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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9화 (229/651)

제229화: 가까워진 거리(1)

권총수는 학교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과거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소. 나라를 되찾기 위해 당신들처럼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독립투쟁을 벌였지요.”

아부트리카가 눈을 치켜떴다.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에 뭔가 동질감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러나 권총수의 다음 말은 아부트리카의 기대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침입자인 일본인이라도 괴롭히지만 않으면 죽이거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소. 오직 일본 군대와 경찰, 악질 관료들의 목숨만 노렸소. 또한 그들은 자국민을 죽이지 않았소. 일본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 아니면 어떤 경우에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죠. 더욱이 나와 종교가 다르다고 하여 어린아이들을 몰살하는 잔학한 범죄는 상상할 수가 없었죠.”

부르르!

아부트리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탈레반은 자국민에 대해서도 방아쇠를 당기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대의(大義)를 위해 일을 하다보면 본의 아닌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지금까지 활동해 왔다.

권총수가 말한 한국의 독립투사들은 일본인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건 놀라운 차이였는데 아부트리카는 나직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단순히 탈레반의 무차별적인 학살을 비난하기 위해 자국의 역사를 꺼낸 것 같지는 않았다.

팟!

아부트리카의 눈이 흔들렸다.

권총수의 생각을 간파한 것인데 그는 지금 명분(名分)을 설명 하고 있었다.

난 당신들처럼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가급적 대화로 소통하길 원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어쩔 수 없다.

와직!

권총수는 담배 갑을 구기며 마지막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마치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잠시 고심하는 사람의 행동처럼 보였다.

권총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고 약간 찌푸려진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데 열중했다.

“음!”

아부트리카의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온몸이 움츠려 들었다.

그건 아직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공포가 곧 자신을 향해 닥칠 때 반응하는 신체의 특징이었다.

고문 따위는 무섭지 않다.

죽음은 더더욱 신경 쓰지 않는다.

즉 두려워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데 갑자기 호흡까지 가빠 오는 건 뭔가.

툭!

권총수의 입에 물린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택시 안에서는 적당히 피우다 밖으로 던져 버렸는데 지금은 필터까지 거의 피웠다.

권총수가 고개를 들더니 아부트리카를 향해 웃었다.

쏴악!

돌연 오른손이 앞으로 뻗어지는가 싶더니 벼락을 맞은 듯 몸이 떨린다.

이윽고 고통이 찾아온다.

크흐!

아부트리카는 그대로 나뒹굴었다.

회를 떠내듯 칼로 온 몸의 살점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권총수는 서 있다.

전혀 때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기가 통하는 쇠막대기가 쑤시는 것도 아닌데 몸이 뒤틀린다.

끄윽!

목이 꺾이고 눈알이 뽑히는 것 같다.

투툭!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할퀴면서 손톱이 들고 일어난다.

뿍!

무릎 뼈가 튀어 나왔다.

쩌저적!

얼굴 살갗이 찢어지며 힘줄이 튀어 나와 얼굴에 지렁이가 덮인 듯 했다.

“그...그만!”

권총수는 아부트리카가 몸서리치면서 떨어져 나온 담배 갑을 주워들었다.

잠시 담배 갑을 앞뒤로 살피며 바라보는 데 귓가로 아부트리카 신음이 쏟아졌다.

“제...제발.”

담배갑에서 시선을 뗀 권총수가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뻗었고 분근착골을 가한 다섯 곳의 혈도가 해혈됐다.

“끄으으으!”

일 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아부리트카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손톱이 뽑혀 나오며 손가락이 피로 물들었고 무릎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는데 슬개골이 살갗을 뚫고 나온 탓이다.

얼굴은 튀어나온 힘줄이 제자리를 찾았으나 찢어진 피부는 너덜거렸다.

권총수가 쭈그려 앉았다.

권총수는 아부트리카의 왼쪽 손목을 쥐더니 시멘트로 된 딱딱한 바닥에 놓고 벽돌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뻑!

뻐어어!

아부트리카는 또 다시 죽는다는 비명을 질렀지만 권총수의 힘에 도무지 손을 뺄 수가 없었다.

마늘 다져지듯 아부트리카의 왼손은 짓이겨 졌다.

아부트리카의 손은 사라졌다.

붉게 다져진 고기 조각 하나가 손목에 달려있을 뿐이었다.

스윽!

권총수는 손에 묻은 피와 살점을 자신의 옷에 슥 닦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완전히 닦이지 않은 피 묻은 손으로 담배를 피우는 권총수의 모습은 서늘한 공포였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멀쩡한 손 하나를 잘라내지 않으면 안될 만큼 부숴놓고 태연하게 담배를 피운다.

흘러내리던 피가 멈췄다.

그렇다고 권총수가 지혈을 해 준 것도 아니었다.

지금쯤 과다출혈에서 오는 쇼크사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어야 하는데 멀쩡했다.

희망이 없다.

아부트리카는 유일한 방법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움찔!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멀쩡하던 입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혀를 깨물기 위해 핏대를 세우며 턱뼈를 움직이려 했지만 안 된다.

“당신은 내 포로요. 포로는 어떤 것도 스스로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소.”

‘설마’

권총수의 말은 자신의 입이 꼼짝 하지 않은 것이 우연히 아니라 본인이 손을 썼다는 의미다.

“난 당신에게 매우 호의적이었소.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접했지만 당신은 내 기대를 저버렸소. 당신이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듯 나 또한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셈이오.”

권총수가 주머니를 뒤척이더니 볼펜을 꺼내들었다.

부욱!

이어 앞서 버린 담배갑을 주워 은박지를 꺼내 펼쳤다.

“거기에 내가 묻는 말을 차분하게 쓰면 되는 것이오. 알겠소?”

아부트리카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신 바로 위, 최소한 당신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어떤 임무에 대해 지시를 내리는 사람 이름을 쓰시오.”

아부리트카의 안색이 살짝 굳는다.

이제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입을 움직이려 힘을 써봤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시간제한 따위는 없으니 천천히 써도 상관없소.”

빠져나갈 길은 없다. 시간제한이 없다니 이 고통을 얼마나 겪어야 되는 것인가?

죽을 수도 없게 된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해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죽으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사삭!

권총수가 준 볼펜으로 담배 은박지에 이름을 썼다.

‘엘네니’

권총수를 향해 종이를 펼쳐 보여주었다.

“나이, 가족관계, 무엇을 좋아하는지, 거주지가 어딘지 아는 것은 모두 쓰시오.”

아부리트카는 허리를 구부리고 본격적으로 은박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멈칫!

한참 엘네니에 관한 내용을 쓰던 아부트리카가 펜을 멈췄다.

귓가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조국이여 여명이 밝아오니 예정된 승리를 기다려라

이슬람 국가는 정의로운 신앙인들의 피로 세워졌느니라

이슬람 국가는 신실한 자들의 성전으로 세워졌노라'

뚝!

아부트리카는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권총수는 마치 이교도의 침략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아랍의 장군 ‘살라딘’처럼 힘차고 씩씩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 권총수가 휘파람으로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조국’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슬람에 내려오던 노래인데 근래에는 IS가 이슬람국가인양 선전하고 영상으로 내 보내고 있었다.

이슬람이 아닌 인물이, 그것도 휘파람으로 부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들은 신념과 절개를 가지고 정의로움에 영혼을 기꺼이 바쳤으니 조국이여 절망하지 말고 희소식을 기대하라 승리가 가까이 왔느니라’

권총수가 휘파람을 멈추더니 물었다.

“다 썼소?”

사사삭!

아부트리카는 깜짝 놀라며 몇 글자를 더 쓴 뒤 허리를 폈다.

스으으!

은박지를 전해주려던 아부트리카는 소스라쳤다.

은박지가 스스로 떠올라 권총수를 향해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어거걱!”

아혈이 제압되었지만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가래 끓는 소리가 나왔다.

탁!

권총수는 허공섭물의 식으로 끌어온 은박지를 바라보았다.

잠시 은박지를 바라보던 권총수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어 나왔다.

퍼억!

아부트리카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권총수는 다시 라슈카르가로 돌아왔다.

숙소이자 다인코프 아프카니스탄 본부로 사용하던 저택은 불이 꺼진 채 조용했다.

불이 꺼졌다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내일 쯤 텍사스에서 20명의 병력이 도착한다.

작전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많다는 건 리더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지만 권총수 얼굴은 펴질 줄 모른다.

담배를 문 채 아부트리카로부터 건네 받은 은박지를 바라보았다.

일반인의 눈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권총수의 시선에는 선명하게 들어왔다.

수십 번째 읽는 것이다.

읽을 때마다 놀라는 한 대목이 있었다.

그건 가정이라는 단어였다.

탈레반이라고 가정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사마 빈 라덴도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게 아이들과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사망한 IS 우두머리 알바그다디 또한 아내라고 할 수 있는 여자와 동거를 했고, 헤즈볼라 우두머리로 추정하는 자리프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맥보란의 설명이었다.

그 밖에도 가정을 거느리다 탈레반에 가입한 남자들이 적지 않은 탓에 가끔은 한 번씩 집을 찾는다.

마치 빨치산들이 낮에는 산에 숨어 있다 밤에는 몰래 자기집을 찾아가 배를 채우고 양식을 얻어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땡!

안쪽 탁자위에 올려놓은 시계가 밤 10시를 알리는 소리를 냈다.

권총을 챙겨 허리에 차고, M4를 거머쥐었다.

현관으로 나가는데 주머니 핸드폰이 울려 꺼냈다.

케인이다.

지금 카불에 있는데 내일 도착할 병력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응, 잘 도착했나? 난 걱정 말고 조심하게. 그래 내일 보자구.”

전화를 끊고 난 권총수는 곧장 차의 시동을 걸었다.

주머니에서 다시 은박지를 꺼내 읽는다.

“나콜로.”

나콜로는 서울로 말하면 종로 같은 사통팔달의 중심가이다.

물론 사람이나 건물 모두 종로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아부트리카가 써준 종이에 보면 나콜로에 엘레니의 가족들이 산다는 말을 들었다고 썼다.

‘반드시 찾는다’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지만 기어코 사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

다른 탈레반 분파들은 관심 없다.

오직 나지불라가 우두머리로 있는 피다이 마하즈는 결코 이 땅에 남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 생존자, 아부트리카의 입을 통해서도 그날 다인코프 용병 중 한 명이 살아 있었다고 했다.

아부트리카 자신도 집결지까지 끌고 온건 알지만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제발 살아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이왕이면 오민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똑 같이 귀한 목숨인데 왜 오민철이냐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

인생의 출발점인 외인부대 생활을 같이했고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면서 쌓이고 만들어진 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더구나 같은 한국인이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그긍!

육중한 대문이 열리고 포드 익스플로러가 저택을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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