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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38화 (238/651)

제238화: 엘도라도의 사내(1)

공항을 떠난 차량은 40분 가까이 이동하더니 멕시코시티의 주택가 한 곳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선 벤츠가 멈춘 곳은 빨간 벽돌로 된 2층 집이었다.

차에서 내린 브룩스는 검정색 대문으로 다가가더니 오른쪽에 설치된 벨을 눌렀다.

철컥!

벨이 눌리자마자 안으로부터 문이 열렸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정원이 있고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딸칵!

안으로부터 현관문이 열리며 엷은 회색 정장 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은 사내가 미소를 짓는다.

“비소커 별일 없나?”

브룩스가 들어서며 물었다.

“아직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권총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오민철의 행방에 대한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인사하게. 카불에서 오신 미스터 권 선생일세.”

사막의 흑새라는 별명을 말하지 않고 이름을 얘기했다.

동양인 사내를 찾으라는 극비지령만 하달 됐지 권총수에 대한 정보는 전혀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오민철을 찾는데 권총수 이름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권총수입니다.”

“비소커! 여기 심부름꾼이죠.”

비소커는 히죽 웃으며 권총수의 악수를 받았다.

“앉으시죠.”

권총수는 소파에 앉아 거실을 스윽 훑어보았다.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놨으나 한눈에 CIA 비밀 안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행이 얘기를 하는 동안 비소커가 커피를 꺼내왔다.

커피를 마시는 가운데 처음보다 분위기는 부드러워졌고 가끔 농담도 오고갔다.

물론 권총수의 마음을 배려한 의도적 분위기다.

권총수와 오민철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중간히 위로하는 것 보다는 철저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일적인 얘기는 전혀 없다.

그러나 그건 CIA생각일 뿐이었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생각을 잠시도 잊지 않고 머릿속에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는 어디입니까?”

일순 어수선 할 만큼 여러 얘기를 주고받던 거실이 조용해졌는데 육상을 통해서는 들어오지 않은 것 같다는 브룩스 얘길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소커. 지도!”

그러자 비소커가 리모컨을 눌렀다.

스르르!

거실 맞은편 천장에서 흰색의 빔 스크린이 내려왔는데 멕시코 지도였다.

브룩스는 손에 들고 있는 기기를 작동해 빔을 쏘았다.

“저기 보이시죠. 저곳이 베라크루스입니다. 중미 최대의 물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항구입니다. 참고로 물류 중심의 글로벌 항구답게 선박과 화물 검색이 치밀합니다.”

권총수는 슬쩍 브룩스를 보았다.

브룩브룩스의 말은 베라크루스 항을 통해 오민철이 실려 들어왔을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였다.

“우리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燈下不明)는 말이 있소.”

권총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려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몇 시간 정도 걸리오?”

“오늘 출발 한다면 업무는 내일부터 개시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 밤 정도는 꼬박 달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맥보란씨가 무슨 말 없었소?”

“비소커.”

비소커가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작은 상자 한 개를 들고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뚜껑을 열었으며 낯익은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글록 18이다.

권총을 들어 이모저모 살피던 권총수는 옆에 있는 탄창을 들어 손가락으로 눌러 보았다.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건 33발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탁!

탄창을 끼고 슬라이드를 당긴 뒤 밀었다.

철컥!

소리가 들리며 권총수는 두 손으로 사격 자세를 취했다가 거두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지켜보던 아담스와 브룩스, 비소커 모두 놀란다.

딱 보면 안다.

단순히 영화배우들처럼 자세만 그럴싸한지 아니면 정말로 사격을 잘하고 많이 해본 사람이 보여주는 동작인지 충분히 간파가 된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이다.

한 각도에서 여러 동작이 물 흐르듯 나온다는 건 특등 사수들에게서나 볼 수 있다.

나카야마는 CIA정보원들이 놀라는 표정을 하자 흐뭇한 듯 어깨를 움찔 털었다.

사실 글록18은 글록시리즈에서 가장 살상력이 크다.

흔히 기관권총으로 불리는데 자동소총이나 총신이 짧은 기관단총을 휴대하기 어려운 경호원들이나 정보요원, 비밀경찰들이 주로 사용한다.

물론 쏟아내는 화력에 비하면 명중률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것 또한 사수의 능력에 달렸다.

타악!

비소커가 세 개의 탄창을 더 가져왔다.

권총수는 탄창들을 일일이 확인하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고속도를 달리고 있었다.

사방은 캄캄하고 자동차 불빛만이 교차하는 거대한 평원이다.

남미의 눅눅한 밤이 깊어가고 차 안에는 아무런 말도 흐르지 않는다.

출발한지 네 시간이 넘었는데 권총수는 아직 한 마디 말도 없었다.

휴게소를 5개나 지나쳤지만 잠깐도 쉬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온통 오민철로 가득 들어차 있다는 뜻이었다.

멕시코에 오자 마음이 더 급해진 것이다.

“나카아먀 형.”

“응 캡틴!”

“우리 여행 온 거 아냐.”

휴게소에 들려 이것저것 사먹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아는데 너무 소변이 마려워서.”

그제서야 고개를 돌린 권총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나카야마가 두 다리를 단단히 붙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소변 마려우면 얘길 해야지.”

“네가 휴게실에 들르지 않아서.”

“소변 마렵다고 말했으면 들렸지. 참 답답한 형이네. 왜 그래? 눈치 빠르고 잔머리 잘 굴리던 나카야마 형답지 않게.”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슨 상황이 어떤데? 고속도로에서 세울 수도 없고 급해? 다음 휴게소까지는 12킬로인데.”

“참아 볼게.”

부우우웅!

권총수는 차량의 속도를 높였다.

늦은 밤 휴게소는 한가했다.

대형 트럭 운전사들만이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서 파는 햄버거로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살아가는데 바쁜 사람들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한 해 마약사건으로 일만여 명씩 사망하는 나라의 국민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만큼 온순하고 부드럽다.

“어 시원해!”

그때 나카야마가 환한 얼굴로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총수, 햄버거 먹을래?”

“싫어!”

“커피?”

“하지!”

“오케이 기다려.”

나카야마는 재빨리 편의점으로 사라졌다.

딸칵!

야외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몸 상태를 알 수 없어 정확한 시간 계산은 어려워도 조금이라도 부상이 있거나 몸에 문제가 있을 경우 절대 심장이식이 불가능하다더군요’

브룩스의 말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오민철은 굉장히 건강한 체질이다.

같이 일을 하면서 아직까지 감기 한 번 걸린 걸 본적이 없다.

외부 요인에 의한 부상은 있었으나 잔병치레 따위는 없었는데 건강하다는 것이 요즘은 아쉽다.

허약한 몸이면 회복속도가 느릴 것이고 그렇다면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다.

‘겨울 동계훈련을 가면 얼음물 입수가 있다. 너 같이 특전사를 안 가본 놈은 모를 거야. 영하 15도, 체감온도 영하 30도가 넘는데 얼음을 깨고 개울물 속으로 들어가 봐라. 흐흐흐 거기서 내가 대대 일 등 했지. 가장 오래 버틴 거야.’

자랑스럽게 말하던 오민철이다.

“눈치 없이 재빨리 나아버리는 것 아닌가 몰라. 살고 싶으면 낫지 마. 제발.”

권총수는 중얼거렸다.

“마셔!”

나카야마가 커피를 내밀었다.

두 사람은 야외 의자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점술사를 한 번 만나볼까?”

나카야마가 슬쩍 묻는다.

“점술사?”

“멕시코 하면 인디오 점술사들 아냐. 귀신 같이 맞춘다고, 오래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될 것이라고 예언한 점술사 타바레스의 스승이 멕시코 인디오야.”

권총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카야마의 눈이 빛났다.

권총수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잖아.”

“뭐가 본전? 그러다 죽었다고 하면 나카야마 형이 책임질 거야?”

“그건 아니지.”

나카야마는 깜짝 놀라며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런 재수 없는 얘긴 하지마. 민철은 쉽게 죽을 남자가 아니라고.”

부욱!

담뱃불을 끈 권총수가 일어났다.

두 사람은 다시 차를 몰아 베라크루스를 향해 달렸다

일부러 바다가 훤히 보이는 호텔을 잡았다.

오후 3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6시였고 그때부터 골아 떨어졌는데 아직 옆방이 조용한 걸 보면 나카야마는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침 운기조식을 마친 권총수는 창밖으로 베라크루스 항구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섬 같은 대형 화물선에서 작은 어선까지 수많은 배들이 부두를 가득 메웠다.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던 권총수는 갑자기 옷을 입기 시작했다.

권총까지 허리에 꽂은 뒤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

권총수는 부둣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은 곳에 오 층짜리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선박들의 입출항을 관리하는 베라크루스 항만공사 사무실이다.

베라크루스 부두의 수출입 업무와 부두 보안경비까지 총괄한다.

부두를 약간 벗어나자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수많은 클럽들이 불을 켜고 화장 짙은 여자들이 거리를 메웠다.

베라크루스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엘도라도 거리다.

중동의 석유를 싣기 위해서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베라크루스 항구는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을 운항하는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이기까지 하여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지이잉!

나카야마 전화다.

이제 일어난 모양인데 엘도라도 거리라고 하자 놀란 눈치다.

설마 가슴 빵빵한 멕시코 여자 앉혀 놓고 술이라도 마시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와.”

전화를 끊고 난 권총수는 퍼레이드란 간판이 걸린 클럽을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달마삼검의 요체는 흐름이다. 모든 걸 흐름에 맡겨라’

이상하게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그렇다고 술 생각이 나는 건 아니었다.

지하계단을 내려가 문을 밀고 들어섰다.

가게는 어두침침했는데 적지 않은 손님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녀 혼성 5인조 밴드의 음악에 맞춰 몸은 흔들거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슴을 거의 드러낸 짧은 치마의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가 다가오자 향수가 풍겼는데 굉장히 자극적인 냄새다.

“스테파니에요.”

권총수는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흘긋 보더니 입을 열었다.

“맥주 두 병.”

그러면서 십 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끼어 주었다.

순간 스테파니의 표정이 달라졌다.

쪽!

생긋 웃으며 권총수 볼에 입을 맞추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갔다.

“어디야?”

나카야마였다.

“퍼레이드 클럽!”

10여분 정도 지나자 나카야마가 나타났는데 그다지 밝지 않는 표정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 이런 곳에서 술이나 마실 때냐는 항의인 셈이었다.

“앉아.”

나카야마가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스테파니가 맥주 두 병을 들고 왔다.

퉁통!

스테파니는 익숙한 동작으로 마개를 따더니 권총수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쨍!

두 사람은 병을 부딪치고 맥주를 마셨다.

“누구?”

나카야마를 보며 스테파니가 묻는다.

“친구.”

나카야마는 자신을 바라보는 스테파니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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