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가까워진 거리(2)
도로에 인적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가끔 순찰을 도는 경찰차가 있었지만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그건 탈레반이나 반군의 공격을 피하려는 것이었는데 밤에는 거의 그들의 세상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라이트를 켜지 않은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라슈카르가 큰 도시이긴 하지만 라이트를 끄고 야간 운행을 할 수 있을 만큼 길이 밝지는 않았다.
가로등이 있으나 거의 파괴되거나 부서졌고 군데 군데 한 개씩 불을 밝히고 있지만 거리를 밝혀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콜로’
차가 멈추고 권총수는 창밖으로 세워진 이정표 하나를 발견했다.
거리 이름이 적힌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권총수는 모든 감각기관을 최대한 열어 젖혔다.
보이는 것(視), 듣는 것(聽), 심지어 냄새(嗅)까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또한 오른손에는 권총이 쥐어졌는데 어디선가 적이 나타나면 가장 빠른 동작으로 응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콜로 구간의 거리는 500미터 정도 되었다.
길가 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들은 깊은 잠속에 빠진 듯 조용했다.
천천히 차를 움직이며 골목골목을 살핀다.
매우 원시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권총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살피다 인적이 있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벌써 나콜로를 다섯 번째 돌고 있지만 어떤 이상 징후나 낌새를 발견할 수 없었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어느새 새벽 4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스르르!
차를 길가에 세우고 유리를 내렸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거리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면 일터에 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거리는 붐빌 것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서두를 일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해치워 버리고 싶지만 상대는 헬만드주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닌 탈레반 피다이 마하즈다.
출발하기 위해 막 기어를 넣으려던 권총수가 멈칫했다.
조수석 방향 골목으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동이 트지 않아 캄캄했기 때문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발자국 소리만 들려온다.
새벽을 가장 일찍 여는 사람은 시장 상인과 막노동꾼들이다.
하지만 지금시간은 너무 이르다.
보인다.
어둠속에서 한 사람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회색의 토브가 매우 헐렁하다.
대부분의 토브는 비교적 허리근처는 타이트 하고 허벅지 아래부터 헐렁한데 사내가 입고 있는 건 가슴부터 옷이 출렁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쌀쌀한 아침 날씨 때문인지 비슈트(Bisht:토브 위로 걸치는 옷)를 걸쳤는데 날렵하지 않은 묵직한 황마(黃麻:아마포 중 가장 질이 떨어진 무겁고 두꺼운 천)로 만들어져 있다.
권총수의 잠긴 눈이 슬며시 일어났다.
중동지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특징과 문화라면 문화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알게 됐다.
그중 지금 사내가 걸치고 있는 황마로 된 윗도리이다.
황마는 거칠고 질기며 물과 불에 강하다.
즉 냉기와 화기를 막는데 매우 유용한 천인데 탈레반의 80프로 이상이 황마 비슈트를 하고 다닌다.
야전에서 활동하는 그들에게 비가 오면 비를 막는 우비로,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선선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또한 추울 때는 이불처럼 덮고 자기도 한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황마로 만든 비슈트를 걸치고 가는 사내가 단순 노동자일리는 없다.
더욱 결정적인 건 사내의 오른쪽 옆구리였다.
황마로 된 비슈트가 상당부분 덮어주고 있었지만 겨드랑이 부분이 뾰쪽하게 솟아 올라와 있다.
그건 겨드랑이에 소총을 숨겼다는 뜻이다.
착!
재빨리 조수석에 버려지듯 놓여 진 은박지를 들어 내용을 살폈다.
‘얼굴은 턱이 각지고,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양 눈썹 사이에 붉은 사마귀 한 개가 있다’
아부리트카가 설명한 엘네니란 사내의 인상 착의였다.
백 프로 맞다고 단정 할 수는 없었지만 몇 군데 설명은 맞는 듯 보인다.
사내는 도로가에서 멈추더니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는 자세가 일용직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이슬람 사람들은 그다지 담배를 피우지 않고 그나마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물 담배다.
좀 더 엄격히 좁힌다면 탈레반들은 물 담배가 아닌 일반 담배를 즐겨했다.
부우웅!
육중한 디젤엔진소리에 백미러를 보았는데 1톤짜리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트럭은 서 있는 권총수의 차량을 피해 앞지르더니 사내 앞에 멈췄다.
화물칸에는 세 명의 사내들이 운전석 쪽으로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는데 사내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사내는 담배를 문 채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갔으며 트럭이 검은 연기를 쏟아내면서 어둠을 뚫고 달려갔다.
권총수는 천천히 시동을 걸어 앞서가는 트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차는 시내를 빠져 북쪽으로 달렸다.
뒤를 따르는 권총수는 아직 캄캄했지만 라이트를 켜지 않았다.
다행히 아스팔트인데다 조금만 거리를 두면 뒤차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럭 또한 화물칸에 탄 사내들을 배려한 듯 그다지 속도를 내지 않아 반박귀진에 이른 내공에 의지해 운전하는 권총수를 조금은 수월하게 해주었다.
잘 달리던 트럭이 속도를 늦췄다.
덜컹하며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권총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뛰어 내렸다.
포장도로에서의 속도는 신법으로 따라갈 수 없지만 비포장 산길이라면 해볼 만 했다.
차도도 아닌 산길에 라이트를 켜고 뒤를 따른다는 건 들통나길 자처하는 일이다.
더욱이 출발 할 때보다 날이 상당히 밝아 있었다.
슈욱!
오른손에 M4를 쥐고 금강부동신법을 펼쳤다.
슈우욱!
트럭이 달리며 날리는 먼지가 뒤를 쫓는 권총수에게는 훌륭한 길리슈트가 되어 주었다.
먼지가 권총수의 모습을 자주 가린다.
어디선가 양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멀리 십여 가구의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보였다.
트럭은 마을을 향해 들어갔는데 길 가로 손바닥 만한 잎사귀를 가진 떡갈나무가 가로수처럼 자라고 있었다.
근처 밭으로는 낯익은 꽃과 식물이 보이는데 양귀비였다.
트럭은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 길로 꺾어지더니 오백여 미터 정도 가서 멈췄다.
잡초와 마른 나무들이 서 있는 사이로 누런 담벼락들이 보였다.
무너진 담벼락과 한쪽 귀퉁이에 조금 남아 있는 건물 지붕을 봐서는 한 때 이곳이 모스크였던 듯 싶었다.
트럭이 멈추고 가장 먼저 화물칸에 타고 있던 세 사내가 내렸는데 손에 AK를 들고 있었다.
뒤이어 좌우 앞문도 열렸고 운전사와 사내가 내린다.
사내까지 포함해 모두 다섯이다.
일행은 사람 키보다 더 높게 자란 숲을 헤치며 무너진 건물로 사라졌다.
스으으!
권총수의 몸이 소리 없이 수풀 위를 스친다.
초상비다.
무너진 담벼락 뒤에 숨어 안을 살피던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담벼락 안으로 고개를 넣어 살피는데 무너진 구조물들이 모스크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운데 커다란 공간이 있고 기도하는 곳(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귀퉁이 조금 남은 지붕 아래가 바로 예배당이었다.
결정적으로 이곳이 모스크였다는 걸 보여주는 건 무너져 내렸지만 메카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내들은 하늘이 훤히 올려다 보이는 예배당에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가끔 저들의 기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어느 날 참지 못하고 이라크 반군에게 물었다.
‘전쟁중에도 꼭 저런 기도를 해야 하는가’
반군 사내는 주저 않고 대답했다.
‘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 이슬람의 생명이며 삶의 가치이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와 직접 무릎을 꿇고 목소리를 높이는 기도는 전혀 다르다. 알라께서는 나를 바라보는 자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때 생각에 잠겨 있던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무너진 담을 넘어 온 듯 예배당에 두 명의 사내가 더 나타나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일곱’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려 주위를 살폈다.
더 이상 인기척은 없다.
M4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예비 탄창까지 살핀다.
총에 장전된 것이 28발이고 예비탄창이 30발들이 두 개다.
옆구리에 권총까지 있으니 일곱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무장이다.
움찔!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췄다.
기도중이다.
기다려 주기로 했다.
어쩌면 살아 있는 영혼으로 신을 향해 기도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살아남을 자가 죽어갈 자를 위해 그 정도쯤은 얼마든지 양보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권총수는 담벼락 아래 쭈그리고 앉았다.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만 모든 감각은 예배당에 모여 있는 일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피식!
갑자기 실소가 터졌다.
자신에게 이런 자비심이 있었던가.
‘바오로 넌 왜 그 모양이니. 미사 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떠들고 장난치면 어떡해’
초등학교 6학년 미사시간이었다.
미사시간 직전까지 성당 앞 마당에서 축구 시합을 하고 왔는데 상대편이자 동갑내기인 종수가 자신이 발을 걸었다고 계속 우겼다.
골키퍼와 맞선 종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7대6으로 이길 수 있었다.
종수 말인 즉 자신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지만 않았다면 동점이 되었을 것이고 업어주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였다.
아니라고 해도 하도 우겨 홧김에 한 대 때렸는데 성당이 떠나가라 울어 버린 것이다.
밖으로 끌려 나간 권총수는 원장수녀로부터 30분 가까이 훈계를 들어야 했다.
‘성당 밖에서도 싸우면 안 되지만 특히 미사시간에는 조용하고 엄숙한 시간이어야 해. 하느님과 내가 기도와 찬양중에 만나는 소중한 장소인데 떠들고 친구를 때리는 법이 어딨냐구. 여긴 성전이야.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나쁜거야. 남의 기도와 찬양을 방해하면 하느님이 좋아하시겠어?’
원장 수녀의 잔소리가 제일 싫었다.
어떤 때는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밉고 마음에 안 들던 원장수녀 얼굴이 요즘 따라 자주 떠오르고 꿈속에서도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람이 되고 있는건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데 인기척이 있다.
기도가 끝난 모양이다.
예상대로 사내들은 기도를 마치고 빙 둘러 앉았는데 작전회의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휘익!
권총수는 가볍게 담장을 넘었다.
무너진 모스크 곳곳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으며 아직도 기도를 위해 찾는 듯 여기저기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말라 버린 수반(水盤: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거나 몸을 청결하도록 우물이나 물을 담아 놓는곳)을 지나 예배당으로 걸어갔다.
예배당과 수반 사이에는 회랑이 있지만 무너진 탓에 회의 하는 사내들이 훤히 보였다.
뚜벅 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모두가 돌아보았다.
“동작 그만.”
권총수가 소릴 질렀으나 소용없었다.
사내들이 바닥에 놓아둔 AK를 거머쥐는 순간 권총수의 M4가 불을 뿜었다.
드르륵!
드륵!
권총수의 사격은 흔들림이 없었고 어긋나지 않았다.
퍽! 쿵! 털썩!
사내들은 사방으로 나동그라졌다.
두두두두!
총구가 무자비하게 총알을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