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조지다(2)
권총수는 서랍을 열어 글록 18을 꺼내 소음기를 끼웠다.
권총수는 다시 한 번 탄창을 확인하고 허리 뒤에 꽂아 넣었다.
여분의 탄창 두 개는 좌우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었고,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머리를 깨끗하게 빗어 넘겼다.
“가요.”
“응 그래.”
나카야마는 재빨리 권총수를 따라갔다.
퍼레이드 클럽을 들어섰다.
자정의 클럽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권총수는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는데 오빠 하면서 아는 체 하는 여자가 있었다.
통로 옆 좌석에 다른 남자들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스테파니였는데 빙긋 웃는다.
권총수는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다.
“스테파니, 오빠라는 사람 있니?”
“응, 2층에 있을 거야. 연락해줄까.”
“아냐. 나도 길 아니까 내가 가지 뭐.”
권총수는 스테파니 어깨를 두들긴 후 올려다보는 멕시코 사내들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누구야 쟤?”
멕시코 사내들이 묻자 스테파니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말했다.
“착하다고 해야 하나 바보 멍청이라고 말해야 하나.”
“스테파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우린 우리대로 놀자구, 자 건배.”
세 사람은 잔을 들어 부딪쳤다.
계단은 조용했다.
잠시 문 앞에 선 권총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한 뒤 손을 뻗었다.
권총수는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과르다도를 포함한 네 사내가 소파에 앉아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권총수가 들어서자 누구 한 명 놀란다거나 당황하지 않고 계속 포커 치는데 열중했다.
“그렇잖아도 기다렸소.”
시가를 물고 포커를 하는 과르다도가 말했다.
“조금 늦어질 것 같은데, 인간의 장기가 시장에 널려 있는 물건처럼 언제든지 돈만 주면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한 사흘 만 더 기다려 보라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과르다도는 고개를 들었는데 때마침 권총수가 씨익 웃는다. 과르다도가 미안한 기색 없이 말을 잇는다.
“알았지? 나도 미안해. 약속 하나는 칼 같이 지키는 사람이라고.”
“다른데 알아봐야겠소.”
권총수는 그러면서 과르다도가 앉은 소파 팔걸이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어깨위로 왼손을 올렸다.
흘긋!
권총수의 행동에 조금 놀란 듯 과르다도가 고개를 돌려 본다.
권총수는 과르다도의 목덜미를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다른데 알아 봐야겠으니 돈 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끝에 앉은 블랑코가 재빨리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푸슉!
그러나 권총수가 더 빨랐다.
블랑코 이마가 뚫리며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진다.
블랑코가 숨지자 포커판이 조용해졌다.
권총수는 전혀 관심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과르다도 선생, 귀가 먹었소. 내 돈 돌려달라는 말이 안 들리냔 얘기오.”
권총수는 과르다도의 어깨를 톡톡 치더니 나카야마에게 말했다.
“형, 이 권총 가지고 있다가 조금만 이상한 짓 하면 쏴버려.”
나카야마가 다가와 권총을 받았다.
“그냥 죽이면 되지?”
“물론이지.”
권총수는 포커판이 벌어지고 있는 탁자에 앉아 과르다도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1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날 우습게 봤군?”
권총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스윽!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꺼내 물고 과르다도 입에 물린 시가를 쏙 뽑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푸욱!
과르다도 입에 강제로 시가를 쑤셔 넣어준 권총수는 담배연기를 얼굴에 뿜었다.
“스테파니가 심장이식 수술을 고민하는 날 망설이지 않고 당신에게 데려온 것은 그 방면에 전문가라는 뜻일 테고?”
푸육!
소음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살시도가 탁자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이 자식이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움직이더라고.”
“형 전쟁터에서만 방아쇠를 잘 당기는 줄 알았는데 이런데서도 화끈하네. 그것도 사무라이 정신인거야?”
권총수의 웃음에 나카야마는 실소를 지었다.
사실 전쟁터에서 당기는 방아쇠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한 번도 상대의 입장에 서 보지 않고, 얼굴도 모른다.
가장 안정적인 건(?)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이분법적인 생각 말고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터가 아닌 세상 속 살인은 다르다.
많은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민간인을 상대로 총을 겨눈다는 건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
“손가락만 까닥하면 쏴버려.”
나카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카야마는 침을 삼켰는데 눈이 빛나고 있었다.
묘했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다.
커다란 근심 걱정 하나를 덜어내는 것 같은 시원함에 나카야마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민철을 살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두려움이 온몸을 포박하듯 묶어 버렸다.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다.
그런데 사람 한 명 죽였을 뿐인데 등에 짊어진 커다란 바위 한 개를 내려놓은 것 같은 이 홀가분함은 뭔가.
탁자 위에는 종이가 펼쳐졌는데 수많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리며 어지럽게 줄이 그어진 종이를 보며 말했다.
“다시 정리 해 봅시다. 당신에게 나처럼 누군가 장기 이식에 대한 부탁을 해오면 여기 차차리토란 사람한데 연락을 한다는 것 아니오?”
권총수와 과르다도는 커다란 백지를 놓고 지금 장기이식 조직도와 과정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렇소.”
처음과 달리 과르다도의 표정은 어두웠고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차차리토란 사람은 누구요?”
“이 지역에서는 가장 큰 장기 밀매조직인 나이트(light)의 보스요.”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쥐고 있던 볼펜을 놓았다.
툭!
이어 소파에 반듯하게 앉으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우리 돈은? 처음부터 돌려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오? 사기를 치려고 작정한 모양인데?”
과르다도는 아무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기 치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소. 하지만 성공하려면 안목을 좀 더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 잘못 골랐다는 뜻이었다.
딸칵!
그때 문이 열리고 나카야마가 마르케스를 앞세우고 들어섰는데 사흘전 권총수가 주고 간 가방을 들고 있다.
“10만 달러가 비어.”
과르다도에게 돈 어딨냐고 추궁을 하자 자기 집 벽장에 숨겨 두었다고 한다.
“십만 달러는 어떻게 할 셈이오?”
권총수가 묻자 과르다도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곧 갚겠네.”
“그러지 말고.”
권총수가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서류 두 장을 꺼냈다.
“어젯밤 멕시코 법에 대해 조금 알아봤는데 친필 사인이 들어간 각서도 효력을 갖더군요. 거래는 깔끔해야 좋은 법인데 여기 한 장 써주시겠소?”
움찔!
과르다도의 눈이 커졌다.
‘언제 저런 것 까지’
지켜보던 나카야마의 눈이 커졌다.
권총수는 차고 있던 총을 꺼내더니 탄창 멈치를 눌러 탄창을 빼내더니 손가락으로 눌러 본다.
그다지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는 걸 보아 20여발 이상 들어 있다.
즉 과르다도를 죽일 총알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과르다도는 곧바로 볼펜을 들더니 각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일주일 이내로 십만 달러를 갚지 못할 땐 퍼레이드 클럽을 권총수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사사삭!
이름 사인까지 끝낸 과르다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각서를 살피던 권총수는 밝은 얼굴을 했다.
“거듭 말하지만 난 멕시코에서 클럽 운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소.”
그러면서 계좌 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놨다.
“난 이 가게가 10만 달러짜리라고 믿지는 않소.”
다른 사람에게 싸게 넘기기 전에 10만 달러 입금하라는 뜻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돈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탁!
문이 닫히자 과르다도는 재빨리 일어나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책상서랍에는 몸통과 총열이 사막색으로 칠해진 짧은 기관단총 한 자루가 나왔다.
SCAR-LB 기관단총이다.
특수부대 돌격용 소총으로 많이 사용되는 다목적 기관단총으로 벨기에서 만들었다.
분당 550-600발을 쏟아내는데 기관단총치고는 유효사거리가 꽤 좋은 500미터다.
“따라와, 이 개자식을!”
과르다도가 마르케스에게 소리친다.
수시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 멕시코다.
미국과 접경지인 후아레스 같은 곳에서는 하루에 기본으로 일이십 명이 죽어나간다.
그냥 몰래 죽이는 것도 아니고 갱들간의 전쟁과 복수로 인한 살인이 대부분인데 길가에 널린 것이 시신이다.
그 다음으로 살인이 많은 곳이 이곳 베라크루스이다.
정치적 신념에 의해 활동하는 북부의 반군지역을 제외하고는 후아레스 다음으로 살벌한데다 이곳 엘도라도 거리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과르다도였다.
두두두두!
과르다도는 가득 들어찬 손님들로 인해 쫓아가는데 방해가 되자 천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으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고 그 사이를 둘은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어디 갔어?”
입구에 서 있던 두 사내가 물었다.
“누구 말입니까?”
“비켜.”
그대로 부하를 밀치고 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다다다다!
계단을 내려오던 손님들이 총을 들고 올라오는 과르다도와 마르케스를 보고 재빨리 벽에 붙었다.
“보스?!”
문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사내가 놀라 물었다.
“개자식.”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막 출발하는 것이 보였다.
“핸들 잡아!”
재빨리 마르케스가 운전석 핸들을 잡았고 과르다도는 조수석에 올랐다.
벤츠는 그 자리에서 핸들을 꺾어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로로 들어갔다.
부아아앙!
순식간에 흰색 승용차를 따라 잡았고 스르르 앞 유리를 내린 과르다도가 기관단총을 내밀었다.
“흐흐흐! 잘가라.”
두두두두!
운전석을 향해 무자비한 총탄을 쏟아 부었다.
승용차는 비명같은 타이어 끄는 소리를 내며 길가 식당 유리를 부수며 처박혔다.
꽈아아앙!
부우웅!
과르다도의 차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일 분 일 초라도 빨리 찾아내야 한다.
점술사 입으로 숨은 쉬고 있다고 했지만 믿을 수는 없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흰색의 대리석 저택이 있었다.
마치 서유럽의 어느 고성을 보는 듯 웅장한 저택은 불어오는 대서양의 밤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베라크루스에서 미국의 동부 국경 도시 하링겐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다.
길은 산을 넘으면서 가팔라졌고 저 멀리 절벽 아래로 대서양의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정도 올라온 듯 도로는 평지로 변했고 탁 하며 갑자기 라이트가 꺼졌다.
“괜찮아?”
권총수의 특이한 능력을 알면서도 나카야마는 당황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트를 켰을 때 보다 속도를 떨어뜨렸지만 권총수는 도로를 직시하는 듯 운전에 거침이 없다.
“정말 잘 보여?”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잘 보이니까 절벽으로 추락 않고 잘 달리지.”
불 꺼진 차량은 두 개의 커브 길을 지나더니 속도를 더욱 떨어뜨렸다.
오른쪽으로 울창한 소나무들 사이로 흰색의 저택이 보인다.
“저곳 맞지?”
권총수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손목시계를 봤는데 11시가 코앞이다.
저택은 대낮처럼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한 판 벌이나본데.”
나카야마가 유리를 내리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아주 약하게 들린 것이 밖은 아니고 실내에서 무슨 만찬을 벌이는 것 같은데.”
딸칵!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의자 아래 놓아둔 글록 18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