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707의 아들(1)
타격지점은 낭심으로 어떤 덩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제대로 맞으면 거품 문다.
탁!
권총수의 오른손이 어느새 밑에서 낭심을 향해 날아오는 사내의 발목을 거머쥐었다.
온 몸의 힘을 쏟아 휘두른 발길질인데 갑자기 발목이 잡히자 사내는 중심을 잃고 말았다.
쿠쿵!
평소 같으면 손을 짚었거나 재빨리 몸을 이동해 흐트러진 중심을 바로 잡았겠지만 지금은 꼼짝 할 수가 없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는데 사내는 상당히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제 발로 가기 싫다면 할 수 없지.”
권총수는 발목을 거머쥔 채 사내를 끌고 갔다.
“놔, 안놔.”
빠악!
소릴 지르자 구둣발로 턱을 갈겼다.
발길질에 입에서 피가 쏟아졌는데 아혈이 제압당하는 바람에 신음도 내지 못했다.
“으으응!”
사내는 괴성을 질러냈고 권총수는 질질 포대 하나를 끌고 가듯 경비원 사무실이라고 쓰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무실은 상당히 넓었고 책상만 십여 개가 되었다.
그건 이곳이 간판만 경비실일 뿐 차차리토 부하들이 근무 직원으로 위장하여 일하는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딸칵!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내려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퍽!
와르르!
가만 누워 있으면 될 걸 사내는 바둥거리면서 기어이 일어났는데 두 눈에서 분노의 불길을 뿜어냈다.
금방이라도 권총수에게 달려 들것 같은 얼굴로 노려본다.
씨익!
그걸 보며 미소를 짓던 권총수가 절반쯤 태운 담배를 적엽비화의 수법으로 던졌다.
눈을 감을 새도 없이 담배가 사내의 오른쪽 눈을 파고들었다.
아혈이 제압되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곡지혈이 점혈당해 팔도 움직일 수 없다.
피할 수는 더욱 없었는데 너무 빨랐다.
사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펄쩍펄쩍 뛰는 일 뿐이었다.
뻐억!
권총수는 다가가 제대로 낭심을 걷어찼다.
내공이 실린 발길에 채인 사내는 공중을 날아가 맞은편 벽에 사정없이 부딪치며 떨어졌다.
스윽!
권총수가 권총을 뽑더니 다가가 왼쪽 눈에 총구를 들이댔다.
담뱃불이 박힌 오른쪽 눈은 이미 기능을 잃었다.
그런데 왼쪽 눈에 총구를 대자 사내는 순간적으로 몸을 한 번 떨었다.
아마추어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그만 체격인데 190센티미터에 백킬로가 넘는 자신을 장난감 다루듯 해버린다.
“차차리토가 이곳으로 가보라더군요.”
흠칫!
사내가 깜짝 놀란다.
차차리토는 자신은 올려다 볼 수도 없을 만큼 조직 최고 수뇌였다.
“한 쪽 눈으로라도 세상을 보고 싶으면 내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될 것입니다.”
권총수는 왼쪽 눈에 들이대고 있던 총을 치우고 주머니에서 오민철의 사진을 꺼냈다.
“본적 있을 것이오. 아시아계, 얼마 전 아프카니스탄에서 넘어 왔을텐데?”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권총수의 인상에 사내는 더듬거렸다.
“아시아계 한 명이 온건 알지만 사진 속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소.”
권총수는 사내의 믿기로 했다.
우리가 백인이나 흑인을 보면 얼른 구분을 못하듯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병원에 있소?”
“없소. 그는 어제 떠났소.”
“어디로 떠난 거야?”
나카야마가 끼어들었다.
“어디로?”
나카야마는 사내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대부분 이곳 아루바 병원에서 적출하고 이식이 이뤄지지만 가끔은 이곳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소.”
권총수의 눈이 좁혀졌다.
불법이고 만에 하나 비밀이 새어나가면 어차피 차차리토는 나쁜 놈이므로 그렇다 쳐도 이곳에서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들 중 멕시코 사회의 지도층들이 적지 않다.
즉 이곳만큼 비밀유지가 분명한 병원은 없는 것이다.
“마피아나 마약 카르텔의 인물들이오. 그들은 이곳 의사나 관계자들을 믿지 않지요.”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것이다.
워낙 주변에 적이 많은 그들인 만큼 이식 부작용으로 덮어씌워 얼마든지 살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간 곳이 어디요?”
“사우다드 후아레스요.”
“아!”
후아레스란 말에 권총수가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왜 그러느냐는 듯 나카야마가 바라보았는데 권총수는 깨문 어금니를 풀고 한숨을 내 쉬었다.
“병원과 이식 대상자가 누구요?”
“그건 모르오.”
“뭘 몰라 죽여 버릴거야.”
나카야마가 소리치며 권총을 왼쪽 눈에 들이댔다.
“말 안 해? 사실 대로 빨리 얘기해!”
“형 그만해.”
권총수가 의자 하나를 끌어내더니 주저앉았다.
“정말 모를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말단 행동대원이 조직 수뇌부에서 결정하고 이행하는 일을 무슨 수로 알겠어. 더욱이 합법적인 것도 아닌데.”
나카야마는 주춤 하더니 권총을 회수하여 허리에 꽃아 넣었다.
병원장 푸스카스가 들어섰다.
이제 출근하는 길이다.
책상위에 가방을 놓고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움찔!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기 위해 사무실 안쪽에 있는 커피머신 쪽으로 몸을 돌리던 푸스카스가 멈칫했다.
두 명의 사내가 벽에 등을 기댄 채 홀짝 거리며 자기보다 앞서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긴 자신의 방이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고 출입문은 지문인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침입은 더욱 어렵다.
움찔!
그러다 눈을 크게 떴다.
창문이 열려 있다.
사무실인데 설마 5층으로 올라왔단 말인가.
유리창 일부가 불에 탄 플라스틱처럼 흘러내린 자국이 있다.
설마 유리를 녹이고 문을 열고 들어 올리는 없을 것이다
그때 권총수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창틀에 놓고 말했다.
“원장님 잠시 후 아침회의를 주재 하자면 바쁠테니 간단히 용건만 말하겠습니다. 어제 후아레스로 보낸 아시아계 남자 있죠. 도착지가 어느 병원입니까?”
푸스카스의 눈이 커졌다.
돈을 노린 갱 정도로 생각 했는데 자신의 사업에 대해 파고든다.
병원 수입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장기매매 조직과 연계하며 얻은 소득 또한 굉장하다.
“지하 입원실에 20여명의 남녀가 치료를 핑계로 감금되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전 멕시코 경찰이나 기자를 부르지 않습니다. 곧바로 미국 대사관에 연락해버리죠.”
멕시코 경찰이나 기자는 얼마든지 손을 쓸 수가 있다.
그러나 미국 대사관으로 정보가 들어가면 끝장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은 자신을 미국 연방법을 위한 죄수로 만들어 미국에서 재판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징역 백 년 이상은 너끈히 떨어진다.
미국이란 나라의 법은 어떤 권력 앞에서도 냉정하게 평등하지 멕시코처럼 자주 흔들리지 않는다.
“파엘레 병원이오.”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수혜자는 누구요?”
“이라올라.”
권총수가 누구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모든 걸 털어 놓기로 한 듯 입을 연다.
“살라자르 외아들이오.”
창가에 있던 권총수가 한 걸음 다가왔다.
“살라자르라면 시날로아 카르텔 두목?”
“알고 있군요. 그렇소. 그의 아들이 오래전 삼인조 킬러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소.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심장을 이식해야 한다더군요.”
“시날로아라면 혹시 페르샤워 분지 IED(:급조폭발물Improvised Explosive Device) 사고에 관여한 사람 아냐?”
나카야마가 눈을 빛냈는데 권총수로부터 대충 얘길 들었다.
“이게 무슨 더러운 꼴이야. 팀원들은 그 놈한테 죽고 가까스로 살아난 민철은 그놈 자식에게 심장을 서비스하다니.”
나카야마가 기가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라도 살라자르에게 연락을 하려거든 해도 괜찮소. 대신 연락하는 그 순간 FBI와 CIA가 경쟁하듯 이 병원으로 쳐들어 올 테니까.”
권총수는 창틀에 놔둔 커피 잔을 들어 마지막까지 마신 뒤 걸어 나갔다.
“행운을 비오.”
탁!
지나가면서 어깨를 토닥였다.
문이 닫히자 푸스카스는 소파에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었다.
단단히 잠긴 사무실을 뚫고 들어 올 정도면 자신 정도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살아 난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당장 1층 사무실에 있는 경비원으로 위장한 장기밀매 조직원들에게 연락을 해야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그들이니 어렵지 않게 없애버릴 것이다.
뚝!
하지만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혹시라도 살라자르에게 연락을 하려거든 해도 괜찮소. 대신 연락하는 그 순간 FBI와 CIA가 경쟁하듯 이 병원으로 쳐들어 올 테니까.’
털썩!
다시 주저앉았다.
멕시코 국민으로 미국 교도소에 복역중인 대표적인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마약왕으로 불리는 구스만이다.
전 시날로아 카르텔 두목으로 감옥 속에서도 조직을 능숙하게 다스리며 군림해온 거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교도소에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다.
미국과 멕시코 교도소는 다르다.
구스만이 멕시코에서는 통하지만 미국에서는 한낱 외국인일 뿐이며 어마무시한 갱단이 득실거리는 미국 교도소 문화 속에서 명대로 살다죽을 것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없다.
‘멕시코 교도소로 옮겨 주기만 하면 내 전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고문 변호사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안돼’
푸스카스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는 곧 자신이 종신형으로 가는 길이다.
멕시코 시티 공항에 권총수와 나카야마가 나타났다.
그리고 5분이 채 되지 않아 CIA 멕시코 총 책임자인 2등 서기관이자 화이트 요원인 브룩스가 들어선다.
권총수는 공항을 오면서 대충 그간의 내용을 전화로 말해 주었다.
“일을 너무 크게 벌리는 것 아닙니까?”
브룩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무슨 얘기오?”
권총수의 눈빛이 차갑다.
그건 불쾌감이다.
내 일에 끼어들지 마라. 자꾸 그렇게 관여하려들면 CIA와 일 못한다는 경고였다.
브룩스가 당황했다.
“그게 아니라.”
“권총 한 자루 지원해주고 큰 도움이나 준 것처럼 말하면 듣는 이가 무척 기분 상하는 법이오. 가급적 살인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내 일만 속히 끝내고 돌아가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분명히 말하죠. 부담스러우면 언제든지 발을 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브룩스가 자세를 낮췄다.
이미 상부에서는 어떻게 하든 권총수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건 CIA 멕시코 지역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윗선에서 권총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자신의 입장은 또 다르다.
멕시코에서 CIA가 연계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라도 나오는 날이면 무조건 아웃이다.
단순히 옷을 벗는 것이 아니라 미국 법정에 설 수도 있었다.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못하면 자신이 모든 걸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이다.
“후아레스에 있는 파엘레 병원에 대해 좀 알아봐주시오.”
“좋습니다.”
브룩스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을 향한 눈초리와 목소리에는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젠장’
사람 앞에 이렇게 기를 못 펴보기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