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52화 (252/651)

제252화: 바람의 파이터(1)

권총수는 호텔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쪽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며 오초아로부터 받은 다른 사진을 꺼냈다.

오늘 열리는 휴스턴 영화제 명예 위원장이다.

비록 명예 위원장이라고 하지만 이런 큰 영화제의 위원장이 되기란 쉽지 않았다.

지역사회에서 명망이 높고 영화산업에 상당한 공을 들인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사내는 명예위원장에 딱 들어맞을 일들을 많이 한다.

불우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학업을 장려하는 장학금을 내놓고 있었다.

또한 지방 영화가 살아나야 헐리우드가 발전한다면서 적지 않은 돈을 발전기금으로 내 놓았다.

그는 분명 자선 사업가이고 지역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후우!

권총수는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런 그에게서 마약의 냄새가 난다고 뒷조사에 들어갈 배짱 좋은 경찰은 없을 것이다.

백프로 빼도 박지도 못할 증거를 잡기 전에는 구속시키지 못한다.

체포를 한다고 해도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여러 단체들이 석방을 요구할 것이고 재력이 튼튼하니 변호인단의 면면은 연쇄살인마도 무죄로 끌어 낼 실력자들이 고용될 것이다.

휴스턴에서는 절대 건들 수 없다.

그럼 누가 그를 건들 수 있을까.

권총수는 한 인물을 꼽았다.

백악관으로부터 특별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코브라 뿐이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 말고는 거의가 영화제 주최측에서 요청한 민간보안업체 직원들이 정장을 갖추고 출입증 없는 사람은 철저히 가로막았다.

스으으!

권총수의 몸이 쭉 늘어지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보안요원들 사이로 비집고 사라졌다.

그리고 목에 출입증을 걸고 걸어가는 호텔 종업원을 발견하고 가볍게 뒤통수를 쳤다.

수혈이 제압되면 천하 없는 장사도 잠에 빠진다.

선 채로 자는 것이다.

스윽!

목에 걸고 있는 출입증을 가볍게 빼앗은 뒤 수혈을 해혈했다.

그런 식으로 오민철의 것까지 준비한 뒤 다시 밖으로 나온다.

“형!”

오민철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는데 입을 떠억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뭐하는데?”

오민철의 시선을 따라 돌린 권총수의 눈도 커졌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몸매를 지닌 여배우 하나가 옷을 입은 듯 만 듯 허벅지와 가슴을 드러낸 채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기자들 카메라가 정신없고 꿀꺽 마른 침까지 삼키는 오민철을 보며 말했다.

“형 화중지병이라고 알아?”

홱!

오민철이 고개를 돌렸는데 눈이 커졌다.

“이 형 또 시작하는군. 내가 지금 사자성어 썼다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이거나 빨리 목에 걸어.”

오민철은 권총수가 내민 출입증을 목에 걸고 레드카펫이 아닌 행사관계자 통로를 이용해 들어갔다.

보안요원 둘이서 출입증을 확인한 후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호텔로 들어섰다.

행사는 2층 블루보넷 홀에서 열린다.

2층 블루보넷 홀까지는 카펫이 이어 깔려 있고 호텔로비를 지나면 곧장 2층 계단으로 이어진다.

권총수는 한쪽에 있는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행사가 끝나기 전까지 일반 시민들의 커피숍 이용은 불가능하여 대부분 대회 관계자들이나 기자들이 많았다.

‘만치니’

권총수는 종이를 펼쳐 놓고 중얼 거렸다.

댈러스에서 상당한 규모의 비료공장을 운영한다.

그가 생산하는 비료는 목장의 소들이 먹는 사료용 영양보리를 재배하는 밑거름이다.

영양보리 재배에 사용되는 비료 생산으로도 수익을 창출하지만 진짜 돈줄은 마약이었다.

마약 총책은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에서 오는 마약을 넘겨받는 사람을 말한다.

만치니는 미국의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애리조나 뉴멕시코주 등에서의 마약 판매권을 거머쥐고 있다.

물론 마약 카르텔 마다 미국 현지 총책은 다르다.

시날로아 총책 다르고, 티후아나 카르텔 다르고, 걸프카르텔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서로 으르렁 거리지만 미국의 총책들은 서로의 권역을 인정하고 필요에 따라 상부상조 하며 공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코브라란 사람 말이야.”

권총수가 커피 잔을 내리고 말했다.

“정말 만치니를 잡으러 나타날까?”

“나타나!”

권총수는 자신있게 말했다.

“스카페이스는 코브라를 노리기 위해 나타나고?”

“두고 봐!”

걸프 카르텔과 티후아나 카르텔에서 자신들 사업에 타격을 가하고 있는 코브라를 없애줄 것을 스카페이스에게 청부했다.

“명예 위원장님 한마디만 해주시죠. 이번 영화제 행사를 위해 천만달러를 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명예 위원장이란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 일어나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호텔 로비를 걸어 들어오던 중절모차림의 한 사내가 라인 밖에서 던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걸음을 멈췄다.

“만치니 맞지?”

권총수는 얼른 사진을 보았다.

차림새가 달라서 그렇지 똑같다.

만치니는 기자들을 향해 부드러운 웃음과 다정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고 안내하던 보안요원이 그만 들어가셔야 할 시간이라는 말에 다음에 하자며 손을 들어 보이고 걸어갔다.

시상이 거듭 될수록 열기는 뜨거워졌다.

신인상에서부터 시작해 조연상 감독상이 발표가 되었고 이제 남녀 주연상과 작품상만 남겨 놓고 있었다.

그 사이에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시작됐다.

가수들이 공연하는 틈을 이용해 일부 참석자들은 슬며시 화장실을 가거나 흡연자들은 흡연부스를 찾아갔다.

권총수와 오민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얄석에 앉아 있던 만치니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만치니는 좁은 통로를 따라 출입구 쪽으로 빠져 나갔다.

예상대로 만치니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들어가지 않고 먼발치에서 화장실을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넥타이에 검정색 정장을 하고 있었다.

오늘 행사의 보안을 담당하는 업체의 근무복이 검정색 양복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그때 화장실에서 정장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연한 갈색 정장에 같은 계통의 중절모를 썼다.

노인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천천히 걸어왔는데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늙어 보였다.

빤히 바라보는 권총수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스치듯 사라졌다.

멈칫!

지나가는 노인에게서 살기가 느껴진다.

“형 기다려!”

스윽!

권총수는 불영보를 펼쳤다.

화장실로 뛰어든 권총수는 주위를 살피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발견하고 문을 열었다.

안에서 잠긴 것이다.

쾅!

고리가 터져나가며 문이 열렸다.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만치니가 비스듬히 앉아 있었는데 명치에 칼이 깊숙이 꽂혀 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 한 장을 발견하고 주워든 권총수는 눈을 크게 떴다.

강력한 마취약 냄새다.

그림이 나온다.

소변을 보고 있는 만치니 뒤로 다가가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축 늘어진 만치니를 안으로 끌고 들어와 명치에 칼을 박고 사라진 것이다.

내공을 끌어 올려 집중하지는 않았으나 식장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음악소리까지 겹치며 무성무기인 칼로 해결한 살인사건의 소리가 들릴 리는 만무했다.

촤악!

권총수는 재빨리 화장실을 벗어났다.

“노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가던데, 왜?”

“형 혹시 모르니까 주차장 입구에서 기다려.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전음으로 알려줄 테니까.”

“그래!”

권총수는 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러면서 엘리베이터를 보았는데 지하2층에서 멈췄다.

스으으으!

계단을 날아 순식간에 지하 2층 문 앞에 도착했다.

벌컹!

육중한 비상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귓청을 울리는 총소리가 들렸다.

권총수는 재빨리 몸을 낮추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타아앙!

조금전 화장실을 걸어 나왔던 노인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주차장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가슴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더 울리며 검정색 벤츠 한 대가 노인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노인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이내 스르르 주저앉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권총수는 재빨리 노인에게 날아갔다.

노인은 가발이 벗겨져 있었는데 윤기 나는 노랑머리였다.

그건 매우 젊은 사람임을 반증했는데 재빨리 노인의 허리띠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털썩!

노인을 엎드리게 한 뒤 재빨리 명문혈에 손바닥을 대고 진기를 넣었다.

일단 심장이 멈추는 것을 막아야 한다.

“형! 내말 잘 들어. 지금 나간 검정색 벤츠 쫓아. 절대 놓쳐서는 안돼.”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으나 전음은 충분히 닿았을 것이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놓고 왼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911 환자 발생이오. 여긴 알렉산드라 호텔 지하2층 주차장, 총상 환자요.”

핸드폰을 끄지 않고 켜 놓았다.

“상태가 어느 정도인가요?”

“당신들이 올 때까지는 죽지 않을 테니 빨리 오시오.”

진기를 주입한 권총수는 재빨리 노인의 가슴에 손을 댔는데 미약하지만 심장이 뛰고 있었다.

파파팍!

재빨리 총상 주위의 혈도를 눌러 지혈시키고 추궁과혈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출혈이 심했다.

피가 부족하면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오는 거야 마는 거야’

권총수는 전력을 다해 추궁과혈을 시전하면서 노인의 상태를 살폈다.

천만 다행이도 심장 박동은 약해지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만치니를 한 방에 보내버린 걸 보면 이 사람이 코브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조금 전 암살자는 스카페이스일 것이다.

애애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구급대가 오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지하층이 시끄러워지면서 번쩍 거리는 경광등을 켠 구급차와 경찰차가 같이 들이 닥쳤다.

구급차 문이 열리고 여자가 약 가방을 들고 내렸고 두 남자는 이동 들것을 끌어내렸다.

“상태 좀 봐요!”

여자의 말에 권총수는 일어섰다.

“내가 지혈은 시켰소. 몸속에 기운을 조금 넣었기 때문에 당장 체온이 내려가거나 심장이 멈추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건 혈액이오. 수혈부터 해야 할 것이오.”

권총수가 돌아가려고 할 때 누군가 불렀다.

“잠깐 기다리시오.”

오른손을 차고 있는 권총에 슬쩍 손을 올린 두 명의 제복경관이 다가왔다.

“어딜 가시는 길이죠. 총상 입은 환자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전화 한 통 합시다.”

권총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미리 말을 한 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번호를 누르더니 귀에 댄다.

“시간 없는데 당신나라 경찰관이 막고 있소. 빨리 스카페이스를 쫓아야 하니 얘기 좀 해주시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두 경관은 히죽 웃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위세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권총수 또한 그런 부류로 본 것이다.

삐리릭!

그때 경찰차에 있는 무전이 울렸다.

오른쪽 경관이 걸어가 차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뭔가?”

“그 분을 보내드리게. 지금 당장.”

“서장님!”

“내 뜻이 아니야.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야. 자네가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수록 골치 아파져. 빨리 보내드려.”

무전기속의 목소리가 지하2층을 울렸다.

“그만 가보겠소.”

권총수는 재빨리 출입구로 몸을 날렸다.

“허걱!”

두 경관은 소스라쳤다.

사람이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 * *

백병전은 처음이다.

백병전이 벌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현대전에서의 백병전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훈련소에서 무성무기 사용법을 배우지 않는 건 아니다.

사실 무성무기 사용법의 목적은 백병전을 대비 한다기 보다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총성을 낼 수 없을 때를 위해서가 더 큰 이유다.

하지만 이번 작전은 치열했고 시간이 길어졌다.

더욱이 쫓고 쫓기는 산악전이다 보니 양쪽 모두 본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곳까지 이동해 있었다.

전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조건 적을 쫓아 이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승산이 있고 곧 궤멸시킬 수 있다고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레드라인.

전장에서 레드라인은 생사가 결정되는 위치이다.

적당히 쫓다 아니다 싶으면 멈춰야 한다.

아프카니스탄은 산이 높다.

무전기 통신율이 20퍼센트가 안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멋모르고 들어갔다가는 본대와 연락두절로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죽여!”

“우와아아아!”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용병들 거의가 특수부대 출신이고 전투경험도 충분했다.

푹!

푸우욱!

용병들 손에 들린 대검이 탈레반들의 몸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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