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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3화 (253/651)

제253화: 바람의 파이터(2)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나고 있었다.

총알이 없어도 소총은 분명한 흉기이다.

나무와 쇠가 결합된 물건으로 길이가 일 미터나 된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뛰어난 병기인데 탈레반들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대검을 가지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AK를 휘둘렀다.

휴대할 때는 가벼울지 모르나 휘두를 땐 총의 무게 4킬로그램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다보니 동작은 느려진다.

용병들은 그 점을 훤히 알고 모두 대검을 이용해 빠르고 신속하게 공격을 하고 있었다.

팍!

가볍게 팔을 들어 내려치는 탈레반의 AK공격을 막고 곧바로 대검을 박아 버린다.

“큭!”

“꺼어억!”

일방적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군.”

총알이 떨어진 것이 교전시 보다 분명한 우위를 가져다주고 있는 것에 피아퐁이 만족스런 표정을 했다.

그는 이미 두 명의 탈레반을 죽이고 세 명 째 죽이기 위해 다가가고 있었다.

쉬익!

바로그때 바위 뒤에서 뭔가 번쩍하고 나타났다.

너무 빨랐기 때문에 피아퐁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아퐁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깊은 바다에 잠기듯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 끝없이 끌려들어 가는 듯하더니 이내 모든 느낌과 감각이 사라졌다.

빡!

퍼어억!

머리가 깨지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사내였다.

서른 초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단아한 이목구비에 약간 창백한 안색이 언뜻 병색이 깃든 것처럼 보인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AK소총이다.

사내는 총열을 거머쥐고 있었는데 개머리판으로부터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파앗!

사내가 몸을 날렸다.

단숨에 20여 미터를 날아가 탈레반과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KAS 용병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퍼퍼퍽!

일방적이었다.

4킬로 무게의 AK를 가벼운 막대기를 쥐고 휘두르듯 하며 용병들을 공격했다.

두 번이 없었다.

단 한 번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용병들의 숫자는 급속히 불어났고 사내의 손에 들린 AK는 죽음의 검으로 돌변해 있었다.

휙!

번쩍!

벌건 대낮인데도 번개가 쳤다.

그건 AK를 휘두르는 사내의 동작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일방적이고 독보적이다.

누구도 그가 휘두르는 AK를 피하지 못했고 다리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며 숨져갔다.

처억!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세르게이가 사내를 막아섰다.

M4를 쥔 세르게이는 총검술에서 찌르기 직전의 예비동작처럼 잡고는 조금 전까지 휘두르던 대검을 총에 걸었다.

총목을 쥔 오른손 검지는 방아쇠에 걸려 있었는데 물론 총알은 한 개도 없다.

“뭐지? 나에게 도전하는 건가?”

“흐흐흐! 미친놈아 이게 도전으로 보이냐. 널 죽여 버리겠다는 거지.”

휘두르면 안 된다.

무거운 총기기 때문에 절대 빠를 수가 없고 잘못하면 상체가 딸려간다.

즉 스스로 통제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짧게 찌르는 전술이어야 승산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세르게이 계산일 뿐 사내는 틀렸다.

총을 신체의 일부처럼 능수능란하게 컨트롤해가며 휘두른다.

놀라운 건 힘도 있지만 사내의 손에 잡힌 AK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검도 고수가 휘두르는 칼이라고 해도 이토록 빠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스으윽!

사내는 앞으로 손을 쭈욱 뻗었다.

손에는 정확히 88센티 길이에 무게 3.47킬로짜리 AK총을 쥐고 있다.

1미터 가까운 길이의 4킬로 가까운 무게의 소총을 한 쪽 팔로 들지 못할 성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머리판이 아닌 총구 끝을 잡고 앞으로 손을 뻗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더욱이 사내의 총은 미세한 움직임도 없었다.

그렇다고 총을 드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지도 않았다.

“지금 뭐하는 것이냐? 개자식!”

세르게이는 있는 힘껏 찔러갔다.

최대한 짧은 각도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신체의 많은 부분을 움직이지 않고 발과 두 팔만 이용했다.

슉!

몸에 힘을 빼고 절도 있게 찌른 동작이라 빨랐다.

그러나 세르게이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눈앞에 있던 사내는 사라지고 강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빠악!

세르게이는 그대로 서 있었는데 앞에 있던 사내가 귀신처럼 옆으로 한 발 움직여 공격을 피했을 뿐 아니라 들고 있던 AK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투투툭!

머리가 사기그릇 깨지듯 산산조각이 되며 떨어져 내렸다.

쿵!

머리가 깨지고 뒤이어 몸통이 쓰러진다.

짝짝짝!

살아 있는 탈레반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사내는 탈레반들의 박수에 고무된 듯 거만한 눈빛으로 용병들을 훑어보았다.

또 누구냐.

덤빌 사람 있으면 얼마든지 나오라는 시선이었다.

그때 용병들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히말라야의 눈 사나이 비렌드라였다.

“좋은 검법을 갖고 있군요.”

순간 사내는 움찔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휘두름이 아닌 검법이라는 걸 알아 본 것이다.

“놀랍습니다. 누구십니까?”

비렌드라는 담담한 표정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충격받지 않은 듯 애써 여유를 보여주기 위해 혼신을 쏟았으나 자꾸 입술이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 출신인가? 미국은 아닌 듯 하고?”

“산속에서 왔죠.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눈 속에서 보낸 듯합니다.”

“구르카족이군?”

“유(幼)에서 약관이 될 때까지 한 분의 사부님을 모셨습니다. 사부님으로부터 지금 귀하께서 보여준 검법의 무서움을 들었죠.”

“호오!”

사내는 호기심을 보였다.

“다할풀 수도원에서 오셨군요? 포텐차리 어른께서 굉장히 아끼셨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알고 있군?”

“지금 보여준 것이 생사원영이라는 검법입니까? 가장 현대적인 자동소총을 그토록 위력 넘치게 휘두를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묻는 것입니다.”

눈을 넓혀 달라는 뜻이면서 자신도 밀교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스윽!

비렌드라는 주머니에서 손수건 한 장을 꺼내 자신이 들고 있는 M4총구에 걸어 흔들었다.

“뭔가? 항복을 선언하는 건가?”

“부탁이 있습니다.”

“뭐요? 말해보시오?”

“나 혼자 잡으시고 나머지는 보내주시는 것이 어떤지?”

아롱바가 씨익 웃는다.

“그건 불가능한 부탁이오. 내 손에 걸려들면 난 절대 살려 보내지 않소.”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겁니까?”

“누구 맘대로.”

아롱바가 히죽 웃으며 KAS용병 10여명을 훑어보았다.

그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재밌는 놈이군. 네가 뭔데 우릴 살려두니 마니 하는 것이냐? 어린놈의 자식이.”

왜소한 체격의 아롱바가 목숨을 저당 잡아 놓은 사람처럼 말하자 핸더슨의 심사가 뒤틀린 것이다.

비아냥거리다 오민철에게 두들겨 맞고 부하되길 자처했던 핸더슨이 어금니를 물고 다가갔다.

핸더슨의 체격은 아롱바에게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190센티의 키에 90킬로가 넘는 거구다.

“자신 있으면 한번 붙자.”

그러면서 핸더슨은 M4를 한쪽으로 던졌다.

십 여 미터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아롱바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휘익!

한쪽으로 AK를 던지더니 몸을 날려 내려왔다.

십 미터 가까운 공중에서 새털처럼 가볍게 내려서자 핸더슨의 표정이 굳었다.

눈앞으로 권총수가 떠올랐다.

비록 KAS를 떠나 다인코프로 이적했지만 그는 가슴속에 깊이 담겨져 있는 인물이다.

리더십도 뛰어났지만 하늘을 날아가는 그의 신법을 보고 있으면 마치 꿈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건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날아가는 건 절대 분석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권총수 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가볍게 내려온 사내가 있다.

핸더슨은 호기롭게 나섰지만 자신이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죽지 않기로 했다.

처음 우세하던 백병전이 순식간에 아롱바가 등장하면서 역전되는 순간 승부는 끝났다고 판단했다.

단지 앞으로 나온 건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놈 앞에서 고개 숙이지 마라.

SAS훈련 해상침투 훈련장 한쪽 귀퉁이에 선배들이 써놓고 간 글귀가 있다.

쓰레기를 쌓아 놓는 창고 담벼락에 누군가 피로 써놓았다.

주인은 알 수 없으나 그 말은 지쳐 퇴소를 결정하려는 적지 않은 포기자들의 신발 끈을 다시 매도록 만들어주었다.

항상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단지 소망이 있다면 남들 보다는 좀 더 우아하게, 이왕이면 넉넉한 얼굴로 삶을 털어 내고 싶었다.

피식!

핸더슨이 아롱바를 바라보며 웃는다.

아무래도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죽음이 꼴사납게 생겼다.

시신이라도 온전히 보전이 되면 그야말로 감사할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체격적 우위를 차지하려면 상대를 붙잡는 것이 가장 좋다는 나름의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화악!

하지만 자신의 동작이 너무 느리다는 걸 깨달았다.

퍼어억!

아롱바가 서 있던 자리까지 몸이 가기도 전에 옆구리에 뜨거운 기운이 폭발했다.

어느새 측면으로 피한 아롱바의 오른발이 칼처럼 옆구리를 파고 든 것이다.

“크욱!”

어떻게 단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 목으로 피가 넘어 온단 말인가.

스윽!

손등으로 입을 닦았는데 검붉은 피가 진득하게 묻는다.

핸더슨은 환히 웃었다.

화악!

다시 방향을 틀어 달려들었다.

레슬링 선수가 온 몸을 날려 상대 허리와 하체를 잡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퍽!

그러나 바위투성이인 산비탈에 엎어졌고 뻐억 하며 눈앞으로 불이 번쩍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세상이 빙글 돌았다.

강력한 발길질에 머리가 맞았는데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모든 것이 암흑이다.

투툭!

자신의 귓가로 들리는 건 분명 머리가 조각나는 소리였다.

이어 몰려오는 심한 통증은 모든 의식을 빼앗아 가버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핸더슨의 머리는 수박처럼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머리를 잃은 핸더슨의 육중한 몸통으로 순식간에 파리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죽엇!”

용병 한 명이 대검을 들고 달려가려 하자 비렌드라가 막았다.

“안 돼!”

비렌드라가 제지하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푸욱!

아롱바의 오른손이 용병 사내의 목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용병사내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는데 호흡이 막히는 듯 이상한 소리를 흘러냈다.

꺼! 꺼어어!

아롱바는 온 몸을 요동치는 용병 사내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용병 사내의 몸부림이 잦아들더니 축 늘어졌다.

털썩!

아롱바가 손을 빼자 용병사내가 바닥에 엎어졌는데 두 눈을 뜨고 있었다.

콰아!

비렌드라는 곧장 아롱바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아롱바가 흠칫했다.

생각보다 빠른 주먹에 놀란 얼굴이었다.

“밀교의 대파권이로군”

스으으!

아롱바는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비렌드라는 예상했다는 듯 앞으로 뻗어가던 주먹이 곧장 방향을 틀어 왼쪽으로 꺾인다.

아롱바는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여유롭던 아롱바 얼굴이 굳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이제 좀 싸워 볼만한 상대가 나타났어.”

슈욱!

땅을 박차고 날아오는데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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