안을 스윽 휘둘러보았다.

저녁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아차, 축하드립니다.”

권총수는 깜빡 잊을 뻔 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맥보란이 승진한 것이다.

직함은 여전히 중동지역 팀장이지만 민간 회사로 치면 과장급에서 차장급으로 올라선 것이다.

“캡틴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런가요?”

“내가 부탁한 건 캡틴이 모두 들어주었고 내 체면을 세워 주었습니다. 아마 그런 면이 진급하는데 큰 역할을 한 모양입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처음 맥보란을 만났을 때 그는 칼 같은 사람이었다.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 저돌성을 보였으나 이제는 흔히 말하듯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일 줄 안다.

자신이 똑똑해서 모든 것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주위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식사가 나왔고 두 사람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났고 홍차가 나왔다.

느끼한 속을 달래는 데는 홍차만한 것도 없다.

권총수는 홍차에서 숭늉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건 홍차가 제대로 발효되었다는 뜻이었는데 차를 반쯤 마셨을 때 맥보란이 권총수가 즐겨 피우는 말보로 레드 한 갑을 내밀었다.

아직 뜯지도 않은 새것이었다.

그런데 즐겨피는 말보로 레드인데도 권총수의 표정이 가볍게 변했다.

맥보란이 건네준 담배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제한이 있소?”

“무제한입니다.”

툭!

담배갑을 두르고 있는 금색 띠를 떼어내고 뚜껑을 열어 한 개비를 꺼낸다.

코 끝에 담배 냄새를 맡아 본 뒤 웃으며 말했다.

“잘 피우겠소.”

권총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을 빠져 나왔다.

맥보란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중얼 거렸다.

‘야훼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에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잡아떼며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야훼께서는 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고 꾸짖으셨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맥보란은 느릿하게 홍차 잔을 들어 올렸다.

흰색의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다리위에 멈춰 섰다.

다리 아래로는 파랗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은 애매한 색깔의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나일강이다.

문이 열리고 권총수가 내렸다.

양 팔꿈치를 다리 난간 위에 올리고 기댄 권총수는 한참동안 흘러가는 다리 아래 강물을 바라보았다.

스윽!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맥보란으로부터 받은 말보로 레드를 꺼냈다.

권총수는 한동안 말보로를 바라보더니 담배를 한 개비씩 꺼내 살피며 나일강 위로 버리기 시작했다.

꺼내 무슨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하나하나 강물에 떨어뜨렸다.

이윽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한 개 남은 담배를 한참 바라보던 권총수는 또 다시 꺼내 살폈지만 아무 이상이 없어 강으로 버렸다.

20개피 담배를 모두 버렸다.

멈칫!

빈 담배갑을 들여다보던 권총수 눈이 빛났다.

권총수는 담배갑에 들어 있는 은박지를 꺼내 평평하게 펼쳤다.

은박지에는 누군가의 펜글씨가 쓰여 있었다.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Ali Hosseini Khamenei)’

권총수는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하며 몇 번을 중얼거렸다.

사람이름 같기도 하고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을 떠올리기도 했다.

글씨를 외우듯 한참을 바라본 권총수는 은박지를 찢어 나일강으로 버렸다.

갈기갈기 찢긴 은박지는 하얀 꽃잎처럼 강물위로 떨어졌다.

물 위에 떠가는 은박지 조각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직도 그 사람과 있는 거야?‘

오민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받아 적어.”

“잠깐!”

메모지와 펜을 준비하는 듯 잠시 조용하더니 다시 오민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알리 그리고 뭐?”

“호세인 하메네이.”

“호세인 하메네이,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던지 아니면 FBI사이트에 들어가 세계테러조직 현황 파일을 한 번 살펴봐.”

“오케이.”

전화가 끊어지고 권총수는 차를 끌고 다리를 건넜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골목은 낮의 잔해들인 쓰레기들로 지저분했다.

노랑색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가 빗자루로 쓰레기를 쓸어 검정색 봉지에 담고 있었다.

쓰레기를 가득 채운 검정색 봉지는 하나둘 늘어나 어느새 다섯 개가 되었고 청소부는 길가에 주차해 있는 포드 익스플로러 근처까지 다가왔다.

팔랑!

바람에 쓸어 모아 놓은 종이조각 한 개가 포드 익스플로러 근처로 굴러가자 다가온 청소부는 허리를 숙여 종이를 줍더니 유리가 내려진 조수석으로 버리듯 집어넣어 버렸다.

이어 청소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골목을 쓸었고 잠시 후 쓰레기차가 나타나 가득 담아 놓은 쓰레기 봉지들을 싣고 떠났다.

골목은 다시 조용해 졌다.

그렇게 20여분쯤 흐르자 포드 익스플로러가 시동을 걸더니 골목을 벗어났다.

포드 익스플로러는 길가에 멈췄다.

카이로 아인샴스 지역에 위치한 허름한 2층 건물 앞이었다.

사방은 어둡고 차에서 내린 권총수가 굳게 닫힌 대문의 벨을 누르자 안으로부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권총수는 대문을 들어섰는데 15개의 돌계단이 놓여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자 작은 정원이 가꾸어진 아담한 집이 나타났다.

1층은 지금은 셔터가 내려졌지만 낮에는 문을 열고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작은 기념품 가게가 운영되고 있었다.

즉 1층은 가게이고 2층은 정원이 딸린 집이었다.

권총수는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민철과 나카야마는 텔레비전으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유명한 이집트 선수가 뛰고 있어 자주 중계를 해주었다.

“눈형은?”

권총수는 히말라야 눈 사나이라고 하여 비렌드라를 그렇게 불렀다.

“운기조식!”

권총수는 슬며시 안방문을 열었는데 방 가운데 비렌드라가 결가부좌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문을 닫아주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이곳은 맥보란이 소개해준 주택으로 CIA의 카이로 안가 중 한 곳이다.

1층 장사꾼도 CIA요원이다.

“카하! 아깝다.”

오민철이 인상을 쓰며 한숨을 쉬었다.

“임마 거기서 바로 때렸어야지 왜 접냐고.”

공격이 한 번 더 수비를 제치려다 빼앗긴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화면위에 인저리 타임 +5라는 숫자를 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청소부로 위장한 CIA요원이 차안으로 넣어준 종이다.

쪼아악!

종이는 여러번 겹쳐져 있었다.

‘타레미’

그리고 밑에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권총수는 주소를 외운 뒤 라이터 불을 켜서 종이를 태워 버렸다.

그때 중계가 끝난 듯 문을 열고 들어오던 오민철이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아이씨 놀랬잖아.”

불은 급속히 잦아들고 권총수는 재떨이에 타는 종이를 버렸다.

드르륵!

오민철이 종이 탄 냄새와 연기를 빼내기 위해 안쪽 창문을 열었다.

“뭘 태운거야?”

“알아봤어?”

대답 대신 질문을 하자 오민철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뭐가?”

“여러 곳에서 찾아봤고, 가르쳐준 FBI 사이트까지 참고했는데, 사람이야.”

“누군데?”

“이란의 라흐바르(최고 지도자).”

팟!

권총수 눈이 번쩍 하자 오민철이 물었다.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가 무슨 뜻인데 그래? 그냥 사람 이름 아냐?”

권총수는 방 한 쪽에 있는 컴퓨터를 켜고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종교적 지명도 나오고, 사막에 사는 잎사귀 없는 풀이름이기도 했지만 가장 많이 검색 된 것이 한 사람이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다.

이란은 신정국가이기 때문에 라흐바르, 즉 최고 지도자가 대통령보다 더 높은 실질적인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

외국과의 조약이나 대화에 관한 서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이란을 통치하는 건 라흐바르 인 것이다.

이란의 입법, 사법, 행정을 틀어쥐고 있으니, 그에 비하면 이란 대통령의 권한은 보잘 것 없는 것이다.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최고 지도자에 오른 호메이니에 이어 1989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이란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피식!

한참 동안 화면을 보고 있던 권총수가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군. 하긴 그들의 도움이 결코 값싼 것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

“뭔 소린데?”

오민철은 여전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때 나카야마와 운기조식이 끝난 듯 비렌드라까지 들어왔다.

방안의 분위기가 묘하다는 걸 눈치 챈 나캬아마 오민철을 보며 무슨 일이냐는 신호를 보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창밖으로 길게 연기를 내 뿜었지만 바람에 실려 다시 방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렇게 등을 돌리고 몇 모금 빨던 권총수가 담배를 물고 돌아섰다.

세 사람의 눈이 약간 긴장해 있는데 권총수를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며 한 템 포 죽이는 저 행동이 무엇을 예고하는지 대충은 아는 것이다.

“랭글리에서 하청이 하나 들어왔어.”

“어떤 것?”

오민철이 다그치듯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을 죽여 달라는 거지.”

“억!”

“끄허헉!”

오민철과 나카야마가 소스라쳤다.

하지만 비렌드라는 아직 소식을 모르는 듯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란 최고 지도자를 없애 달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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