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36화 (236/651)

제236화: 카리브해(1)

권총수는 표정을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진정해요. 나카야마 형.”

“나쁜놈들.”

권총수는 빙긋 웃어 주었다.

지금으로서 나카야마의 분노를 녹이는 건 웃음밖에 없었다.

같이 흥분하고 길길이 날 뛰면 나카야마의 마음은 더 상처로 얼룩질 것이다.

나카야마와 같은 KAS 소속의 백인 용병들이 다가왔다.

“고맙소.”

“다행입니다. 살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산다더니 두 분은 아직 저승 갈 때가 아닌 모양입니다.”

자신의 도움 보다는 죽지 않으려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백인은 권총수를 향해 깊은 시선을 던졌다.

수백마디 말보다 더 분명한 삶의 열기가 타오른다.

권총수는 터번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 권총수는 뒷주머니를 뒤지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터번은 이슬람 고유의 종교 행위중 하나이니 건들고 싶은 마음은 없소. 대신 복면은 종교의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복면을 벗어 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사내는 꼼짝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우두머리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대검을 자연스럽게 빼앗았다.

“M9 나이프, 미군 제식대검이군.”

권총수는 톱날처럼 울퉁불퉁한 칼등을 살피더니 갑자기 우두머리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슈슈슈!

허공을 몇 번 그은 듯 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두머리가 쓰고 있던 복면이 산산조각이 되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가을날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검정색 복면이 깨끗하게 잘려 사라진 것이다.

우두머리 눈이 커졌다.

처음에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얼굴은 멀쩡했고 그 대신 피부와 완전히 밀착된 복면이 잘려 나간다.

얼굴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얼굴 돌리지 말고 날 보시오.”

우두머리가 얼굴을 돌리려하자 권총수는 차갑게 말했다.

“날 보라고 했소.”

우두머리는 주춤하며 어쩡쩡한 각도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맞군.”

권총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물라 나지불라? 피다이 마하즈 우두머리.”

권총수는 사진을 바닥에 버렸다.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도살자, 당신이 그렇게 사람을 잘 죽인다고 들었소. 그것도 총이 아닌 칼이나 돌멩이로 쳐서 죽인다고 말이오.”

그러면서 권총수는 커다란 돌멩이 한 개를 주워들었다.

“묻는 말에 있는 그대로 대답을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참고로 난 당신과 다르지만 같아 질 수도 있다는 걸 얘기해 드리지요.”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당신처럼 돌로 쳐 죽일 수도 있고, 칼로 목을 벨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물라 나지불라 맞소?”

“내가 나지불라다.”

나지불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두 달 전쯤 페르샤워 분지 매복작전의 실질적인 조종자요?”

“그렇다.”

“당시 당신들 작전에 참여 했던 남미 마약조직에 대해서 말해주겠소?”

“시날로아 카르텔이다.”

“작전에 참여한 자 이름이 뭐요?”

“스카페이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스카페이스? 상처 있는 얼굴 뭐 그런 뜻인가?”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하시오.”

“살라자르.”

“살라자르가 왔단 말이오?”

살라자르는 이미 브라질에서 일 할 때부터 들었던 인물이다.

마약왕 구스만을 이은 남미 최고의 마약 조직의 대부이자 잔혹무쌍한 심성을 가졌다.

브라질의 마약조직 레드 커맨드 두목 피멘다 또한 시날로아 카르텔 우두머리인 살라자르에게는 한 발 물러선다고 자신의 입으로 고백할 만큼 거물이다.

“마지막 질문이오. 어쩌면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그날 현장에서 생존자가 있었지요?”

“맞다!”

“그는 누구요?”

“자기 이름을 오민철이라고 하더군.”

“민철!”

나카야마가 버럭 소릴 질렀다.

나카야마는 나지불라를 죽일 듯 노려보며 말했다.

“민철이 어딨어?”

나지불라는 나카야마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마치 귀엽다는 듯, 조금 전까지 내 앞에서 벌벌 떤 녀석이 많이 컸구나 하는 조롱 같기도 했다.

“씨입새.”

오민철이 걸핏하면 나카야마에게 뱉어내는 욕이 나카야마의 입에서 나왔다.

화악!

나카야마는 나지불라의 멱살을 잡더니 머리로 얼굴을 박아 버렸다.

빡!

나지불라는 뒤로 휘청 거리며 물러났는데 재빨리 코를 만졌다.

주르르!

코피가 흐른다.

“오늘 죽어라.”

나카무라가 돌멩이를 주워들더니 나지불라의 얼굴을 찍었다.

휘익!

하지만 나지불라가 피해버리자 나카야마는 더욱 흥분했다.

“피해? 씨입새, 또 피해봐.”

화악!

나카야마는 몸을 날려 나지불라를 끌어안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자위대 소속의 특수부대를 제대했고 외인부대에서 7년을 보냈다.

특히 틈 나는 대로 오민철에게 사람을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는 무술을 배운 나카야마를 나지불라가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나카야마가 나지불라를 깔고 앉아 옆에 있는 돌로 얼굴을 마구 찍었다.

빠팍!

“너도 죽어.”

퍼퍼퍼퍼퍼!

나카야마가 워낙 흥분해 버린 탓에 권총수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보다 더 오민철에 대한 정이 깊은 나카야마인지 모른다.

아웅다웅 서로가 조센징 쪽바리 해가면서 그야말로 미운정 고운정이 든 것이다.

“형, 그만 해.”

권총수가 나직했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그토록 흥분해 있던 나카야마가 내려찍던 동작을 멈추고 일어났다.

사납던 나카야마가 뭔가에 이끌린 듯 곧장 물러나자 지켜보고 있던 두 명의 백인 용병이 놀랐다.

자신들도 들었지만 말에 엄청난 힘이 있었다.

강호무사만 지닐 수 있는 힘이고 권위다.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상대를 일거에 짓누르는 기언복술(機言服術)이다.

나지불라는 죽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나카무라가 휘두른 돌에 맞아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짓이겨져 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권총수가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가 땅바닥에 누운 나지불라를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

“오민철은 어디 있소?”

“멕시코에 있을 것이다.”

권총수는 눈을 치켜떴다.

“무슨 얘기요. 멕시코라니?”

“아는 사람으로부터 급한 도움 요청이 왔다. 아들이 심기능부전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죽는다더군.”

화악!

권총수의 눈이 벌떡 날을 세웠고 나카야마가 다시 달려들었다.

“지금...뭐라고 했소? 오민철이 멕시코를 갔다고? 심장이식을 한다고?”

“사실이다.”

나지불라는 씨익 웃었다.

“형 그만 하고 비켜!”

나카야마가 물러났다.

권총수는 천천히 쭈그리고 앉더니 그의 옷자락 한 부분을 찢었다.

찌이익!

찢어낸 옷자락으로 나지불라의 얼굴을 흐르는 피를 닦는다.

대충 닦는 것도 아니었다.

꼼꼼하게 닦으면서 찢어진 살점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스렸다.

혀까지 차면서 마치 해도 너무 했다는 듯한 태도에 나지불라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다.

고수다.

결코 단순히 돈을 받고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용병만은 아니었다.

사막의 흑새에 대한 소문은 너무도 많다.

특히 하늘을 날아간다는 말에서는 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무튼 하늘은 날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얼굴 피를 닦아주는 손길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사람에게는 전달되는 기운이라는 것이 있다.

마음이 들었는지 건성으로 시늉만 내는지 알 수 있는데 권총수는 정성을 다해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그러면서 눈 앞으로 오버랩 되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었다.

왜 이토록 따뜻하게 치료해 줄 것이면서 나카야마가 자신을 폭행 할 때 지켜보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온기를 담아 감싸줄 것이라면 처음부터 말리고 끼어들었어야 한다.

‘음!’

나지불라는 권총수의 속마음을 파악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식과는 너무 동떨어진 인물임에는 분명했다.

“움직이지 마시오.”

나지불라가 일어나려고 하자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권총수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카메라 기능을 켜고 나지불라의 얼굴에 들이댔다.

“카메라를 봐주시오.”

나지불라의 눈이 커졌다.

결국 사진을 찍기 위해 피를 닦은 것이다.

철컥!

철컥!

권총수는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고 전신사진도 몇 장 찍었다.

그러더니 잘나온 사진을 고르듯 이걸 보낼까 저걸 보낼까 하는 시선으로 한참을 뒤졌다.

보낼 사진을 결정한 듯 누군가에게 전송하기 시작했다.

이어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뭔가 내용을 쓰는 모양이었다.

탁!

손가락을 멈추고 문자를 보낸다.

딸칵!

권총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을 때 손에 쥔 핸드폰이 울렸다.

“나지불라를 잡았단 말이오?”

맥보란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CIA가 나지불라를 잡기 위해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그를 잡으려다 미군 30여명 가까이 희생 되고 말았다.

“넘겨 줄 수 있소?”

“데려가시오. 그리고 멕시코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 티켓 한 장 부탁합시다.”

“멕시코?”

권총수는 기다리겠다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일어나 앉아 있는 나지불라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탈레반이 인신매매를 한다는 얘길 듣긴 했다.

유럽과 남미 쪽 거부들을 상대로 장기매매를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직접 확인된 건 처음이었다.

“몇 명이나 팔아 넘겼소?”

나지불라는 권총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오민철과 일심동체일 만큼 절친하다는 건 알고 있다.

둘 사이의 우정을 생각한다면 지금 자신을 찢어갈겨야 하는데 너무 차분하다.

분노의 표정이라고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분노가 극에 이르면 오히려 차분해 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그런 현상일까.

“나카시마 형,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미군헬기가 올거요. 그 헬기로 돌아가세요. 두 분도.”

“넌?”

“난 내 일 하는 거고.”

“따라 갈 거야.”

“무슨 소리야. 형은 회사로 돌아가야지. 말이 되는 소릴 해.”

“전화기 좀 줘.”

권총수는 멈칫 하다 내밀었다.

지대가 높아 전화는 잘 터졌는데 번호를 누른 나카야마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누군 누구야. 당신들이 쓰다 버린 버러지들이지. 운이 좋아 살아났으니 이제 KAS와는 남남이오.”

바로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받아 들었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권총수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짐작했다.

“버린 사람에게 자꾸 매달리는 것도 추한 법이오. 리네커 이사님!”

통화 버튼을 터치하며 곧장 뱉어냈다.

KAS 대표인 스톤스의 친구이자 관리이사인 리네커였다.

“캡틴?”

“우리 서로 불편한 사인데 그만 끊습니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끊었다.

헬기 두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한 대는 나지불라와 KAS 용병들을 태우고 갈 CH-53E 수송헬기 였고, 다른 한 대는 AH-64아파치다.

아파치는 필시 53E를 호위하기 위해 왔을 것이다.

호위헬기를 보냈다는 건 탈레반에서 나지불라의 정치적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파치는 착륙하지 않고 근처를 비행하여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CH-53E만 마른 빙하위에 착륙했다.

수송기에서 무장한 다섯 명의 미군이 다가왔다.

그들은 나지불라의 손에 수갑을 채우더니 발목에 쇠사슬로 된 족쇄까지 단단히 채웠다.

“가시죠!”

미군 둘이 양쪽에서 팔짱을 끼었고 두 명이 뒤를 호위하며 걸어갔다.

싸락! 싸락!

헬기가 내 쏟는 굉음 속에서도 나지불라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 소리는 뚜렷하게 들려왔다.

그들을 따라 나카야마와 두 백인 용병이 걸어갔다.

나카야마는 한사코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고 권총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카이로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때 미군 책임자로 보이는 대위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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