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엘도라도의 사내(2)
퍼레이드 클럽을 자주 찾았다.
어떨 땐 이틀에 한 번, 길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찾아가 스테파니와 맥주를 마셨다.
어느덧 20여일이 지났고 이제 스테파니를 비롯한 퍼레이드 클럽 종업원들과 가벼운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까워 졌다.
“총수!”
25일 째 되던 날 나카야마가 정색했다.
“오늘도 가는 거야?”
샤워를 끝내고 머리를 말리는 권총수에게 물었다.
“왜?”
“난 총수가 생각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또한 멕시코에 놀러오지 않았다는 것도 알지.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술 마시고 스테파니란 여자와 희희낙락 할 때는 아니잖아.”
권총수는 거울을 보며 웃었다.
“며칠만 더 기다려봐.”
나카야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권총수가 스테파니란 여자에 홀딱 빠져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뭔가 생각이 있다는 건 짐작했지만 일체 설명이 없으므로 매우 불안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머리를 말린 권총수가 손목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8시 30분 쯤 전화 한 통 해줘.”
“전화, 무슨 전화?”
“내 말 잘 들어. 지금이 다섯 시 20분이니까 정확히 두 시간 십분 후야. 형이 내 동생이 되 줘야 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나카야마는 눈을 좁혔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어. 그런데 검사결과 대동맥박리증이라는 의사 진단이 나온 거야. 참 형 이름은 마르티노야.”
나카야마는 듣기만 했다.
“대동맥박리증이 뭔데 라고 내가 물을 거야. 그러면 이렇게 대답을 해. 심장에 있는 대동맥 혈관벽이 찢어졌다는 거야라고, 알아들어?”
“계속 해봐.”
“당연히 의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게 뭐냐고 물을 거야. 그러면 한마디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못하면 죽는 병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라고.”
화악!
나카야마의 눈이 커졌다.
권총수가 왜 퍼레이드 클럽을 집중적으로 다녔는지 설핏 감이 온 것이다.
불법 장기 거래는 음지에서 이뤄진다.
아버지의 심장을 이식해야 하는 딱한 사정을 소문내고 알리는데 술집 만한 곳도 없다.
특히 권총을 차고 다니는 사내들이 득실거리는 퍼레이드 클럽이야 말로 매우 적절한 사냥터라고 권총수는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 내가 다시 한 번 전화해서 심장 이식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거야. 그때부터는 알아서 적당히 대답해.”
나카야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유자적해 보이기까지 한 권총수가 서운했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오민철의 행방을 찾아도 부족할 판에 허구한 날 멕시코 여자와 벌이는 술판이 불만스러웠다.
며칠 전에는 ‘네가 사람이냐. 민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판에 술이 넘어가냐’ 며 따지려고까지 했다.
“밑밥을 깔았구나?”
“고기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밑밥을 깔아봐야지. 물면 좋고 안 물면 자리를 옮기는 것이고.”
권총수는 자켓을 걸치고 사라졌다.
휴게소이자 탈의실이기도 한 파트너 룸에 십여 명의 여 종업원들이 담배를 피우며 떠들고 있었다.
“스테파니 그 남자 이름이 뭐래?”
“블랙버드.”
“호호호! 이름도 촌스러워. 아시아계 같던데 일본? 중국?”
“거기까진 안 물어 봤어.”
“뭐하는 사람이야. 돈 많아?”
“조그만 선박 회사 사장이라고 들었어.”
“워어어!”
여자들이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그 촌놈, 스테파니 뒤에 어마무시한 애인이 있다는 걸 알면 충격 받을 텐데.”
그때 문이 열리고 지배인이 들어섰다.
“스테파니.”
손님 왔다는 듯 턱으로 가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지배인, 또 그 남자야?”
여자들이 합창하듯 물었다.
“우리 가게에서 스테파니 찾는 사람이 그 친구 말도 또 있나?”
탁!
지배인이 사라지고 여자들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스테파니를 향해 말했다.
“잘해줘 스테파니. 팁도 잘 준다면서.”
“잘해 줄거야.”
“만약에 호텔 가자고 하면 갈 거야?”
“미쳤니.”
스테파니가 눈을 흘기며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십 달러짜리 팁이 나온다.
올 때마다 팁을 준다고 하여 어떤 요구나 조건을 달지도 않고 그냥 농담하고 한참 선두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멕시코 프로축구 얘기뿐이다.
어찌 보면 어리숙해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신비한 느낌이 드는 동양계 사내.
지지징!
핸드폰이 울리자 사내는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정확히 8시 30분이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네! 받으세요.”
사내는 핸드폰을 터치하더니 눈을 빛냈다.
“마르티노.”
조금 큰 소리로 불렀다.
듣고 있던 사내가 핸드폰을 바꿔들더니 점점 두 눈이 커지고 급기야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테파니 역시 눈을 빛낸다.
“지...지금 뭐라고 했니? 당장 심장 이식 수술이 필요하다고?”
심장이식수술이라는 말에 스테파니의 눈이 커졌다.
“대동맥박리증, 그게 무슨 병인데? 뭐야. 심장 대동맥 벽이 찢어졌다고. 이런 빌어먹을.”
권총수는 몇 마디를 더 나누고 끊었는데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왜 그러세요?”
벌컥!
권총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동생인데 아버지가 대동맥박리증으로 쓰러졌다는군요. 대동맥 벽이 찢어졌는데 심장 이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심장이식!”
스테파니도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권총수는 맥주를 단숨에 비우며 크게 한숨을 내쉬며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길게 연기를 한 모금 뿜더니 뭔가 생각 난 듯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
“마르티노, 심장이식이라면 다른 사람의 것을 아버지에게 옮기는 걸 말하는 것 아냐?”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권총수가 다시 물었다.
“뇌사자 심장? 아무리 가망이 없는 사람이라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많이 받고 싶어 할 것 아냐. 얼만지 알아보고 전화 줘. 빠를수록 좋다는데 이식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아냐.”
권총수는 어두운 얼굴로 핸드폰을 내렸다.
“동생은 뭐라고 해요?”
“심장 기증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꼭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는 말에 힘을 주면서 시선이 스테파니를 슬쩍 살핀다.
“나와 동생 뒷바라지 하느라 평생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분인데.”
그 한마디가 상당한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잠깐만요!”
스테파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안쪽으로 걸어갔다.
권총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과르다도는 쿠바산 시가를 깊숙하게 빨아들였다.
과르다도는 엘도라도 거리의 터줏대감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향력은 크고 넓으며 그의 눈을 벗어나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허리 숙이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당연시 생각했다.
“손님 온다는데 그만들 접지 그래.”
소파에는 세 명의 부하가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세 사내는 하던 게임을 멈추고 카드와 현금을 정리하고 깨끗하게 치웠다.
“아시아계라고 들었습니다만?”
부하중 한 명인 마르케스가 과르다도 책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과르다도는 의자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오른쪽 귀에 매달린 노란 황금빛 거미 귀고리가 반짝 거린다.
“한국계라고 하는 것 같지.”
그때였다. 정면 출입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붉은 전나무로 만든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스테파니가 권총수를 데리고 들어섰다.
“과르다도 이 분이야. 블랙버드 있는 그대로 얘기해요. 그러면 도와줄지도 몰라요. 그럼 난 가볼게요.”
스테파니가 문을 닫고 사라졌다.
권총수는 사무실을 한 번 스윽 훑어보고 난 뒤 소파에 앉아 있는 세 사내를 바라보았다.
문득 탁자 아래 스페이드 에이스 한 장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조금 전까지 포커 게임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어서 오시오.”
안쪽 책상의자에 앉아 있던 과르다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내들 셋이 한쪽으로 앉았고 권총수는 맞은편에 앉았다.
과르다도는 묵직하게 걸어와 솔로 석에 앉더니 피우다 만 시가에 다시 불을 붙였다.
과르다도는 시가 연기사이로 보이는 권총수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위태롭다고 들었소?”
“몹시 다급하죠.”
과르다도는 다시 한 번 빙긋 웃었다.
수요자가 급하다는 건 매우 기쁜 일인데 그 이유는 협상의 칼자루를 자신이 잡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는 큰 장사다.
장사란 상대의 허약한 부분이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할 때 막대한 수익이 생긴다.
“아버지 나이가?”
“쉰 다섯이죠.”
“쉰 다섯이면 왕성한 현역 아냐.”
부하 중 한명인 마르케스가 당연히 이식 수술을 해야 할 나이라는 투로 말한다.
“인체의 장기 중 가장 중요한 곳이 심장이라는 건 아실 테고, 심장이 뛰지 않으면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금방 죽습니다.”
“가능하겠소?”
“얼마를 생각 하고 있소? 거듭 말씀드리지만 인체의 장기 중 심장은 가장 존귀한 부분입니다.”
“시장 가격에 맞춰야겠죠.”
“마르케스 일주일 전 거래 가격이 얼마였지? 이 시장도 주식 시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갑자기 환자가 늘어나면 가격이 폭등하죠.”
“미화 백만달러입니다.”
권총수는 살짝 실소를 지었다.
자신을 완전히 봉으로 본 모양이다.
멕시코 장기 시장에서 형성된 심장과 간은 가격은 50만 달러 전후라는 것이 브룩스의 귀띔이었다.
자신에게 제대로 한 번 긁어내겠다는 수법이다.
“콜!”
권총수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놀란 사람은 과르다도였다.
자신이 왜 시장에서 거래되는 장기 가격을 모르랴.
이 장사만 십 년 넘게 해왔기 때문에 모든 걸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입으로 가격을 부르는 것 보다는 부하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좀 더 모양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마르케스가 두 배를 폭등시킨 배팅에 다소 놀랐다.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권총수가 백만 달러를 받아들이자 순간적으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부르는 건데 하는 시선으로 마르케스를 바라보았다.
마르케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에 공감한다.
“거래 방식은 어떻게 되는 것이오?”
“당연히 전액 현금입니다.”
마르케스가 말했다.
“착수금으로 90퍼센트, 나머지는 심장이 건너갔을 때 받습니다.”
“좋습니다. 내일 여기서 착수금 90만 달러에 대한 사인을 하죠.”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90만 달러가 적은 돈이 아닌데 일찍 가서 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뵙죠.”
“이왕이면 백 달러짜리 헌 지폐를 주면 좋겠소.”
“그러죠.”
권총수는 과르다도와 손을 뻗어 악수를 했다.
이어 맞은 편 세 사내와도 악수를 하고 난 뒤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허어!”
마르케스가 다소 놀란 표정을 했다.
장기 거래는 시장에서 아무 때나 사고파는 물건들이 아니다.
수요자 쪽에서 사람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다 보니 가격을 놓고 일어나는 충돌 따위는 극히 희박하다.
그렇다고 이쪽에서 요구하는 액수를 군소리 없이 지불하는 사람은 없다.
돈이 많은 부호들이라고 금액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두말도 않고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선박회사 사장이라더니 정말 돈이 많은 모양인데요?”
마르케스가 입을 열었다.
“난 조금 모자란 녀석 같은데.”
마르케스 옆에 앉은 살시도가 히죽 웃었다.
과르다도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요즘 물건 있나? 없어? 하긴 장기가 어디 쉬운가. 그냥 안부전화 한 번 했네. 언제 술 한 잔 하지.”
전화를 끊은 과르다도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