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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44화 (244/651)

제244화: 사람과 사람(2)

권총수 페이스다.

무리하게 권총수에게 넘어간 주도권을 가져오려다가 화를 당할 수도 있다.

쓸데없는 체면, 자존심 따위 챙기려다가는 그야말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십상이다.

“여러분, 어려운 것 없습니다. 그냥 잠자코 있으면 됩니다.”

권총수는 천천히 차차리토에게 다가갔다.

피 범벅이 된 차차리토는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고 있었다.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목이 몇 개는 되는 모양이구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죽을 때 죽더라도 회장님은 반드시 저승길 합승할 테니, 나 같은 근본도 없는 잡놈이 멕시코 최대 장기밀매 조직 우두머리와 나란히 저승길 간다면 그것 또한 영광 아니겠습니까?”

두두두두!

그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간파한 경호원들이 창문을 향해 AK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침입자를 대비해 단단한 철벽처럼 막아 놓은 75밀리 방탄 유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스윽!

권총수는 주머니에 넣었던 포크를 꺼냈다.

손님들 파티에 내놓기 위해 새로 구입한 듯 포크는 천장의 조명을 받아 번쩍거렸다.

푸우욱!

포크가 차차리토 왼쪽 무릎 뼈 사이로 깊숙이 박혔다.

“끄아아아!”

차차리토는 온몸을 떨었다.

물에 빠진 사람처럼 양손을 들어 올리며 허우적거렸는데 안면 근육을 파르르 떨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버렸고 경찰서장인 탈라베라는 지그시 눈을 감아 버렸다.

허벅지 뼈와 정강이 뼈 사이에 연골이 있는데 포크는 그곳을 뚫고 박혔다.

아픔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다시 눈을 뜨고 권총수를 보는데 전혀 표정 변화가 없다.

‘으음!’

아무나 고문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권총수가 고문을 즐기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고문을 즐기는 사람과 뭔가를 얻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의 표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권총수는 지금 진지했다.

슥!

다시 한 개의 포크를 단단하게 쥐었다.

“그냥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시오. 알겠소?”

푸우욱!

차차리토의 대답이 늦어지자 곧장 오른쪽 무릎 사이에 자루까지 박혔다.

“껴러러!”

본능이 내지르는 소리다.

권총수는 세 개째 포크를 거머쥐었다.

“부상을 입은 동양인을 데려왔죠?”

“데려왔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오민철의 사진을 꺼냈다.

“이 사람 맞소?”

차차리토는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결재만 하는 사람일 뿐 현장 직원이 아니어서 모른다는 거요?”

“물론이다.”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사실이다.”

“관리자가 누구요. 탈레반으로부터 사람을 인수 받으면 멕시코 안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 시간 동안 그들을 살피고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니오?”

차차리토는 잠시 멈칫 했다.

푸우욱!

여지가 없었다.

세 번째 포크가 팔꿈치를 파고들었다.

“꺼윽! 라모스.”

“멕시코에 라모스가 한 사람 뿐이오?”

“아루바 병원.”

“어디에 있소?”

“사할람.”

사할람이 어디냐는 듯 내려다 볼 때 누군가 등 뒤에서 말했다.

“북쪽으로 20여 킬로 올라가면 인구 오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가 있죠. 그곳이 사할람이에요.”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는데 검은 드레스를 입은 마리아라는 여인이었다.

푸우욱!

네 번 째 포크가 차차리토의 목젖을 파고들었다.

몇 번 바둥거리더니 조용해진 것이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일어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수아레스 시장님, 캄포스 의원님, 라미레스 말레니오 신문사 사장님.”

그리고 한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존경하는 경찰서장님.”

호명 당한 사람들은 바짝 긴장했다.

오늘 초대받은 사람들 중 베라크루스시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이 문 밖으로 새어나가면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안돼요.”

뾰족하게 소리치는 여자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고분고분 하던 마리아였다.

“절대 안돼요. 오늘 여기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에요.”

나중 알게 됐지만 마리아는 가수였다.

정상급 가수는 아니었어도 가끔은 해외공연까지 다니면서 국내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특히 그녀가 스페인어로 번안하여 부른 마돈나의 히트곡 보그( Vogue)는 멕시코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입을 다물어야 해요. 없었던 일이죠. 우린 열심히 초대에 응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뿐이죠.”

경찰서장도 한 마디 더 보탰다.

“여기 의원님과 시장님께서 도와주신다면 오늘밤 일을 완벽하게 덮겠소.”

짝짝짝!

누군가 박수를 쳤고 모두가 따라했다.

경찰서장과 시장과 캄포스 국회의원의 배웅을 받으며 권총수와 나카야마는 저택을 벗어났다.

“인연이 닿으면 또 뵙겠죠. 각자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권총수는 넉살맞은 웃음을 지으며 차를 몰고 떠나갔다.

세 사람은 차의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대서양으로부터 눅눅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오늘밤 일은 우리들의 삶에서 완전히 지워져 합니다.”

캄포스 의원이 경찰서장과 베라크루스 시장을 향해 힘주어 말했다.

“죽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합니다. 새어나갔다가는 나도 당신들도 끝장이오.”

베라크루스 시장 수아레스가 눈을 빛냈다.

“의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오늘 밤 일은 내가 잘 처리하여 깨끗하게 덮겠습니다.”

“아니오 그럴 것 없습니다.”

시장 수아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서장님이 나서면 결국 부하 경찰관들이 알게 됩니다. 단 한명이라 오늘 일을 모르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건 시장님 말이 맞소. 한 명이 더 안다는 건 비밀 보장이 그 만큼 흔들린다는 뜻 아니겠소.”

경찰서장은 멈칫 하며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듯 시장을 보았다.

“돈만 주면 아주 깔끔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사람들 있잖소.”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청소 좀 해줘야겠소. 돈은 지금 바로 통장에 입금해 드리지요. 모두 다섯 구입니다. 그럼.”

캄포스 의원이 전화를 끊은 수아레스 시장을 보며 물었다.

“누구?”

“장의사입니다. 다른 곳과 특별한 점은 늙어 죽거나 병들어 떠난 시신들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뭘?”

“법에 접촉되는 살인사건만 처리하죠. 물론 장의 비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완벽합니다.”

그제서야 사람들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오른다.

비밀은 유지되어야 했다.

라이트를 켠 차량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사할람으로 가는 포드 익스플로러였다.

핸들은 나카야마가 잡았는데 자꾸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는 것이 오민철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불안한 모양이었다.

“형, 너무 그럴 필요 없어.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어. 살고 죽는 건 하늘에 매인 거라구.”

“제발 살아 있어야 할 텐데.”

권총수는 창문을 약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차안의 팽팽했던 긴장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 했다.

“우리 민철이 형 참 고생 많이 한다.”

권총수는 혼잣말처럼 입을 열었다.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벌교에서 태어난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벌교?”

나카야마가 물었다.

“있어. 저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 붙어 있는 작은 읍내야. 들어보니 일본 사람들이 호남 내륙지역의 곡물을 수탈하여 실어가야 하는데 마땅한 항구가 없었다는 거야. 여수까지는 멀고, 목포는 군산항과 함께 호남평야에서 나온 곡물이 몰려 여유가 없고. 그래서 부랴부랴 제방을 쌓고 임시 항구를 만들었지.”

일제 수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불편한지 나카야마는 침묵했다.

“돈이 도는 곳에 주먹이 끓지.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 말고, 여수가서 돈 자랑 말고, 벌교가서 주먹 자랑 말라는 말이 그렇게 만들어졌나봐.”

“그래서 민철이 그렇게 싸움을 잘하는구나.”

“태권도를 배우기 전에도 싸움은 잘했다라고 자랑하던데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벌교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갔는데 각 지역에서 온 초등학교 일진들의 신경전이 대단했나봐요.”

권총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출신 초등학교별로 자기 학교를 대표하는 주먹대장을 응원하는데 자기 학교 출신이 짱이 되면 3년 동안 편한가봐. 형은 낙성초등학교를 나왔는데 한 번에 휘어잡았다고.”

“민...민철.”

나카야마가 어깨를 들썩 거렸다.

오민철의 어린시절 얘기에 감정이 복받친 모양이었다.

“에이!”

나카야마는 눈물을 참으려고 악물었다.

“싸움만 잘하면 뭐해. 나한테 무식하다더니 자기는 더 무식하더라고.”

나카야마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것이 정이고 의리라는 것이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주고받는, 그래서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나카야마의 저 감정이 진짜 우정이다.

‘사할람’

5킬로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차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도로는 다시 어둠에 잠겼다.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아루바 병원에 도착했다.

5층 건물로 꽤 커보였는데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일반적인 병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탈레반과 IS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집단들로부터 넘겨받은 포로와 주민들의 장기적출이 이뤄진다.

차차리토의 말을 빌리면 몸 상태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고 했다.

20대에서 50대 사이의 건강한 남자는 몸 값이 100만 달러가까이 이른다고 했다.

장기 가격도 어느 부분이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두 사람은 병원로비로 들어섰다.

아직 동이 채 터오기 전의 병원은 조용했고 천장의 형광등만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복도 끝에 이르자 원무과를 비롯한 병원의 행정 업무를 보는 부속 사무실들이 있었다.

“누구요?”

등 뒤에서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느릿하게 돌아선 두 사람의 시선 속으로 당당한 체격의 경비원이 보였다.

190센티미터는 되어 보일 것 같은 키에 근력운동을 많이 한 듯 상체가 터질 듯 했다.

왼쪽 가슴에 아루바 병원이라는 이름이 박힌 위아래 짙은 남색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권총까지 차고 있었다.

사내는 아차 하면 뽑겠다는 듯 오른손을 권총 손잡이 근처에 붙이고 있었다.

히죽!

권총수가 오른손을 부드럽게 뻗어내더니 웃으면서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어어어!”

사내는 당황했다.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조용한 곳 없습니까? 경비님께서 소릴 질러도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중요한 대화를 나누기 적당한 장소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혈을 풀어주고 대신 양손 곡지혈을 눌러 팔을 꼼짝 못하게 했다.

몸이 움직이는 대신 이번에는 양팔이 꼼짝 않자 사내는 더욱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무 걱정 마시오. 우리 사이에 볼일이 끝나면 손은 다시 밥을 먹을 수 있고 얼마든지 권총도 뽑을 수 있을 것이오.”

사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건 온 힘을 다해 팔을 움직여 보려는 것이었다.

얼굴은 더욱 시뻘게 졌고 빨간 페인트를 칠해 놓은 듯 달아올라 있었다.

“갑시다!”

권총수는 등을 탁 치며 데려갔다.

그러나 사내는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양팔이 굳어버려 주먹은 쓸 수 없지만 자신의 체격이 월등하다.

더욱이 둘 모두 몸에 총기 따위를 갖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빡!

번개처럼 권총수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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