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5화 (255/651)

제255화: 바람의 파이터(4)

트라비스 호수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호수 깊숙한 막다른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덜컹!

뒷문이 열리고 마혈이 제압된 사내가 눈을 멀뚱거리며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슥!

담배 한 개를 꺼내 입에 문 권총수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트렁크 끝에 걸터 앉은 권총수는 출렁거리는 호수를 바라본다.

후우우!

뿜어내는 담배 연기가 바람에 밀려 다시 차 안으로 들어왔다.

흘긋!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역시 담배를 피우는 오민철이 권총수의 눈치를 살폈다.

“이름이 뭐요? 모두가 스카페이스라고만 할 뿐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던데?”

권총수가 불쑥 물었다.

사내는 누운 체 말했다.

“이름, 내가 이름이 있었던가. 아 있긴 있었군.”

사내는 입술을 질근 씹었다.

“그러니까 내 이름이, 맞아, 소사, 소사였어.”

사내의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였는데 어금니까지 깨무는 것을 보면 몹시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죽일 년.”

결국 사내의 입술을 비집고 욕이 튀어나왔다.

“속았지. 완전 당한거야.”

친 어머니는 열 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석달 정도 지나 아버지가 한 여자를 데리고 왔는데 자신에게 새로운 엄마라면서 소개했다.

여인은 자기 이름을 엠마라고 소개했고 끌어안고 이제 그만 슬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사랑 넘치는 위로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자는 너무 착했다.

온화하며 부드러웠고 정성을 다해 자신을 배려했다.

무슨 일을 하려면 항상 어린 소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여자의 다정다감함 때문일까.

여자의 노력 덕분일까 소사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서 슬픔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을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나가는 차량에 치였는데 운 좋게 찰과상 정도에 그쳤다.

그 날 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교통사고가 나고 두 달 후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돌아오는데 곁으로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와 멈췄다.

정장을 한 백인 사내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심부름 하나 부탁해도 되겠냐고 하면서 검정색 핸드백 한 개를 내밀었다.

핸드백 주인은 놀랍게도 조금 전 자신과 같은 편이 되어 야구를 했던 친구 중 한 명의 엄마였다.

사내는 자신이 친구엄마가 다니는 단골 커피숍 주인인데 가방을 놓고 가 전달해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심부름 댓가로 야구 글러브를 내밀었다.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글러브가 낡아 바꾸려던 참이었는데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 집을 향해 달렸다.

핸드백 속에는 코카인이 들어있었다.

마약범들이 어린 청소년들에게 마약 배달을 시키는 건 흔한 일이었고 아무리 부인하고 아니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년 교도소에서 마약예방 교육을 받고 정확히 일 년을 살고 나왔을 때 아버지는 죽고 없었다.

어머니 또한 사라졌고 집에는 다른 사람이 떡 하니 살고 있었다.

여자는 아버지와 자신을 간단히 처리하고 모든 재산을 가로채 사라진 것이다.

“파란만장하군. 그런데 말이오 세상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죠.”

얘기를 듣고 난 권총수는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좀 살아 보니까 나 보다 훨씬 더 삶이 비천하고 고통스러웠던 사람이 지천이더란 말입니다.”

순간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숨기고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물론 자신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어느 소설 속에서 읽었는데 불우한 유소년 시절의 환경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굉장한 애정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큰 조건이라는 구절을 읽었다.

소설을 쓴 작가가 지금 자기가 뱉어낸 그런 삶을 살아왔고 과거를 알게 된 어른들은 작가의 여러 가지 잘못을 덮어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권총수의 마음을 흔들어 보기 위해 한 번 시도해 본 것이다.

“당신에게 죽은 용병 동료들의 복수를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식의 말은 하지 않겠소. 다만 난 꼭 빚은 받아 낸다는 것이죠.”

꽈당!

권총수는 마혈이 제압된 사내를 사정없이 끌어 내렸다.

사내는 땅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주위를 살핀 권총수는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성인 남자가 들어올리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컸지만 너무 간단하게 가져왔다.

“커억!”

사내가 비명을 질렀는데 권총수가 무거운 돌을 사내의 배 위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꺼으으으!”

사내는 고통스러워했는데 배가 터질 것 같은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미리 준비한 끈으로 사내와 돌을 단단히 묶었다.

“안 풀어지겠지?”

묶은 매듭을 당겨본다.

“이런 식은 풀릴 수도 있어. 엑스자로 한번 돌려 당기면 누가 풀어주기 전에는 무사하지.”

오민철이 나서서 매듭을 한 번 더 손 봤다.

부우우!

이어 내공을 끌어 올려 사내를 들어 올렸다.

200킬로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돌에 묶인 사내가 호수로 던져졌다.

풍덩!

마혈이 제압되었으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다.

거친 물결이 일어났고 스카페이스로 불린 사내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신문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난 시날로아 카르텔의 우두머리인 살라자르와 장기밀매 조직의 대부로 불리는 차차리토가 살해된 배경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기사로 실린 인물이 사막의 흑새라는 사내였다.

미국 마약단속국과 FBI가 혈안이 되어 잡으려고 했으나 끝내 실패한 어둠속의 제왕들을 모조리 해치워버렸다.

더욱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사는 우정을 위해 만리(10,000)길을 날아왔다는 것이다.

탈레반의 포로가 되어 남미 장기밀매조직으로 넘어간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현세 지옥이라는 멕시코 범죄조직들과 전쟁을 벌였다는 뜨거운 기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기어이 친구를 구출해 사라진 사막의 흑새를 향해 소리쳤다.

‘친구여’

헐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은 스토리가 너무 영화적이라면서 사막의 흑새에게 영화제작을 타진했다는 기사도 쏟아졌다.

이것저것 신문을 읽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브룩스는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자신의 책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브룩스입니다.”

전화를 걸어 온 곳은 랭글리였다.

상대는 암호명 R로 불리는 인물이다.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조금전 카이로에서 전화가 왔는데 사막의 흑새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이더군.”

카이로면 맥보란이다.

어떤 제안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정보조직은 자신의 직급에 맞는 소식만 관리하고 입수하면 된다.

동료가 갖고 있는 것도 들려주기 전에는 물어보는 것도 결례가 된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비밀 유지는 강해진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는 안개 같고, 바람 같은 사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그에게 그토록 벼르고 벼르던 일을 맡기게 됐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군.”

“성공하리라 보십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이런 들뜬 모습은 처음이라 물었다.

“커피 내기 하겠나. 내가 지면 자네가 좋아하는 캘리포니아 커피 한잔 사는 걸로 하지.”

“좋습니다. 제가 지면 국장님께서 좋아하는 라모나 햄버거를 대접하죠.”

위싱턴에 가면 라모나란 수제 햄버거 집이 있다.

햄버거 마니아라면 한번쯤 찾아는 가볼 만 할 만큼 독특한 맛과 향으로 유명하다.

R은 그 집 햄버거를 굉장히 좋아한다.

전화를 내린 브룩스는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벼르고 벼르던 대상자라고 하는 걸 보면 그동안 미국의 골칫거리였다는 뜻이다.

미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뭘까.

물론 국제적으로 본다면 북한의 김정은 일수도 있고 이란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도 적지 않다.

정치인은 정적을 제거하면서 성장한다.

직접 이든 간접이든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내가 무너진다.

온갖 함정과 부패의 덫을 깔아 놓고 상대를 묶어 버리는 것이 정치판이다.

‘그래도 국내는 아닐 터’

마피아가 목에 힘을 주고 어제 저녁 주 상원의원이 퇴근길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기사가 흔하게 나오던 30년대 미국 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국내정치에 암살자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누굴 잡으려는 걸까’

브룩스는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번 궁금하면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성미였다.

지이잉!

또다시 전화가 왔고 액정을 보던 브룩스가 미소를 짓는다.

“어딥니까?”

“지금 막 댈러스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소.”

권총수가 감사 전화를 해 온 것이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가 뭘 도와준 것이 있다고, 그보다 아주 불편해 하실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 전우들이 안타깝게.”

“하긴 CIA가 모를 리 없겠죠. 맞습니다. 또 다시 적지 않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브룩스는 몇 마디 더 위로 한 뒤 전화기를 내렸다.

“삶이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정말 재미없는 거야.”

브룩스는 중얼거리며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권총수는 비행기 창밖을 보고 있었고 오민철은 지그시 눈을 감아 버렸다.

이제 서른이 갓 넘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육십인생과 비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짧은 삶에서 숨 막히는 두려움과 고통을 겪었다.

돌아보면 유병칠에게 얹혀 살 때가 처음 겪는 세상의 냉정함이었다면 가장 큰 고비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뛰어든 것이었다.

한국 군대도 아닌 외국 군대에 들어가겠다는, 용기라고 볼 수 없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저 씁쓸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군인이 되었고 죽고 죽이는 영화 속 같은 전쟁에 뛰어 들었다.

살아 있는 자신이 신기할 만큼 전장은 참혹했다.

좀체 걸어 나오기 힘들다는 전장을 멀쩡하게 나왔으니 이 또한 놀라운 행운이다.

그리고 이제는 용병이 되었다.

용병은 현역 군인 때와는 또 다른 위험이 출렁대는 거친 바다였다.

실력이 아닌 운이 좋아 살아남은 듯싶다.

특히 이번 오민철의 장기적출 시도 사건은 생애 가장 아찔한 공포였다.

오민철이 그렇게 곁을 떠났다면 평생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오민철은 집안을 일으켰다.

가난한 누나들 살림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운 좋게도 동생의 도움으로 시작한 장사들이 모두 잘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의 오민철에 대한 애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식!

갑자기 쓴 웃음이 나온다.

오민철이 장기적출을 당하기 위해 끌려갔다는 소식을 숨기기 위해 부지런히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는 이 말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헷갈렸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결국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모든 걸 고백하듯 털어놓았을 때 큰 누님은 기절해 버렸다.

권총수는 흘긋 오민철을 본다.

이마를 찡그린 채 눈을 감고 있는 걸 보면 뭔가 불편한 생각에 빠진 모양이었다.

“흐으음!”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권총수의 한숨이 비행기를 흔든다.

오민철을 끝으로 이제 다리 좀 뻗나 했는데 몸의 절반이 날아가는 것 같은 또 하나의 아픔이 찾아온 것이다.

“젠장!”

그때까지 눈을 감고 있던 오민철이 투덜거렸다.

눈을 떴는데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편해보려고 눈을 감았더니 자꾸 그 자식들 얼굴만 떠오르잖아.”

죽어버린 외인부대 동료들 얘기다.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오민철은 또다시 눈을 감았는데 눈두덩이 떨린다.

너무 슬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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