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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8화 (258/651)

제258화: 히말라야 사나이(3)

권총수는 원무과에 있었다.

비렌드라의 치료비 계산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한참 컴퓨터로 작업을 하던 남자직원이 조금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52만 파운드입니다.”

권총수는 이집트 파운드를 한화로 계산해 보았다.

대략 3,200만원이다.

권총수는 지체 않고 자신의 카드를 꺼내 주면서 한마디 물었다.

“KAS에서는 치료비에 대한 어떤 얘기도 없었습니까?”

“전혀.”

남자는 아무런 얘기도 없었다면서 카드를 기계에 꽂았다.

권총수는 덤덤한 얼굴로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영수증과 카드를 받아든 권총수는 원무과를 나와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딸칵!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사색하듯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만 피우던 권총수의 어금니가 단단하게 물렸다.

부욱!

담뱃불을 끄고 휴지통에 꽁초를 버린 권총수는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왕자님 캡틴입니다.”

“오우 캡틴 이게 얼마만입니까? 얼마전 사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물론 아버님께서는 쉽게 세상을 떠날 사람이 아니라면서 걱정하지 않는 듯 했지만 여기저기 알아보더군요.”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지금 어딥니까?”

“카이로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사흘 됐죠.”

“멕시코 소식 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전 왕자이자 현 대통령인 파흐드의 아들 몰나르였다.

“KAS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 규모를 알 수 있을까요?”

“필요하다면 당장 정리하여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권총수는 자신의 메일 주소를 찍어 보내 주었다.

권총수가 주소를 보내고 났을 때 오민철과 나카야마 비렌드라가 병원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걸어오는 비렌드라를 보니 몸 상태가 백프로는 아니지만 꾸준히 재활하면 회복될 것으로 보였다.

“병원비를 왜 캡틴이 냈지?”

비렌드라가 말했다.

“우선 냈을 뿐이야. 곧 돌려받을 거야.”

“당연히 돌려줘야지. 계좌번호 적어줘. 바로 입금할 테니까.”

비렌드라는 자신에게 돌려받는다는 말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활동하는데는 큰 불편이 없지만 일단 나카야마가 같이 생활하면서 돌보기로 했다.

나카야마 역시 힐튼호텔에 투숙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사우디에서 보낸 메일은 벌써 도착해 있었다.

메일 내용을 쭈욱 훑고 있을 때 오민철이 나타났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데? 내가 봐도 되지?”

대답도 듣지 않고 어깨너머로 메일을 보던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이거 KAS의 사우디 공사내역이잖아.”

용병시장에서 공사란 곧 작전이나 경비용역을 맡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많이 쳐낸 걸로 알고 있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많은 규모가 남아 있군.”

“그땐 마음이 약했어. 적당한 선에서 내가 발을 빼기로 한거야. 그렇다고 원수 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파흐드 왕자가 단호해서 내가 웃으며 말렸어.”

당시 사우디에서 모조리 철수시켜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비록 계약을 맺은 용병이지만 자신이 RPG를 맞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을 때 KAS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사막의 흑새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회사의 태도에 모두가 분노하면서 항의했지만 런던으로부터는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 쿠데타가 완성되었고 왕자 몰나르까지 구출하면서 주도권은 권총수에게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나카야마에 이어 비렌드라까지 회사가 취한 조치들을 보면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야비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가만 둘 수가 없어.”

“누가 널 야비하다고 욕해, 욕하는 놈 데려와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오민철이 눈을 부릅떴다.

“KAS가 사우디에서 물러난다고 망하기야 하겠냐마는 타격은 크겠지. 누가 뭐라고 해도 중동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니까.”

현재 미국의 돈이 가장 많이 뿌려지는 곳이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이다.

반면 사우디는 자신들이 달러를 투입해 자산을 지키고 있었다.

특히 군사고문단으로 SAS 출신 KAS 용병들 이백 여명이 들어와 있고 굵직한 석유기지와 국가 기간산업 방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었다.

모든 용병회사들이 사우디를 선호하는 이유는 인명피해가 적고 막대한 전투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장 장갑차 한 대만 운용해도 들어가는 경비가 적지 않다.

거기에 사우디의 후한 베팅이다.

여타 중동의 어떤 나라보다 공사비가 높기 때문에 민간 보안업체들 입장에서는 가장 들어가고 싶은 나라였다.

권총수가 눈을 빛내며 핸드폰을 들었다.

“왕자님, 부탁하나 들어주시죠.”

“좋아요. 말씀 하세요. 캡틴의 일이 곧 우리 일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들어 드려야죠.”

“두 번 다시 KAS가 사우디 땅을 밟지 못하도록 조치해 주기 바랍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당장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대통령각하께 안부 전해 주십시오.”

권총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는 두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스윽!

누군가 다가와 섰다.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이 비렌드라다.

“누워있지.”

비렌드라는 권총수와 나란히 서서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동안 죽음 따위가 찾아오면 그냥 죽는 거지 뭐 하는 정도로 생각 했거든.”

비렌드라는 그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무섭더라고, AK소총을 마치 막대기처럼 휘둘렀어. 얼마나 빠른지 번쩍하면 동료의 머리가 깨져버렸어. 내가 백기를 들어 항복의사를 밝혔는데도 소용없더라고.”

권총수의 눈이 고요해졌다.

너무 두들겨 맞았다.

퉁퉁 부은 몸으로 아롱바의 손에 죽어가고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비렌드라는 눈물을 흘렸다.

동료들이 사방으로 도망 쳤으나 소용없었다.

워낙 빨랐고 한 번 몸이 떠올랐다 싶으면 정확하게 한 명의 동료가 비명을 지르며 세상을 떠났다.

30여명 가까운 용병들이 완전히 떼죽음을 당했다.

소대장으로서 부하들이 죽어가는 걸 힘없이 보고 있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비렌드라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나만 죽이고 동료들을 살려달라고 사정 했지만 아롱바는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저 놈’

어느 한순간 비렌드라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롱바는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검법을 실험해보고 있는 것이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말해, 총수!”

“어떻게 움직였죠. 그가 휘두른 AK소총 말입니다?”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으흠!”

비렌드라는 그날을 떠올리는 듯 눈을 좁혔다.

“직선이었어. 일자로 뻗었지. 그런데.”

비렌드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한 명씩 살인이 늘어 날 때마다 휘두르던 AK가 원을 만들더군. 스승님에게 전설처럼 들었던 생사원영인가 하는 검법과 너무 흡사한 것 같았어.”

“어느 정도 둥글었지?”

권총수 눈이 빛난다.

우그러짐이 없는 완전한 동그라미가 될수록 수위가 높다.

“둥글더라고, 계란 같았어. 동전처럼은 아니고 계란 모양으로 길쭉한 동그라미.”

“팔 성.”

권총수는 단 번에 아롱바의 생사원영 수위를 간파했다.

“도망쳤지. 죽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네가 떠올랐어. 놈의 검법을 말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놈의 추격을 뿌리친다는 건 불가능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은둔술이 크게 도움을 줬어.”

은둔술은 강호에서는 무공이 아닌 잡기로 평가 받는다.

주위 지형이나 나무를 이용해 자신을 최대한 숨기는 것인데 길리슈트를 걸친 스나이퍼가 풀속에 숨어 있는 것과 같았다.

“옷을 벗었지. 그리고 온 몸에 흙을 발랐어.”

흙을 발라 주위 색에 자신을 묻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도망치다 미군 정찰대에 발견된 거야.”

비렌드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건 팀을 지휘한 소대장으로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었다.

‘생사원영, 계란 모양이란 말이지’

비렌드라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곱씹는 권총수의 입술이 물렸다.

관리이사 리네커의 휴대폰이 불똥이 났다.

8시간 안으로 사우디에서 활동하는 모든 KAS 용병들을 철수하라는 긴급 명령이 내려왔다는 현장의 아우성이었다.

48시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KAS의 모든 자산은 사우디 정부로 귀속되고 용병들은 불법 거주자로 간주되어 체포하겠다는 것이었다.

회사 간부들이 속속 사무실로 들어섰다.

회장 스톤스는 지금 런던에 없다.

그는 오랜만에 가족들과 알프스 여행 중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소식은 전하고 싶지 않다.

“다들 앉아요.”

리네커는 다섯 명의 간부들과 원탁을 놓고 앉았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맞은편에 앉은 영업관리부장 보비가 물었다.

SAS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1차 이라크 전쟁에서 엄청난 공을 세워 왕실로부터 작위까지 받았다.

“말한 그대로요. 사우디에서 모든 것을 철수하라는 것이죠.”

“사우디에 무슨 급변사태라도 발생했습니까?”

“파흐드 대통령의 권력은 안정적이오. 그 어느 시대보다 사우디의 부는 균등하게 배분되고 있고 여성들이 운전하는 건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날 벼락이 치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잠시 뜸을 들인 리네커가 말했다.

“응징인 듯 합니다.”

“응징? 누가요?”

“사막의 흑새가 아니면 우릴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나 이럴 줄 알았소.”

그때 침묵하고 있던 뚱뚱한 중년의 사내가 소리쳤다.

보급이사 쉴튼이었다.

총을 포함에 KAS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쟁 장비를 관리한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직원들의 개인화기 M4를 고가의 HK로 바꾼 것도 그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당분간은 HK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총기가 나오기 어렵다. 그렇다면 선제적으로 총을 구입하는 것이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좋다’

그의 의견은 즉각 효과가 나타났다.

세계 도처에서 활약중인 KAS용병들의 작전 성과가 눈에 띄게 나아진 것이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카야마도 그렇고 비렌드라 모두 외인부대 출신으로 사막의 흑새와 가까운 관계이므로 적극 나서서 구출과 치료에 임했어야 한다고 입이 아프게 말했거늘.”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들 모두 반대했다.

계약서 그 이상은 대접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쓰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지만 쉴튼은 틀렸다.

‘우리가 누구냐. 민간 보안업체다. 민간 회사라는 뜻이다. 모든 회사가 각자의 내규를 갖고 있으나 예외라는 것은 항상 발생하고 인정된다. 민심 즉, 앞으로 계속 민간 보안업계의 활용도는 커지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좋은 이미지, 회사의 브랜드를 위해서라도 과감히 복지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회장 스톤스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결국 나몰라로 끝났다.

“나카야마까지는 참았던 것 같소. 그런데 비렌드라까지 외면해 버리자 사막의 흑새가 폭발한 모양이오. 조금 전 비렌드라가 입원한 카이로 병원과 통화를 했는데 병원비를 그가 모두 계산 했다고 합니다.”

리네커의 말에 다른 이사 한 명이 물었다.

“병원비는 얼마 나왔다고 합니까?”

“30만 달러 가까이 되는 모양입니다.”

“거 보세요. 자기 주머니에서 30만 달러라는 거금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결제한 사막의 흑새입니다. 그런 둘의 관계인데 가만있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참겠냐고요?”

“그만 합시다. 그만 해요.”

보다 못한 듯 옆에 앉은 총무이사 호지슨이 짜증을 냈다.

“왜요? 듣기 싫습니까? 이건 중요한 사태입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어떻게 직원들을 관리해야 할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고요.”

“알았으니 그만 하라고!”

호지슨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노려보았다.

쉴튼은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회장 앞에서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쯧쯧.”

“뭐라고!”

호지슨이 벌떡 일어났다.

“당신 잘난 것 아니까 당신이나 부지런히 떠들고 말해. 난 잘릴까봐 용기가 없어 못하니까. 우라질.”

“두 분, 우리 싸우자고 모인 것 아닙니다. 그만 해요.”

리네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계획이 뭐요?”

쉴튼이 리네커를 향해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글쎄요?”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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