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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6화 (256/651)

제256화: 히말라야 사나이(1)

카이로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지사장 버홀터가 다가왔다.

권총수는 말없이 버홀터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카이로에 내린건 비렌드라의 몸 상태가 아프카니스탄 의료진으로는 조금 어려워 이곳으로 이송되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곧장 버홀터의 차량을 이용해 카이로 대학병원으로 출발했다.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좁은 공간의 침묵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핸들을 잡은 버홀터는 조수석의 권총수와 뒷좌석 오민철의 눈치를 살피느라 급급했다.

버홀터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당기더니 앞 유리를 조금 내렸다.

도대체 이 무슨 고생인지 모른다.

냉정한 얘기지만 자신은 죽은 사람의 얼굴도 알지 못했고 단지 KAS쪽에서 연락을 해와 전달해준 것뿐이다.

괜히 자신까지 축 쳐지고 음울해야 하는 현실이 불만스러워 담배를 피워 문 것이다.

차는 한참을 달려 카이로 대학병원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곧장 중환자실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버홀터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쨍!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사람은 복도로 걸어나왔다.

중환자실은 아직 면회시간이 아닌 듯 여자 두 명만 의자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었다.

발자국 소리에 히잡을 쓴 두 여인이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눈이 퉁퉁 부었다.

가족 중 누군가 생사를 오가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권총수는 부드럽게 인사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그건 마음에서 우러난 위로였다.

두 여인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손을 모아 마주 인사했다.

“여기 두 분 밖에 계시지 않습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다른 환자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여인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오민철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그가 질문한 이유가 있었다.

보호자가 중환자실 앞에서 노심초사하며 기다린다고 하여 환자가 살아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살아나는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기다려 준다는 건 분명한 관심과 애정이다.

그런면에서 볼 때 KAS쪽 사람이 있을 줄로 알았다.

“너무 하는 것 아냐. 이 사람들 진짜.”

오민철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나카야마가 포로가 됐을 때도 회사 차원에서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더니.”

권총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녁6시가 되어 중환자실 면회가 이뤄졌다.

모두가 바이러스 침투를 우려해 보호복과 보호마스크를 착용하고 들어갔다.

깨어 있긴 해도 거의 생기가 없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기족들이 손을 잡아 주었지만 말 한마디 나누지도 못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맨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비렌드라의 이름이 걸린 명찰이 보였고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었다.

담당 간호사가 다가와 설명을 했는데 결론은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몸이 왜 이렇게 부은 거요?”

비렌드라의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구타로 인한 부종이에요.”

확!

권총수는 시트를 걷었다.

순간 권총수와 오민철의 눈이 동시에 커졌는데 비렌드라의 몸은 바람이 가득 들어찬 튜브였다.

환자복을 입히지 못하고 알몸에 시트로 덮어 놓기만 했다.

“으음!”

권총수는 신음을 터뜨렸다.

때리는 것도 기술이다.

무작정 때린다고 부어오르지 않는다.

교묘하게 피하출혈을 유도하고 근육과 신경에 혼비백산 할 정도의 순간 타격을 가하면 몸은 붓는다.

거기에 내공이 있는 사람의 폭력이라면 사람의 몸을 풍선처럼 부어오르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드득!

오민철이 이를 갈았다.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구타를 하거나 고문을 하면 절대 부어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비렌드라는 배부른 표범이 토끼 한 마리를 잡아 놓고 장난치며 놀았던 흔적이다.

면회 시간이 종료되었다.

중환자실을 나와 주위를 보고 살펴도 끝내 KAS 관계자들 얼굴 비슷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비렌드라도 나카야마 수순을 밟는 거군.”

처음에는 여론을 의식해 발 빠르게 뛴다.

그러다 언론과 사람들 시선이 멀어지면 슬그머니 방치하고 외면한다.

고용한 용병이 적의 손에 희생되면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문을 발표한다.

한마디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지금까지 자사 용병들에 대한 KAS의 대책이었다.

권총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병원을 나왔고 버홀터가 다가왔다.

“어떻던가?”

“그대로죠 뭐.”

오민철이 투덜거리듯 대답했다.

“텍사스에서 전화가 왔네.”

텍사스는 다인코프 본사가 있다.

즉 사장 메몰라가 전화를 했다는 뜻이었다.

버홀터가 웃는 것이 희소식인 모양이었다.

“알겠지만 미국 언론에 자네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다인코프 주식이 연일 급등세를 기록하고 있나보네. 자네가 전에 준 새 계좌로 보너스 백만 달러를 넣었다는군. 축하하네.”

백만 달러라는 말에 오민철이 환하게 웃었다.

“고생했어. 넌 백만 달러 아니라 천만 달러를 받아도 돼.”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악전고투 했다.

오늘따라 권총수가 너무 고마울 뿐이다.

“자랑스럽다. 우리 총수 최고다.”

오민철이 만세를 부르듯 양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권총수는 살짝 웃고 말았다.

평소 같았다면 한 턱 내겠다고 큰소리치며 앞장을 섰겠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못된다.

사실 한 턱 내고 싶은데 주위 사람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

두 사람은 힐트 호텐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버홀터는 회사에 급한 볼일이 있다면서 두 사람을 남기고 돌아갔다.

“방법은 하나 뿐이야. 현대 의학으로 진전이 없다면 강호식으로 한번 치료를 시도해 볼 수밖에 없어.”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자신도 강호식으로 치료를 받아 회생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가 눈을 크게 뜬 건 강호식으로 치료하다 보면 내공소모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치료하느라 적지 않은 내공이 소모됐는데 비렌드라까지 손을 댄다면 최소한 오년에서 십년 정도는 잃게 될 것이다.

오민철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숙였다.

그냥 바라보면 울컥한 감정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는 어려도 니가 형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뭐니 뮈니 해도 형 노릇, 어른 노릇이다.

나이를 먹어서 어른이 아니고 한 살 더 많다고 형이 아닌 것이다.

형이고 어른인 그 자리는 너무 존귀하고 존엄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랫사람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자애와 배려 없이는 대접받지 못한다.

자신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권총수에게 존경 받고 인정받는 일을 해보지 못했다.

그 좋아하던 커피가 오늘따라 쓰다.

정말 쓰다.

중환자실 복도는 조용했다.

입원실 층이 아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천장의 형광등도 중간 중간 꺼져 있어 다른 층보다 어두웠다.

권총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불영보를 펼쳐 단숨에 중환자실 문 앞에 도착했다.

야간에는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안에서 문을 잠가 버린다.

용무가 있는 사람은 인터폰을 눌러 통화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스으으!

단단히 잠긴 문이 소리 없이 열렸는데 잠금장치가 녹아 버린 것이다.

두 명의 간호사가 각자 핸드폰을 갖고 게임에 열중이다.

파팟!

지체 없이 마혈과 수혈을 동시에 눌렀고 모두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권총수는 비렌드라 침대로 다가가 내려봤다.

‘비렌드라 형, 형도 무공을 조금 알고 심법을 배웠으니 어쩌면 이 방식이 통할지도 모르겠소’

마스크를 벗겼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안 되더라도 너무 서러워하진 마십시오.’

이윽고 덮여 있는 시트를 벗겼다.

흠칫!

이미 낮에 봤는데도 시퍼렇게 멍들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몸인데도 다시 또 놀랐다.

‘죽일 놈!’

이를 갈며 비렌드라를 반듯하게 눕히고 몇 곳의 중요한 혈도를 찍었다.

욱!

그러자 곧바로 몸이 요동한다.

강력한 내공이 실린 지풍이 혈맥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어 몇 곳의 혈도를 더 눌러 몸을 일으켜 앉혔다.

권총수는 등 뒤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명문혈에 손바닥을 붙였다.

한편 그 시간 오민철은 카이로 공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일본으로 귀국했던 나카야마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는데 JAL 432기로 10시 30분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려 무슨 일로 카이로에 오고 있다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물론 짐작한 된바 있었지만 오민철은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오민철이 시계를 보았는데 10시20분이다.

지금쯤 활주로에 착륙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걸음을 서둘렀다.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오민철은 눈을 부릅뜨고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을 살폈다.

눈이 아플 만큼 힘을 주어 살필 때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여행가방 한 개를 어깨에 멘 사내가 보였다.

“야 쪽발아.”

하지만 상대는 듣지 못한 듯 했다.

그러자 오민철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쪽발아. 쪽발아.”

그제서야 야구모자 사내는 고개를 들었는데 나카야마였다.

“민철!”

나카야마는 급히 다가왔다.

“왜 왔어? 고향에서 사업가로 번듯하게 살라고 했잖아.”

“친구가 죽었는데 가만있으라고?”

나카야마의 눈이 불타올랐다.

“피아퐁, 헨드슨, 세르게이, 비렌드라.”

“비렌드라는 아직 안 죽었어.”

“이판사판,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워낙 살벌한 나카야마의 표정에 오민철이 움찔 하며 한 발 물러섰다.

“이, 일단 가자.”

오민철이 더듬거렸는데 워낙 나카야마가 험상궂었기 때문이었다.

“아내 될 사람이 허락했어?”

“안 하면 어쩔 건데.”

버럭 소리치듯 노려보자 오민철이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어갔다.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권총수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는데 워낙 상세가 위중하여 단순히 진기 주입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찢어지고 훼손된 기경팔맥을 보호하며 주입해야 하기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 선 것이다.

의학적이든 강호식이든 치료의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체력 회복이 우선이다.

체력이 약할수록 회복은 더디고 강할수록 빨리 털고 일어난다.

그래서 일단 몸속에 내공을 주입하여 본진진력이 활성 되도록 한 것이다.

권총수는 명문혈에서 손을 떼고 몇 군데 혈도를 해혈 한 뒤 반듯하게 눕혔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한 권총수는 추궁과혈을 시작했다.

몸에 들어간 내공이 전신에 골고루 퍼지도록 한다면 더욱 치료효과는 높아진다.

파파파파!

처음에는 부드럽게 두들겼다.

시작부터 힘을 주면 경락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

경락은 오로지 내기만 흐르는 기관이다.

경락이 건강해야 내기의 흐름이 좋고 온 몸에 활력이 넘친다.

혈액 순환이 좋아야 건강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다다다!

조금씩 추궁과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비렌드라의 신체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권총수는 서둘지 않았다.

느긋하게, 그리고 환자의 몸 상태를 살펴가며 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비렌드라의 몸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얼굴과 신체 여러 곳에 부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뚝!

권총수의 손길이 마침내 멈췄다.

주르륵!

마치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 마냥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한참을 비렌드라를 바라보더니 산소 마스크를 씌운 뒤 시트를 덮어 주었다.

권총수는 두 간호사의 수혈과 마혈을 풀어주고 곧장 중환자실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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