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37화 (237/651)

제237화: 카리브해(2)

대위는 방탄모에 갈색의 방탄조끼를 입었는데 옆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는 절도 있게 손을 내밀었다.

“사막의 흑새?”

권총수는 대위의 손을 굳게 잡았다.

“사령관님의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비그람 공군기지 데이비드 사령관께서는 마음을 다해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위는 힘차게 거수 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대위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고 헬기에 올랐다.

두두두두!

헬기가 이륙하고 아파치가 뒤를 따르면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권총수는 잠시 헬기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다 몸을 날렸다.

휘이익!

빠르게 펼쳐진 금강부동신법은 잠깐 사이에 권총수를 산정에 데려다 놓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암봉들이 펼쳐졌고 서늘한 바람이 산 밑으로부터 불어 올라왔다.

권총수는 주변을 살폈다.

오랫동안 생활한 듯 땅바닥이 단단히 다져져 있었으며 곳곳에 위장텐트도 보였다.

담배꽁초도 떨어져 있다.

어디서 세탁을 했는지 햇볕이 드는 곳에는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는데 걸레조각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었다.

‘동굴!’

산정너머 20여 미터 아래 천연 동굴이 있었다.

권총수는 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귀를 바짝 세웠다.

동굴 안에서는 어떤 기척도 없었다.

“으음!”

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안력을 돋우자 곳곳에 타다 만 초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잠을 잤군.”

이불로 사용한 듯 낡은 양탄자와 검정색 마포가 곳곳에 쌓여 있는 것이 주거의 흔적들이다.

동굴을 살피며 돌아다니던 권총수의 발걸음이 세워졌다.

무기들이 있었다.

AK 20여 자루와 RPK기관총 다섯 자루, 러시아군 RGO 수류탄이 가득 들어 있는 나무상자 두 개가 있었다.

동굴을 좀 더 살폈지만 수상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권총수는 동굴을 빠져 나왔는데 내일 쯤 미 해병대 병력이 출동하여 수색정찰을 실시하여 모든 것을 회수해 갈 것이다.

산을 내려온 권총수는 포드 익스플로러에 올랐다.

차를 끌고 내려온 권총수는 곧장 다인코프 사격장으로 향했다.

총소리가 요란하다.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새로 온 팀원들의 사격을 무심한 듯 바라보았는데 가끔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고 어쩔 때는 만족스러운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이동 타켓 사격을 하고 있었는데 속도가 빠르다.

교전중 이동하는 군인들은 굉장히 빠르다.

빠를 수밖에 없는 것이 느릴수록 적의 총알에 맞아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움직이는 적을 쓰러뜨리기란 쉽지 않다.

약진 할 때는 상체를 낮추며 구부리기까지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사격중지!”

권총수를 발견한 케인이 사격을 중지시켰다.

“계속 해. 왜 멈추는 거야.”

케인은 빙긋 웃으며 다가왔다.

그제서야 새로온 팀원들도 총을 내리고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한 말씀 하셔야죠.”

권총수는 케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캡틴을 쳐다보는 모든 눈들이 존경과 흠모에 젖어 곧 흐를 것 같잖아요.”

케인의 입에서 나오는 오랜만의 농담이다.

그건 어느 정도 페르샤워 분지 폭발 사고에 대한 충격이 잦아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권총수는 다가온 팀원들을 한 명 한 명 훑어보며 말했다.

“딱 한 마디만 하지.”

팀원들 눈이 빛난다.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집에서 집으로.”

그리고 권총수는 돌아섰다.

짝짝짝!

누군가 차를 향해 걸어가는 권총수를 향해 박수를 쳤고 이어서 모든 팀원들이 소리쳤다.

“Home to home.”

그보다 더 완전한 덕담은 없었다.

권총수는 휘파람을 불며 캡틴을 외치는 팀원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곧추 세웠다.

* * *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카이로의 10월 날씨는 쾌청했고 기온도 24도로 매우 적당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카이로에서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는데 아직 4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온 카이로였다.

청사를 막 벗어나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캡틴!”

한 사내가 야구 모자를 쓰고 다가오고 있었다.

권총수는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나카야마 형.”

“조금만 늦었으면 놓칠 뻔 했구나.”

“형이 여긴 웬일이야?”

“회사 관뒀어.”

“진짜 관둔 거야?”

나카야마는 홧김에 뭔가를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일본인 특유의 차분하고 면밀한 성격인데 KAS 리네커 관리이사한테 욕설에 가까운 폭언을 퍼붓는 걸 봤지만 누구나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나카야마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 할 것이다.

어쨌든 살아났으니 축하한다면서 적당히 보너스 좀 쥐어주면서 달래는 것이 KAS 방식이었다.

전쟁 경험 있는 용병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캡틴 나 우습게 보지마. 한번 뱉은 말은 책임지는 사나이야. 사무라이는 한 입으로 두 말 않는다고.”

권총수는 정말로 사표를 던졌다고 보았다.

“여긴 왜 왔어?”

“왜 오다니? 캡틴은 민철이가 누군지 알아?”

외인부대 동기들 중 둘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두 사람이야 말로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역사문제로는 살벌하게 싸우다가도 다른 일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농담을 주고받는, 이른바 죽이 잘 맞았다.

“아들인 나도 모르고 깜빡 넘어간 우리 엄마 생일에 겨울 양말을 선물로 보낸 민철이야.”

권총수는 크게 놀랐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민철이 데려와야 할 것 아냐. 민철이.”

나카야마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권총수는 뭐라고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자신도 가슴이 뜨거워 졌고 목이 메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는데?”

“시간이 남아서 그냥 시내나 한 바퀴 돌려고.”

“같이 가자.”

나카야마가 앞장서서 가더니 택시를 잡았다.

권총수는 길게 숨을 들이 쉬었다.

* * *

FBI에 따르면 멕시코 31개 주 가운데 19개 주(洲)와 국제적으로는 40여 개국에서 시날로아의 조직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조사 자료일 뿐 정확한 조직원의 숫자는 알 수 없다.

FBI는 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밀매조직’으로 평가하며 이전에도 없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으로 가는 코카인,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마리화나, MDMA(일명 ‘엑스터시’) 상당수를 이들이 공급한다.

호야킨 구스만(시날로아 전 두목)을 포함하여 멕시코 마약 카르텔 수뇌 급들을 미국 교도소에 수감한 이유는 일단 조직원과 거리를 벌려 놓기 위해서였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렇게 되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고, 조직들이 사분 오열하며 잘개 쪼개진다.

그렇게 되면 소탕하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권총수는 비행기 안에서 맥보란으로부터 넘겨받은 시날로아 조직을 비롯해 멕시코와 남미의 마약 조직 실태가 작성된 서류를 읽고 있었다.

맥보란은 CIA와 FBI 차원에서 자신을 지원하고 돕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사막의 흑새의 경이적인 능력으로 이번 기회에 멕시코 마약카르텔을 붕괴 시키겠다는 것이다.

“아함!”

옆 좌석에 앉은 나카야마가 하품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디야?”

“좀 더 가야 돼.”

“뭔데 아까부터 그렇게 읽는 거야?”

“몰라도 돼.”

스윽!

비스듬히 앉아 있던 나카야마가 자세를 바로 하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너무 하는 거 아냐.”

“뭐가?”

“너 지금 카이로에서부터 날 무시하고 있다는 것 알아?”

“무시당하기 싫으면 공항에 내리자마자 다시 일본가는 비행기 타. 그럼 무시하지 않을 테니까.”

굉장히 위험한 길이다.

더 이상 같이 동고동락 하던 사람의 죽음을 볼 자신이 없었다.

“민철이는?”

“내가 알아서 해.”

“내 친구야. 민철이를 구하려다 잘못되어 죽는다고 해도 후회 안해. 그는 가장 멋진 남자야. 사무라이는 친구의 어려움을 절대 외면해서는 안돼.”

“형이 사무라이야?”

“그들의 후손이야.”

“이건 우리가 살아왔던 야전과 달라. 앞에서만 총알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도 날아오고 음식에 독을 넣기도 하고, 10살밖에 안된 아이가 아저씨 껌 하나 사주세요 하면서 다가와 방아쇠를 당겨 버리는 늪이라고.”

“나도 갱 영화 많이 봤어. 일본에는 야쿠자도 있고.”

그래서 범죄조직들의 습성을 잘 안다는 뜻이었다.

“너 힘들게 하지 않을게. 민철이 얼굴만 보면 곧바로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거야 약속한다.”

권총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다시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비행기는 대서양을 횡단하여 마침내 멕시코시티 공항에 도착했다.

멕시코 하늘은 청명했고 예전 브라질에서 근무시절 일을 보러 온 적이 있는데 공항은 그 당시보다 한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막의 흑새?”

입국 수속을 끝내고 청사 안으로 들어설 때 건장한 체구의 두 사내가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넥타이를 맸다.

“카이로와 랭글리에서 분명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카이로는 맥보란이고 랭글리는 CIA본부를 의미한다.

두 곳 모두에서 자신을 적극 지원하고 돕도록 명령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흘긋!

곁에 있는 나카야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카야마씨?”

“반갑소.”

나카야마가 손을 내밀었다.

“아담스.”

“브룩스요.”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눈 나카야마는 어깨를 활짝 폈다.

말로만 듣던 미중앙정보국 요원들의 마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두 사람을 따라 나섰다.

검정색 밴츠 승용차 한 대가 공항을 떠나고 있었다.

권총수와 나카야마는 뒷좌석에 앉았는데 조수석에 앉은 브룩스가 상체를 뒤로 젖혀 앉아 보고하듯 말했다.

“카불은 물론 카이로를 포함하여 중동지역에서 지난 석 달 동안 비행기로 들어온 환자는 모두 세 명이었습니다. 그중 두 명은 멕시코인이었고 한 명은 흑인인데 이 지역 프로축구 선수로 사우디 프로팀과 경기 중 다쳐 긴급히 이송된 하워드라는 선수였습니다.”

“선박은 알아봤소?”

“선박이 문제입니다. 멕시코가 공항 입국심사는 엄격하지만 선박을 이용한 항만 출입은 의외로 부패하여...”

즉 관계공무원들이 뒷돈을 받고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기 때문에 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박이 문제군요?”

“맞습니다. 마약 인신매매 불법무기 모두 선박으로 들어오죠. 하지만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브룩스를 보는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전문의들에게 장기 이식에 대해 몇 가지 알아봤죠. 피이식자의 건강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몸 상태가 최고의 조건이었을 때 이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오민철이 목숨은 건졌지만 폭발로 큰 부상을 입었다.

아프카니스탄의 의료시설을 보아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정도의 몸으로 이송한 뒤 이곳 멕시코에서 집중 치료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 부상도 아니고 지뢰와 폭탄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인 만큼 건강을 회복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야 했다.

콱!

권총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하느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얘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지금까지 기도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갑자기 두 손 합장하고 ‘하느님 민철이 형을 살려 주세요’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까.

내 기도를 받아 줄까 아니면 야 이 뻔뻔한 놈아, 너 아쉬우니까 매달리냐고 눈을 부라릴까.

‘빌억먹을’

기도를 하자니 낯짝 두껍다는 소릴 들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안하자니 오민철이 걱정된다.

세상만사 처세하기가 참 어렵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