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8화: 707의 아들(4)
좌우에 마주 앉은 사내들은 손에 포커를 쥔 채 얼어붙어 버렸다.
권총수가 손을 뻗자 바닥에 있는 스페이드 에이스(A) 한 장이 허공으로 떠올라 손에 잡혔다.
두 사내의 눈이 커진다.
마술인 듯 했다.
하지만 마술사는 눈속임이다.
권총수는 눈속임이 아니라는 듯 이번에는 다이아몬드 에이스(A)를 끌어 당겼다.
“오마이 갓!"
그때 늦게 들어선 나카야마가 안쪽에서 비명 같은 소릴 질렀다.
“너 쪽바리 아니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오민철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푸푹!
권총수의 손에 있던 카드 두 장이 날아가면서 정확히 두 사내의 마혈를 찍었다.
두 사내는 있는 힘을 다해 양손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권총수는 등을 돌려 침대가 있는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이 씹새, 정말 쪽바리 맞잖아.”
침대가 보인다.
그 위에 오민철이 누워 있었는데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양손과 발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민철!”
“쪽발아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이런 환장하겠네. 지키는 놈들 어떻게 했어?”
나카야마는 엎드려 오민철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거 꿈이면 안 되는데.”
오민철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형!”
나카야마가 권총수 목소리에 상체를 일으켜 한쪽으로 비켜섰다.
침대 네 귀퉁이와 연결된 쇠사슬에 묶인 오민철이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초...총수?”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가 오민철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보았다.
몸은 건강해 보였으나 탈출을 위해 힘을 쓴 듯 발목과 손목에 상처가 있고 딱지가 앉았다.
“나카야마 형.”
“응!”
“쟤들 죽여 버려.”
가급적 쓸데없는 살인은 피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쇠사슬에 묶인 오민철을 보자 참을 수가 없다.
“죽이라니까 뭐해.”
머뭇거리는 나카야마를 쏘아보더니 자신이 다가가 직접 권총을 꺼냈다.
푸슉!
푸숙!
두 사내의 이마에 총알이 박혔다.
권총수는 쓰러진 두 사내를 잠시 바라보더니 오민철의 사지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모조리 끊어 버렸다.
투투툭!
“총수야!”
오민철의 목소리가 흔들린다.
“형 고생 많았지?”
“이런 젠장!”
오민철은 말을 못했다.
“너무 살고 싶었다. 정말 살고 싶었어. 나 절에 다니는데 하느님에게까지 빌었다.”
주르륵!
띄엄띄엄 말하는 오민철의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완전히 빌었어. 산신령에게도 빌었고, 알라에게도 살려달라고 했어. 힘 좀 있는 사람에게는 닥치는 대로 사정했다니까.”
오민철은 눈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돈 좀 벌어놨는데 죽어버리면 어떡 하냐고, 아 빌어먹을.”
나카야마가 눈물을 흘리는 오민철에게 휴지 몇 장을 뽑아 주었다.
급기야 오민철은 큰 소리로 통곡하고 말았다.
“아이고! 어어엉! 엄마.”
절대 울 것 같지 않았던 사내가 운다.
우는 사람을 제일 바보라고 말하던 오민철이 대성통곡을 했다.
“내 심장을 어떤 개자식한테 준다는 거야. 사람이 심장 없으면 못살잖아. 결국 그 자식 살리기 위해 날 죽인다는데...으와아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차라리 총에 맞아 버리면 죽은지도 모를텐데 죽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건강식이라고 하여 스테이크에 불고기를 먹이는데 미치겠더라고 했다.
빨리 건강해질수록 죽는 시간이 빨라진 다는 걸 알고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주사 따위도 맞지 않기 위해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권총수가 구출하기 위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배에 태워져 멕시코로 오는 순간 모든 희망을 버렸다.
그런데 기적이 찾아왔다.
말로만 듣던 기적이 자신에게도 나타난 것이다.
권총수는 오민철이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가끔 울음은 그 어떤 영양제 보다 사람의 몸을 튼튼하게 만든다고 했다.
오민철의 울음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별빛이 밝았다.
먼 하늘 저편에서 긴 꼬리를 남기며 유성이 떨어졌다.
푹!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사내의 눈이 불거지듯 튀어나왔다.
그것도 사혈인 옆구리 경문혈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두었다.
권총수의 손에는 어른 팔뚝 굵기의 각목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길이였다.
어두워서일까 얼핏 검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듯 보였다.
우거진 정원수 사이를 바라보는 권총수의 눈이 번득인다.
경호원들은 나무 사이사이에 위장하듯 숨어 있어 신중하지 않으면 실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호원들이 침묵하며 어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이미 자신을 향해 사막의 흑새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경호원 숫자가 평소보다 두 배 늘었다는데 족히 삼십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스으으!
풀 위를 지나간다.
자그마한 소나무 옆으로 다가간 권총수는 손에 쥔 각목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사내의 명문혈을 찍었다.
푸우욱!
각목은 복부를 관통하여 앞으로 삐죽 나와 버렸다.
각목을 뽑아든 권총수는 다시 움직였고 어둠속에서 무자비한 살인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누구도 깨닫거나 이상한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찌르고 죽일 때마다 강기를 펼쳐 소음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퍼어억!
마지막 경호원의 머리가 으스러지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피 냄새가 맡아졌다.
권총수는 땅바닥에 침을 뱉고 이층 단독주택을 올려다보았다.
이층은 불이 꺼졌고 1층은 훤했다.
1층 거실에 두 명의 경호원이 상주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켜놓은 불빛일 것이다.
뚝뚝!
오른손에 쥐고 있는 각목을 타고 경호원들의 피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권총수는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잡아 당겼다.
밤이든 낮이든 현관문은 잠겨 있다.
1층 근무자로부터 얼굴 확인이 되고 나서야 문은 열린다.
투명한 유리지만 방탄이라고 했다.
바깥 현관문을 열더라도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웬만한 총알이 바깥문을 뚫고 들어온다고 해도 두 번째 문에서 거의 걸릴 것이다.
권총수는 손잡이를 잡고 격공장을 펼쳤다.
손잡이는 멀쩡한데 안의 잠금쇠만 녹인다.
스르르!
고리가 녹아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안의 경호원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문을 열고 두 번째도 같은 방식으로 열었다.
역시 텔레비전이었다.
하긴 아무리 비상사태라고 하지만 긴 밤을 멍청하게 앉아 뜬 눈으로 샐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두 명이라고 했는데 한 명 뿐이다.
탁자 위에 올려진 AK소총이 두 자루인 것이 더욱 두 명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보이지 않는 사내 한 명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UFC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내가 상체를 바로 세우고 응원하는 걸 보면 멕시코 선수가 싸우는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소리 없이 다가가 소파에 앉았다.
워낙 은밀하여 사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
라운드가 끝나고 광고가 시작되고 나서야 사내는 고개를 돌렸는데 권총수를 발견했다.
사내는 재빨리 탁자위에 있는 자신의 AK를 잡으려고 했다.
푸우욱!
하지만 권총수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각목이 사내의 목구멍을 파고들어 버렸다.
각목은 정확하게 목젖을 파고들어 목 뒤로 삐져나왔는데 사내는 온 몸을 기타 줄처럼 바르르 떨더니 축 늘어졌다.
각목을 뽑자 사내는 옆으로 눕듯 넘어진다.
그때 안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데 화장실을 간 사내가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내는 아무 생각없는 듯 걸어왔는데 아직까지 동료가 죽은 걸 모르는 듯 했다.
권총수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는데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어!”
소파에 거의 다가와서야 신음을 흘렸다.
맞은편 동료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것을 봤는데 권총수가 말했다.
“앉으시오.”
사내는 얼른 앉지 않고 머뭇거렸다.
총은 탁자위에 있고 권총수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뒤에서 목을 졸라 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와 해치울 수도 있다.
아니면 일단 급한대로 주먹으로 머리통이라도 후려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등 뒤 사내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주춤 거리며 다가와 죽은 동료 발치에 앉았다.
권총수는 얼어붙은 사내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건 몹시 현명하다는 메시지 같았다.
영화에서처럼 뭔가 해보려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이 끊어졌을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지금 이 집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은 당신과 2층에서 잠들어 있는 살라자르 부부 뿐이오.”
끄억!
사내는 기겁했다.
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들이 죽었다면 하다못해 총소리라도 한번 들렸어야 정상인데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난 당신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소.”
사내의 눈이 빛났다.
죽이지 않을테니 묻는 말에 잘 대답하라는 뜻이었다.
“예!”
사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마약 조직에 몸을 담고 살아왔으나 총을 갖고서도 방아쇠 한 번 당겨보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밖의 동료들이 몰살당했다면 오늘 밤 살라자르 부부가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자신도 살길을 찾아야 했다.
“2층에 부부가 자는 것 맞소?”
“예!”
“고맙소. 아참 한 가지 더 물을 것이 있소.”
반쯤 자리에서 일어났던 권총수가 다시 앉았다.
“뭐더라. 가만.”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이마를 찌푸렸다.
“맞아. 스카페이스라고 알고 있소?”
사내는 화들짝 놀랐다.
이름만 얘기했는데도 놀라는 걸 보면 소문대로 프로페셔널인 건 분명해 보였다.
“알긴 하지만 자세히는.”
“내가 원하는 건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는 것이오. 아는 것만큼 만.”
겁먹을 필요 없다.
아는데 까지만 말하면 된다는 부드럽고 온유한 다독임이었다.
“정말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흔적이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죠. 멕시코는 물론 남미, 미국까지 활동영역이 넓죠. 아는 건 그가 맡은 사건은 반드시 해결이 되었다는 것 뿐입니다.”
권총수는 사내의 말에 의심하지 않았다.
킬러들은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프리카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표범보다도 더 은밀하고 수시로 본색을 바꾼다.
권총수는 천천히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순간 소파에 앉은 사내의 눈이 빛났는데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옆에 총도 있다.
손만 뻗어 잡으면 죽일 수 있는 것이다.
가슴이 뛰면서 온 몸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
재빨리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권총수는 마지막 계단을 밟고 2층에 올라섰다.
계단 앞으로 이층을 들어가는 현관문이 있었는데 잡아당기자 꼼짝하지 않는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손잡이가 엿가락처럼 꼬이며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거실이 나타났고, 오른쪽으로 주방이 있었는데 일층보다는 훨씬 단촐했다.
권총수는 느릿하게 2층 거실을 훑었다.
붉은 색의 원목 탁자와 의자 두 개가 전부다.
손님은 아래층에서 만나고 2층은 오로지 부부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방은 좌우로 한 개씩 있었다.
숨소리가 나눠진 걸 보면 부부는 같은 방을 사용하지 않고 따로 자는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오른쪽 방문을 열었다.
오른쪽 방문을 택한 건 숨소리가 왼쪽 방보다 좀 굵고 거칠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