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8화 (228/651)

제228화: 절연(切煙)2

한 사내가 아스팔트 바닥에 검게 타다 만 시신을 총구로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뭐지? 하다리 같은데.”

사내는 허리를 구부리고 시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한참 후 시신의 몸에서 찌그러진 지포 라이터를 꺼낸다.

“하다리야.”

나머지 사내들은 검게 타버린 밴을 수색했다.

놓친 공간 없이 샅샅이 뒤졌으나 권총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우두머리 사내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건 아니다.

계산대로라면 한 구의 시신이 더 있어야 한다.

“찾아봐.”

사내들은 다시 불탄 밴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민의 입을 통해 사막의 흑새가 살아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누구도 믿지 않았다.

사막의 흑새가 두려운 인물로 입에 오르내리다 보니 그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아민과 하다리를 무장 해제시킨 사내 역시 그런 인물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단지 펑크 난 차량으로 위장하여 밴을 멈추게 했다는 보고에 약간 흔들렸다.

그런데 결정적인 건 조금 전 걸려온 전화였다.

사 슈자의 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곱 명의 동료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사내는 재빨리 상부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놀라운 명령이 내려왔다.

‘진짜 사막의 흑새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차를 통째 태워 버릴 것’

천문학적인 거액의 가치를 지닌 생아편과 동료 한 명을 포기할 만큼 사막의 흑새는 강력한 적이었다.

슬픔과 분노의 심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슬픔은 하다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고, 분노는 죽었다고 확신한 사막의 흑새가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분명하게 보내버리겠다며 이를 갈고 있었다.

“안보입니다.”

여전히 하다리 시신 말고는 없다는 보고였다.

드르륵!

갑자기 들려오는 총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워낙 많이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처음에는 얼른 방향을 잡지 못했고 단지 먼저 떠오른 건 AK가 아니라 M4 소리라는 것이었다.

‘오 알라시여’

어찌해볼 틈도 시간도 없었다.

마치 동시에 쓰러지듯 네 명의 부하들이 방아쇠 한 번 당겨보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그것도 주위에 많은 구경꾼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자동으로 놓고 네 명에게 갈기다 보면 엉뚱한 인명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다.

총소리를 보아 최대한 서른 발은 당긴 듯 한데 단 한명도 구경꾼 중에 사망한 사람이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사격을’

저벅저벅!

우두머리는 깜짝 놀랐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였다.

조용한 실내도 아니고, 더욱이 울림이 있는 바닥도 아닌 아스팔트 위를 걷는데 어찌 이토록 선명한 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어린 시절 복도를 걸어오는 선생님의 발자국 소리가 지금처럼 들렸었다.

커다란 원을 만들며 구경하는 사람들을 살폈다.

사내의 눈길은 시계 바늘처럼 회전하며 누가 오는지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파팟!

온다.

구경꾼들을 헤치고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시커먼 M4를 들고 입가에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M4를 들었다는 건 지금 자신의 부하들을 죽인 인물이라는 생생한 증거였다. 재빨리 응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오른손에 들려 있는 AK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총을 들어 수십 발을 쏟아 낸 것 같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진짜다.’

우두머리는 침을 삼켰다.

‘사막의 흑새는 살아있다’

전달된 권총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이제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만큼 권총수의 생김새는 뇌리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척!

사내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난장판이 되어버린 밴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

그건 구경 끝났으니 모두 돌아가라는 위협 사격이었다.

구경꾼들은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해외 언론은 이곳 카티할을 탈레반에 의한, 탈레반을 위한 지역이라고 할 만큼 한 집 건너 한 명이 동료고 형제들이다.

비록 성격과 목표가 다르긴 하지만 국경 넘어 파키스탄에도 무장투쟁을 하는 탈레반들이 있으며, 반군까지 더하면 해외 언론의 표현이 틀린 건 아니다.

짐작컨데 최소한 거주민의 절반은 정부군 또는 미군과 대리해 들어온 용병들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런데 위협사격에 모두가 떠나고 있다.

그들이 결코 총소리가 무서워 떠날 사람들은 아니다.

이곳에서 총소리는 그야말로 다반사(茶飯事)다.

조금 전 구경꾼중 탈레반이든 반군이든 최소한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사내가 M4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기도 아주 쉬웠다.

그런데 왜 누구 한 사람 자신을 구하려 시도하지 않았을까.

“아편 500킬로와 내 목숨을 바꿨다는 건데.”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툭!

물고 있던 담배 꽁초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서 우두머리를 바라보았다.

흠칫!

권총수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우두머리는 어깨가 떨려왔다.

‘눈(目)!’

권총수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활활 타올랐다.

그건 쇠도 녹일 만큼 뜨거웠다.

‘맹수의 눈’

우두머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도망치듯 떠나버린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권총수의 눈빛에 질린 것이다.

숲속에서 불쑥 호랑이를 만나면 사색이 되면서 넋이 나가버린다고 한다.

‘진짜다. 사막의 흑새가 아니면 날 이렇게 위축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권총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부트리카?”

자신의 이름이다.

아마 죽은 하다리가 말해줬을 것이다.

“택시!”

권총수가 그때 마침 지나는 택시를 세웠다.

빈 택시는 재빨리 다가와 멈췄고 권총수는 뒷문을 열었다.

“안탈 것이오?”

아부트리카는 또다시 당황했다.

도대체 지금 어딜 가자는 건가.

사막의 흑새는 자신과 나란히 택시를 탈 사이가 아니다.

빵빵!

운전기사가 빨리 타라고 재촉한다.

아부트리카는 손에 들고 있는 AK를 슬쩍 보더니 바닥에 버렸다.

그러자 바라보고 있던 권총수가 히죽 웃는다.

마치 생각 잘했다는 것 같았다.

만약 이판사판이라고 총구를 들어 올렸다면 넌 죽었다 하는 표정이다.

아부트리카는 뒷좌석에 올랐다.

권총수는 그 옆에 앉더니 문을 닫고 말했다.

“카르셈 학교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기사는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택시의 속도를 높였다.

“기사님 담배 하나 피워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마음껏 피우셔도 됩니다.”

스윽!

권총수는 3개비 밖에 남지 않은 말보로 레드를 권했다.

아부트리카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아부트리카는 자신의 것을 피우겠다고 왼쪽 가슴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를 꺼내려 했다.

스으으!

그러자 권총수는 담배를 더욱 턱 앞 가까이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내 것 피우라는 뜻인데 아부트리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

딸칵!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준 권총수는 자신도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후우!

권총수는 차 유리를 내리더니 한숨을 쉬듯 연기를 뱉었다.

“아편에 취한 사람들이 적지 않군.”

권총수는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배가 고프고 먹을 건 없다.

아편을 태우는데 그 순간 만큼은 배고픔을 잊고 잠시의 행복에 젖는다.

아편이 좋아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 태우는 것이다.

권총수는 길거리에 누워 있거나 비틀 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어쩌다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택시는 신호를 위반하며 달렸다.

학교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시 외곽에 있었는데 폭격을 맞은 듯 반은 무너져 내려져 있었고 검게 그을린 흔적이 불에 탄 모양이었다.

이곳이 얼마전 엄청난 자살 폭탄테러가 일어난 카르셈 학교이다.

이 지역은 수피교 신자들이 몰려 사는 곳이다.

수피교는 이슬람의 종파중 하나로 전통적인 교리나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좀 더 현실에 접근한 성향을 갖고 있다.

이슬람의 남자와 여자의 차별적인 부분도 상당부분 없앴다.

그들은 기독교처럼 기도시간에 찬양도하며 여러 가지 개방적인 방법으로 신과 일치를 이룬다.

하지만 그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이슬람 고위층이 많았다.

특히 근본주의를 외치며 세속적인 관습이나 문화를 단호히 배격하는 탈레반의 눈에 거슬릴 건 자명했다.

수피(sufi)는 사탄이라며 그들의 자녀까지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면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고 30여명의 아이들이 숨졌다.

학교는 긴급 폐쇄 되었는데 아부트리카는 왜 하필 많은 장소를 놔두고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의아했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권총수는 폐허로 변해버린 건물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어른은 한 명도 없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아부트리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권총수가 왜 이곳으로 자신을 데려온 지 간파한 것이다.

당시 테러는 ‘피다이 마하즈’산하 작은 분파에서 저질렀다.

철저한 명령체계로 연계된 건 아니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예하부대인 셈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지불라의 명령을 받기도 했다.

권총수는 지금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탈레반이기에 앞서 두 아이의 부모로서 아이들 죽음을 보는 시선이 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불만스럽지 않은 결과를 얻기 위해 같이 노력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증거가 손발을 묶지도 않았고 택시 안에서 담배까지 권한 행동이었다.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

“당신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소.”

근처를 살피고 다니던 권총수가 돌아섰다.

“나도 탈레반의 조직도는 어느 정도 알고 있소. 즉 당신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이 무척 제한적이라는 것 말이오.”

그건 맞다.

탈레반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폭력 앞에 무너지지 않는 건 조직도 때문이다.

자신의 바로 위 직속 상관 말고는 모른다.

한 단계 건너 올라간 상관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수많은 중간 간부들이 미군에 체포되고 붙잡혔어도 최고 수뇌급들이 안전한 건 그러한 조직 특성 때문이다

“당신 위에 있는 사람, 당신 입장에서는 배신이 되겠지만 나에게는 부하들에 대한 복수가 될 것이오.”

아부트리카의 눈이 빛났다.

배신과 복수.

인간이 만들어낸 말 중 가장 가혹한 단어다.

권총수가 배신과 복수라는 말을 기어이 꺼낸 이유는 뭘까

대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난 솔직하고 싶다’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는 것이다.

탈레반의 복수는 당한 것에 두 배 네 배 열 배로 갚아 주는 것이다.

자신들의 방식이라면 권총수는 탱크 한 대쯤 끌고 들어와 피다이 마하즈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한다.

문득 지금은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지만 한때 존경하며 따르던 탈레반 간부가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분노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그 분노를 이겨내고 짓누를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을 조심해라’

지금 그 말이 떠오른 건 아마 권총수가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벼락이 무서운 건 자주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주 쳐 댄다면 아무도 두려워 할 사람이 없고 단순히 소나기 내릴 때 동반한 자연 현상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하긴 부드러운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는 말이 있지’

순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만나본 용병중 이토록 이성적이며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마음 한곳에서는 입을 열어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 될 일이다.

탈레반에게 배신은 가장 처참한 죽음이 따른다.

그렇다고 죽음이 두려워서 배신을 않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탈레반은 곧 국가다.

미래의 아프카니스탄인 것이다.

탈레반만이 아프카니스탄을 국가다운 국가로 만들 수 있고 이 땅에서 외세를 몰아 낼 것이다.

대답이 없자 권총수가 다가왔다.

이미 표정에서 권총수의 솔직한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척!

권총수가 면전에 있는 무너진 벽돌담 위에 걸터앉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2미터 남짓 되었다.

“내가 배운 건 별로 없지만 한 마디 해도 되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