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스카페이스(1)
방은 어두웠다.
캄캄한 방안에 한 사내가 잠에 빠져 있었다.
이미 몇 번 사진과 영상을 통해 얼굴을 확인한 터라 권총수는 살라자르라는 걸 알아보았다.
탁!
벽의 스위치를 올렸다.
불이 켜지고 방안이 환해졌다.
말 그대로 잠만 자는 침실인 듯 침대와 간이 탁자가 있고 벽에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자의 얼굴을 그린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걸어가 베개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고 꺼냈는데 예상대로 권총이었다.
이번에는 허리를 구부리고 침대 밑에 손을 넣자 그곳에서는 AK한 자루가 30발들이 탄창이 꽂힌 채 나왔다.
외인부대에 근무 때부터 지금 용병시절까지 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사람들의 방을 수색하면 대부분이 두 군데 총을 숨겼다.
가장 많이 숨기는 장소가 베개 밑이고, 두 번째가 침대 아래다.
그리고 머리맡에 화분이나 가습기를 놓아두는데 그건 인테리어 소품일 뿐 총을 숨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살라자르 침실에서는 화분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타탁!
AK노리쇠를 당기자 총알 한 개가 튀어 나왔다.
철컥!
철컥!
밀었다 당기기를 반복할 때 마다 총알이 방바닥에 떨어졌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살라자르가 눈을 떴다.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알고 본능적으로 베개를 밀쳐 냈다.
있어야 할 권총이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침대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탁탁!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 살라자르 안색이 굳는다.
권총과 AK소총을 발견한 살라자르는 권총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난하듯 계속 노리쇠를 당기며 총알을 빼내더니 마지막 총알이 빠져 나오자 이번에는 바닥에 떨어진 총알을 다시 탄창에 한 발씩 끼워 넣기 시작했다.
“자네인가? 날 뒤쫓았던 자가?”
“말이 좀 그렇군요. 뒤쫓았다는 표현 보다는 나쁜 놈을 잡기 위해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팟!
살라자르 눈이 빛났다.
아무리 칼자루를 잡았다고 하지만 지나칠 만큼 여유가 흐른다.
“여기까지 온 걸 보니 밖에 있는 멍청한 놈들이 모두 허수아비가 된 모양이군?”
“맞소.”
톡톡!
총알을 차분히 넣으며 말을 이었다.
“모두 죽었소. 아래층에 한 명 살려두긴 했지만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총알을 다시 가득 채운 권총수는 노리쇠를 후퇴시키더니 탄창을 다시 끼우고 밀었다.
철컥!
노리쇠가 전진하며 총알이 장전된다.
딸칵!
권총수는 AK를 옆에 놓고 말보로 레드를 피워 물었다.
후우!
권총수는 살라자르 쪽으로 길게 연기를 뿜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끝냅시다. 스카페이스 어딨소?”
“내 그림자도 아닌데 내가 어찌 알겠나?”
“그래요.”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번호 한 개를 눌렀다.
“나카야마 형, 거기 아들 있지. 그 친구 오른팔 하나 잘라 버려. 스카페이스 행방을 모른다는데.”
“으헉!”
살라자르는 비명을 질렀다.
지금 얘긴 병원에 있는 자기 아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진짜 짤라?”
일부러 스피커 폰으로 해놨기 때문에 살라자르도 나카야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 안 자르고 뭐하는 거야. 빨리 잘라.”
“오케이!”
그리고 잠시 후 아들 이라올라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버지, 살려주세요. 으아아! 안돼.”
“살인청부업자의 행선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 하시오? 24시간 경찰과 그의 손에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과 동료들이 이를 갈며 쫓고 있는데 말이오.”
“아버지! 아버지!”
스피커폰을 통해 울부짖는 이라올라의 비명에 살라자르는 수시로 얼굴색이 변했으나 크게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거짓말로 가르쳐 줄 수는 없잖소. 거짓은 금방 들통이 날 텐데.”
“형 잠깐 기다려.”
권총수는 스피커폰을 껐다.
전화까지 완전히 끊은 뒤 AK를 쥐고 살라자르를 바라보았다.
“멕시코 속담에 말이 많으면 이별이 서러워 진다고 하더군요.”
권총수는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좁은 방안에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총소리가 울리며 총구는 미친 듯 총알을 쏟아냈다.
철컥!
약실에 총알이 없다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침내 사격이 멈췄다.
30발 짜리 탄창 한 개를 모조리 비운 것이다.
벌컹!
총소리를 들은 듯 방문이 열리고 잠옷 바람의 백인 여자가 뛰어들었다.
“여보!”
살라자르 아내 까밀라였다.
올해 마흔 일곱으로 ‘화이트 스콜피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미국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전 보스 호아킨 구스만의 흔적을 지우는데 가장 앞장선 여자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똑똑한들 밖으로 나오지는 못한다. 손과 발이 묶인 사람을 보스로 모시고 대리 운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대로 가다보면 어느 한 순간 구스만의 아들에게로 권력이 넘어갈 것이라면서 서둘수록 좋다고 했다.
결국 살라자르는 일어섰고 구스만을 추종하는 간부들을 무참히 제거했다.
냉정한 여인이다.
여러가지 사건에도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설이 돌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건 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녀는 남편 살라자르와 달리 음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몇 번의 암살 위기도 겪었는데 그때 마다 운 좋게 살아났다.
두 달 전에는 백화점에 쇼핑을 하다 두 명의 괴한들로부터 총격을 받기 직전 갑자기 정전이 되어 버렸다.
정전이 되면서 사람들이 아우성 쳤고 그 사이 범인들은 까밀라가 서 있던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정전이 되는 순간 까밀라는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백화점의 전기를 껐다 생각하고 재빨리 자리를 피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된 것이다.
그녀에게 17건의 살인과 살인교사 혐의를 두고 수사중이라던 멕시코 경찰의 발표가 있은 지 1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날로아의 실질적인 두목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권총수는 노려보는 까밀라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외인부대에 이런 말이 있소. 여자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이라고.”
남자들만의 세상인 군부대에서 떠도는 말이다.
여자가 그리운 사내들의 말인데 물을 주고 가꾸지 못할 것 같다는 의미였다.
탕!
10미터 가까이 떨어졌는데 딱 한 방을 쐈다.
총알은 까밀라의 이마를 그대로 뚫고 들어가 버렸고 그녀 또한 남편 시신위로 엎어졌다.
권총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자에게 방아쇠를 당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길게 한숨을 내 쉰 권총수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마치 십년도 훌쩍 더 된 듯 싶었다.
식사를 하는 세 사람 모두 입가에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특히 오민철과 나카야마는 정이 뚝뚝 떨어지는 욕을 해가며 연신 껄껄 웃었다.
“쪽발아 그렇게 엉아가 보고 싶었어. 어휴 기특한 녀석.”
오민철이 옆에 앉은 나카야마 뒤통수를 톡톡 때렸다.
“좋아. 너 오늘부터 이 오민철의 피 안 섞인 동생으로 임명한다. 형하고 한 번 불러봐. 아주 다정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하지만 나카야마는 고개를 숙인 채 식사에 열중이었다.
“쪽발아 쪽발아 어디 있니. 형하고 불러보라니까.”
멈칫!
오민철이 허리를 숙이고 나카야마를 바라보았다.
“엇, 너 우는 거야? 야 쪽발아 왜 울어? 총수 네가 때렸어?”
오민철은 맞은편에 앉은 권총수에게 눈을 부라렸다.
“임마, 아무리 캡틴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좌석에서까지 뭐라고 하면 어떡해? 그러는 것 아냐.”
“그만 해 씨이.”
눈물이 범벅이 된 나카야마가 오민철을 노려보았다.
“얼마나 불안했는데, 두 다리 뻗고 잠 한숨 제대로 못 잤다고.”
스윽!
오민철이 옆에 앉은 나카야마를 끌어안았다.
“알아, 알아”
오민철도 더는 장난치지 못했다.
고개를 쳐든 오민철이 자꾸 눈을 깜빡 거렸는데 눈물을 참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권총수는 그런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우정이 예전보다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 했다.
서로에 대한 조센징 쪽바리에 대한 호칭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최소한 둘에게는 애칭이 될지도 모른다.
스카페이스 추적이 난관에 부딪혔다.
CIA브룩스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전부터 CIA는 물론 FBI까지도 스카페이스를 쫓고 있지만 말 그래도 신출귀몰 하다는 것이었다.
변장에 달인이라는 것과 한 번 지나가면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아 몹시 애를 먹는다는 걸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미국과 극한 대립을 하는 IS나 알카에다 두목이 아닌 다음에야 인공위성까지 동원하며 추적할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예상 밖으로 길어지자 일단 나카야마를 보내기로 했다.
가지 않겠다는 걸 권총수는 달래며 읍소했는데 나카야마는 거의 울상을 했다.
“쪽발아 연락할게 너무 서운해 하지마.”
오민철이 달랬다.
“닥쳐, 조센징.”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오민철의 행동에 나카야마는 심통이 난 것이다.
“바로 도쿄로 갈거지?”
“내가 어딜 가든.”
나카야마는 혼자 있고 싶다는 듯 저만치 떨어진 의자에 가서 앉았다.
탁!
오민철이 다가가려 하자 권총수가 손목을 잡았다.
“놔둬. 혼자 있는 것이 감정 다스리는데 좋아.”
오민철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청사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 한다는 얘기 못 들었어? 모아 놓은 돈이 적지 않을텐데?”
“일체 없던데.”
성실한 용병들은 3년에서 5년 정도 활동하며 모은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조그만 가게를 차린다.
미국 서부쪽 출신들은 대개가 땅을 샀고 동부쪽은 도심에 작은 점포 꾸리는 걸 목표로 한다.
라스베가스를 경유하여 도쿄로 가는 델타항공을 이용할 승객들은 탑승 수속을 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카야마가 일어나 가방하나 달랑 매고 걸어갔다.
“형은 여기서 기다려.”
권총수는 걸음을 빨리하여 나카야마 겉으로 다가갔다.
“나카야마 형, 언제든지 연락해. 시간 내서 놀러도 갈게.”
나카야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게이트를 빠져나가 버렸다.
“쪽발아.”
오지말라고 했는데도 어느새 달려온 오민철이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나카야마는 돌아보지 않았는데 오민철은 다시 외쳐 말했다.
“쪽발아. 전화해. 결혼할 때 연락해야 돼.”
나카야마는 끝내 돌아보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서 있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괜찮겠지?”
오민철이 염려스러운 모양이었다.
“생각 깊은 형이야. 아마 우리 맘을 충분히 이해 할거야.”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공항청사를 걸어 나왔다.
주차장에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을 바라보던 권총수가 재빨리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사무엘.”
사무엘이란 말에 오민철이 돌아보았다.
멕시코 와서는 처음 듣는 사람 이름이었는데 권총수의 눈이 꿈틀거렸다.
“알겠소. 지금 거기서 봅시다.”
전화를 끊는 권총수에게 재빨리 물었다.
“누군데?”
“사무엘이라고 시날로아 카르텔 언더보스야.”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아주 야망이 큰 사내더라고.”
“그놈이 널 왜 만나자고 하는 건데?”
“살라자르가 죽으면서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 자리가 무주공산이 되었잖아.”
“무...무주공산(無主空山).”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순간 권총수 표정이 굳어졌다.
“눈이 왜 그러는데? 내가 사자성어 썼다 이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후우!”
권총수는 화를 다스리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