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34화 (234/651)

제234화: 대 빙하(1)

권총수는 피우던 담배를 휙 던졌다.

그리고 나서 한쪽으로 침을 뱉더니 말했다.

“들어가시죠.”

쇼베이르는 무거운 표정으로 현관을 통해 거실로 들어섰다.

흠칫!

거실에 쓰러져 있는 시신들을 보며 매우 놀란다.

자신의 심복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명 전원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천장 안 무너집니다. 앉으시죠.”

권총수는 우두커니 서 있는 쇼베이르에게 자리를 권하며 왼손을 뻗어 지풍을 날렸다.

팟!

수혈이 해혈 된 압드라보가 하품을 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간파한 듯 소스라치더니 쇼베이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쇼베이르.”

오늘 이곳에서 쇼베이르 주재로 긴급회의가 열린다.

그건 사막의 흑새, 즉 권총수 때문이었다.

권총수를 죽이기 위해 500킬로그램이라는 엄청난 양의 생아편을 불태우면서까지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었고 작전을 총괄 지휘하던 엘레니까지 시체로 발견되었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급히 카불에서 열릴 슈라회의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정식으로 사막의 흑새가 죽지 않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오늘 이 자리는 쇼베이르가 주재했는데 안건은 권총수 제거에 대한 전략회의였다.

“내가 가장 빨리 알고 싶은 일이 있소. 그날 페르샤워 분지 사건현장에서 생존자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오?”

의자에 앉은 쇼베이르는 피식 웃더니 한쪽에 있는 압드라보를 향해 말했다.

“나 커피 한 잔만 타주겠나 압드라보?”

“예!”

압드라보는 거실 안쪽에 있는 싱크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커피 내리는 기계가 있었다.

원두를 넣고 갈고 뜨거운 물을 부어내리는 압드라보의 행동들이 자연스러운 걸 보면 커피를 좋아 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소. 그날 생존자는 어딨소?”

“담배 있는가?”

쇼베이르가 담담한 얼굴로 바라본다.

권총수는 두 말 않고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꺼내 주었고 불까지 붙여준다.

쇼베이르는 길게 담배를 빨아 들였다가 뱉었는데 만족스런 얼굴이었다.

“누군가에게 세 번의 질문을 던지는 건 오늘이 처음인 듯 싶군요. 생존자가 누구였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얘기해 주시죠.”

그때 압드라보가 김이 나는 커피를 가져왔다.

“고맙네!”

쇼베이르는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올려 한 모금 마셨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커피 마시는데 열중한다는 건 노골적인 무시와 모욕이었다.

권총수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세 번을 물었으니 네 번을 묻지 못할 이유가 없군요. 다인코프 용병 생존자는 어디 있습니까?”

“답답한, 이보게 지금 내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가?”

권총수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쇼베이르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

아혈은 열렸기 때문에 말은 할 수 있지만 마혈이 제압되어 꼼짝 할 수가 없다.

끼이이이!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이 뒤로 젖혀지기 시작했다.

잔뜩 녹이 슨 기계가 억지로 돌아가듯 목은 느리게 넘어가더니 마침내 두 눈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뭐하는 것이냐. 당장.”

주르륵!

권총수는 그가 마시던 뜨거운 커피 잔을 들어 눈에 붓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눈두덩은 굉장히 예민한 부위다.

특히 뜨거움에 반응하는 세포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데 거기에 빗줄기처럼 커피를 흘리자 쇼베이르는 몸서리쳤다.

“아으아으아으!”

뜨겁지만 피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한번 해보자는 건데.”

쇼베이르는 재빨리 눈을 감았지만 뜨거움에서 해방된 건 아니다.

왼쪽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쓰리기 시작한다.

커피를 모두 쏟아 부은 권총수는 빈 잔으로 쇼베이르 얼굴을 찍었다.

팍!

도자기로 된 잔이 산산조각이 나며 깨졌는데 뚝뚝 머리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팟!

권총수는 다시 마혈을 풀어주었다.

“으으으!”

쇼베이르는 왼쪽 눈을 감싸며 고통스러워 했다.

“아직도 나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까?”

쇼베이르는 벌겋게 부풀어 오른 눈을 감싸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빠억!

권총수는 묵직한 도자기로 된 재떨이를 들어 쇼베이르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파아아!

“내가 우스운가 보군요. 알라후 아크바르!”

빠악!

다시 한 번 힘껏 찍었는데도 멀쩡한 재떨이를 보며 권총수는 중얼거렸다.

“마음에 드는 재떨이군.”

퍼퍼퍼퍼!

미친 듯 찍으며 머리통을 피범벅으로 만들더니 혈도 다섯 곳을 짚는다.

“꺽!”

쇼베이르는 숨넘어가는 단발마의 비명을 터뜨리며 의자와 같이 뒤로 넘어졌다.

압드라보의 눈이 커졌다.

쇼베이르가 온몸을 비틀었다.

권총수는 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는데 쇼베이르는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근육을 가르고 뼈의 위치를 바꾼다는 강호제일의 고문술 분근착골이었다.

분근착골을 당하면 자살을 기도할 수도 없고 본인의 의지는 도무지 작용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시전자의 뜻대로 진행될 뿐이었다.

또한 몇 성의 강도로 고문을 가하느냐에 따라 피시술자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강도 역시 달라진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공이 깊은 고수들은 십이 성까지 고문을 가하기도 하는데 일반인은 육성에서 칠성을 넘으면 온 몸이 산산조각이 되면서 사망할 수가 있다.

쇼베이르에게 가해진 분근착골은 오성이었다.

뚜두두!

바닥을 너무 할퀴던 손가락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뿌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발목이 돌아가 버린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발목이 돌아가도 목숨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분근착골은 수위 조절만 잘 하면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사람에게서 우려 낼 수 있는 모든 아픔을 쥐어짜며 끌어낸다.

“그...그으만.”

권총수는 쇼베이르 얼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얼굴의 핏줄이 금방이라도 살갗을 뚫고 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좀 더 견뎌보시죠.”

“으으으 아아아, 그만!”

권총수는 피식 웃으며 다섯 곳의 혈도를 해혈 했다.

“아아아!”

쇼베이르는 신음을 터뜨렸다.

불끈 불끈!

근육이탈과 뼈가 위치를 바꾸면서 온 몸의 신경조직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분근착골은 끝났지만 온 몸은 파도치듯 요동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아픔은 잦아든다.

“으아으아...아아!”

쇼베르이는 신음을 헐떡거렸는데 입가로 피를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안에 살점을 씹은 모양이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압드라보와 눈길이 마주쳤다.

압드라보는 전기에 감전 된 사람처럼 온 몸을 떨며 시선을 피했다.

“시작 합시다. 생존자부터 말해보시죠?”

“오민철이라고 했소.”

쇼베이르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보였는데 대답을 듣고 난 권총수는 의자에서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꽈당!

눈길에 미끄러진 사람처럼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마음속으로 생존자가 오민철이길 기도했다.

다른 많은 팀원들 보다는 오로지 오민철만 생각하는 자신의 편애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 지옥에 가도 좋으니 오민철을 살려달라고 소원했다.

“읍!”

살아있느냐 죽었느냐를 물으려다 입을 닫아버렸다.

무섭다.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너무 섬칫하고 온몸이 떨려온다.

그동안 탈레반의 여러 행위들을 본다면 오민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순수 민간의료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료진도 대검으로 찔러 죽였고, 종군 여기자까지 성폭행을 한 뒤 쏴 죽인 집단이 탈레반이다.

“살아 있소.”

“허억!”

권총수의 입이 벌어지며 비명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살아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 듯 입을 쩌억 벌린 채 한동안 꼼짝도 않았다.

“사...살았다고 했소?”

“내일쯤 닷새 전에 잡힌 세 명의 용병과 같이 참수 될 것이오.”

“거기가 어디요?”

쇼베이르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조금 전의 고문을 생각하자 온 몸이 공포로 덮인다.

“샬와분지.”

“샬와?”

권총수의 눈이 번쩍 섬광을 토했다.

샬와분지는 여기서 50킬로 정도 떨어진 카불 서쪽이다.

힌두쿠시산맥이 뻗어오다 코이바바산맥으로 다시 이어지는 곳에 있다.

정확한 위치는 코이바바산맥 동쪽이다.

해발 3200미터에 위치하는데 들어가는 길이 있으나 아찔할 만큼 도로사정이 나쁘다.

병풍처럼 이어지는 거대 협곡은 빙하에 의해 깎여 만들어졌는데 깊이가 이삼 백 미터이고 산세는 수직에 가까울 만큼 가팔라 산사태가 자주 일어난다.

샬와분지를 가려면 한 번 쯤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길이 험하면서 거기다 탈레반들이 대낮에도 버젓이 지나가는 차량을 세우고 먹을 것과 돈을 갈취한다.

그러다 말을 듣지 않거나 하면 차와 함께 까마득한 협곡으로 차량과 같이 밀어버린다.

타탕!

탕!

집안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권총수가 현관을 걸어 나왔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헐떡인다.

곡예사가 된 기분이었다.

아차하는 순간 핸들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세상과는 작별해야 할 만큼 엄준한 벼랑길이 계속 이어졌다.

“젠장!”

맞은편에서 1톤 정도 되는 작은 트럭 한 대가 짐을 가득 싣고 오고 있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차를 몰아 길가에 바짝 세웠다.

트럭이 다가왔는데 비켜 지나가기가 만만치 않다.

트럭운전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는데 앞니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투툭!

벼랑 끝으로 최대한 바짝 붙인 권총수의 차체가 흔들렸다.

바퀴가 너무 끝에 물린 것이다.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권총수는 내공을 이용해 차량의 오른쪽을 들어 올렸다.

강력한 내공이 가해지자 흔들리던 차가 안정을 찾았다.

그 사이 트럭이 지나갔다.

파파팟!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며 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나눠진다.

오른쪽은 계속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벼랑길이 이어졌고 왼쪽은 사람들만 다닌 것으로 보이는 산길이었다.

워낙 경사가 급해 차량 이동은 불가능했다.

권총수는 최대한 다니는 차량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포드 익스플로러를 바짝 붙여 놓고 내렸다.

트렁크를 열고 30발들이 탄창이 끼워진 M4를 들었고 사막색 백팩을 짊어졌다.

백팩에는 실탄과 몇 가지 무기가 들어 있다.

권총까지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 한 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80도 가까운 경사진 산이지만 권총수의 걸음은 차분했다.

불영보를 펼치며 느긋하게 산을 올랐는데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거친 바위틈으로 십여 마리의 영양무리가 인기척에 놀라 산꼭대기로 도망쳤다.

스으으!

차분하게 올라가던 권총수는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다.

자신도 모르게 떡 하니 입을 벌리고 말았다.

나무와 숲이 조화를 이룬 쾌적한 삼림 사이로 멀리 거대한 강줄기가 뻗어가고 있었다.

물은 없다.

오천 년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빙하였다.

지금은 빙하는 녹아 없어지고 거친 사막처럼 모래와 바위투성이 뿐이다.

좌우 산들은 푸른데 반해 빙하가 말라 버린 곳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이다.

빙하는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오다 지대가 낮아지면서 점차 소멸했다.

권총수는 귀를 곤두 세웠다.

숲은 고요했다.

날카로운 바위 무덤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사이사이로 관목들이 자라고 있었다.

한참을 이동하던 권총수는 걸음을 세우고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펼친 종이에는 여러 가지 선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는데 지도였다.

쇼베이르가 작성해준 것으로 ‘피다이 마하즈’의 본부라고 할 수 있는 카사구텡 동굴이 있는 곳이었다.

나무 사이로 전방의 산세를 살핀 권총수가 중얼 거렸다.

“한참 더 올라가야겠군.”

10여분 더 갔을 때 마침내 사막처럼 펼쳐진 마른 빙하가 나타났다.

권총수는 커다란 바위를 밟고 서서 말라버린 빙하를 내려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