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조지다(1)
권총수는 콜라 한 잔을 단숨에 마셨다.
맞은편에는 나카야마가 앉아 있었는데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잘될까?”
“의심은 전혀 못 할 거야.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일단 갈 때까지 가봐야지.”
그때 커피숍 문이 열리고 브룩스가 들어섰다.
창가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바쁘게 걸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권총수는 과르다도 사무실을 나온 뒤 곧바로 브룩스에게 전화를 하여 급히 만나자고 했다.
“내일까지 현금 90만 달러 가능하겠소?”
브룩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권총수는 과르다도와 주고받았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브룩스의 튀어나온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는데 매우 놀란 듯 보였다.
북중미에서 활동하는 CIA요원들은 중동이나 아프리카 쪽 요원들과는 약간 다르다.
중동과 아프리카 요원들이 이슬람근본주의 테러조직을 쫓는 것에 반해 멕시코를 중심으로 하는 북중미 요원들은 반미 성향의 정치인이나 단체를 살피는 일이다.
물론 마약에 관한 정보도 추적하고 모집하여 FBI나 마약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에 넘겨준다.
브룩스가 놀란 건 그 모든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에 헤로인 공급이 갑자기 많아졌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역추적을 하기 시작한다.
헤로인을 구매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판매책과 공급책을 쫓고 뉴욕의 판매망을 독점하고 있는 조직을 알아낸다.
이어 그들이 미국 바깥의 어떤 조직으로부터 헤로인을 중개 받는지를 캐가는 과정은 아주 힘든 작업이다.
뿌리를 찾기까지는 아무리 첩보능력이 뛰어난 CIA나 FBI일지라도 반년은 기본으로 소요된다.
그런데 멕시코에 들어온 지 20여일 만에 장기이식 조직과 직접 대면해버리는 권총수의 능력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닐세. 무식하게 총만 잘 쏘는 용병이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큰 코다칠거야’
맥보란을 통해 얻은 정보 말고도 중동에서 활동 중인 몇몇 동료들로부터 권총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결론은 외인부대와 용병으로서의 능력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를 둘러싸고 도는 소문은 터무니없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랭글리까지 지원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이토록 빨리 사건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갈지는 몰랐다.
“백 달러짜리 헌 지폐를 요구했소.”
헌 지폐는 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에 범죄조직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장소가 어딥니까? 어디서 만나기로 했죠?”
권총수가 빙그레 웃었다.
“언제든지 지원이 필요하면 그때 부탁하겠소.”
돈만 가져다주면 될 일이며 내가 말하지 않는 건 알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브룩스는 어색한 표정을 했다.
“어디로 가져갈까요?”
“호텔로 오세요.”
“알겠습니다. 돈 마련하려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브룩스가 자리를 떠났고 나카야마는 커피를 찔끔 마셨다.
“괜찮을까.”
“뭐가?”
“조금 전 장소 질문에 거절하자 표정이 안 좋아 보이던데, 마치 같은 편인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그런.”
“형!”
권총수가 나카야마의 말을 잘랐다.
“아무리 CIA정보원이라고 해도 사람이야. 비밀은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새어나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안 배웠어.”
“그건 아는데.”
“정보국 요원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거지. 주머니를 어느 정도 닫아야지 같은 편이라고 홀라당 까뒤집어 보여서는 안 돼.”
“내 생각이 짧았다.”
나카야마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총수. 민철이 살아있겠지?”
“당연하지.”
권총수는 확신하듯 말했다.
“그 형이 어떤 형인데, 사주를 봤는데 아흔까지는 건강하게 산다고 나왔대.”
“얘기 나온 김에 점술사 한 번 찾아가보자. 멕시코에 유명한 점술사들 많다니까.”
권총수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었다.
나카야마도 그렇고 자신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점술사는 육십이 넘어보였다.
돼지 갈비 뼈에 온갖 새털을 붙인 모자를 썼고 목에는 괴상한 문양의 금속조각이 걸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짤랑짤랑!
몸을 움직이자 금속조각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는데 꼭 절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 같았다.
권총수와 나카야마는 긴장한 얼굴로 점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민철의 출생 연도와 핸드폰 속 사진을 한 장 인화에 건넸는데 점술사는 눈을 감고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숨소리도 잦아들었다.
라이터 불만 켜면 터질 것처럼 방안 공기는 뜨겁게 달아올랐고 나카야마의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갈수록 빨라진다.
점술사의 침묵이 길어지자 가슴의 방망이질이 갈수록 거세진다.
“술라술라술라!”
점술사가 오른손에 커다란 워낭을 흔들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술라술라수술라.”
목소리는 점차 커졌고 둘은 더욱 긴장했다.
“아술라술라 아아술라.”
뚜욱!
미친 듯 워낭을 흔들고 주문을 외우던 점술사의 동작이 갑자기 그치더니 눈을 떴다.
그런데 점술사 이마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나카야마가 물었다.
“숨은 쉬어.”
“살아 있단 말입니까?”
“숨 쉰다고 다 살아 있나? 뇌사자도 숨은 쉬어.”
나카야마가 움찔하며 치켜세운 눈빛을 가라 앉혔다.
“땅속에 묻히지는 않았어. 영혼이 우는 것을 보아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것 같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철은.”
탁!
권총수가 나카야마의 입을 막았다.
자칫 점술사가 이쪽이 뱉어낸 말에서 어떤 눈치를 채고 대답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 가봐.”
“끝났습니까?”
“이 정도 대답 했으면 된 것 아냐. 죽지 않은 것 같아.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권총수는 몇 마디를 더 물은 뒤 점술사 집을 나왔다.
밖으로 나온 나아캬마는 크게 한 숨을 쉬었다.
“말이라도 숨을 쉬고 있다니까 묵은 체증이 좀 내려가는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권총수를 바라본다.
권총수는 담배를 물고 있었는데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어떤 형인데.”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말속에는 살아 있으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기도 했다.
두 사람은 포드 익스플로러를 타고 사라졌다.
저녁 먹고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브룩스가 밑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방으로 브룩스를 불렀다.
브룩스가 건네는 여행 가방을 받아든 권총수가 지퍼를 열자 백 달러 지폐뭉치가 가득했다.
다르르륵!
권총수는 지폐 한 개를 주워들고 세듯 헤아리더니 물었다.
“누구 돈입니까?”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묻는다.
브룩스가 빙긋 웃었다.
“회사 돈이죠.”
권총수는 고맙다면서 손수 커피 한 잔을 끓여 대접했다. 브룩스는 커피가 무척 맛있다면서 극찬을 했는데 권총수는 맥보란을 떠올렸다.
맥보란은 지나치게 냉철하고, 눈앞의 브룩스는 매우 활달하면서 격의가 없다.
어느 쪽 성격이 정보원 특성에 좋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인 건 분명했다.
퍼레이드 클럽으로 들어섰다.
권총수의 손에는 돈 가방이 들려 있었는데 연락을 받은 마르케스가 미리 나와 있다가 환한 웃음으로 맞는다.
“어서 오십시오.”
어제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통로를 지나 뒤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다시 복도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층 계단이 나타나는데 그곳에 사무실이 있다.
마르케스의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서자 과르다도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맞이했다.
“정확하시군요.”
“아버지 목숨이 달린 일인데요.”
“효자십니다.”
“별말씀을, 약속한 90만 달러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권총수가 가방을 밀어 주었다.
그러자 과르다도 대신 마르케스와 살시도와 블랑코 셋이 가방을 열어 달러뭉치를 꺼내 살폈다.
천장의 불에 비춰보기도 하고 지폐 감별기까지 동원되었다.
“매우 좋습니다.”
마르케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이런 물밑 거래의 장기 이식은 아무 병원에서나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사람이 먼저라는 인도주의적 의식과 철학으로 뭉쳐진 의사와 병원이 있어야 합니다.”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아버님 혈액형과 예전에 했던 간단한 검사 자료입니다. 물론 다시 수술할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를 하겠지만 일단 참고하시라고.”
서류에 적힌 모든 자료는 오민철에 대한 것이었다.
회사로부터 오민철이 받았던 건강검진 자료를 요청했고 그대로 적은 것이다.
“늦어도 사흘 이내로 연락이 갈 것입니다. 그때 뵙죠.”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 번 악수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이틀이 지났다.
과르다도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별일 없겠지?”
나카무라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아무런 말없이 스테이크를 잘라 포크로 찍어 입에 넣기만 했다.
“맥주 한잔 할까?”
권총수는 싫다는 듯 왼손을 들어 올려 거절했다.
“마시고 싶으면 형이나 마셔.”
“너 안 마시면 나도 안 마셔. 식사 끝나고 커피나 한 잔 하지 뭐.”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에 열중했다.
사흘째 날이 밝았다.
오늘까지 연락을 주기로 했다.
긴장 때문인지 나카야마는 일찍 눈을 떴는데 권총수는 이미 운기조식을 마치고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뭘 벌써 일어나. 더 자.”
“잠이 안와.”
권총수가 씨익 웃었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커피 잔 한 개를 더 가져다 놓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커피를 놓고 앉았다.
멀리 대서양에서부터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면서 베라크루스 앞 바다가 묽게 물들고 있었다.
“식사하러 가죠.”
커피를 마신 권총수가 윗도리를 걸쳤다.
나카야마도 부지런히 옷을 걸치고 권총수의 뒤를 따라갔다.
카이로에 있는 맥보란에게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고, 브룩스 또한 일의 진행상황이 궁금하다며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 오늘도 한국에 있는 오민철의 가족들로부터 역시 전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연락이 안 된다면서 문자와 전화가 왔었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큰 누님에게 전화를 하여 중요한 작전에 투입되어 당분간 연락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일단 시간을 벌어놓았다.
그렇게 겨우 진정을 시켜 놓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10여일 지나자 다시 문자와 전화가 들이닥쳤다.
무슨 작전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될 수 있는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권총수는 가족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둘러대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거짓말도 한두 번이다.
워낙 거짓말을 하다보니 이제는 자신이 했던 말인지 아닌지 헛갈릴 때가 있었다.
올 때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별 성과가 없으면 사실대로 말을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해가 짧다.
아침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도시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오후 3시가 넘어가면서 나카야마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권총수의 눈치를 부지런히 살핀다.
권총수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공중 화장실을 뒤지며 한국처럼 장기 밀매에 관한 광고 스티커는 없는지 살폈다.
겉만 봐서는 긴장한 건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심지어 저녁 여섯시쯤 당구 한 게임 하자고 나카야마를 당구장으로 데려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밤이 왔으며 정확히 자정이 지났다.
약속한 사흘이 완벽하게 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