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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227화 (227/651)

제227화: 절연(切煙)1

산은 완만했다.

듬성듬성 관목들이 자라고 양귀비가 아닌 옥수수가 심겨진 밭도 보인다.

몇 마리의 양들이 풀을 뜯고 주인으로 보이는 늙은 목동은 풀밭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차는 커브 길을 막 돌아 나갔다.

오른쪽으로 십여 그루의 떡갈나무가 서 있는 가운데로 작은 우물 하나가 보였다.

지금도 사용하는 듯 우물가에는 물기가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플라스틱 바가지 한 개가 올려져 있었다.

이름하여 사 슈자의 샘이다.

끼이익!

밴은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 섰다.

사 슈자의 샘은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했다.

“아민씨 만 내리시오.”

권총수가 명령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민이 머뭇거리더니 문을 열고 내렸다.

순간 그때까지 조용하던 사 슈자의 샘 주위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밴을 따라오는 포드 익스플로러를 공격하기 위해 잔뜩 숨죽이며 숨어 있던 탈레반들이었다.

포드 익스플로러는 나타나지 않고 밴에서 아민이 내리자 어느 정도 안도한 표정들이었다.

“차에 놈이 숨었어.”

차에서 내린 아민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두두두두!

미리 유리문을 반쯤 열어놨던 권총수의 M4가 불을 뿜었다.

마구잡이로 갈기는 것 같지만 정확히 적을 보며 방아쇠를 당기는 집중 사격이었다.

AK를 들고 있던 사내들이 고꾸라졌다.

드르르르!

몇이 본능적으로 저항사격을 했지만 정확하지 못했다.

권총수가 쏟아낸 총알이 사 슈자의 샘 근처를 청소하듯 휩쓸어 버렸다.

총성은 넓은 평원을 울렸고 멀리서 풀을 뜯고 있던 양들이 머리를 들고 두리번거린다.

뚝!

총소리가 멎는가 싶더니 덜컹 하며 밴의 뒷문이 열렸다.

권총수는 M4를 들고 사 슈자의 샘으로 다가갔다.

주위에 퍼진 바위와 잎이 무성한 관목 주위로 사내들이 엎어져 있었다.

권총수는 총구로 사내들을 겨누며 한 명 한명 살폈다.

생존자는 없고 일곱 명 모두 즉사했다.

척!

그제서야 M4의 총구를 들어 올렸다.

사 슈자의 샘으로 다가간 권총수는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맑은 물이 가득 차 올라 있었다.

바가지로 물을 떠서 마셨는데 얼음 물을 삼킨 듯 시원했다.

스윽!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물을 닦은 권총수가 총구를 들어 올렸다.

저 멀리 아민이 도망치고 있었다.

탕!

서서 쏴.

달리던 아민이 그대로 주저앉는다.

벌컹!

권총수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핸들을 잡고 있던 하다리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권총수가 차에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탈레반 일곱 명이 제대로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즉사했다.

운전석에 앉아 교전을 지켜보았는데 권총수는 단 한발의 총알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았다.

냉정했고 분명했다.

생존자는 물론 부상자 한 명 남기지 만들지 않고 일곱 명을 해치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여 미터 멀리 도주하던 아민을 한 방에 날린 사격은 할 말이 없었다.

사격에 관해 난다 긴다 하는 동료 탈레반들을 무수히 봐왔지만 지금 보여준 권총수의 사격은 새로운 것이었다.

“담배 하나만 더 빌립시다.”

담배가 떨어졌다.

하다리는 너무 놀란 듯 담배 갑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권총수는 그 중에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 불을 붙였다.

“통화하는 걸 들었소.”

권총수는 히죽 웃고 나서 창밖을 향해 연기를 뱉었다.

“생각 없이 전화기를 놓고 내린 건 아니오.”

화악!

하다리의 눈이 커졌다.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 중요한 핸드폰을 차에 놔두고 볼일을 보겠소. 당신 같으면.”

결국은 권총수가 깔아 놓은 덫에 자신들이 걸려들었다는 뜻이 된다.

“모...목소리를 아주 작게 하여 통화를 했는데 어떻게 들었단 말이오?”

“나는 듣지요. 그만 갑시다!”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대력금강심법에 대해 설명해봤자 이해를 못 할테니 길이나 재촉하자는 얘기였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눌렀다.

“케인, 부탁하나 하지. 내 차 좀 가져가야겠어.”

권총수는 차가 있는 장소를 설명해 주고 핸드폰을 끊었다.

부우웅!

밴은 사 슈자의 샘을 떠나 사라졌다.

헬만드주 남쪽 마르자에서 파키스탄 국경쪽으로 달리다 보면 ‘카티할’이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지도상에 나타난 카티할을 보면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20킬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인구가 많지는 않았다.

인구 3만여 명이 채 안 되는데 헬만드주에서 탈레반 활동이 가장 극렬한 곳이다.

불과 사흘 전에도 미군 세 명이 탈레반이 설치한 급조폭발물에 의해 사망하는 등 테러와 폭발, 총격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 다섯 시 반쯤 한 대의 검정색 밴이 카티할에 들어섰다.

시내로 들어선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미군 비그람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전투기가 아프카니스탄에서 가장 많은 폭탄을 떨어뜨리는 곳이라고 들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상상 밖이었다.

온전한 건물이 거의 없을 만큼 부서지고 무너졌다.

시내는 거의 폐허라고 할만 했는데 사람들의 얼굴이 놀랍다.

하루가 멀다 않고 테러가 일어나고 살육전이 벌어지는데도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타탁!

권총수는 다시 한 번 M4를 살폈다.

이미 자신에 대한 소식은 ‘피다이 마하즈’에 퍼졌을 것이다.

검정색 밴이 흔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공격하지도 못할 것이다.

밴에는 500킬로그램에 달하는 생아편이 실려 있다.

마약거래에 외상은 없다.

밴에 실린 아편이 시날로아 카르텔에 넘어가는 순간 곧바로 통장에 입금이 되든지 아니면 현금으로 넘겨진다고 맥보란은 말했다.

물론 너무 큰 뭉칫돈이다 보니 은행을 통한 거래로 이뤄질 것이다.

미국에서 탈레반 고위 인물들의 은행 계좌를 모조리 동결하고 면밀히 추적하고 있지만 세상사에 완벽은 없다.

어딘가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으로 부지런히 돈들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끼익!

밴이 오른쪽 길가에 멈췄다.

권총수는 뭐냐는 듯 돌아보았는데 하다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기.”

하다리가 한 곳을 가리켰다.

“보이십니까?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스크.”

권총수는 하다리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다.

높은 담장에 네 개의 작은 돔 기둥이 서 있는 모스크 정문에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뭐하는 사람들이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다리를 보는 권총수의 눈이 야릇해졌다.

꼭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몰려 있는 사람들만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심이기도 했다.

“맞습니다.”

하다리는 부인하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는 인력시장은 분명한데 문제는 저 사람들 중 상당수가 피다이 마하즈 소속 탈레반들이라며 설명했다.

즉 오늘 만큼은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밴이 도착하면 그들은 차에 올라 동쪽으로 20킬로 떨어진 파키스탄 국경까지 이동한다.

그곳에서 파키스탄 내 탈레반인 ‘다에시’분파에게 넘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아편까지 합해 파키스탄의 항구도시 그와다르까지 운반하여 선적을 한다.

“시날로아 측에서는 개입을 않는단 말인가?”

“예전에 거래하던 타후아나 카르텔은 직접 국경에서 기다렸다가 물건을 받아 직접 운반했죠. 하지만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에 상당한 돈을 상납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많은 돈을 요구했다.

결국 훨씬 적은 액수로 아편을 안전하게 운반 가능한 방법을 찾다 파키스탄 탈레반 다에시를 끌어들인 것이다.

권총수는 잠시 머리를 가다듬었다.

자신은 아편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피다이 마하즈의 우두머리 나지불라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운전자인 하다리 정도의 위치는 나지불라의 행방을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유일한 희망은 이곳 카티할이다.

이곳에서 합승하기로 한 다섯 명의 탈레반중 우두머리 정도면 혹시 알지 모른다고 했다.

툭!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무는데 그만 윗주머니 라이터를 꺼내려다 건들면서 부러지고 말았다.

얻어 피우기가 미안하여 하다리에게 고작 아홉 개비 남은 담배를 10달러나 주고 산 것이다.

말보로 레드는 아니지만 담배 구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애연가인 권총수 입장에서는 한 개비라도 소중히 피워야 했다.

부러진 담배를 주워든 권총수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아깝다.

그때 지켜보고 있던 하다리는 긴장했는데 마른 침까지 삼켰다.

부러진 한 개비 값을 내 놓으라고 할까봐 더럭 겁이 난 것이다.

딸칵!

권총수가 갑자기 뒷문을 열고 내렸다.

“뒤따라 갈 테니 평소처럼 행동하시오.”

쾅!

문을 닫았다.

하다리는 백미러를 통해 권총수를 흘긋 보며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스크 정문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신호등도 없고 양떼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길을 지나다니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차는 조심스럽게 사람과 양떼를 피하며 모스크를 향해 갔다.

느리긴 했지만 이백 여미터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아 밴은 금방 도착했다.

밴이 멈추기 위해 속도를 줄일 때 갑자기 슈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쾅!

콰아앙!

어디선가 두 발의 로켓포탄이 날아와 밴을 때렸다.

RPG였다.

장갑차도 박살내는 RPG에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밴이 온전할 리 없다.

콰가강!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면서 밴이 두 동강이 나버렸다.

그때였다. 불길에 휩싸인 밴을 향해 다섯 명의 사내들이 AK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드르르르!

엄청난 총성이 울리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편 걸어오던 권총수는 표정이 굳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차에는 엄청난 양의 아편이 실려 있다.

권총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아편이 실려 있는 걸 알면서도 저런 무자비한 공격을 준비했다는 건 물건을 포기한다.

대신 권총수만 잡자는 것이 분명했다.

두두두두!

탄창을 갈아 끼면서까지 사내들의 사격은 좀체 끝나지 않았다.

아예 아편이고 동료고 뭐고 권총수만 죽일 수 있다면 사정 따위는 없다는 모습이다.

‘운(運)!’

등골이 서늘해진다.

모스크 정문까지의 거리는 이백여 미터였고 강호의 셈법으로 계산하면 칠십여 장의 거리다.

내공이 반박귀진의 경지에 오르면 최대 삼십 장, 90미터까지의 움직임은 몸이 감지한다.

그러나 그 거리를 벗어나면 약해지고 70여장이라는 두 배가 넘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암살자들의 행동을 간파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참을 육안으로 살핀 것이다.

어쨌든 차에 있었다면 생존은 불가능하다.

RPG 공격에 살아남는다는 건 어렵다.

‘담배’

담배가 살린 것이다.

강호의 고수가 피우려던 담배가 부러진 것에 어떤 징후나 의미를 담아 몸 조심을 한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섬칫한 한기가 가슴을 스친 건 왜였을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차에서 내렸다.

내릴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몸이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원래 세웠던 계획은 차안에 숨어 있다 다섯 명의 탈레반이 승차하면 재빨리 제압할 계획이었다.

‘말보로 레드’

하다리는 어떻게 탈레반이 말보로 레드를 피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틀 전 총 맞고 죽은 미군에게서 얻었다고 했다.

담배가 넉넉하기만 했어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개 부러진 것이 솔직히 아까웠다.

교도소 담배처럼 지금 권총수에게는 한 개비가 평소의 한 갑보다 더 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탈레반 천국이라는 말이 실감 났는데 밴이 불타고 다섯 명의 탈레반이 쏟아내는 총소리가 2분여 지속되는데도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철컥!

권총수는 갖고 있던 M4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탄창을 뽑아 손가락으로 눌러 몇 발이 남았는지 확인을 했다.

‘이 정도면 됐다’

권총수는 총구를 아래로 내린 채 오른쪽 겨드랑이에 붙였다.

누가 보더라도 총을 들고 다가오는 모습으로 얼른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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