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스카페이스(2)
오민철은 오해 말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좋은 말이다. 산은 있는데 임자가 없다. 그렇다면 잡은 놈이 임자지.”
“괜히 살려놨어. 은혜도 모르는.”
“총수야 그게 아니라니까.”
권총수가 버럭 했다.
“지금 날 무시한 거잖아. 고등학교도 대충 나온 놈이 문자 쓴다 이거 아냐. 날 어린애로 보나.”
“그건 아닌데 그렇게 들렸다면 사과할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오해는 마라.”
“됐고.”
부우웅!
차가 거칠게 출발했다.
“총수야. 정말 미안하다. 나 앞으로 조심할게.”
“어제 브룩스를 통해 마약 중개업자 한 명 소개해 달랬더니 그를 데려왔더라고.”
“그렇다면 CIA 끄나풀이라는 것 아냐?”
“아주 약간 상부상조 하나봐. 큰 정보는 내놓지 않고 자잘한 것 가끔씩 던져주면서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게 지내는 그런 관계있잖아. 내가 배팅을 했지.”
“어떤 배팅?”
“스카페이스에 대한 정보를 주면 자신이 시날로아 조직을 장악하는데 불편한 장애물 하나를 걷어내 주겠다고.”
오민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가에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강 너머는 미국 텍사스 땅이다.
지금은 장벽이 설치되어 있어 우회하지만 한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거친 흙탕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권총수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마흔 쯤 되는 사내와 강가에 서 있었다.
“국경장벽이 설치되어 약 장사하는데 애로가 많겠습니다.”
“많죠. 예전에는 땅굴을 이용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사내는 시날로아 카르텔 소속의 언더보스중 한 명인 사무엘이었다.
“시날로와 약들이 플로리다와 뉴올리언스 텍사스로 들어간다더군요.”
사무엘이 돌아보았는데 많이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어렵긴 하겠지만 절대 막지 못하죠. 우리 속담에 열 장정 한 도둑 잡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십인수지(十人守之) 부득찰일적(不得察一賊).”
사무엘이 빙긋 웃었다.
매우 듣기 좋은 말이다.
“스카페이스는 정말 신비한 친구죠. 그의 이름을 아는 친구는 있어도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들었죠.”
“오초아라고 아십니까?”
“그는 또 누굽니까?”
“뭐라고 설명을 해야 가장 정확한 소개가 될지 모르겠군요. 한마디로 살라자르의 책사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시날로아 카르텔을 움직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고래로 진짜 무서운 인물들은 시대를 거머쥔 패왕들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가 된 책사들이다.
적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이기면 왕은 살려줘도 결코 책사는 가만두지 않는 것이다.
책사가 없는 왕은 그 힘의 절반을 잃기 때문이다
왕을 죽이면 그 나라의 민심을 잃지만 책사를 죽이면 그럴 일은 없는 것이다.
“변호사이기도 정치권에 발이 넓죠. 이곳 후아레스시 변호사 협회 회장이기도 합니다.”
“거물이군.”
“큰 사람이죠. 잘못 건드렸다가는 피곤해질 수 있는 인물입니다.”
권총수는 야릇하게 웃었다
사무엘의 말속에는 그를 죽여달라는 청부가 들어 있었다.
“그가 스카페이스와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는 뜻이군요. 감사합니다.”
“수고 좀 해 주시죠.”
시날로아 카르텔을 장악하는데 자신을 가로막는 그를 잘 제거해 달라는 인사다.
“다음에 또 봅시다.”
권총수는 밝게 웃으며 차로 걸어갔다.
부우웅!
포드 익스플로러가 먼지를 날리며 사라지고 혼자 남은 사무엘은 중얼거렸다.
“잘되어야 하는데.”
정말 잘되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시날로아 카르텔을 장악할 기회는 없었다.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걸어왔다.
오른쪽 키가 조금 작은 사내는 마흔 초반을 살짝 넘을 정도였고 왼쪽 사내는 키도 크고 건장해 보였다.
왼쪽 사내의 약간 경직된 걸음걸이가 오른쪽 사내를 지키는 경호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핫핫! 어서 오시오.”
후아레스시 최고의 보석 가게 ‘붉은 눈(Red Eye)’의 사장 가르시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칠십이 가까워 오는 나이지만 다가오는 마흔 초반의 사내에게 깍듯했다.
“가게가 조용하군요.”
레드아이는 일반 보석 가게처럼 매장에 화려한 보석들을 진열해 놓는 그런 곳이 아니다.
가게 어딜 봐도 금반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
레드 아이는 진열장이 없다.
그 대신 손님이 주문하거나 원하는 물건만 금고에서 꺼내 거래할 뿐이다.
작은 유리 진열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는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정밀기구와 기계들이 들어 있었다.
고가 보석에 대한 진위를 판별하는 기계들이다.
“물건 하나가 필요합니다. 여자 손가락에 매우 어울리는 것으로.”
“여인의 손가락에 들어가면 더욱 빛날 물건이 있긴 하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가르시아가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보석은 안쪽 금고에 들어 있다.
똑똑!
혼자 남은 사내는 몽블랑 만년필 뒤축으로 유리를 툭툭 내리쳤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약간의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똑똑 만년필로 유리 진열대를 칠 때 안쪽으로 들어갔던 가르시아가 작은 주머니 한 개를 들고 나왔다.
의자에 앉은 가르시아는 주머니를 열고 잘 접혀진 흰색의 종이 두 개를 꺼내 먼저 한 개를 펼쳤다.
종이 안에는 붉은 광채를 뿜어내는 콩알 만한 다이아 한 개가 있었다.
가르시아는 다이아를 살필 수 있도록 작은 현미경을 내밀었다.
사내는 현미경을 통해 붉은 다이아를 살폈다.
육안으로 볼 때는 단순히 붉은 색이라는 것 정도였는데 현미경을 통하자 엄청난 광채가 쏟아졌다.
“우웃!”
사내가 놀라자 가르시아는 흡족한 표정이다.
“경고의 불빛(prophetical light)이라는 겁니다.”
현미경에서 눈을 뗀 사내는 가르시아를 보며 중얼 거리듯 말했다.
“경고의 불빛.”
그러더니 다른 종이에 담겨 있는 푸른색 다이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36조각으로 나눠지는 빛이 일품일 겁니다.”
“이 다이아몬드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사내는 현미경에 눈을 대고서 물었다.
“시간 여행자(time traveller)라고 부르죠.”
사내는 현미경에서 눈을 뗀 후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붉은 색 ‘경고의 불빛’과 푸른 색 ‘시간 여행자’를 놓고 면밀히 살피더니 붉은색 다이아가 담긴 종이를 당겼다.
사내는 다시 한 번 현미경으로 다이아를 살피더니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몇 캐럿이오?”
“3.9캐럿이죠.”
“지금 가능하겠소?”
“물론이죠. 빛나는 에비뉴 백금에 끼워 드리죠.”
가르시아는 다이아를 들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사내는 아무것도 없는 텅빈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조금 떨어져 서 있는 경호원을 바라보았다.
‘서둘러야 한다’
잠깐 즐거운 표정을 띠었던 얼굴이 차가워졌다.
지금쯤 명단 작성이 거의 완료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은밀하게 살생부(殺生簿)를 작성중이다.
자신이 시날로아를 장악했을 때 온전히 따를 부류와 반대할 자들의 명단이다.
가장 시급한 것이 살라자르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찾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릴 것이었다.
피식!
오초아는 갑자기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이런 절호의 기회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생일대 두 번 다시 없을 이 빛나는 찬스를 제대로 살리려면 침착해야 하고 냉정해야 한다.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고, 오랫동안 사귀었다고 눈 감아 주면 안 된다.
어제까지 웃으며 같이 식사를 한 사람일지라도 위험한 인물로 분류가 되면 쳐 내야 한다.
‘독하지 않으면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지금 미국의 교도소에 있는 전 보스 구스만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죽일 자 살릴 자를 계산하고 있을 때 정장에 금테 안경을 낀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경호원이 본능적으로 권총을 뽑으려 하자 오초아는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 시켰다.
사내는 흰색의 손잡이가 입 밖으로 나온 막대 사탕을 빨면서 전화통화를 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죠 뭐.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사내는 오초아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했다.
사내는 오초아처럼 의자에 앉지 않고 한쪽 벽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나라이면서 전체 인구 중 가톨릭이 차지하는 비율이 80퍼센트가 넘는다.
어느 집 어느 가정을 가도 성화 한두 점 없는 집이 없고, 고개를 숙인 채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모상을 놔두지 않는 집이 없다.
자신의 집에도 십자가에 걸려 고통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예수상이 있고 성모상이 있다.
흠칫!
오초아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왼쪽으로 기척이 있어 고개를 돌렸는데 조금 전까지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듯 보고 있던 사내가 일 미터 정도 떨어져 앉아 있었다.
“헉!”
오초아는 기겁했다.
경호원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조금 전까지 사내가 빨고 있던 막대 사탕이 목에 박혀 있었다.
“그만 갑시다!”
사내가 내려다보며 웃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걸으세요.”
안가면 시체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당신?”
“변호사님, 가자니까요.”
오초아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리고 사내를 따라 기우뚱 거리며 걸어갔는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초아는 사내를 따라 들어섰다.
후아레스에서 가장 화려한 5성급 호텔 ‘밀레니엄’이었다.
쏴아아!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들렸는데 누군가 씻는 모양이었다.
호텔방이니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앉으시죠.”
사내는 창가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자그마한 둥근 유리탁자와 세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오초아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객실을 훑어보던 오초아의 눈이 빛났다.
샤워중인 사람이 여자라면 여자 냄새, 하다못해 화장품 향기라도 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편히 쉬어요. 내 집이다 생각하고.”
자신을 데려온 사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는데 오초아의 이마가 살짝 찡그려 졌다.
경호원이 살해당하고 자신은 끌려 왔는데 어떻게 내 집이다 생각할 수가 있단 말인가.
“왔어! 빨리 왔네.”
오초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한 사내가 팬티 차림으로 샤워실을 나왔다.
젖은 머리를 흰 수건으로 소리 나도록 털어냈는데 오초아의 눈이 커졌다.
처음 보는 듯 한데 얼굴이 익었다.
파파팍!
사내는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털더니 수건을 목에 걸고 빗으로 대충 머리를 정리했다.
퍼퍽!
스킨을 손바닥에 부어 얼굴에 찍듯이 발랐다.
그리고 침대 위에 놓인 옷을 걸치고서 천천히 걸어왔다.
“아아!”
걸어오는 사내를 바라보던 오초아는 신음을 터뜨렸다.
기억났다.
옷을 입고 정면으로 걸어오는 순간 얼굴이 떠오른 것이다.
‘사막의 흑새’
사막의 흑새가 멕시코에 들어왔다는 건 안다.
그의 손에 차차리토가 죽었고 살라자르 일가가 몰살했다.
하지만 자신은 사막의 흑새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다 그가 강력한 적들을 처리해준 덕에 지금 시날로아 우두머리 자리를 얻기 위해 공사중이다.
그런데 왜 자신을 납치했을까.
권총수는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변호사님 저 아시죠?”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