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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31화 (231/651)

제231화: 카불의 밤(1)

뚝!

총성이 멈추고 툭 빈탄창을 뽑아낸 권총수는 재빨리 파우치에 넣어 둔 새 탄창으로 갈아 끼었다.

철컥!

노리쇠를 잡아당긴 뒤 탄창을 밀고 다시 전진 시킨다.

사망자는 모두 다섯이다.

AK를 잡으려고 움직이는 상대만 갈겼는데 총소리에 다른 네 명이 움직였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우두머리 엘레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던 부하 다섯이 시체로 변했다.

사격에 절대지존이 왕림했는가.

다섯 명을 정확히 해치웠는데 보고서도 믿겨지지 않는다.

시간은 고작해야 3초,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줘도 총소리는 절대 5초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3초의 시간이라면 누구든 한 명 정도는 죽일 수 있다.

그러나 흩어져 있는 다섯 명을 부상도 아니고 완벽하게 숨통을 끊는다는 건 어렵다.

권총수는 나동그라진 사내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완전히 숨이 끊어졌는지를 확인했다.

“사막의 흑새.”

이미 각 예하 조직으로 사막의 흑새가 살아 있다는 전통문은 띄웠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자신 또한 믿지 않는다.

통신병의 시신이 확인 되지 않았으므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설마 사막의 흑새가 통신병일리는 없다.

결국 사막의 흑새는 그날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다.

“숨 쉬는 놈은 없군.”

권총수는 다섯 구의 시신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필요할 것 같지 않소.”

타앙!

엘리니 부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머리 반쪽이 날아가 버렸다.

쿠쿵!

사내는 뒤로 천천히 넘어졌다.

“그렇잖아도 요즘 담배가 부족해 애를 먹고 있는데, 더욱이 말보로 레드는 아주 귀해서 말이야.”

지금 막 뒤로 넘어져 죽은 자의 아래 주머니에서 말보로 레드가 떨어졌다.

“어떻게 미국에 총부리를 겨누면서 미국 담배를 이리들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슥!

한 개비를 뽑아 물더니 불을 붙였다.

“엘레니?”

권총수가 맞은편에 주저앉아 물었다.

엘레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무거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았는데 권총수는 손등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툭 치며 말했다.

“피다이 마하즈 슈라회의가 열린다던데?”

엘레니는 깜짝 놀랐다.

극비 중의 극비 내용이다.

슈라(Shura), 협의라는 뜻으로 코란 42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중요한 안건이나 토의 내용이 있을 때 각 지파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떤 결론을 내리는 회의를 슈라 라고 한다.

며칠 전 피다히 마하즈를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 물라 나지불라의 명으로 슈라회의 개최통지가 내려왔다.

별일이 없는 한 각지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장소와 시간을 좀 말해 주시죠?”

후풋!

갑자기 엘레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는데 슈라 회의가 어떤 것인지나 알고서 그러느냐는 뜻이었다.

“보통 장소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죠. 아주 경건하고 엄숙하며 신성한 자리일 것임을 짐작합니다. 그래도 구경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가르쳐 주시죠.”

“이상한 놈이군. 전쟁의 패자는 죽는 법이니 헛소리 집어 치우고 날 쏴라.”

권총수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껐다.

“난 알아야겠고, 당신은 말을 해줄 수 없다는 건데 그건 안 되지.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고 당신은 내 포로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하오.”

“사막의 흑새라고 안하무인...꺼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레니는 비명을 질렀다.

권총수가 M4로 엘레니의 머리를 후려쳤다.

단 한방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총수는 M4의 총열을 잡고 개머리판으로 엘레니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빠악!

퍽!

머리, 어깨, 가슴, 사타구니 닥치는 대로 갈기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파파팍!

다섯 개의 지풍이 날아가면서 분근착골이 시작되었다.

“허억!”

엘레니의 입이 벌어지면서 짤막한 비명이 터졌다.

“우으으흐흐!”

이어 비명은 길게 이어졌다.

엘레니의 목이 뒤틀리더니 입에서 꾸역꾸역 거품을 쏟아냈다.

끄어!

얼굴이 파리해졌고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너무 고통스러운 듯 눈앞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씹었다.

투툭!

돌을 씹는 바람에 부러진 이들이 쏟아졌고 양팔이 천천히 새끼줄처럼 돌아가면서 어깨가 꼬이기 시작했다.

뻑!

급기야 팔이 뒤틀리면서 어깨가 탈골됐다.

“카...카불!”

엘레니의 입에서 비명 대신 말이 흘러나왔다.

권총수는 곧장 해혈하지 않았다.

분극착골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세지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카불...카부우우울!”

파파팟!

지풍이 꽂히고 낙지처럼 꿈틀 거리던 엘레니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치 폭탄을 맞은 사람처럼 엘레니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생머리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오른쪽 귀 윗부분이 휭 했다

“어어어!”

엘레니의 입에서는 계속 피거품이 흘러내렸다.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계속 신음을 쏟아냈는데 얼핏 우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꺽, 꺼거억, 꺽꺽!”

신음이 어떤 음율을 타듯 가파르게 꺾였다 이어졌다를 반복한다.

“카불 어디요?”

“거기까지는 모른다. 장소는 항상 하루 전 날 연락이 온다.”

“날짜는 언제요?”

“8월 30일.”

8월30일이면 나흘 밖에 남지 않았다.

권총수는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엘레니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돌아섰다.

툭!

권총수는 앞서 죽은 사내에게서 떨어졌던 말보로 레드를 던져주고 자리를 떠났다.

엘레니는 권총수가 사라지고서도 한동안 움직일지를 못했다.

태어나 그토록 아픈 고문은 처음 겪었다.

뼈를 깎고 영혼을 한 조각씩 썰어 내는 듯 했다.

이미 이는 모조리 빠졌고, 어깨뼈도 탈골이 되었으며 무릎의 아킬레스건이 늘어난 듯 달궈진 시뻘건 쇠꼬챙이가 찌르는 것 같았다.

정말 아프다.

지옥이라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며 순식간에 살을 태울 듯 뜨거워진다.

태양은 구워 버릴 듯 작렬했지만 엘레니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부드득!

돌연 누워 있던 엘레니가 이를 갈더니 소리쳤다.

“으아가! 기어이 복수하리라. 찢어 갈마마시고 영혼을 돌로 찧어 헬만드강에 뿌리리라.”

복수는 사람을 가끔 초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엘레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벽에 기댔다.

“사막의 흑새, 너와 난 절대 공존할 수 없다. 나 엘레니는 널 반드시 죽인다. 끄아아아!”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소릴 내 지르는 엘레니의 눈에 핏발이 선다.

“죽인다. 죽인다. 네놈을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반드시 죽일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소릴 질렀다.

“사막의 흑...새.”

온 몸을 떨며 분노를 태우던 엘레니가 갑자기 몸을 떨었다.

부르르!

못 볼 걸 본 사람 마냥 사시나무 떨 듯 하면서 신음을 흘린다.

“아아아!”

불길이 되어 타오르던 엘레니의 눈빛이 급속히 빛을 잃었다.

“이런!”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왜 권총수가 자신을 살려 주었는지 그 의도가 뭔지를 간파한 것이다.

카불에서 피다이 마하즈의 슈라 회의가 열린다고 말을 해 버렸다.

‘배신자는 영혼까지 죽일 것이다’

도살자, 폭탄 테러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악명 높은 나지불라에게 고문을 이기지 못해 슈라회의가 열린다는 극비사실을 말해 버렸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에게 용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번 배신한 놈은 두 번 배신한다’

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나지불라이다.

워낙 그간의 활약이 뛰어나 면전에서는 용서를 해줄지 모르지만 돌아서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고도 남는 나지불라이다.

길이 없다.

삶이 끊어진 것이다.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권총수 머릿속에는 이미 그런 계산이 정확히 섰기 때문에 놔둬버린 것이다.

엘레니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끄르륵!

떨어져 있는 AK를 끌어 당겼다.

개머리 판을 바닥에 놓고 총구를 목젖에 바짝 들이댔다.

“알라후 아크바라”

탕!

신은 위대하다는 말을 남기며 엘레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랜만에 라슈카르가 보스크 공항이 시끄럽다.

지금 막 카불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도착했기 때문인데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확히 열 명이다.

건장한 체격이었고 복장은 저마다 달랐는데 청바지를 걸친 사내도 있고, 다지형 무늬(Multi-Terrain Pattern)전투복 바지를 입고 있는 사내도 보인다.

그중 한 사내는 넥타이까지 맨 정장이었는데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맨 선두에 나오던 케인이 권총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캡틴!”

권총수는 케인과 악수를 나눴다.

케인은 재빨리 다가온 사내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캡틴입니다. 사막의 흑새.”

케인의 소개에 사내들의 눈이 커졌다.

선글라스를 꼈던 몇 명은 안경을 벗었다.

권총수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환영한다. 인솔해.”

권총수와 케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었다.

뒤를 따라오는 사내들은 서로 수근거리며 권총수의 등을 자꾸 흘긋 거렸다.

좌우로 두꺼운 철판을 높여 붙였고 앞 유리에도 최소 공간만 남기고 철판으로 막아버린 개조 트럭이 저택 마당으로 들어섰다.

화물칸을 타고 있던 사내들이 뛰어 내렸다.

권총수는 케인을 한쪽으로 불러 입을 열었다.

“당분간 외출 외박 절대 안돼.”

“예!”

“사격 훈련 할 때도 경계병 세우는 것 잊지 말고.”

“예!”

권총수는 시동을 걸어 놓은 포드 익스플로러에 올랐다.

“상황 발생하면 곧바로 연락하고.”

“예!”

“급할 때 근처 비그람 공군기지 세바스찬 중사를 찾아가, 적지 않은 도움을 줄거야.”

“잘 다녀오십시오.”

케인이 미소를 지으며 거수경례를 했다.

세바스찬 중사는 미군이면서 CIA정보원이다.

케인의 부족한 경험이 위험스러워 맥보란에게 부탁을 했고 세바스찬 중사를 소개 받았다.

부우웅!

차는 도시를 벗어나 헬마드강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10시1분이다.

이미 한 번 자동차로 이동한 경험이 있는 탓인지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았다.

문제라면 차량이 포드익스플로러라는 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미국 차에 대한 공격이 발생하는데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이 타고 있다 죽었다.

미군일지라도 절대 차량 이동은 않는다.

장갑차 아니면 헬기를 이용하는데 아프카니스탄이 위험한데다 워낙 산악지역이어서 어디서 무엇이 날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지형적 지리적 상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장갑차와 수송트럭으로 병력 운송했을 했는데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미군은 차라리 도보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헬기 이용을 원칙으로 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카불시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침략자들에게 짓밟히고 20세기 말에는 소련군에, 그리고 종교적 차이에 의한 탈레반과 반군인 북부동맹에게 교대하듯 점령당했던 통곡의 도시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시내로 들어섰다.

라슈카르가와는 또 다르다.

비록 끊임없는 탈레반과의 전쟁으로 시민들의 삶은 무너지고 구겨져 있지만 아직도 거리 곳곳에는 생기가 흘러 다니고 있었다.

헌옷을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사람, 양을 끌고 나와 흥정하는 사람, 망고와 대추야자나무 열매 몇 개를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얼굴이 어둡지만은 않았다.

끼이익!

포드익스플로러는 ‘툴미우’호텔 앞에 멈췄다.

도어맨이 다가왔고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키를 던져주며 팁으로 십 달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카불에는 10여개의 호텔이 있는데 굳이 이곳 툴미우에 투숙한 건 각국에서 파견된 기자들이 많이 묵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의 후각은 짐승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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